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이 내린 결단

March 4th, 2018

ICA Sunday Pulpit Message



♠ 서론 – 고통과 고독 그리고 슬픔의 그늘이 질 때 (창28:11)

▶ 야곱이 내린 결단이다. 야곱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을 것이다. 혹 자기나 자기의 가족중에 암이 걸렸을 때를 생각해 보라. 시한부 인생이다. 또는 사랑하는 연인과 갑자기 헤어지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또는 사별해서 혼자가 됬을 경우가 있다. 이렇듯 어쩔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이때 보통 보면 한강변에 나가서 물끄러미 강물을 바라보곤 한다. 또는 남산에 올라가서 저 하늘을 쳐다보기도 한다. 멀찍이 응시하면서 멍한 상태에 있게 된다. 왜 땅을 보지 않고 저 먼 곳을 보는가? 저 멀리 내 손과 발이 닿지 않는 곳에 혹시 문제를 해결해 줄 구원의 길이 있지 않을까 본능적으로 보게 된다. 혹시 그곳에는 전능자의 손길이 있지 않을까? 먼곳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기도 한다. 사람은 이렇게 고통을 받고, 고독하게 되고, 슬픔이 닥칠 때 무언가를 깊게 돌아보곤 한다. 사람은 이렇게 고통과 고독 또는 슬픔의 그늘과 어둠이 질 때 사람의 영혼은 정화되기 마련이다. 분주하던 것을 다 멈추게 된다. 그 때 하나님의 빛이 임할 수 있다. 하나님의 계시가 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한적하게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 오늘 성경본문에 그 유명한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에게 그런 순간이 임했다. 형 에서의 칼날을 피해 도망가는 순간이다. 그러다보니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와 이별을 하는 순간이다. 도망가다 어느 한 곳에 캄캄한 밤이 이르렀다. 거기에 지쳐 쓰러져 혼자 잠이 들었다. 캄캄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이별에 대한 고통을 삼켜야 했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고독한 시간이었다. 야곱에게 그런 순간이 온 것이다. 형과 다투게 된 가정 불화의 고통이 임했고, 혼자가 된 외로움에 사무치게되고 앞일을 잘 몰라서 불안했을 것이다. 이 야곱이 왜 이런 지경에 처했는가? 한마디로 야곱의 인본주의 때문에 그렇다. 지난 주에 는이삭이 결코 인본주의를 쓰지 않아 무병장수의 축복과 평탄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런 이삭의 적자, 야곱이 아버지를 닮지 못하고 인본주의를 쓰다가 이런 어려운 처지를 당하게 된 것이다.

 

1. 인본주의는 불신앙의 다른 모습니다.

▶ 첫번째이다. 인본주의, 사람생각은 하나님의 대한 불신앙의 다른 모습이다. 인간의 잔꾀는 하나님 앞에서 불신앙이다. 어떤 인본주의를 썼길래 그런가? 어려움을 당한 야곱은 사실 나름대로 의도가 있었다. 형 에서를 괴롭히려 했던 뜻은 아니었다. 단순히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형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사기도 했고, 형 몰래 부친의 축복기도를 가로채기도 했다. 이 사실을 형 에서가 알고 너무 화가 난 것이다. 에서가 너무 화가 나서 동생 쌍둥이 야곱을 죽이려 한 것이다. 야곱은 죽을 수 없어서 도망 간 것이다.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 에서와 야곱, 이들의 출생배경을 알면 우리가 이 문제를 쉽게 풀어 나갈 수 있다.

▶ 창세기 25장에 잘 나타나 있다. 사실상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는 자식이 20년 동안 없었다. 20년 만에 임신을 했는데 쌍둥이었다. 그런데 엄마 뱃속에서 쌍둥이들이 서로 싸웠다. 하도 이상해서 아버지 이삭이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질문을 했다. 이때 하나님이 대답하셨다. 예언을 하셨다. 즉,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말이다. 창세기 25장 23절에 자세히 나온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보통은 어린 자가 큰 자를 섬긴다. 그런데 하나님이 예언하시기는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긴다고 말씀하셨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지만 뒤에 출생하는 동생이 더 큰 축복을 받을 것을 확정하셨다. 이 미래에 일어날 사실을 하나님이 말씀으로 약속하셨다. 하나님 말씀의 약속이라서 언약이라고 표현한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 하나님 언약의 말씀을 들은 이삭과 그의 아들 야곱도 믿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런 사단이 일어난 것이다. 이것을 분명히 알았다고 한다면 아버지 이삭은 특별히 야곱을 따로 불러서 달리 축복기도를 했을 것이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아들 야곱도 이것을 믿고 있었다면 여유있게 기다렸을 것이다. 그렇지 못했던 아버지 이삭이 큰 아들 에서를 편애했다. 여기에 전전긍긍했던 야곱은 호시탐탐 장자권을 노렸고 아버지의 축복기도를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이 이들에게 문제가 일어난 이유이다.

