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이 내린 결단

January 7th, 2018

ICA Sunday Pulpit Message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예배드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 새해 첫 주일 예배를 함께 드리게 되서 감사합니다. 예배를 위해 여러가지 섬기고 헌신하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교회에서 제일 멀리 사시는 분들이 쿡 선생님 내외분, 동환 집사님, 샌 안토니오에서 오시는 분들이십니다. 통역해주는 클레이집사와 선애에게도 감사하고 매주 PPT를 만드는 종혁이와 종태 집사님, 녹취 해주시는 안준성 집사, 반주해주시는 사만다 집사님과 다은 집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주일 예배 때마다 음식 준비해서 성도를 섬기시는 여선교회 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사회자로, 대표기도로, 성도님들을 안내하시는 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렇게 한번의 예배를 위해서 여러가지 모양으로 보이고, 보이지 않는 헌신과 도움이 있습니다.

▶ 올해 첫 주일예배 메시지가 예배에 관한 것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이 만드시고 그 안의 첫 책이 창세기인데요, 세상이 지어진 창조의 이야기가 짧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의 별이 몇 개인지,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물이 무엇인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고 빠르게 지나감을 기록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부터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께 범죄해서 떠났는가를 자세히 기록되어있습니다. 인간의 무너짐을 첫 판부터 기록했습니다. 그리고나서 4장에 이 부분을 기록했습니다. 사람이 처음으로 사람을 낳았는데 이름이 '가인'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처음으로 죽였는데 그것이 ‘아벨’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아담과 하와, 사람끼리 만나 처음으로 낳은 사람이 바로 가인입니다. 사람이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는데 그게 바로 아벨의 죽음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끔찍한 사건을 성경 앞부분에 편집을 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길을 지나가더라도 가끔 짐승 죽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걸 보고 운수 좋겠구나, 행복한 날일세 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보통은 기분이 좋질 않습니다. 그런데 살인의 사건을 성경의 첫 책에, 인류사 처음에 하나님께서 배치해 놓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하나님이 무언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전달하시려고 그러신 것입니다. 둘 다 격투기 하다 죽은 것이 아니고 바로 배후에 예배라는 사건이 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아벨이 하나님께 드린 제사,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셨습니다. 가인은 정성껏 준비했습니다만 하나님이 관심 갖지 않으셨다고 원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벨은 달랑 양을 가지고 왔는데 가인은 식물, 채소, 과일, 쌀을 풍성하게 가지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못 받았습니다. 사람이 관심을 받지 못하게 되면 기분이 나빠질 수 있습니다. 다른 성도님들은 다 축복해주면서 나만 축복해주시지 않는다고 목사님을 원망하는 분들도 계실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가인이 하나님의 관심에서 멀어지니까 화가 났습니다. 가인 형이 볼 때 동생 아벨이 미웠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장난치다가 화가 난 것이 아니고 예배에 성공한 것에 화가 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성경을 읽을 성도님들을 향하여 주시고자 하는 첫번째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 이슈가 된 것이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하여 예배 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 여러분들이 물건을 사거나 만들게 되면 그 이유와 목적이 무엇입니까? 내가 그것을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사용해서 내가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물건을 사용하면서 내가 만족을 얻는 것입니다. 주인 입장에서는 만족을 얻는 것이고, 물건 입장에서는 그 주인을 돕고 섬기는 기능을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반드시 목적이 있습니다. 즉 피조물은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경은 이사야 43장에 분명하게 하나님의 목적을 기록했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에게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그래서 피조물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드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목숨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안다고 하면 예배를 드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이 교회의 주인이시고 우리 인생의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온다.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심이라.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를 구원하신 이유가 바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죄인이었고 지옥을 가야했던 내가 하나님께 구원을 받아서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인간 실존의 이유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성도가 존재하는 이유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성경에서 구체적으로 건들기 원하는 이슈는 바로 예배입니다. 그래서 오늘 신년을 맞이해서 첫 메시지가 아벨이 내린 결단입니다. 아벨이 내린 결단은 다이어트를 한다든지, 영어를 마스터한다는 결단이 아닙니다. 아벨의 결단은 평생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서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1. 아벨은 평생 예배자로 살 것을 결단했다.

