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가 내린 결단

January 28th, 2018

ICA Sunday Pulpit Message



♠ 서론 –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일

▶ 주일학교 교사분들이 아이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서 동기부여를 합니다. 칭찬도 하고, 과자도 준비하고, 또는 선물도 준비를 합니다. 즉,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일을 하고 배우게끔 동기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엄마나 아빠도 자녀를 향해서 원하는 것을 하도록 동기부여를 합니다. 아이들에게 시험을 잘보면 컴퓨터를 사준다는 말로 동기부여를 하곤 합니다. 회사의 사장도 성과를 많이 내는 직원분들에게 보너스를 주고 승진을 시켜주는 인센티브를 주어 동기부여를 합니다.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도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동기부여가 되곤 합니다. 책을 통해 위인들을 접하며 이렇게 살면 멋지고 행복하겠구나 라는 간접적으로 동기를 부여 받고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책들을 보면 강한 동기부여가 됩니다. 삶의 직접적인 현장에서도 그렇습니다. 내가 주위에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동기를 얻곤합니다. 자신에게 닥친 일과 상황을 통해서 동기를 부여 받고 도전을 하게 됩니다. 내가 무언가를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일하게끔 합니다.

▶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는 동기부여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로 하나님이 먼저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에게 믿음의 은혜를 주십니다. 믿을 수 있는 힘을 하나님이 선물로 주십니다. 그때 힘을 받고 깨달아서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감사의 은혜를 주십니다. 이런 저런 응답과 축복을 받아서 감사할 때 헌신할 수 있고 봉사할 수 있게 됩니다. 에베소서를 보면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사 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때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확신을 갖게 됩니다. 내가 확신을 가지면 다른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게됩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출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 속에는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이 들어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합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는 이토록 소중하고 귀중하며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 지금까지는 내가 살아보려고, 부자가 되보려고, 성공해보려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정 반대로 살았구나 라고 깨닫게 되는 날이 옵니다. 모든 것이 내가 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지는 사실을 깨닫는 것을 복음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것이 구원을 받은 사람, 신자, 크리스천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뜻입니다. 반대로 세상사람들은 깨닫습니다. 내가 의롭고 착하고 똑바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사람의 노력, 행위를 강조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주장하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아름다운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종교, 율법주의라고 말합니다.

▶ 우리는 이미 배웠습니다. 율법과 율법주의는 완전히 다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양심, 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고 기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주의는 그 하나님의 기준, 양심, 잣대, 눈을 사람에게 맞추는 것입니다. 천지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의는 비교할 수 조차 없습니다. 내가 착하게 살았으니까 너도 착하게 살아야 하고 내가 신앙생활 잘하니까 너도 신앙생활 잘해야돼 라는 것은 인간의 기준이고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인간이 안되니까 대신 나, 하나님이 해줄께 이것이 복음입니다. 너는 죄인이라서 안되고 죄의 삯은 사망이니까 너가 죽어야 겠다는 것은 종교입니다. 내가 대신 죽을게는 복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를 보내셔서 이 땅에서 무참히 죽게 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보통 부모님들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옆에서 볼 때 정말 못된 사람이어도 그 아이의 부모는 끔찍히 여깁니다. 그 아이가 잘못하면 부모가 가서 대신 용서를 빕니다. 부모는 못 먹고 못 입어도 자식을 위해서는 어찌하던간에 먹이고 입힙니다. 그것이 부모입니다. 자식을 대학 보내려고 자신의 재산도 팔고 자신의 웃음도 팔고 모진 수모를 당하면서까지 일을 합니다. 자식하나 살리려고 부모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 그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 이십니다. 우리 자녀를 위해서 수모와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뺨까지 맞으시고 침 밷음까지 당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행하심을 강조한 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을 통해서 우리를 자녀 삼아주신 그 하나님의 의로움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죄인을 용서해주시고 구원 해주신 그 하나님의 선하심을 강조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독생자를 기꺼이 희생하신 하나님의 행하심을 강조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완벽한 시간표를 두시고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시며 하나님의 때가 이르러서 영접시켜서 구원시킵니다. 성장시키시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완벽한 시간표를 두시고 조금도 나를 놓치지 않고 추적하시면서 함께 하시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 하나님의 열심과 노력을 강조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착하게 살아가는게 맞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자는 내 의로움과 열심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불가능한 존재임을 깨달으며 인간은 안되는 것을 깨닫는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나 이외에 다른 인간을 향해서 비교하거나 정죄하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똑바로 살라고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함부로 정죄 못하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의 은혜를 놓쳤구나 라는 것은 압니다.

