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두셀라가 내린 결단

January 21st, 2018

ICA Sunday Pulpit Message



♠서론 – 끝을 보고 가는 자만큼 현명한 자는 없다. (시 90:12)

▶ 오늘 말씀의 제목은 ‘므두셀라가 내린 결단’입니다. 결단이라는 시리즈를 하고 있습니다. 아벨이 결단을 했고, 또 에녹이 결단을 했습니다. 오늘은 므두셀라라고 하는 인물이 내린 결단을 보려합니다. 일단은 서론으로 ‘끝을 보고 가는 사람만큼 현명한 자는 없다.’ 입니다. 우리에게 모두 끝이 있습니다. 우리가 천년만년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 날 수는 100년 안팎입니다. 즉, 끝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정해진 인생의 날 수, 기간이 있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지혜롭게 현명하게 보내야 될 것입니다. 모세가 시편 90편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10절에 보시게 되면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세월의 빠른 흐름을 이야기 했으며 우리 인생에 정해진 기간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2절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즉, 정해진 날, 하루하루를 잘 계산해서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시험이 없다 라고 생각을 한다면 학생들은 어떻게 할까요? 대부분이 하고 싶은대로 할 확률이 큽니다. 그런데 중간고사, 기말고사 같은 시험들이 있으면 그 기간을 생각해서 나름대로 준비하고 놀때는 놀고 공부할때는 공부할 것입니다. 시험에 때가 있음을 알게 되면 계산하게 됩니다. 그런데 정해진 시험이 없고 실력을 테스트하는 지점이 없다고 한다면 막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인생도 똑같습니다. 인생, 삶에 지혜를 가진 자, 현명한 사람은 그 끝을 항상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누구에게나 끝과 종말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끝, 종말 3가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이후로 여러분들이 꼭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우리에게 종말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지혜롭고 유익하고 건전한 신앙생활을 하게 함입니다.

 

1. 성경적인 종말의식은 건전한 신앙생활로 이끈다.

▶ 첫째는 개인 종말입니다. 각 개인개인마다 끝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람은 누구나 육신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것이 개인 종말입니다. 히브리서 9장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누구에게나 죽음은 정해진 사실인데 더 중요한 것은 그 후에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우주만물의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민을 심판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개인종말, 죽음 이후에 영생인지 영벌인지 심판을 하십니다. 무섭고 긴장되고 떨리지 않습니까? 이 엄위하신 심판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언제 죽어도 그 심판을 면함 받은 은혜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사실은 어마어마한 선물인데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 라는 사실이 잘 피부로 와닿지 않습니다. 아마 우리 교회성도님들 중에서 집사님 대표, 권사님 대표, 장로님 대표, 램넌트 대표를 뽑아서 지옥에 한번 보내서 갔다가 돌아오면 그들의 믿음이 아주 커질 것입니다. 지옥에 갔다 오겠다 자원하실 분 계십니까?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 말로 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곳이 지옥이라고 성경에는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지옥을 체험하고 돌아왔다고 한다면 구원받은 것이 얼마나 큰 은혜고 감사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지옥은 한번 갔다가 오는 장소가 아닙니다. 견학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없는 성경에 미리 기록을 해주었습니다.

