그들의 현장과 그곳의 언약 (2)

January 1st, 2019

ICA Sunday Pulpit Message



♠ 서론

▶ New Year’s Eve메세지를 지난 주에 같이 보았다. 오늘은 신년감사예배 메세지이다. 1월 6일에는 2019년의 첫 주일 메세지가 나온다. 세번의 메세지가 2019년 우리 교회의 방향이다. 본문은 사도행전 1:12-14절이다. 이 본문 중에서 3가지 단어에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 ‘그들이’, ‘제자들이’ 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리고는 그들이 ‘다락에 들어가니’, ‘다락방에 모이니’ 라고 나온다. ‘그리고는 함께 기도했더라’ 라고 되어있다. 그래서 오늘은 두번째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사람들이 붙잡았던 언약에 대해서 보겠다. 지난 주에 봤던 그리스도의 비밀을 체험한 사람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이게 된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가장 큰 도우심인 성령 충만함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그들의 생각과 마음, 삶까지 새로운 틀 가운데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옛날의 틀 속에 살다가 새로운 틀 속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구약의 율법에 묶여있는 틀 속에서 살았다. 하나님의 성민,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로마의 속국으로 압박과 서러움 속에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새로운 틀인 하나님의 나라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옛날 틀 속에서는 내가 먹고 사는 것에 집중 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소원인 세계복음화를 위해서 새로운 틀 속으로 이들이 들어간다. 바로 그것이 성령의 충만함, 그 이 후에 시작 된 것이다. 그래서 올해 신년 우리가 이런 새로운 틀 속으로, 새로운 하나님 나라 법 속으로 들어가기 원한다.

▶ 인간은 도우심을 받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여자의 원형 본질이 돕는 배필이다. 남자는 돕는 배필인 여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나 여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것이다. 마가 다락방에 모인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큰 성령충만의 역사를 베풀어 주셨다. 그들이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체험했다. 그리고는 감람산에 따로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집중해서 정리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언약, 약속으로 붙잡고 마가의 집에 있는 다락에 모였다. 오늘은 그 성령충만함을 받기 전에 붙잡았던 언약을 우리도 붙잡길 원한다.

 

1.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 그래서 오늘 제목이 ‘마가다락방에 모인 자들이 붙잡은 언약’ 이다.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 중에 오늘 세가지를 보겠다. 첫째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두번째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은 ‘아버지의 약속한 것을 기다려라.’ 마지막으로 세번째 직접 하신 말씀은 ‘땅 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첫번째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이것이 과연 무슨 뜻인지를 봐야 한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이라는 현장에 하나님의 중요한 응답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놓치지 말고 받으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은 사람이 받는데 장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창세기 12장에 보게 되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가나안 땅에 정착했다. 그런데 때마침 동네 현장에 기근이 임했다. 먹을 것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여쭤보지 않고 바로 남쪽에 있는 애굽으로 내려갔다. 이러다가 큰 망신과 봉변을 당했다. 겉으로 보면 어쩔 수가 없었다. 마침 기근이 발생했기 때문에 그렇다.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다는 것이다. 또 선지자 요나 이야기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요나로 하여금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기를 원하셨다. 그런데 선지자 요나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방인 니느웨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고 믿지 않았기 때문에 폭삭 망하길 원했다. 한사람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멸망하기를 속으로 바랬다. 자기가 하나님의 명을 쫓아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면 몇 사람이라도 듣고 회개하여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을 싫어했다. 요나 선지자가 눈치를 보다가 마침 다시스로 향하는 배를 만나서 그것을 타고 가게 되었다. 마침 다른 곳으로 가는 배를 만났던 것이다. 아시다시피 이후에 큰 풍랑과 함께 큰 굴욕과 고난을 당하게 된다. 마침 기근이 들었고 마침 그곳으로 가는 배를 본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현장이 따로 있는데 그것을 벗어나다가 어려움을 자초한 것이다. 반대로 성경에는 또 긍정적인 이야기도 있다. 바울이라고 하는 전도자가 하나님의 복음을 소아시아 쪽으로 전파하고 싶어했다. 성령의 강력한 이끌림에 의해서 아시아 쪽으로 가지 않게 되고 마게도니아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바울 자신은 소 아시아쪽으로 가기를 원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마게도니아 빌립보 쪽으로 인도하셨다. 잘 인도받아서 거기에 중요한 제자들을 만나고 지교회가 세워지는 축복을 받았다. 또 바울의 이야기이다. 사역 말년에 바울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네가 로마에 가이사 앞에 서야 하리라.’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그 로마에 가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래서 대도시 예루살렘에 가고자 했지만 주위 사람들은 말렸다. 거기에는 우리 스승님, 선생님인 바울을 잡아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체포 당해서 처형당할 것이다. 제발 가지 말라고 주위에서 만류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가게 된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이루어나가는 것이다. 언약 성취를 위해서 체포될 위기와 처형될 두려움을 무릅쓰고 전진한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의 사람인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현장을 이동해야 된다.