▶ 첫번째입니다. 어떻게 아벨이 하나님 앞에 평생 예배자로 서겠다는 결단을 하게 되었을까요? 아벨이라고 하는 이름을 부모인 아담과 하와가 지어주었습니다. 자식의 이름을 지을 때 부모의 바람과 사상, 관념이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들 이름에 다 뜻이 있습니다. Marcus라는 뜻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리더이군요. 아버지의 명성과 유업, 바람과 소원을 큰 아들에게 전하고 싶어서 Marcus라고 지었을 것입니다. 큰 아들 마커스 주니어는 아버지보다 더 큰 리더의 축복을 받길 바랍니다. 그런 것처럼 아담과 하와는 첫 아들을 낳고 가인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아들을 얻었다’는 의미입니다. 소유, 획득했다는 뜻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약속을 꼭 붙잡고 있었습니다.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너희들을 속인 사단의 머리를 깨겠다, 사단을 이기고 우리를 구원할 메시야, 여자의 후손이 태어날 것이다. 하와는 기대했을 것입니다. 자기가 아기를 낳고 나서 여자의 후손을 얻었다고 기대를 했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가인의 삶을 보니 여자의 후손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관심보다는 저주 받은 땅을 가꿔 먹고 살기에 급급해 보였습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여자의 후손 같지 않음을 보고 마음이 공허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둘째아들을 낳았는데 공허라는 뜻의 아벨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입김, 한숨이라는 뜻입니다. 겨울에 입김을 불면 자국이 생겼다가 없어집니다. 공허함, 바로 없어짐입니다. 아벨이 그런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가인의 삶을 자세히 보니 농사만 열심히 하고 영적인 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부모님도 기대를 잃고 낙심하고, 형의 삶을 보니 뚜렷한 것이 없어 아벨이 결단을 했습니다. 나만이라도 하나님께 나아가자. 나만이라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자. 아담아버지의 에덴동산의 추억을 들었지만 세상천지를 보니 온 땅이 가시 엉겅퀴, 재앙으로 가득한 것을 보았습니다. 나도 이 세상에 사는데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고서는 안되겠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보시고 진노하셔서 이 땅을 저주하셨는데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풀 수 있을까? 하나님의 진노를 푸는 길은 오직 양의 피, 양의 희생을 드리는 것 뿐이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양의 피가 아니고서는 나아갈 수가 없구나. 우리는 이미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하실 상징이란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양의 피를 통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풀었습니다. 지금은 양의 활용성이 높습니다. 양털, 양의 우유도 귀합니다. 양고기도 많이 먹습니다. 그러나 이 당시는 노아 홍수 이전이기 때문에 육식을 하지 않았습니다. 양의 우유를 먹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홍수 이전이기 때문에 사계절이 생기기 전이었습니다. 양털로 옷을 만들 이유도 없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그 당시 양은 오직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만 쓰이는 도구였습니다. 그 양을 치고 먹이는 것입니다. 주일날 양 갖고 가야하니까 토요일만 양을 치는 것이 아닌, 평생 목동의 일을 한 것이었습니다. 평생 양을 친다는 얘기는 평생 예배자로 성공하겠다는 뜻입니다. 부모가 낙심을 하고 형제가 하나님을 떠난다하더라도 나만큼이라도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자. 모두가 자신만을 사는 세상일지라도 나만큼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자. 그 작은 결단을 아벨이 한 것입니다.

▶ 그 사건 배경 때문에 하나님이 창세기 4장 앞부분에 넣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창세기 3장 사건의 저주를 해결하는 길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성공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사람 탓하지 말고 세상 원망하지 말고 내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에 성공하게 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람이 제일 먼저 생각하고 결단할 것이 무엇입니까? 예배입니다. 2018년 신년에 저와 여러분이 결단할 것, 예배입니다. 이것이 아벨이 내린 결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믿음의 성도가 내려야할 결단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년메시지때 나누었던 영적 서밋의 시작은 바로 결단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예배 바르게 드리라 하시는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바로 생각하고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예배인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장 원하시고 제일 기뻐하시는 것이 예배라고 한다면 사탄 마귀가 가장 증오하는 것도 예배입니다. 그래서 나의 생활 주변에 갖가지 모습과 상황으로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모든 일들이 벌어집니다. 영적인 눈을 뜨고 보면 보입니다. 우리는 보통 ‘목사님이 괜히 기분 나쁘니 예배 안 가야지.’ 이렇게 생각합니다. ‘김 집사가 내 돈 떼먹고 저렇게 버젓이 찬송 부르고 있네. 아 기분 나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사람을 통해서 부정적 이미지가 들어가게 하고 예배를 놓치게 하는 사단의 전략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기분이 나쁘거나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 마귀가 충만하지 않으면 살인할 수가 없습니다. 가인이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런데 아벨을 쳐죽였습니다. 이것은 사단이 개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 성공한 아벨을 처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 예배자는 항상 손해, 피해, 박해를 받아왔다.

