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그리스도를 고백하라

April 1st, 2018

ICA Sunday Pulpit Message



1.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 오늘은 2018년 부활 주일이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부활의 그리스도를 고백하라’ 이다. 모든 것은 다 연결되어 있다. 사물이나 또는 사건 사람에 이르기까지 전부 연결되어 있다. 사물, 물건이라 하면 돈, 재산이 포함된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구조물이나 자연적으로 생긴 산과 바다, 모든 것이 사실 연결되어있다. 사건과 일도 역시 연결되어있다. 문제나 사건 역시 다 연결되어서 내게 이른 것이다. 갈등이나 위기, 재앙이나 멸망에 이르기까지 다 연결되어있다. 내가 하는 일이 형통하거나 내가 축복을 받는 일 마저도 사실은 다 시작에서 끝까지 연결되어있다. 사람과의 만남도 연결이 되어있다. 연결이 되어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시작이 있고 진행이 있으며 끝이 연결이 되어있다는 말이다. 시작은 원인의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원인이 시작이 되어서 진행과정이 있고 결과, 끝이라는 것에 연결되어있다. 하나님의 말씀, 구약성경 전도서에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천하의 모든 일이 다 기한과 목적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으면 거둘 때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시간표가 있다는 뜻도 있지만 처음 시작과 나중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즉, 시작과 끝이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다.

▶ 우리는 종종 질문을 한다. 나는 왜 이럴까? 내 주위 사람들과 환경은 왜 이럴까? 내가 사는 세상은 또 왜 이럴까? 우리는 종종 질문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뜬금없이 출연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모를 뿐이지 시작이 있었고 진행되어 오다가 내게 부딪힌 것이다. 여러분들이 지금 보라색 의자에 앉아있다. 알다시피 이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설계했고 제작하여 판매했던 시작과 과정이 있었다. 여러분들께서 교회에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자녀들을 다리 밑에서 주워 왔는가? 아니다. 누군가가 서로 사랑했을 것이다. 그리고 함께하여 결혼을 해서 아이가 잉태되고 태어난 것이다. 여러분들은 이 자리에 어떻게 오셨는가? 누군가의 연결을 받아서 오신 것이다. 누군가의 소개를 받고 연결되어서 오신 것이다. 작은 물건 하나라도 그리고 나의 만남 하나라도 다 연결이 되어있다. 나는 왜 이렇게 가난할까 질문 할 수 있다. 나는 왜 질병에 시달릴까 물어볼 수 있다. 내 주위의 가족은 왜 이렇게 변하지 않을까 질문할 수 있다. 왜 나는 게임, 마약 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을까 질문 할 수 있다. 이런 것이 갑자기 드러난 것이 아니고 무언가 시작이 되었고 진행이 되다가 그런 결과가 내게 온 것이다. 모든 사물, 사람, 사건 위에는 연결이 있다는 말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굉장하게 단단한 연결 라인이 있다. 내가 가난 하려고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없다. 내가 이 땅에 태어나기를 범죄와 악행을 저지르고 감옥에 가야 한다는 사명을 띄고 태어난 사람은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작이 있었고 진행을 하다가 그러한 결과가 내게 임한 것이다. 이것이 영안이 열리는 시작이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내 마음대로 안된다. 내 생각대로 되면 좋겠지만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내 힘과 의지로 바꿀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다. 강철보다 더 강력한 끈으로 연결이 되어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날을 바로 이 라인을 바꾸기 위해서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나의 중요한 연결, 나의 모든 연결을 바꾸어야 한다.

 

2. 나의 연결을 바꾸어라.