▶ 우리의 삶에서 실제적인 예가 많이 있다. 내가 학생이면 내가 어느 지역의 학교를 가야 하는가? 직장인 같으면 내가 어느 곳의 일터로 가야 하는가? 비지니스를 하는 사람이면 내가 어느 지역에서 사업을 해야 되는가? 가족들 같은 경우에는 우리 가족이 어디로 이사를 가야 하는가? 이런 등등의 장소 이동, 현장 이동이 있을 수 있다. 특히 중직자들 같은 경우에는 잠시 출타, 출장, 휴가를 가는 것도 하나님께 질문을 드리고 하나님 앞에 응답을 받아서 이동하게 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하신다. 저도 마찬가지 였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다. 제가 달라스에서 부목사 생활을 하던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달라스 북부 지역으로 많이 모였다. 거기에 교회가 없었다. 그래서 저는 북부 달라스에서 개척을 하려고 기도도 했고 교회에서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저를 다르게 인도하셨다. 오스틴 지역에 파송을 받고 여기에서 사역을 오픈하게 되었다. 여러분과 같은 신실한 분을 만나는 축복을 받았고 그 다음에 미국 다락방 교단에서 첫번째로 헌당 예배를 드린 교회의 축복을 받았다. 헌당 예배는 맨땅에 아무 것도 없는 땅에 기초를 세우고 새 건물을 세워서 교회당으로 헌납하는 것을 입당 예배, 헌당 예배라고 한다. 물론 이전에 이미 있는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들어가거나 쓰던 미국 교회당으로 들어가는 경우는 많이 있었다. 류목사님께서 와서 설교를 해주시면서 그런 축하의 말을 듣고 처음 알았다.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를 포함해서 다락방 제 1호 입당, 헌당 예배가 임마누엘 어스틴 교회가 처음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하나님이 그러한 축복을 주신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교회사는 남게 되어있다. 그런 헌신에 여러분들이 쓰임을 받은 것이다. 이런 축복을 제가 달라스 북부에 갔다고 한다면 받지 못했을 것이다.

▶ 말씀을 따라가라. 언약을 따라 움직여라. 하나님의 계획을 찾아서 이동하라. 하나님의 계획이라면 전도와 선교에 유익한 방향이다. 제자 있는 곳으로. 제자가 모여야 시스템이 세워지기 때문에 그렇다. 후대의 응답을 놓고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램넌트 자녀들이 서밋을 향한 훈련과 그 응답을 위해서 어디로 가야 되는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되는 것이다. 구약 때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구원 받은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 땅을 향해서 광야를 통과하게 된다. 수백만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인도를 받았는가? 물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다. 그 하나님의 인도가 바로 성막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었다. 성막이라면 텐트, 장막이라고 이해하시면 된다. 그 장막이 움직이는 곳을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같이 움직였다. 그것이 멈추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멈췄다. 그 장막이 일주일 동안 머물면 백성들도 일주일 동안 머물렀다. 성막을 따라 움직였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계시이다. 하나님의 움직임에 따라서 그의 백성들도 이동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잠언 16장 9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우리의 발걸음을 주관하시고 주도하시고 인도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순복 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족속에게로 가기 전에 하나님의 중요한 응답을 받고 가라는 뜻이다.