▶ 그래서 두번째입니다. 예배자는 항상 그래왔습니다. 손해를 보거나 피해를 보거나 박해를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가인을 통하여 사단마귀는 아벨을 처치한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 세계사를 한번 공부해보시기 바랍니다. 시대마다 강대국이 일어나고 공통적으로 한 일이 있습니다. 우상을 제작하고 신전을 만들었습니다. 우상숭배를 한 것입니다. 애굽의 파라오, 바벨론의 태양의 신전, 로마의 제우스 신전, 결국 우상숭배하게 만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삼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도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세번의 유혹, 시험이 있었는데 최후의 시험이 무엇이었습니까? 천하 만국을 너에게 줄테니 내게 경배하라 는 것이었습니다. 천하 만국의 모든 소유권을 너에게 양도할테니 하나님께 경배하지 말고 나에게 경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성도가 드리는 예배의 가치와 능력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사탄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 예배의 축복만 빼앗으면 모든 것을 가져갈 수 있다는 사실을 사탄은 알고 있었습니다. 마귀가 그것을 싫어한 것이었습니다. 마귀가 그럴 이유가 있습니다. 마귀가 원래 무엇을 하던 존재였습니까?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주관하는 수석 천사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기름부음, 영광, 축복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 찬송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추방당했습니다. 찬송을 드리며 예배를 드리는 특권을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찬송하며 예배드리는 것을 보았을 때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사단의 심령이 어떻겠습니까? 내가 못했던 것 쟤네라도 하니 고맙네.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쫓겨난 첫째 와이프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새로 들어온 와이프가 남편을 잘 섬기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게 되면 뚜껑이 열립니다. 그래서 마귀가 제일 싫어하고 증오하고 견디지 못하는 것이 성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제일 원하는 것을 이루어드리는 것이고 마귀가 가장 증오하는 일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예배에 성공만 하더라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3. 예배자가 드리는 헌신은 반드시 축복을 받았다.

▶ 세번째이자 마지막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열심히 잘 드리면 복을 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맞는 말이지만 다 맞지는 않습니다. 피조물 인간인 내가 열심히 나가고 성실히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는 생각이 바로 종교입니다. 종교생활은 하면 할 수록 어려워집니다. 종교생활은 하면 할수록 망합니다. 시작은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복음입니다. 종교는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 구원을 얻도록 열망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선행을 행하고 덕을 쌓고 부처가 되고, 인간이 성인이 되는 이것이 종교, 멸망하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또다른 종교를 주지 않으시고 복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위하여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깨달음, 응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이루시며 영광을 거두시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을 바꾸셔야 합니다. 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원하는데 예배 드리고 싶은 마음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겠다고 뜻을 작정하시고 세우셔야 우리에게 복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려면 우리가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만나기 원하셔서 우리에게 예배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 눈이 열리셔야 합니다. 그러면 더 큰 깨달음이 옵니다. 반대로 생각해보십시오. 예배 가봐야 좋은 것도 없고, 기분 나쁜 사람 얼굴만 봐야하고, 맨날 그 소리가 그 소리고, 맨날 예수가 그리스도란 말만 하고.. 그런 마음이 들었다는 얘기는 내가 예배에 싫증이 났구나 라는 것이 아닙니다. 엄격히 얘기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주시지 않겠다라고 하는 사인입니다. 이미 허락되고 준비된 축복을 발견하지 못하게 하시겠다라고 하는 사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눈이 열리셔야 합니다. 내가 안 나가고 쉬고 내가 끝낸다 라는 것은 속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응답을 주시기 위해서 예배의 자리로 나오게 하시고 예배를 드리고 싶은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냥 기도응답 주시지 않으십니다. 말씀을 먼저 주십니다. 그 말씀을 약속으로 붙잡은 성도들에게 성취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시간이 바로 예배의 시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높이시거나 사용하셔서 축복하시길 원하시는 것은 바로 예배의 자리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예배 성공하도록 만드십니다. 자세히 보면 내가  예배에 갈 수 없는 형편인데 가서 듣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반드시 주시려고 강권하시는 것입니다. 가야되겠다 라고 마음 먹더라도 안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나님이 제껴놓을 수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잘 모릅니다. 교회 분위기가 안 좋아서, 주일학교 시스템이 없어서 라는 생각이 속는 것입니다.