▶ 누가복음 16장 입니다. 여기에는 두사람이 나옵니다.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부자 한 사람과 이름이 기록된 거지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거지의 이름은 나사로 입니다. 부자는 죽기전에 날마다 잔치를 열만큼 잘 먹고 잘 입었던 화려한 생활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나사로라고 하는 거지는 그 부잣집 대문에 누워서 살았습니다. 음식이 없어서 그 부잣집에서 버리는 음식 쓰레기, 부스러기를 주워 먹었습니다. 병든곳, 상처난 곳이 많았던 환자였습니다. 돌아다니는 개가 와서 거지의 상처를 핥는데도 개들을 쫓아낼 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자도 죽고 거지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지옥으로 갔고 거지 나사로는 천국으로 갔습니다. 부자는 지옥에서 고통스러워했지만.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 낙원, 천국으로 갔습니다. 문제는 지옥에 간 부자가 천국에 가 있는 나사로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자는 너무나 반가웠던지 아브라함의 품에 간 나사로를 보고 아브라함에게 간청했습니다. 제발 나사로를 이리로 보내서 물 한방울을 달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말했습니다. 서로 볼 수는 있지만 가운데 큰 구렁이 있어서 오고 갈 수가 없다. 물 한방울도 못 얻는 곳이 지옥입니다. 이 물 한방울 부탁을 들어줄 수 없다면 또 다른 부탁을 드립니다. 저 나사로를 우리 아버지 집에 보내서 내 다섯 형제에게 말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다섯형제에게 지옥과 천국이 있음을 말해주어서 지옥에 오지 말게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뭐라고 했습니까? 나사로가 갈 필요가 없다. 이미 그들에게는 모세와 선지자의 글을 통해서 내세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나사로가 비록 살아서 돌아간들 나사로의 말을 안 믿을 것이다. 어떠한 부탁도 받아주지 못했습니다.

▶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스토리가 비유일까요? 실화일까요? 이 성경의 기록이 가상의 스토리일까요? 아니면 실제 이야기일까요? 율법주의자로써 우리보다 더 착하게 살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 성경 기록을 비유라고 가르치고 배우고 있습니다. 안타깝게 성경도 잘못보고 있습니다. 사랑이 그토록 많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찌 인간을 영원히 고통 가운데에 밀어 넣을만큼 잔인할 수 있겠는가 생각을 하며 누가복음 16장의 성경 기록은 인간들을 위한 비유의 경고일 뿐 지옥은 없다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옥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영혼도 없고 죽으면 인간이 없어지는 것이다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많은 스토리가 나옵니다. 사람의 이름, 실명이 기록된 것은 비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실화입니다. 즉, 천국과 지옥은 실존하는 장소입니다. 죽음 이후에 심판으로 영생인지 영벌인지 결정되는 실제 상황이 벌어질 것입니다. 실제 이야기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옥의 고통은 물 한방울 없는 아주 간절한 곳으로 일반 은총이 없는 곳입니다.

▶ 천국과 지옥은 마주 볼 수 있는 곳이라고 나와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상대방은 영생복락을 누리고 있는데 나는 지금 영원한 불못 가운데에서 끊임없는 절규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더 고통스럽습니다.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앞마당에는 높은 초호와 아파트가 들어와 있습니다. 거기에는 많은 편의시설들이 잘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파트 담 넘어로는 재개발지역, 판자촌이 있습니다. 판자촌에는 기초 수급 대상자, 근근히 돈을 받아서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이들을 학교를 못 보내는 분들이 많습니다. 자기는 가난해서 밥도 잘 먹지 못하고 살아가는데 바로 담 옆에는 아주 부유하게 사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더 고통스럽습니다. 상대적 박탈감을 그때 느끼는 것입니다. 정신적인 고통이 크기 때문에 범죄도 많이 저지르게 됩니다. 모두가 다 가난하면 그러려니 하고 삽니다. 지옥에 있는 자들이 천국의 영생극락을 보게 되면 정신이 돌게 됩니다. 고통에 극강, 끝 입니다. 서로 오고 갈 수가 없는 곳입니다. 한마디로 끔찍한 곳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와 여러분들이 이 지옥으로부터 구원 받은줄로 믿습니다.