 

2.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 그래서 두번째로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말씀을 주신 것이다. 첫번째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이고 두번째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신 응답이 있다는 것이다. 즉, 성령충만함을 받는 응답이다. 역시 또 스가랴서 4장 6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 "…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만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모든 일을 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힘 입어야 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한가지 체크해 볼 것은 하나님이 처음에 만은 첫 사람, 인간의 원형이다. 창세기 2장 7절에 보게 되면 인간의 원형을 설명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리고 그 다음 단계에 중요한 작업을 하신다.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곧 살아 있는 혼, 생령이 된지라.” 말하고 있다. 생령의 숨이라고 되어있다. 그 생기가 없으면 하나님의 숨, 하나님의 생기, 하나님의 성령 신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원래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졌지만 완성은 하나님의 성령이 들어가야 인간이 된다는 말이다. 이것을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게 되면 진지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나님의 생기, 하나님의 성령이 내주하게 된다. 그렇다고 한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의 불신자분들은 하나님의 성령이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살 껍데기를 가지고 다니는 짐승, 흙에 불과한 것이 불신자이다. 여기에 하나님이 구원의 길을 주신 것이다. 그 구원의 길, 영원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죽으면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냥 먼지 하나 터신 것이다. 그런 하나님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 우리는 가슴 아파한다. 이순신 장군은 복음을 안 들었는데 지옥에 갈까요? 중동 지방에 테러와 전쟁이 터지고 있는 중에 어린아이들이 죽어가는데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분이 존재하신가요? 우리는 이렇게 질문한다. 우리는 안타깝고 불쌍하게 생각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있다고 한다면 왜 가만히 있느냐고 반문하고 싶을 것이다. 모든 것을 계산하시고 모든 것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눈에는 하나님의 성령을 모시지 않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깨달은 사람들이 나는 벌레 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 구원이라고 하는 것, 하나님의 성령이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인간의 수준에 머물지 마시고 하나님의 수준, 하나님의 기준, 하나님의 표준에 갈 수 있는,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리기를 축원한다.

▶ 그래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는 축복의 사명을 주신 것이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성령을 모신 존재이다. 성경의 여러 예들 속에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받은 경우가 많이 있다. 잘 아시는 요셉이다. 고된 노예로부터 한 나라의 재상, 총리가 되었다. 이 이집트 애굽의 절대 군주가 요셉을 보고 평가를 했다. 창 41장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그리고 요셉에게 말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불신자 바로 왕도 요셉이 여호와의 신에 감동한,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을 받은 것을 볼 정도였다. 다윗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무엘상 16장이다. 사무엘이라는 선지자가 다윗을 향하여 기름을 부었다. “그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 크게 감동되니라” 말하고 있다. 성령 충만함, 성령의 도우심, 성령의 역사하심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성경은 말하고 있다.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성령충만을 받고 시작하셨다. “예수께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고 비둘기 같은 성령께서 임하셨더라” 라고 말씀하고 있다. 초대교회 마가다락방에 모였던 성도님들이 오순절 날 성령충만을 받고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도전하게 됐다. 이 놀라운 성령의 도우심, 성령의 충만함은 이미 구약 때에 약속된 것이다. 요엘서 2장에 나와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이미 예언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이미 예고 하셨다. 요한복음 16장이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예수님께서도 미리 예고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반드시 성령충만함을 받을 수 있게끔 하나님이 약속하셨다.

