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이 내린 결단

February 25th, 2018

ICA Sunday Pulpit Message



♠ 서론 – 하나님과 내세가 없다면?

▶ 오늘의 제목은 ‘이삭이 내린 결단’이다. 사람인 우리에게 짐승 같은 놈아 하면 기분이 나쁘다. 왜냐하면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계속 반복되는 문제, 사건, 갈등이 일어나면 해결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해결방법을 찾으려 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동물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똑같은 문제가 와도 똑같이 어려움을 당하고 잡아 먹히고 만다. 때로는 우리가 열심히 노력을 하고 애를 쓰는데 안되는 경우가 있다. 그때는 내 힘, 인간의 힘으로는 안된다고 생각을 하게된다. 그럴때는 초월적인 존재, 전능자에게 생각을 묻게 된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이 안계시다고 생각해 봐라. 모든 것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전능자 하나님이 없고 사람이 죽은 다음에 천국과 지옥, 내세가 없다면 어떻겠는가? 정말 하나님과 내세가 없다면 누가 인생을 잘 사는 것인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기 때문에 내 힘으로 살아야 한다. 어찌하든지 간에 내 실력을 키우고 돈을 많이 벌어서 전부 나 중심으로 살아야 그것이 이기는 것이다. 그것은 인본주의라고 한다. 또 내세가 없다면 당장 현실에 집중하게 된다. 어짜피 죽으면 다 끝나고 없어지니 지금이 중요하므로 내일이나 미래가 어떻게 되든 말든 지금의 내가 만족을 해야 한다. 그래서 세상의 불신자들이 이렇게 산다. 그런 생각이 쌓이면 사상이 된다. 사람은 그 사상대로 살다가 그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성도로서, 신자로서 믿음을 가지려면 이 뿌리 박혀있는 사상을 바꾸어야 한다. 사상을 바꾸려면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생각이 전환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은 잘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을 바꿀만한 충격적인 사건, 자극이 필요한 것이다.

▶ 사실상 누구에게나 어렸을때는 충격적인 사건을 한두개 정도 가지고 있다. 부정적인 사건을 통해서 인생이 바뀌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중국의 공자가 사실 가정형편이 아주 안좋은 사람이었다.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더보다 많은 땅을 차지했던 징기스칸 역시 어렸을 때 가정형편이 굉장히 어려웠다. 사람이 이렇게 살면 안되겠구나 해서 전력을 다해서 살아간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프라 윈프리 역시 어렸을 때 아픈 기억이 있었다. 그것이 바탕이 되어 모두가 좋아하는 스타가 되었다. 충격이 가해져서 생각이 바뀐 것이다. 긍적적인 사건도 있다. 누군가의 모델을 발견하게 되면 그 사람을 닮아가고 싶어 한다. 누구처럼 되고 싶다는 것이다. 이번에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 한국 어린애들이 좋은 점수를 땄다. 메달은 못 땄지만 예상을 뛰어넘어 높은 점수를 얻었다. 그 아이들이 김연아 선수를 보면서 컸다. 그것이 바로 긍정적인 사건의 결과이다.

▶ 오늘 본문을 보면 이삭이라고 하는 인물이 나온다. 아브라함의 아들로 알고 있다. 이 이삭에게 중요한 결정적인,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믿음의 인물 이삭이다. 축복의 족장, 이삭이다. 아브라함의 적자(嫡子), 이삭이다. 아브라함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었다. 하갈을 통해 낳은 이스마엘이 있었다. 이삭과 이스마엘은 이복형제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본처가 죽은 후에 그두라 라고 하는 후처를 얻었다. 그리고 후처를 통해 여섯 아들을 낳았다. 그 여섯 아들 역시 이삭과 이복형제이다. 그 많은 아들 중에서 아브라함의 유업을 이어받는 적자는 이삭이었다. 이삭이 어렸을 때 끔찍한 사건을 경험했다. 그것이 오늘 읽은 창세기 22장 이다. 이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인생의 답이 되길 축원한다. 좋은 설교를 듣고 가면 되지 인생의 답까지 찾아야 하나 생각할 수 있다. 여러분이 예배에 오신 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계신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인도하시고 주의 천군천사가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 오늘 이 이삭의 스토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메세지를 주시려고 이 교회당도 여러분을 위해서 허락하셨다. 그리고 메신저를 통해서 설교를 준비케 하셨다. 다시말해 그냥 지나가는 메세지가 아니다. 하나님의 완벽한 시스템 속에 들어와있는 것이다.