▶ 자 마지막 하나를 보고 마치겠습니다. 다윗이 예배에 성공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역대상 29장에 보게되면 다윗이 하나님을 향하여 찬송하고 예배드리면서 감사의 고백을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높이시는 분도 하나님, 낮추시는 분도 하나님, 부하게도 하고 가난하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다. 오늘 내가 이렇게 기뻐하는 것도, 성전을 건축할 모든 준비를 하게 하심도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와 찬송을 드렸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성전의 가치를 다윗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보신 것입니다. 또 한가지 볼 것이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성전건축을 위해서 헌신하고 감사하고 준비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다윗 네 마음을 좋게 보아 무병장수 하게 하겠노라 이렇게 나와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내가 너로 하여금 세계적인 왕의 자리를 얻게 하겠다 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역대상 29:25절에 보게 되면 갑자기 다른 말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솔로몬을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심히 크게 하시고 또 왕의 위엄을 그에게 주사 그전 이스라엘 모든 왕보다 뛰어나게 하셨더라’ 여호와께서 라고 주어가 나옵니다. 성전건축의 모든 것은 다윗이 했습니다. 그런데 이전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솔로몬을 뛰어나게 하겠다고 나옵니다. 역대상 29장은 솔로몬의 기도가 아닌 다윗의 기도입니다. 언약궤를 사모했던 다윗, 예배드리는 처소를 귀하게 여겼던 다윗, 평생에 청이 있다고 한다면 여호와의 집에 머무는 것이라고 했던 다윗, 그 예배드리는 성전건축에 필요한 모든 헌신의 준비를 마쳤던 다윗.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으시고 한 일이 있습니다.  바로 솔로몬에게 왕권을 부여하신 것입니다. 솔로몬을 존귀케 하는 것이 하나님이 노리는 것이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성전을 위하여 헌신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이 후대를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후대를 높이 세워 축복하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의도요 노림수요, 계획입니다.

▶ 여러분은 솔로몬을 잘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의 은사로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와이프가 몇명이었습니까? 정결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나중에는 북이스라엘, 남유다로 갈리는데 불신앙 역할도 합니다. 그러한 성품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왜 가장 광대한 영토에 솔로몬을 세우셨을까요? 왜 어떤 왕보다 최고의 지혜를 주셨을까요? 왜 아버지 다윗보다 더 큰 영화를 누리게 하셨을까요? 바로 이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전건축을 위해 준비하고 헌신하는 자들의 후대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후대를 높이 세워서 축복하시려고 다윗으로 하여금 예배의 가치를 깨닫게 하시고 헌신하게 만든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목사님이 건축헌금을 노리는 거구나 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코 헌금따위를 얘기해서 여러분을 시험에 들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을 축복해서 솔로몬 후대를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기 때문에 헛소리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인자가 아니시기 때문에 후회하심이 없으십니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시겠습니까. 역대상 29:25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솔로몬을 세우고 세계최고, 최대, 최상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예배의 비밀을 알고 예배 처소의 가치를 위해서 헌신하는 자들의 후대들을 일으켜 세워서 사용하시겠다는 뜻입니다.

♠ 결론 – 성도가 예배를 우선에 두고 예배에 집중하며 예배에 의해 인도받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

▶ 무한한 비밀을 갖고있는 예배의 비밀 속으로 들어가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배에 우선하시고 집중하십시오. 예배 때 주시는 말씀을 따라서 인도받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응답과 증거가 계속 쌓일 것입니다.

▶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단 한번의 인생을 살고간 아벨이 내린 결단을 성경에 기록하셨습니다. 예배를 통한 하나님의 축복과 응답을 실제적으로 보고 체험하며 누리게 하옵소서. 예배에 비밀을 누리는 모든 성도님들의 후대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