▶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적용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성령충만 받기를 원하신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받으면 좋겠는가?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힘을 받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성령충만함을 받는 나만의 시간, 장소, 방법을 찾아내셔야 한다. 그것을 개인 정시기도 시간이라고 말씀할 수 있다. 다윗같은 경우에도 정시기도 했음을 성경 곳곳에 나와있다. 다니엘 역시 자기만의 정시기도 시간을 가졌다. 우리의 그리스도이시며 주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도 정시기도 시간을 가졌다. 베드로와 요한 역시 정시기도 시간을 함께 가졌다. 바울 역시 자신만의 정시기도를 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하시고 하나님께 쓰임 받은 모든 종들이 정시 기도했다는 사실을 성경은 누누이 반복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램넌트 자녀들이 정시기도 할 수 있는 그 부분을 여러분이 잡아주셔야 한다. 세상 나가기 전에 정시기도 하는 거룩한 습관을 잡아줘야 한다. 여기에 많은 학생들이 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혼자 유학생활을 하고 외롭고 돈이 없고 고생스럽더라도 나만의 정시기도 시간을 갖고 있게 되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인도하신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이 여러분들 만의 개인 정시기도시간을 드린다면 많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체험하게 된다. 여러분 스스로 개인적으로 작은 결론이 나온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 바라보면 다 해결되는 구나. 주일 강단 말씀이 아무리 어려워도, 교회에 시스템이 아무리 없어도 내가 하나님께 정시기도를 드리면 하나씩 다 풀린다. 그러다 보면 내가 부족하고 내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축복하고 인도하는 것을 많이 받게 되면 도리어 미안하고 죄송하고 감사하고 그렇다. 그런 응답의 체험이 없으니까 나도 모르게 화가 나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하고 제 3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게 되는 것이다. 눈으로 볼 때는 다 똑같다. 그런데 무언가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그 무언가를 나는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만이 가지고 있는 비밀이라고 한다. 여러분들께서 하나님과 여러분 만의 비밀이 꼭 있기를 바란다. 이것이 성령충만 받는 비밀이다. 그것 때문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2019년도에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조금이라도 맛을 본 자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이 부분을 꼭 확보, 확립하시기를 바란다. 그러면 내 주위에 천이 무너지고 만이 쓰러진다 한들 나는 언약의 여정을 가게 되어진다. 승리하시기를 바란다.

 

3.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라마리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 마지막이다. 아버지의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 즉 성령의 충만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사도행전 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명령이 아니다. 올 수밖에 없는 응답을 미리 알려주신 것이다. 성령충만을 받게 되면 성령의 권능을 받는다는 뜻이다. 성령의 능력이 임하게 되면 너는 너도 모르게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것이다 라고 밝힌 것이다. 증인은 무슨 뜻인가? 증거를 가진 자를 말이다. 내가 보았기 때문에 증인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듣고 체험했기 때문에 증인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증인이 될 것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응답의 증거, 축복의 증거를 줄 것이다 라는 뜻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증인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라고 고백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 ‘하나님이 성령충만 받게 해서 증인이 되게 하신다고 하셨는데 저를 그렇게 인도해주세요’ 기도하시면 반드시 축복의 증거를 주신다.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여러분이 동의하고 인정하고 고백하게 되면 하나님이 성령으로 역사하신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증거를 주실지 미리 알아야 할 세가지가 있다. 나에게 3가지 분야에 증거를 주신다. 어떤 세가지 분야인가? 첫째는 나의 마음이다. 두번째는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문제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나의 만남이다. 꼭 기억하시기를 바란다.