 

1. 충격적인 이삭의 경험

▶ 첫번째이다. 어떠한 사건이었는가? 갑자기 아버지 아브라함ㅇ 아들 이삭을 데리고 가서 죽이려 하는 사건이다. 물론 아브라함이 노망이 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이다. 양을 잡지 말고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했다. 창세기 22장이 유명한 장이다. 아브라함이 최고의 믿음을 하나님께 보여준 장면이다. 창세기 12장에 아브라함의 나이 75세 때 하나님이 부르셨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첫번째로 주신 약속이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없었다. 10년이 지나도 아이가 없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인본주의를 동원해서 하갈과 함께 동침해서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다. 10년정도 애를 못가져서 그렇게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아들을 낳았다. 결정적인 실수, 불신앙이 벌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안 받으셨다. 그러다가 25년만에 아들 이삭을 얻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기뻤겠는가? 늦게 얻은 정도가 아니라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 응답으로 온 것이다. 왜냐하면 아내 사라의 경수가 끊어졌다고 했다. 절대 임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임신을 하게 되었고 아들이 태어났다. 즉, 이삭은 기적과 같이 출생 되었다.

▶ 그 다음 갑자기 번제의 희생물로 바치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셨다. 더 섭섭한 것은 아버지가 즉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한 것이다. 물어보지도 않았다. 줄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죽이려고 하냐고 묻지 않았다. 따질 수 있었지만 한마디의 질문이나 항변 없이 이른 아침에 바로 이삭을 데리고 갔다. 불지필 나무는 젊은 두 심부름꾼을 동원해서 데리고 갔다. 두사람은 중간에 남게 만들었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때 두 젊은 종이 막을 것을 예상한 것이다. 아들 이삭이 불 지필것은 있는데 제물은 어디있는지 물어보았다. 저 같았으면 땅을 치고 통곡하면서 하나님이 너를 제물로 바치라는구나.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면서 이삭이 줄행랑을 칠 시간을 벌어주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신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이 있을 것이다 라고 답을 했다. 참 놀랍다. 결국에는 아들을 포박하고 칼을 꽂았다. 그 감수성이 많은 어린나이에 아버지의 칼에 의해서 자기의 인생이 끝나는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어떤 설교자는 이렇게 설교를 했다. 어린 아들 이삭이 아주 믿음이 좋고 순복을 잘해서 아버지가 꽁꽁 묶을 때도 가만히 있었고 칼을 들어서 내리칠 때도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밤거리에 사람이 불쑥 나타나도 사람은 놀라게 된다. 한마디 예고도 없이 끌려 갔다가 아버지가 자신에게 칼을 내리치는 것은 정말 충격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 때에 하늘에서 멈추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 것이다. 일이 간신히 중단되었고 옆 가지에 걸려 있던 어린 숫양을 대신 번제로 바치라고 하나님께서 명하셨다. 묶여있었고 죽을뻔했던 이삭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목격하고 고스란히 체험한 것이다. 여기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2. 이삭이 내린 인생 결단