▶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의로 삼았습니다. 내가 너의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과 같이 없애겠다. 너의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완전히 용서하셨습니다. 구약 때는 동물의 피로 죄를 덮었습니다. 산에 눈이 오게되면 녹색은 덮이고 하얀색이 됩니다. 공해에 찌든 도시도 눈이 오면 하얗게 다 덮입니다. 그것이 구약의 제사입니다. 그런데 비가와서 깨끗이 씻겨 나가는 것을 도말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동물의 피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피이기 때문에 그의 흘려짐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들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 완전히 도말하셨습니다. 인간의 논리나 계산으로는 해석이 안됩니다. 그래서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구나 라는 것을 답으로 알게 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정하셨습니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실줄로 믿습니다.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것이 복음입니다. 다 끝난 것입니다.

▶ 그래서 항상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반드시 부작용이 나오게끔 되어있습니다. 순수한 복음, 진짜복음이 들어가게 되면 반드시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게끔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시간표입니다. 부모님과 자식관계에는 자식이 말썽을 피우는 못된 시기가 반드시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어머니의 사랑을 믿고 까부는 때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미 끝났기 때문에 막 살 수 있습니다. 예배에 가지 않고, 기도도 안하고, 전도도 안하고, 헌금도 안하고, 옛날 습관 그대로 나쁜 짓 많이 할 수도 있습니다. 어짜피 지옥에 안 가기 때문에 막 생활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가 쓰여졌습니다. 사도 바울이 사역했던 곳에는 원색복음이 선포되었습니다. 진짜로 복음을 받았습니다. 해방을 받고 너무 자유했습니다. 옛날에는 지옥에 갈까봐 이것도 저것도 못했는데 이제는 막 해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곳에는 이렇게 자유스러웟습니다. 원색복음을 전했다는 증거로 부작용이 터지고 만 것입니다. 그런 시간표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보니까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이상한 짓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지만 이렇게 저렇게 해야 된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부작용이 생기는 것은 일시적인 시간표니까 염려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 가만히 내버려두게 되면 하나님이 주신 은혜만큼 깨닫게 됩니다. 성숙해지게 되면 보이게 됩니다. 어릴 때는 자기만 보입니다. 조금 커지게 되면 주위를 보게 되고 이것이 아버지의 명예에 금이 가게 하는 것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릴 때는 먹고 마실 때 자신의 돈으로 하지 않으므로 막 쓰게 됩니다. 독립을 하여 밖에 나가서 살고 매일 자신의 돈을 쓰게 되면 부모님이 힘들게 벌어서 나를 위해 그렇게 쓰셨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신앙인도 똑같습니다. 내가 편하게 막 사는 것도 좋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사단한테 조롱을 당하는 일이구나 라는 것을 하나씩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가나 내가 모든 것을 취하지 않는다.

▶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면 구원도, 능력도, 성화도, 사명감당도 할 수 없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위대하고 무궁무진한지 바울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교회를 향해서 찬송하리로다 라고 선언을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베푸신 그 깊고도 넢고 넓은 은혜에 감사하다는 말입니다. 영원히 찬송할 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은혜는 시작이요 마지막이고 모든 것입니다. 이렇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린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읽었던 노아의 시대입니다.

 

1.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의 은혜를 잃은 시대가 왔다.

▶ 첫번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을 잃어버린 시대가 왔는데 어떤 시대였었길래 그랬습니까? 자신의 이름만을 높이는 교만의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함으로 네피림이라고 하는 자식을 나았습니다. 그 네피림이라고 하는 자들은 옛적 고대시대의 강력한 용사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명성이 있고 유명한 자들이었습니다. 강력한 힘과 능력을 자랑하고 자신의 명성과 명예만 높이는 교만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관계없이 내 마음대로 행하는 죄악을 벌일만큼 교만의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관심에도 없고 자신의 이익을 따라서 우상숭배하는 교만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교만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알려주고 계십니다. 잠언 15장에는 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물어버리신다 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잠언 16장에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야보고 4장에는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고 되어있습니다. 자신의 뜻대로 행하는 육신중심의 시대가 된 것입니다. 자기가 원하면 원하는 대로 사람의 딸들을 취했습니다. 이런 죄악이 땅에 차고 넘쳤다고 되어있습니다.