▶ 여기서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것이있다. 보통 신자들은 하나님의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듣지만 다 흘러 지나간다. 인터넷을 찾아서 듣기도 하고 은혜도 받는다. 그런데 그 말씀을 내 가슴에 멈추게 하고 붙잡는 것을 못한다. 이 작업을 평생 안했기 때문에 우리 교회에서 연습을 조금 하려하는 것이다. 비록 명설교는 아닐지언정 이 설교한 내용을 녹취해서 계속 보자는 것이다. 밑줄도 그어가며 자꾸 듣고 보자는 말이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즉, 초대교회처럼 해보자는 말이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붙잡은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성취되게끔 되어있다. 이 성취의 맛을 한번 보게 되면 하나님이 지금 말씀으로 일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예배를 빠진다 안빠진다라는 개념이 아니라 반드시 예배를 사수하게끔 되어있다. 이 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내게 이르는 것을 알게되면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게 된다.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할 수 밖에 없다. 이 맛을 모르고 체험을 하지 못하니까 목회자의 넥타이 색깔이나 설교 스타일등 다른 것에 집중하게 된다. 그것을 수술해보자고 하는 것이다.

▶ 하나님은 당신이 하신 말씀을 반드시 성취하신다. 이것을 우리가 확인 할 수 있는 것이다. 민수기 23장 19절에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모세가 민수기를 통해서 기록해놨다. 오랜세월 후에 이사야 선지자가 역시 동일한 뜻의 말씀을 기록해 놓았다. 이사야서 55장 11절에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언약을 믿으시기 바란다. 언약을 찾으시기를 바란다. 언약으로 받으시기를 바란다. 레마가 전달 되어진다. 이 하나님의 약속, 언약이 안 믿어지니까 하나님의 시간표도 안 믿어지고 하나님의 방법도 마음에 담기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시간표가 오는데 이것이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시간표와 때를 만드는 것이다. 자기가 만든 방법으로 일을 해나가게 된다.

▶ 야곱이 하나님의 시간표가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형 에서가 없는 틈을 타서 축복기도를 받은 것이다. 하나님이 반드시 나를 축복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방법이 안 믿어지니까 아버지 이삭의 눈을 속여서 축복기도를 가져가 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이 안 믿어져서, 하나님의 시간표가 안 믿어지고, 하나님의 방법이 안 믿어지니까 내 뜻과 내 방법대로 일하다 보니 뒷탈이 나는 것이다. 형과 동생 사이에 불화가 일어난 것이다. 얼마나 큰 불화였으면 죽이려고까지 했는가? 홀로 부모님을 떠나서 도망을 가니까 고독하게 된 것이다. 축복을 받았는데 앞일이 걱정되고 이렇게 된 것이 얼마나 슬프겠는가? 야곱은 알았어야 했다. 이미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하기로 작정하셨는데 이것을 놓친 것이다. 말씀을 안 믿은 것이다. 여러분들은 믿으시기를 바란다.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창세전에 하나님의 모든 복을 받기로 확정된 자들 임을 아셔야 한다.