▶ 인간이 우리의 영혼이 육신에 있을 때에만 구원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이 육신하고 분리되어지게 되면 구원의 기회가 없는 것입니다. 즉, 이 땅에 사는 날 동안에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명령하고 계십니다. 가능하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라. 다소 상대방이 듣기 싫어해도 이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라. 당장 기분이 나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결과를 낳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으면 천국을 가는 것이고 복음을 받지 않으면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개인의 종말이 있기 전에 구원의 복음을 전하라는 말입니다. 이런 마음의 자세가 있는 사람들, 개인종말을 알고 개인종말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전하는 그 사람의 삶은 어떻겠습니까? 악함으로 살지 않게 됩니다. 상대방을 배려하기도 하고 기다리기도 하고 상대방을 향하여 기도 해주기도 합니다. 상대방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영혼의 껍데기가 아닌 실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을 바르게 보며 그 영혼을 구원할수 있는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상대방을 배려하기 때문에 인간관계도 신경을 쓰게 됩니다. 다른 동기가 개입하지 않게 됩니다.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서로의 유익을 보려고 인간관계를 맺고는 합니다. 그래서 개인종말의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신앙생활, 인생을 건전하게 바르게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 개인종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시대종말도 있습니다. 인간세계, 인류역사는 강대국의 흥망성쇠에 따라서 시대가 바뀌곤 합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보시게 되면 만유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각 시대의 년수를 재셨습니다. 모든 나라의 연대, 시대의 변화를 하나님이 친히 주관하신다는 뜻입니다. 애굽시대가 부흥했다가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바벨론이 흥했다가 멸망했습니다. 영원히 멸하지 않을 것 같던 로마도 결국에는 끝을 맞이했습니다. 즉, 시대의 시작과 종말을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사람이 바른사람입니다. 역사를 주무르시고 시대를 바꾸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이 건전한 신앙입니다. 왜 시대가 일어났다가 끝을 맞고 변화를 합니까? 구원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이 약화되거나 희석될 때 시대는 끝을 맞이했습니다. 복음이 사라지게 되면 우상이 일어나게끔 되어있습니다. 우상이 일어나게 되면 반드시 전쟁이나 재앙이 오게 됩니다.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의 시대가 끝을 맺은 것입니다. 그래서 각 시대가 종지부를 찍은 것입니다. 시대를 살리고 시대를 유지하는 것도 복음입니다. 개인의 종말 이후의 지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모든 종말을 해결하는 길은 복음 외에는 없습니다.

▶ 마지막으로 지구종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종말, 시대종말, 그리고 지구 전체의 종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에 종말이 온다면 어떻겠습니까? 정말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성경에는 분명히 온다라고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은 마태복음 24장에 종말의 시간표를 우리에게 미리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 세상에는 끝이 있음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언제 끝이 온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고 있습니다. 지구 종말의 시간표와 세계복음화의 시간표하고 맞물려 있습니다. 복음이 다 전파 되어지게 되면 지구의 종말이 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계복음화 언약을 붙잡고 움직이는 전도자들의 발걸음을 하나님이 귀하게 보십니다. 전도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각별한 관심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계복음화의 시간표하고 완전히 맞물려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성경책 마지막 요한계시록 21장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보좌에 계신 주님께서 모든 만물을 멸하신 이후에 새롭게 하는 시간표가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끝내고 새로운 시간표를 만드시는 하나님의 마스터 플랜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가지 종말이 있음을 알고 준비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면 헛됨이 없는 내실이 있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세가지 성경적 종말 의식을 갖고 있는 신앙인들은 건전하고 유익이 있게 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성경에는 세가지 종말을 말씀하고 있는데 전부 복음과 직관이 되어있습니다. 개인종말에 승리하는 비결은 예수를 믿는 것 입니다. 시대의 종말을 회복하는 방법은 복음운동하는 것입니다. 지구 종말 가운데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세계복음화 언약을 붙잡는 것입니다. 복음이 얼마나 좋고 위대합니까? 그리스도 예수가 얼마나 좋고 위대합니까? 우리를 모든 종말로 부터 건져내셨습니다. 인생모든 문제를 끝내시고 회복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은혜요, 찬송거리입니다.

 

2. 므두셀라는 보고 배운 것을 끝까지 전하리라는 결단을 하였다.