▶ 우상숭배를 왜 합니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왜 제사를 지냅니까? 조상신들에게 저주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제사를 잘 안 지키고 묘자리를 잘 못 정하게 되면 재앙이 따라온다고 믿습니다. 결국 자신에게 이익을 위해서 그리고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즉,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이 신에게 빌어서 축복을 받으려 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봐야 하는데 우상숭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처럼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해야 하는데 자기 마음대로 하는 육신의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해야 하는데 내 인기, 이름, 명예가 강조되는 시대였습니다. 자기가 기분이 나쁘면 견디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내 자존심이 조금만 상하면 견디지를 못하고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교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실 때 한탄스러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근심하면서 작정하십니다. 지면을 쓸어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멸망시키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끝장내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셨기 때문에 누구도 취소 시킬 수가 없습니다. 다 죽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노아는 시대 종말을 이겨냈다. (창6:8)

▶ 두번째입니다. 그런데 그런 엄청난 죄악의 시대에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노아입니다. 시대의 종말이 작정된 그 시대에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을 받았던 인물이 노아였습니다. 하나님이 평가하고 인정하셨습니다. 의인이다. 당세에 그 사람들 중에서 가장 완전한 자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더라. 모두가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를 하는데 노아만큼은 하나님을 섬기며 동행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13절에 보게되면 끝 날이 이르렀으니 모두 멸할 것이다. 14절에는 그러니까 너는 방주를 만들라고 미션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15절에서 17절까지 자세히 어떻게 방주를 지어야 하는지 방법까지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다 6장 18절에 약속까지 하셨습니다. 너와 너의 가족은 방주에 들어가라. 그리고 정결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 다 집어넣으라고 하셨습니다. 방주를 만들어서 구원할 뿐만 아니라 방주 이후에 동물과 생물까지 챙기고 보호하셨습니다. 모두다 심판을 받는데 노아는 구원을 받는 선택함을 받았습니다. 방주 만드는 사명을 주셔서 하나님께 쓰임받는 축복까지 받았습니다. 과연 어떻게 이런 축복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 왜 하나님이 노아를 선택하시고 구원하시고 사용하셨을까요?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은혜를 받은 노아였습니다. 은혜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받습니까? 그것이 오늘 메세지의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노아는 할아버지 므두셀라에게 모든 말씀을 다 들었습니다. 증조할아버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시다가 승천하셨던 사실과 첫째 시조 할아버지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른 사실을 들었습니다. 영적권위자로부터 받은 모든 메세지를 자신의 언약으로 그대로 붙잡았습니다. 차세대의 주역이 되시는 렘넌트집사들은 깨닫기를 바랍니다. 노아는 그때부터 결단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자이시고 주인이시며 생명의 주관자이시구나. 그리고 곧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겠구나.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그렇다면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준행해야 되겠구나. 에녹 증조할아버지처럼 하나님과 동행해야겠구나. 결단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때가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졌습니다. 심판이 확정되었다는 말씀이 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쓸어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길에 관한 메세지가 전달되었습니다. 구원의 길은 방주였습니다. 노아는 그 말씀 그대로 준행했습니다. 방주를 만드는 일입니다. 얼마나 결단을 단단하게 했던지 120년 동안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주위사람들의 모든 조롱과 비난을 넘어설 만큼 결단했습니다. 가족들을 설득해서 동참할 수 있게 할 만큼 일심, 전심이었습니다.

▶ 여기서 우리가 배우고 깨달을 것이 이것입니다. 가르침 받은 것을 내 것으로 삼아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 언약만큼은 목숨과 같이 여겨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말씀을 가르친 자와 함께 모든 좋은 것으로 함께 나누라. 진수성찬을 차리셨습니까? 좋은 음식을 먹으셨습니까? 그 좋은 것을 말씀 가르치는 권위자와 함께 나누라고 되어있습니다. 제가 수십 년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 자신도 그러했고 어느 신자도 이렇게 하는 사람을 한명도 못 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설교를 못합니다. 저도 그렇게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요구를 못했습니다. 하지만 성경말씀에 그렇게 나와있습니다.