▶ 두번째이다. 많은 생각과 많은 깨달음 속에서 이삭은 나이가 비록 어렸지만 인생의 결단을 내렸다. 인생이 이렇게 갑자기 끝날 수 있구나. 아무런 죄도 없이 이렇게 죽을 수 있구나. 그것도 가족, 아버지의 손으로 내 목에 칼이 들어올 수 있구나. 이삭이 어떻게 컸는가? 기적과 같이 출생했다. 그래서 아버지의 큰 웃음소리와 어머님의 애틋한 돌봄을 받으며 금지옥엽처럼 아주 귀하게 자랐다. 그런 부모님의 사랑도 나를 지키지 못하는구나. 다름이 아니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나를 죽이시려 명령하셨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겠는가? 인생은 이렇게 무상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헛된 것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자기는 아무런 힘이나 능력없이 빠져나올 수 없는 무능한 인간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런 충격적인 사건 속에 보통 사람은 이렇게 반응을 보인다. 일단 간신히 살아남은 후에 하나님은 무시무시하다는 것을 느낀다. 세상에 태어나게 할 때는 언제고 나를 제물로 바치시는 하나님께 진절머리가 날 수 있다. 다시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겠다고 다짐할 수 있다. 그리고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아무리 하나님의 명령이지만 어떻게 나를 이렇게 확실하게 죽일 수 있겠는가 생각하고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 다시는 아버지와 함께 하지 않겠다. 다시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지 않으리라고 반응할 수 있다. 이삭은 그 당시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번제로 잡혀갔다. 자신이 예배 때문에 죽을 뻔한 것이다. 그러면 다시는 교회 예배당을 가지 않겠다고 반응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 있지 않으면 자기 스스로 생각해서 그렇게 따라갈 수 있다.

▶ 다행이도 이삭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인생은 덧없지만 오직 하나님이 예비한 응답 때문에 내가 살아왔구나. 하나님께서 준비한 응답 때문에 내가 구원 받았구나. 인생은 덧없고 헛되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개입하셔야만 내가 구원을 받는 것이구나. 나는 절대로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지만 하나님이 시작하셔야 되는구나.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 하나님이 준비하신 축복을 여호와 이레라고 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준비하셨다. 나는 절대로 지금부터 내 생각대로 살지 않겠다. 나는 절대로 내 힘이나 내 경험대로 살지 않겠다. 그래봐야 헛된 세상이다. 오직 하나님이 준비한 것 만을 찾을 것이다. 다시는 인본주의를 생각도 하지 않으리다. 즉, 복음에 각인 되는 것이다. 다시는 인본주의 내 생각, 내 뜻대로 살지 않겠다는 증거가 이삭의 생에 그대로 나타났다.

 

3. 이삭이 누린 응답 방식

▶ 마지막 세번째다. 그러면 이삭이 어떻게 하나님의 응답을 누렸는가? 이삭이 누린 응답의 방법과 방식이다. 여러가지가 있는데 몇 개를 보겠다. 아내, 배우자를 얻을 때이다. 이삭은 마흔 살에 결혼을 했다. 이삭은 어떻게 결혼을 했는가? 완전히 아버지가 원하시는 것으로 맡겼다. 보통 나이 사십이 되면 아내를 찾기 위해 연애할 수 있다. 그런데 이삭은 아버지가 원하는 아내를 찾을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위임을 했다. 즉, 영적 권위자가 시키는 대로 한 것이다. 그것도 아버지가 이삭의 아내를 찾은 것이 아니다. 아버지가 종을 보냈다. 그리고 종이 가서 찾아 데리고 왔다. 이삭이 보고 그대로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이삭이 날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더라 라는 말이 나온다. 들에 나가서 기도를 했다. 즉, 아버지를 통해서, 종을 통해서 준비되는 아내를 고요한 중에 기도하며 기다렸던 것이다. 요즘 결혼할 때 부모님이 결혼하라는 사람과 결혼하는 젊은 사람이 있는가? 중매가 좋다 연애가 나쁘다 라는 말이 아니다. 내가 연애를 해도 영적 권위자에 순복하는 연애가 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인가 아닌가를 찾는 것이다. 가장 인생에 중요한 행사인 결혼, 그 배우자를 맞이하기 위해 인본주의를 쓰지 않고 영적권위자에게 맡긴 것이다. 이삭이 그런 사람이다. 이삭의 아들인 에서는 어떻게 했는가? 그냥 자기 혼자 나가서 이방여자 둘을 데리고 왔다. 이스마엘이나 다른 이복형제들은 어떻게 했는가? 모두 이방여자와 결혼을 했다.