▶ 두번째입니다. 이런 종말의식이 성경에 기록되어있는데 지금 므두셀라를 보고 있습니다. 므두셀라는 가장 오래산 사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거의 천년을 살았습니다. 969년을 살았습니다. 므두셀라가 살던 시대는 시대의 종말이 가까운 시대였습니다. 노아의 홍수심판으로 전 인류가 죽는 시대였습니다. 이 므두셀라라고 하는 인물은 시대의 종말즈음에 살면서 보고 들은 바가 생겼습니다. 그것을 결단 내린 것입니다. 어떤 결단입니까? 므두셀라는 969세를 살았다고 했습니다. 아담 때부터 노아까지 10대 입니다. 므두셀라가 오래 산 덕에 아담과 노아까지 다 보았습니다. 므두셀라는 노아의 할아버지입니다. 므두셀라는 아담 할아버지도 보고 노아손자도 봤습니다. 시대의 종말, 홍수 심판이 있기 전, 므두셀라가 사는 동안에 아담도 같이 살았고 노아도 같이 살았던 것이니다. 놀라운 사실입니다. 므두셀라가 243세에 그때야 비로소 아담이 죽었습니다. 즉 아담과 므두셀라는 200년이 넘는 세월동안 같이 살았습니다. 그러면 직계 후손인 므두셀라에게 아담은 평소에 말했을 것입니다. 나는 사실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여 에덴에서 쫓겨났다.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는 그 말씀이 내게 임할 것이기 때문에 나는 결국 죽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므두셀라가 243세때 아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므두셀라를 포함한 많은 아담의 후손들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게 되면 반드시 죽음이 찾아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죽음의 실상을 목격하면서 피부로 체험했을 것입니다.

▶ 아담이 죽고 57년이 지난 후에 므두셀라의 아버지, 에녹이 승천하는 것을 봤습니다.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이 갑자기 몸이 변화되면서 하늘로 승천을 했습니다. 죽음의 처절함과 놀라운 변화의 세계, 그리고 죽음의 심각함과 영원히 죽지 않는 변화의 세계 2개를 다 본 것입니다. 신령한 몸으로 변화 되어서 죽지 않는 모습까지 다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불순종 때문에 인간에게는 죄, 저주, 그리고 죽음으로 끝을 맺고, 하나님과 동행할 때에는 기쁘고 변화되고 축복받고 승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세상 사람들이 심판을 당한 것을 보았습니다. 아버지 에녹이 므두셀라 이름을 ‘죽는 날에 하나님의 심판이 올것이다’ 라는 뜻으로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계속해서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므두셀라는 죽음, 재앙, 심판에서 구원받는 이 길을 끝까지 전해야겠다 결단한 것입니다. 내가 죽는 그 최후의 순간까지 심판에서 구원받는 길을 전해야겠다. 므두셀라는 보고 듣고 깨달았습니다. 그 사실을 전했던 것입니다.

 

3. 므두셀라는 하나님께 중요한 축복을 받고 끝까지 쓰임 받았다.

▶ 마지막입니다. 그래서 그런 결단을 낸 므두셀라를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사용하셨습니다. 어떤 축복을 받았습니까? 최장수, 최고령 오래사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래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건강하게 사는 것입니다. 건강하게 오래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쓰임받는 삶입니다. 므두셀라가 죽는 그날까지 969세를 사는 동안에 하나님께 쓰임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혹시 연세 많으신 분들 계십니까? 그 장수의 축복으로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바랍니다. 일어나서 걷기도 힘든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강단을 위해서, 중직자를 위해서, 램넌트를 위해서, 현장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주님의 재림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만큼 중요한 사역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장수하게 하는 것입니다. 므두셀라가 그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 어떻게 쓰임을 받았습니까? 므두셀라는 아담과 그 후손들이 죽는 최후를 보면서 자신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누구에게나 종말이 있구나 라는 의식을 강하게 가졌습니다. 므두셀라가 969세까지 살았습니다. 그가 964세 때, 므두셀라의 아들 라멕이 죽었습니다. 아들이 먼저 죽었습니다. 그러면서 므두셀라는 자신의 죽음도 가까워졌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을 했을 것입니다. 위의 조상들이 다 죽었습니다. 므두셀라의 아들마저 죽었고 손자 노아가 남았습니다. 노아는 아버지 라멕이 죽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므두셀라가 결단했습니다. 내가 죽기 전까지 이 하나님의 언약을 어떻게 해서든지 후대에게 전달하겠다.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죽는 그날까지 노아를 돕고 후대에게 전달한 것입니다.