▶ 에베소서 1장 3절에 말씀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다. 하나님이 창세전에 택하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축복 주시기로 택정하셨다.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십자가를 지고 부활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이 주시려고 하는 모든 축복이 그리스도 안에서 준비되어있다. 다른 말로 바꾸면 그리스도 안에 모든 복이 다 들어있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실제적으로 찾게 되어있다. 에베소서 1장 3-4절이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즉, 창세전에 택함을 받았다. 어떤 택함인가? 하나님이 모든 복을 받기로 작정된 아들들로 택정이 된 것이다.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올 때 이것을 찾게끔 되어있다. 그리스도 안에 다 들어있다. 골로세서 2장 3절이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그래서 오직 예수 하는 것이다. 오직 예수로 행복하고 만족하고 충분하다고 될 때, 복을 찾게 되고 모든 흑암이 도망간다. 신약시대, 은혜의 시대에는 아무나 올라와서 설교할 수 있다. 만인 대제사장이다. 신학하지 않아도 설교 할 수 있다. 여기 올라와서 구원의 확신이 있고 오직 예수로 결론이 나면 어린이라도 설교할 수 있다. 오직 예수. 예수님만으로 행복하다. 예수님만으로 내가 충만하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가 되는 것이다. 사탄이 어찌 할 수 없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움직이는 모든 것, 만나는 모든 것이 문이 되고 길이 되어진다. 램넌트 축복을 받는 것이다. 서밋의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 야곱이 이것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야곱의 아들 요셉이 처음부터 이것을 깨달은 것이다. 세월이 흘러 야곱이 이 비밀을 깨닫고 자녀에게 전달한 것이다. 그 믿음의 성장이 오늘에서부터 야곱이 시작한 것이다. “한 곳에 이르러 해가 진지라…” 껌껌하게 된 것이다. 어둠의 그늘이 임한 것이다. 아까 말씀 드렸다시피 인간은 어둠에 봉착했을때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이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게 되고 야곱이 깨닫게 되면서 고백과 결단을 하게 된 것이다.

 

2.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누리는 임마누엘의 정체성을 결단하라.

▶ 두번째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정체성을 놓고 결단하라. 이런 슬픔과 두려움 가운데 도망가던 야곱이 꿈을 꾸다가 이 꿈에서 무언가를 발견을 하고나서 이런 고백을 하게 되었다. 야곱이 꾼 꿈의 내용이 바로 12절에서 15절에 나온다. 사닥다리가 나온다. 주의 천사가 보여진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진다. 이 세가지를 통해서 야곱이 깨닫게 된다. 어떤 사닥다리인가? 땅에서 하늘까지 닿는 사닥다리이다. 사닥다리에 하나님의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다. 위에서부터 내려오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아래서부터 오르락내리락 한 것을 본 것이다. 야곱이 잠이 들어서 천사가 위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잠들고 있던 야곱에게 이미 천사가 함께 있었다. 오르락내리락 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하나님이 자기소개를 먼저 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네 조상의 하나님이라는 것으로 소개를 했고 축복의 약속을 던졌다. 네가 누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줄 것이다. 그리고 네 자손이 티끌처럼 번성케 될 것이다. 너와 네 자손을 통해서 천하만민과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지키고 보호하겠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 엄청난 꿈을 꾼 것이다. 꿈을 통해 특별한 메세지를 받은 것이다. 야곱이 놀라 꿈에서 깼다. 그때 야곱은 무릎을 꿇고 고백과 함께 결단을 하게 되었다. 즉, 내가 누구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 한 것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구나. 그 하나님이 나를 지키겠다고 했다. 하나님은 나의 보호자가 되신다. 그리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의 공급자가 되시는 것이다. 모든 것을 채우시되 넘치게 채우신다. “나로 하여금 평안히 아버지 집에 돌아갈 때까지...” 모든 일을 이루시는 전능자가 되신다. 나의 보호자가 되시고 공급자가 되시고 전능자, 인도자가 되시는 것이다.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정체성을 야곱이 고백하면서 결단하는 것이다.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우리도 야곱과 같은 꿈을 꾸어야지만 그런 결단을 할 수 있는가? 지금 하나님께서 야곱에서 무엇을 보여주셨는가? 사닥다리와 주의 사자를 보여주시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셨다. 그러면서 야곱이 이야기를 했다.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이것이 다 무엇인가? 사닥다리가 무엇인가? 주의 사자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전, 성전이 무엇인가? 하늘문을 여는 그 문이 무엇인가? 바로 그리스도 복음이다. 사닥다리가 땅에서부터 하늘까지 닿았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사닥다리이다. 하늘의 것을 가지고 오는 사닥다리이다. 땅의 것을 가지고 올라가는 사닥다리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유일한 사닥다리, 아무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지만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분이 누구신가? 디모데전서 2장 5절에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길, 하늘을 연결하는 사닥다리,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중보자는 그리스도 예수 외에는 없다. 사닥다리는 곧 그리스도를 알려주는 것이다. 주의 사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이고 메신저라고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메신저는 누구인가? 목회자들이다.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다. 천사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천사, 주의 사자와 같은 일을 한다는 말이다. 목사님을 볼 때마다 천사 같은 목사님으로 보면 된다. 계시록에 보면 이것을 혼용해서 쓰고 있다. 하나님의 음성, 그것이 어디서 들려지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인 강단에서 전해지는 것이다. 즉, 모두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성전, 요한복음 2장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계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사람들이 40년동안 지은 것을 어떻게 삼일 만에 복구 할 수 있는가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던졌다. 요한복음 2장 21절에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되어있다. 교회당이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그림자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문은 무엇을 말하는가? 요한복음 10장 9절에 직접 말씀하신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결국 하나님이 지금 야곱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계시는가? 사닥다리, 주의 사자, 하늘의 성전과 문을 통해서 복음, 그리스도를 체험시키는 것이다. 구약과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전에 야곱에게 그림과 사물을 통해서 복음을 체험시키고 있는 것이다. 너와 하나님을 이어주는 자는 그리스도 외에는 없다. 너를 지켜 수호하는 천사를 보낼 자는 그리스도 밖에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진다.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는 성전,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축복을 찾을 수 있는 문이 되는 것이다. 즉, 모든 성경은 그 핵심과 결론이 하나님이 보내주신 메시아, 그리스도를 알려주고 계시는 것이다. 그 그리스도를 붙잡게 될 때 모든 것을 얻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정말로 그리스도에 대한 비밀을 깨닫게 되면 이 따위의 꿈을 꿀 필요가 없는 것이다.