▶ 나의 생각과 마음에 증거를 주시는데 평안함을 주신다. 또는 담대한 믿음을 주신다. 여러분의 개인 정시기도 시간에 하나님께 집중해서 성령의 은혜를 받게 되어지면 생각과 마음에 그런 증거를 먼저 주시는 그런 경우가 무척 많다. 오늘 예수님의 명을 따라서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제자들이 나온다. 베드로를 보시길 바란다. 성령충만을 받고 이 사람이 바뀌었다. 방언이 터지고 하나님의 은사가 나타났다. 주위사람들은 처음 보는 것이기 때문에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술 주정하는 것으로 평가하고 봐라 봤다. 보통 때의 베드로 같았으면 욱했을 법한데 평안함 가운데 설명을 한 것이다. ‘술 취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조상 요엘 선지자가 말한 예언을 지금 하나님이 성취시키신 것 아니냐.’ 그러면서 성령이 임하고 나서 회개가 따라오고 회개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축복을 설명한다. 평안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 나중에 사도행전 4, 5장을 보게되면 베드로가 법정에 서게 된다. 왜 예수 이름을 전하느냐고 베드로에게 물었다. 예전에는 법정이 아니라 계집 여종이 ‘이 사람 예수와 같이 다니던 사람이다’ 라고 했을 때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고 도망다니던 사람이 담대하게 ‘천하에 구원을 주실만한 이름을 예수 이외에는 없다.’ 라고 선포한 것이다. 평안할 때는 평안하고 담대할 때는 담대하는 이것이 성령의 도우심이였다. 성령의 은혜를 받은 증거가 우리 생각과 마음에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빌립보서 4:6-7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래서 많은 분들이 기도를 깊게 하다가 생각과 마음에 평안이 임할 때까지 기도하시는 경우가 무척 많다. 눈에 보이는 것 중에 바뀌어지는 것은 없다. 당장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닌데 마음에 평안이 오게 되면 하나님이 이미 작업하시고 이미 하나님께서 끝내셨다는 확신이 오게 된다. 성령께서 주시는 평안함과 성령께서 주시는 담대한 믿음이다. 여러분이 이것을 맛보시고 체험하시기 바란다. 나의 마음에 먼저 이런 증거를 주신다.

▶ 두번째는 나의 문제이다. 성령의 역사를 통하면 나의 문제가 해결되거나 또는 그것을 통해서 응답이 온다. 초대교회 성도님들이 로마의 속국 안에 있었다. 압박과 서러움에 눌려있던 마음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믿음과 소망으로 바뀐 것이다. 복음이 이해된 것이다. 성경 전체가 이해된 것이다. 이러니까 성경이 이해되고 복음이 깨달은 자를 통해서 전도의 문이 열린 것이다. 전도 문이 열리니까 부흥이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니까 그 속에 제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제자들을 통해서 시스템이 갖추어지게 된 것이다. 이래서 경제 응답도 받고, 제자 응답도 받고, 시스템 응답까지 다 받게 되고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로마의 속국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생각과 마음, 삶에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있었다. 로마의 시저가 왕은 맞는데 진정한 나의 왕, 궁극적인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 것이다. 나의 주님. 로마가 왜 이렇게 크리스천들을 핍박하고 박해를 했냐 하면 예수가 왕이라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런 속에서도 이 성령충만함을 받고 많은 현실적인 문제에 응답을 받은 것이다. 성령이 능력으로 함께 하시기 때문에 구하시기 바란다. 찾기 바란다. 두들기기를 축원한다. 그런 사람들 마다 얻게 될 것이고 찾게 될 것이고 열러지게 될 것이다. 마태복음 7:7-8절 이다.