▶ 이삭은 조금도 자신의 뜻을 행하려 하지 않았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쫓았다. 하지만 애를 또 낳지 못했다. 사십세에 결혼을 해서 육십세에 애를 낳았다. 20년 동안 애를 낳지 못한 것이다. 그때 이삭이 아내 리브가를 향해서 구박하지 않았다. 아내 리브가가 아이를 갖지 못하니 여호와께 기도를 하였더라 라고 되어있다. 보통 10년 정도 기도를 했는데 애가 없으면 어떻게 하는가? 아브라함이 그런 실수를 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25년동안 아들이 없었다. 10년쯤 지나서 인본주의를 써서 하갈을 통해 낳은 아이가 이스마엘이었다. 이삭은 그런 실수나 인본주의를 반복하지 않았다. 이삭주위에는 후대들이 많다. 이복형제 이스마엘은 열두 아들이 있었다. 그리고 새엄마 그두라를 통해 여섯 아들이 생겼다. 그리고 그 아들들이 증손주를 낳았다고 되어있다. 주위에는 전부 자식들이 있었다. 너의 후손이 티끌처럼 많게 되리라는 약속 후에 20년간 아들이 없었다. 하지만 단 한번도 인본주의를 쓰지 않았다. 하나님이 주실 때까지 기다렸다. 결국에는 쌍둥이를 얻었다. 중요한 자신의 인생사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것이다.

▶ 또 있다. 이삭의 특기가 우물을 파는 것이다. 샘을 찾아야 식수를 얻을 수 있었다. 이삭이 일곱번이나 우물을 팠다. 그때마다 아비멜렉, 아훗산, 비골이 시기질투를 하며 빼앗아갔다. 이때 이삭이 어떻게 했는가? 소송을 했는가? 그냥 양보했다. 일곱번이나 양보했다. 나중에는 어마어마한 샘의 근원을 찾았는데도 이것마저도 달라니까 주었다. 그것은 이삭이 힘이 없어서가 아니다. 창세기 26장을 보게 되면 마침내 이삭이 강성하여 부자가 되더라 라고 나와있다. 셀 수 없을 만큼 종들이 많았다고 나와있다. 아비멜렉이 보고 겁을 먹을 만큼 강자가 되었던 것이다. 힘이 없거나 싸움을 못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보는 것이다. 내 힘과 능으로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여러분은 중요한 재산을 일곱번이나 양보할 수 있는가? 이삭이 그러했다. 놀라운 일이다.

▶ 또 한가지는 후대를 축복할 때의 일이다. 이삭은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 에서는 사냥을 좋아했다. 고기를 잡아서 아버지 이삭한테 대접했다. 아버지가 좋아했다. 그래서 이삭은 큰 아들 에서를 사랑했다.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다. 부엌에서 팥죽을 끓였다. 나중에 사건이 벌어졌다. 이삭이 나이가 많아서 눈이 가물가물할 때 자식들을 불러 모았다. 장자권의 축복을 기도 해주려고 불렀다. 에서를 불러서 축복기도를 해줄테니 맛있는 고기를 잡아오라며 보냈다. 야곱이 어머니와 한통속이 되어서 아버지 이삭을 속였다. 이삭이 축복기도를 하려고 어루만졌는데 에서같지 않아서 처음에는 의심을 했다. 그래도 큰 아들 에서라고 하니 진심을 담아서 축복기도를 하고 보냈다. 마침 그때 에서가 사냥을 마치고 돌아와서 축복기도를 받으려 하니 이미 했다고 말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잘못 축복 기도하면 취소하고 다시 기도하겠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삭은 자신의 실수를 통해서 벌어진 사건에서 마저도 하나님의 뜻을 찾았다. 그래서 두 아들이 태어날 때 하나님이 주신 약속과 말씀이 생각났던 것이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는 말씀이 생각난 것이다. 고기를 좋아해서 큰 아들 에서를 축복하려 했는데 알고보니 작은 아들 야곱을 축복하고만 것이다. 그때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따라가야겠다는 것을 깨닫고 에서에게 거절했다. 우리는 늘 왔다갔다 변하지만 이삭은 하나님의 뜻을 쫓아서 그대로 따라갔던 것을 볼 수 있다. 인본주의를 극도로 배제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다. 모든 일에 자신의 인본주의를 쓰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이삭이 내린 결단, 그리고 그렇게 살았던 삶을 축복하셨다. 어떻게 축복했는가?