▶ 또 한가지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시대나 상황, 사람의 소리에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만큼 언약에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자, 사람이 아니시기 때문에 헛소리를 하지 않으신다고 나와있습니다. 그 말씀이 성취되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그를 찾아가는 자에게 상 주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권위를 받은 말씀을 내 것으로 붙잡고 확신하라는 뜻입니다.

 

3. 하나님 앞에서 결단을 내린 노아가 받은 축복은 무엇인가?

▶ 세번째로 붙잡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작정하시고 원하시는 흐름, 방향, 길은 절대적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그것이 축복받는 길입니다. 응답받고 승리하는 길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데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도리어 다 욕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와 가족은 끝까지 그 방향대로 갔습니다. 그것이 승리의 길입니다. 정말입니다. 그것이 세번째 답입니다. 하나님앞에서 결단을 내린 노아가 그 길을 지속해서 갔더니 정말 최고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홍수재앙심판은 시대 종말입니다. 거기로부터 자신과 가족이 다 구원받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스러우며 기쁜 일입니까? 다 죽었는데 가족만 선택을 받아서 살아남은 것입니다. 다 죽어서 실패하고 멸망했습니다. 그런데 노아와 그 가족은 선택받고 승리했습니다.

▶ 또 한가지는 인류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첫 인류의 시조 아담의 세대가 끝났습니다. 노아와 그 일곱 명, 총 여덟 명의 식구가 새로 시작이 된 것입니다. 새로운 인류의 시조가 된 것입니다. 처음, 시작, 시조에는 하나님의 중요한 의미가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가 부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에게 동물까지 취할 수 있는 권위가 주어 주졌습니다. 모든 것을 가지고 다스릴 수 있게 만드셨습니다. 우리 가족에는 나 밖에 예수 믿는 사람이 없어요 라고 불평불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불평불만할 것이 아니고 믿음의 시조로 부르신 것입니다. 복음의 시조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언약의 시조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영적인 권세와 권위가 따라옵니다. 제가 사춘기시절, 고등학교 때 많이 시달렸습니다. 잠자리에 잠들면서 귀신 소리도 듣고 가위눌림을 계속 당했습니다. 처음에는 귀신의 장난인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엄마와 아빠에게 말도 못하고 저 혼자만 시달렸습니다. 그러다가 그리스도 복음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 중에는 처음이었습니다. 핍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교회를 못가게 제 직장 앞에서 대기하고 계셨고 맞은 적도 있었습니다. 제 누나는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이 밥을 주냐는 말을 했습니다. 시달리던 제가 복음을 처음 접하고 나서 말레이시아에 부족 선교를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귀신이 떠나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제 힘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힘, 권위입니다. 귀신에게 시달리던 제가 귀신을 쫓아내는 권위를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처음 복음을 붙잡고 처음 언약을 붙잡은 특혜입니다. 시조, 하나님의 권위가 부여되는 기회입니다. 또 어떤 축복입니까? 하나님의 미션, 사명을 감당하면 세계를 정복하는 응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곧, 축복입니다.

 

♠ 결론 – 그리스도로 인생 결론을 내리고, 세계복음화로 인생 결단하자. (마16:16, 행1:8)

▶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노아는 구원의 길인 방주 하나에 결단을 내렸습니다. 인생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그랬더니 세계정복 응답이 찾아온 것입니다. 이 메세지를 왜 우리에게 주셨을까요? 우리도 노아와 같이 구원의 참된 그리스도인 예수 그리스도로 인생의 결론을 내리라는 말입니다. 예수님 한분 때문에 내 모든 과거의 죄와 저주가 다 끝났습니다. 내가 이루어야 될 율법을 나는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0장에는 그리스도는 모든 율법에 마침이 된다고 나와 있습니다. 노아와 같이 우리도 세계복음화, 이 축복의 사명은 나에게 주시는 응답의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인생결단 내리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답도 주시고 하나님이 결론도 내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반드시 응답으로 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 언약은 반드시 증거를 얻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숙제 사명을 붙잡게 되면 반드시 승리하게 됩니다. 이 자리에 예배를 드리는 모든 분들께 세계 정복의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단 한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를 잃지 않게 하옵소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그리스도만을 붙잡게 하옵소서. 노아가 방주운동, 구원운동을 한 것처럼 우리가 오직 참된 구원이 되신 그리스도 운동만을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떤 시대속에서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임마누엘 오스틴 교회성도가 되게 하소서. 세계를 정복하는 그날까지 동행하실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