▶ 나의 마음, 나의 문제 그리고 나의 만남이다. 내가 만나는 만남 속에 하나님이 증거를 주신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만남이 있다. 그 속에 절대 제자와의 만남도 들어있다. 이것이 놀라운 것이다. 하나님이 붙여주신 그 영혼과 결혼해야 승리한 것이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람과 사업을 해야 그 사업이 성공한다. 여러분 자녀들이 학교에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선생님을 만나야 교육, 학업에 성공한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이상한 선생님들이 있다. 그런데 어떠한 선생님을 만나서 인생이 바뀌고 진로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만남의 축복이다. 초대교회에는 삼천 제자가 만남의 축복을 통해서 연결이 되었다. 사도행전 13장을 보시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라고 하면서 예비된 영혼이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바울이 이 만남의 축복을 잘 누렸다. 디모데라는 램넌트 제자를 만났다. 결국 수제자가 되었다. 그 말은 바울이 쥐고 있던 복음의 바톤, 언약의 바톤을 디모데에게 물려준 것이다. 아까 말씀 드렸다시피 소아시아로 가려고 했으나 하나님께서 마게도니아로 가게 하셨다. 거기로 가다가 빌립보 지역에서 루디아라는 제자를 만났다. 루디아가 굉장한 헌신을 했다. 결국에는 그녀의 집에서 빌립보 교회가 탄생한다. 완벽한 하나님의 만남의 축복이다. 야손이라는 제자를 만났다. 야손은 자기 생을 걸고 바울을 보호한다. 사도행전 18장에서는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를 만난다. 이분들은 완전한 동역자이다. 나중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재벌이 되는데 그 수많은 경제력을 아낌없이 바울을 향하여 쏟아 부었다. 하나님이 준비한 만남이다. 바울에게는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로마서 마지막 장에 보게 되면 이름들이 쭉 거명되어 있다. 전부다 바울과 함께 했던 보호자 였다. 바울과 함께 했던 동역자였다. 바울을 끝까지 책임지고 도왔던 식주인이었다. 여기에는 친척, 누이의 이름이 나온다. 실제로 누이나 친척이 아닌데 그만큼 이 제자들이 함께 했다는 것을 말한다. 즉, 절대 제자들과의 만남이다. 바울이 이 축복을 찾고 누렸던 것이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게 되면 이런 만남 속에서도 하나님이 증거를 주신다. 힌트를 조금 드리자면 나의 영적 상태에 따라서 사람을 보내신다. 정말로 성령 충만 받게 되어지면 중요한 만남의 축복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 나 자신이 복음으로 행복한 시간을 갖는 사람들에게 절대 제자를 붙이신다.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자에게 절대 제자를 더하신다. 나의 마음, 나의 문제, 나의 만남 속에 증거를 주신다. 2019년도에 이러한 증거들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한다.

 

♠ 결론

▶ 결론이다. 행 1:12-14이 우리 교회 2019 표어이다. 문장으로 만들면 이렇다. 그리스도를 체험한 자는 하나님 나라의 응답을 누리도록 성령 충만함을 약속하셨다. 이 성령의 도우심, 성령의 능력을 받게 되면 전과는 다른 방향과 다른 능력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전에 받지 못했던 응답과 축복의 증거를 여러분이 받게 되는 것이다. 언약으로 붙잡기를 바란다. 감람산에서 40일 동안 집중훈련을 받고 내려왔던 그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함께 모인 것이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아버지의 약속한 것을 기다리다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것이다. 이들의 생애와 이들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시간표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들이 새로운 틀을 준비하니까 하나님은 새로운 응답의 그릇을 준비해주신 것이다. 새로운 삶의 틀 속으로 들어갔던 그들처럼 여러분에게도 응답과 축복을 누리길 축원한다.

▶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새로운 언약을 붙잡고 새로운 인생의 뜻 속으로 들어갔던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게 하옵소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현장을 인도하게 하시고 오직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주의 예비된 응답을 찾게 해주옵소서. 특별히 우리의 마음에 평안함과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나의 문제가 해결되거나 그 문제를 통해서 응답을 받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많은 세상사람들이 사람을 잘못 만나 실패하고 낙심하는데 우리는 절대 제자와의 만남을 약속하신줄로 믿습니다. 이 절대제자와의 만남을 찾기 위하여 나의 영적 상태가 서밋에 이르도록 축복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