▶ 제가 아들에게 백만불을 주려고 작정을 했다고 하면 쉽게 돈을 주면 되는데 돈의 가치를 모르고 쓸 줄 모른다면 돈을 줄 수 없다. 먼저 아들에게 돈의 가치를 알게 해야 하는데 돈의 가치를 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장난감 돈과 물건을 가지고 물건을 사고 파는 소꿉놀이를 하면서 아들이 돈의 가치를 알게끔 도와줘야 한다. 장난감은 그림자이다. 실제 돈은 따로 있다. 실제 돈을 주지 못할 때는 장난감 가지고 몇번 놀아야 한다. 사닥다리, 주의 사자, 하나님의 음성, 문, 집이 사실상 그리스도이다. 사람들은 진짜 백만불은 거절하고 꿈꾸는 것이나 천사들을 보길 원한다. 그것은 영적인 수준이 낮은 사람들에게 주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는 바로 성경읽고 은혜 받으면 되는 것이다. 한번도 보지 못하고 한번도 대화를 하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다.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그대로 증거가 되었다. 불신자의 세계역사와 천지창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증거하셨다. 그분이 바로 나의 인생 주인이시다. 그 분이 나의 보호자가 되시고 공급자가 되실 뿐만 아니라 전능하신 능력으로 인도하신다. 그러면 끝나는 것이다. 야곱의 꿈을 다시 꿀 필요가 없다. 

 

3.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살리고 세우는 사명을 결단하라.

▶ 마지막 세번째이다. 야곱이 이것을 체험한 후에 자기가 할 일을 서원한 것이다. 이것을 제가 사명적 결단으로 표현했다. 자려면 베게가 필요하다. 그래서 야곱이 돌을 베고 잤고 자기가 썼던 베게를 기둥으로 삼겠다 하고 기름을 부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구별된 기름을 부었다. 이 기둥 위에 하나님의 전을 세우고 앞으로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모든 것에 십일조를 드리겠다 결단하고 고백한 것이다. 기름을 부었다는 말은 거룩하게 구별했다는 이야기이다. 내가 베던 베게가 아니고 하나님의 전에 기둥으로 쓰임받겠다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헌금드리는 것이 월급과 장사해서 나오는 것이다. 그 돈을 구별되서 하나님의 헌물로 드리는 것이다. 주의 교회를 위해서 쓰임받도록 레위지파의 필요를 위해서 드리는 것이다. 전도와 선교를 위해서 구별된 헌금으로 드리는 것이다. 구별해서 드리시기를 축원한다.

▶ 그리고 이미 받은 것으로 헌신하라. 내가 쓰던 베게이다. 내가 쓰고 갖고 있던 것을 드리는 것이다. 내가 받고 이미 가지고 있는 달란트나 기능들이 있다. 목소리가 좋으면 성가대로 헌신하면 되는 것이다. 무언가 솜씨가 있으면 그렇다면 그 솜씨를 발휘하면 되는 것이다. 건강하다면 일로 헌신하면 된다. 우리교회는 건강하지 않은 장로님 한분이 한주도 빠지지 않고 토요일마다 교회청소를 두세시간을 하신다. 이것을 하나님이 받으신다.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이나 달란트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앞으로 저와 여러분들은 절대로 주저하지 말기를 바란다. 지체하거나 빼지 마시기를 바란다. 교회, 하나님의 전, 하나님의 집이 요구하면 그대로 헌신하기 바란다. 따지지 마시기를 바란다.