 

♠ 결론 – 평탄한 생애와 장수의 복(창35:28~29)

▶ 믿음의 4족장하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 있다. 아브라함이 175세를 살고 야곱 147세를 살고 요셉은 110세를 살았다. 이삭은 180을 살았다. 가장 오래 살았다. 장수의 축복을 얻었다. 그리고 평탄한 삶을 살았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큰 일을 한 것도 아니었다. 하나님을 위하여 큰 고난을 받은 적도 없었다. 가장 평범한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쫓았습니다. 가장 일상적인 삶 속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셨다. 평탄한 삶, 순탄한 삶, 장수의 축복을 누리게 하신 것이다. 결단코 인본주의를 허락하지 않은 사람.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찾은 이삭. 오직 하나님이 예비하고 준비한 응답만을 찾았던 이삭. 이 이삭의 생을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있다.

▶ 여기 어른 분들은 아마 힘들 것이다. 많이 듣고 경험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를 보면 많은 것이 파악이 되고 자신도 모르게 인본주의가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단 1초만 일을 하셔도 암을 치유하신다. 하나님이 한번 눈길만 봐도 악신이 떠나간다. 하나님께서 단 한번만 한 팔로 축복하시면 거부가 된다. 저를 포함해서 어른들은 그만큼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오늘 하나님께서 이 메세지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도전하고 여러분의 가슴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무병장수의 축복을 주시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통해서 뜻을 이루기 원하신다. 어떻게 일해야 되는가? 죽는 그날까지 인본주의를 쓰지 않겠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비밀이다. 요한복음 6장을 보면 예수님의 특별한 고백이 나온다.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즉, 아버지가 보내 주셔야만 내가 제자들을 얻을 수 있다 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아버지의 뜻만을 찾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 나의 양식이라고 예수님을 말씀하고 계신다.

▶ 우리는 피부에 종기가 나면 자꾸 긁게 된다. 그러면 그것이 덧나고 병이 된다. 종기는 내버려 두면 자연히 치유가 된다. 우리는 대부분 주위에 일어나는 문제를 자꾸 덧나게 만든다. 가만히 있어서 조용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답을 주신다. 이것을 못하니까 대부분 내가 힘으로,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하다가 성령인도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그 예배 속에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반드시 있다. 그렇다면 목사가 내 사정을 다 아는가 생각할 수 있다. 아니다. 저는 여러분의 사정을 잘 모른다. 저는 그냥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다. 설교를 준비하는 중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다. 필요한 말씀을 주시는 것이다.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할 때 반드시 응답되게 되어있다. 그것이 영원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나님의 뜻을 먼저 찾고 기도를 해보기를 바란다. 그리스도를 깊게 생각하고 맡겨보길 바란다. 치유의 기적이 일어난다. 인간 의사보다 더 큰 능력이 있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치료의 기적이 일어난다. 여러분의 눈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눈을 고치신다. 여러분의 귀, 코, 입을 지으신 하나님이 치유하신다. 그분이 함께하시면 치유된다. 여러분들이 많은 일들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만사가 형통되는 것이다. 우리보다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다. 주께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주의 뜻을 구하길 바란다. 여러분보다 더 여러분을 잘 알고 계시다. 여러분의 피부보다 주님이 더 가까이 계신다. 어떠한 인본주의도 배제하고 하나님의 뜻만을 구해서 하나님의 기적이 있기를 축원한다.

▶ 기도합니다. 존귀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의 인생 전체를 주님 앞에 맡깁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더 큰 축복의 계획 가운데 들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