▶ 아들 라멕이 777세 때 죽었는데 그것이 바로 홍수심판이 있기 5년 전 입니다. 만약 라멕이 죽고 난 이후에 므두셀라 마저 없었다고 한다면 노아는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방주를 위한 메세지와 방주를 건조하는 모든 일에 도움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가 방주를 완성하는데 필요한 언약의 사람, 므두셀라를 남겨놓은 것입니다. 당시의 유일한 구원의 길인 방주를 만드는 것을 위해서 므두셀라가 끝까지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이 메세지를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건강하게 장수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끝까지 쓰임받는 축복된 인생되기를 바랍니다. 므두셀라가 시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 내린 결단 때문에 그런 축복의 자리에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므두셀라가 죽던 그 해에 방주가 완성이 되었고 홍수심판이 내려졌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시대상황은 최악이었습니다. 그러나 므두셀라 개인의 인생은 최고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 결론 – 하나님은 복음을 깨닫고 램넌트운동을 하는 자를 최고의 인생으로 인도하신다. (요 21:15-17)

▶ 그래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복음을 깨닫고 끝까지 후대를 살리는 램넌트 운동을 하는 자를 최고의 인생으로 만드십니다. 이 축복은 변함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약속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합니다. 그리하면 어린 양을 치고 먹이라. 어린 양이 무엇입니까? 후대입니다. 자녀들입니다. 그 아이들을 먹이고 치라는 말입니다. 램넌트 운동의 언약을 베드로에게 준 것입니다. 그 렘넌트 운동의 언약을 받은 베드로가 최고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베드로가 어떤 자 였길래 최고의 인생을 살았을까요? 갈릴리 시골출신 어부가 베드로였습니다. 성질이 급한 베드로였습니다. 상황 파악이 안되는 자가 베드로였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봐 스승을 배신하기도 한 자 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인생을 하류인생이라고 합니다. 저급한 인간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베드로였습니다. 그런데 그 베드로가 내 어린양을 먹이고 치라는 언약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난 베드로에게 렘넌트 운동의 언약을 베드로가 받은 것입니다. 끝까지 후대를 위한 램넌트 운동의 삶을 살았던 베드로는 초대 교회의 수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최후 인생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그리스도처럼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처형당했습니다. 베드로가 쓴 편지가 바로 성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베드로가 최고의 인생으로 바뀌어진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끝까지 램넌트 운동의 언약을 붙잡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보고 배운 것을 최후의 순간까지 우리 후대들에게 전하리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최고의 인생으로 탈 바꿈 시키십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체험된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 이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문제를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사건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후대의 언약을 깨닫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갈등을 준 것입니다. 남들은 다 행복하게 사는데 왜 나는 이렇게 불행합니까? 남들은 다 웃으면서 사는데 왜 나만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삽니까? 다른 사람은 모두 다 행복한 가정에서 잘 사는데 왜 우리는 가정에는 갈등이 많습니까?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런 불행한 삶을 삽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빨리 바라보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빨리 붙잡으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방향을 빨리 캐치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충격이 없으면 절대로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는 그대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충격을 주신 것은 반드신 숨겨진 이유와 계획이 있습니다. 어떠한 충격과 비밀입니까? 지금까지 단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그 부분을 보라는 말입니다. 평생 내 중심으로 살아 왔는데 하나님 중심으로 살라는 말입니다. 눈만 뜨면 육신적인 삶을 살았는데 이제는 성령 충만을 구하라는 말입니다. 나는 세상성공 때문에 울고 웃었는데 이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라는 말입니다. 지금부터 새로운 배움과 새로운 목적을 주실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배운 바를 후대들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그 여정이 있게 되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최고의 인생으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메세지의 본론입니다. 설교말씀의 결론입니다.

▶ 기도합니다. 므두셀라의 결단을 오늘 들었습니다. 우리의 신앙고백과 결단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종말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임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가르쳐주시고 하나님이 보게 하신 것을 후대들에게 증거하게 하옵소서.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인생으로 가는 복된 여정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셨으니 하나님이 끝을 내리게 하옵소서. 오늘 주일 예배를 참석한 모든 성도님들이 최고의 인생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