▶ 그리고 앞으로 받을 축복에 십일조를 드리겠다. 제가 알고 있는 목사님의 고백이다. 그 목사님은 자신은 한달 수입으로 만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불의 십일조를 미리 드린다고 한다. 4대 헌금도 매달 미리 드린다고 한다. 이런 설교를 듣고 나도 하나님 앞에 믿음의 도전을 해야 되겠다고 결단을 한다면 은혜를 받은 것이다. 하나님의 형통한 복, 백년의 응답, 천년의 증거를 받게 될 것이다. 어느 목사가 이렇게 미리 헌신했다고 돈을 내라는 소리로 이해하면 하나님의 적당한 복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믿음 가진 자를 보시고 기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지고 도전하시는 자에게 상을 주시는 분임을 믿는다. 지금 돈과 경제형편은 아무 상관이 없다. 돈의 크기 문제가 아니고 교회를 살리고 하나님의 전을 세우는 거기에 대한 고민을 하면 된다. 과연 내가 다니는 교회를 세우는 길이 무엇인가? 이 교회를 일으키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을 하고 헌신의 결단을 보시고 하나님은 역사하실 것이다. 변치 않으시고 교회사의 모든 믿음의 선배들이 다 이런 축복을 받았다. 야곱이 결단했던 사명적 결단처럼 여러분도 이러한 결단이 있기를 축원한다.

 

♠ 결론 – 나는 여호와니 네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니라. (창28:13)

▶ 결론이다. 창세기 28장 13절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야곱에게 나타나서 하나님이 자기소개를 이렇게 하셨다. 무슨 뜻인가? 내가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사용했던 그 하나님 여호와다. 네가 본 그대로 네 아버지 이삭을 축복하고 함께 했던 그 하나님 여호와다. 그 하나님인 내가 지금 너에게 찾아온 것이다. 무슨 뜻인가? 아브라함, 이삭을 축복했던 하나님이 너를 축복하겠다는 뜻이다. 즉, 아브라함이 받았던 복이 이삭에게 전수되고 이삭이 받은 축복이 너에게 전달 될것이다. 이 말씀 그대로 야곱은 이 축복을 누렸다. 아브라함에서 이삭에게로, 이삭에게 야곱에게 확대되고 재생산이 되었다. 야곱이 후손의 축복을 받았다. 아브라함, 이삭도 얻지 못했던 12지파의 축복을 야곱이 받은 것이다. 이스라엘의 근간이 된것이다. 야곱의 적자의 축복을 받았던 요셉을 통해서 서밋의 응답이 일어난 것이다. 야곱의 후손, 요셉을 통해서 애굽을 정복하는 축복을 받은 것이다. 즉, 통치의 축복을 받은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정체성에 관한 결단, 사명적인 결단을 하게 되면 그 후손에게 완전한 축복이 임한다는 말이다. 뒤집어서 질문을 하게 되면 김집사님의 자손이 이런 정복의 축복과 서밋의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 자식의 선대인 내가 정체성의 결단, 사명적 결단을 하게 되면 요셉이 받은 것처럼 그 후손에게 완전한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이다. 깨닫게 되길 바란다. 서로 고백하라. 두가지 결단을 합시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정체성, 여기에 세가지 복이 따라오게 된다. 그 다음에 사명적 결단으로, 기름 부어라. 있는 것 드려라. 앞으로의 것 십일조하라. 백년의 응답, 천년의 증거 얻기를 축원한다.

▶ 기도합니다. 지극히 존귀하신 하나님 앞에 마음의 허리를 굽힙니다. 고백합니다. 저는 야곱처럼 거짓말을 많이 합니다. 저는 야곱처럼 내 뜻대로 남을 속이고 인본주의를 씁니다. 그러나 야곱처럼 새로운 시작을 하게 해 주옵소서. 이미 나를 택정하시고 이미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모든 것의 실체,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잡습니다. 이때에 나뿐만 아니라 내 후대가 정복의 응답과 서밋의 축복을 받는 완전한 응답을 받게 할 줄 믿습니다. 나의 후손들이 12지파의 응답을 받게 해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