▶ 사람이 한번 태어나면 꼭 한번은 들어야 될 메세지가 있다.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인종에 관계없이 반드시 한번은 들어야할 메세지가 있다. 그리고 최소한 성도라고 한다면 내가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줘야 될 메세지가 있다. 그것을 여러분들에게 전달하겠다.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고 진행이 있으며 끝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반드시 원인이 있고 그것을 출발로 해서 과정이 있었다. 그것이 열매를 맺은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반드시 알고 전달해야 할 메세지는 무엇인가? 최초의 인간, 아담이다. 이 이야기는 반드시 한번은 듣고 전달해야 한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인간 피조물을 특별하게 만드셨다. 다른 짐승과는 달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형상을 갖게 한 이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과 항상 함께 있어서 세상을 정복하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 전능하신 힘을 받아서 세상을 지배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인간의 출발은 대단하고 멋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사탄 마귀의 유혹을 받은 최초의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 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떠났다.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을 향하여 마귀가 공격하고 지배한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서 원죄라고 말한다. 그래서 아담의 후손은 모두 이 원죄 아래에 출생하고 일생을 보내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에게 불행한 시작이며 안타까운 시작이었다. 인간이 모르는 원인이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원죄에 사로잡힌 인간, 흑암세력에게 지배를 당하는 인간을 가리켜서 성경은 마귀 자녀라고 기록되어 있다. 안타깝지만 마귀의 자녀가 된 신분으로 과정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원죄라는 시작과 원인은 마귀 자녀라고 하는 신분과 마귀 자녀로서의 삶을 진행시킨 것이다. 그래서 고난과 실패를 원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것들이 끊임없이 오는 것이다. 사탄 마귀가 선하고 인정이 있으면 모르겠는데 악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꾸 재앙을 가져다 준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죽음이라는 종착점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마귀가 가는 지옥까지 이르게 된다.

▶ 이런 인생을 살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이런 삶을 살다가 가기 위해서 역사적 사명을 가진 존재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고난과 실패를 경험하다가 인생을 끝내겠다, 나는 그것이 인생의 목표이다 라는 사람은 없다. 이런 시작과 과정, 그리고 끝은 보이지 않게 연결이 되어있다. 이 연결은 너무나 강력해서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다. 그래서 철든 사람들은 이것을 운명이라고 표현한다. 운명은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원죄라는 시작, 마귀의 종으로서의 삶의 과정, 마귀가 가야 될 영원한 지옥 심판까지 연결이 되어있다. 왜 부활절에 험한 말을 하는가? 바로 이 연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부활 하셨기 때문이다. 이 연결을 바꾸어 주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이 연결을 바꾸는 놀라운 축복 때문에 우리가 부활 주일을 하나님께 기념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연결을 바꾸어야 한다.

▶ 이 원죄를 가지고 있는 인간의 시작을 어떤 시작으로 바꾸어야 하는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오셨다.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원죄와는 무관한 분이시고 죄와 저주하고는 관계가 없는 분이다. 그 분이 이 땅에서 태어나신 것이다. 인간은 인간이지만 다른 시작의 연결점이다. 그분이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태어나시고 성장하셨다. 그리고 본격적인 그분의 삶을 시작하셨다. 이때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 들린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로다. 즉, 하나님의 아들로 본격적인 공생애를 시작한 것이다. 그분은 다니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흑암 귀신들을 쫓아냈으며 병든 자를 치유하고 죽은 자를 살리셨다. 자신도 살고 남도 살리는 승리의 삶을 산 것이다. 마귀의 종과 같은 삶이 아니라 권세있는 삶을 사셨다. 그분의 진행과 과정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리고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를 위해서 대신 죽으셨다. 그분의 죄가 아니라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증거로 다시 살아나셨다. 우리의 죄의 심판을 다 갚으셨다는 증거로 다시 부활하신 것이다. 그분이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로 성결의 아들로 다시 살아나신 것이다. 이 예수 그리스도는 새로운 시작과 다른 연결을 이 땅에 가지고 오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강력한 연결에 묶여있는 인간을 향하여 새로운 축복의 라이프 라인을 가지고 오신 것이다. 우리에게 새로운 연결을 주시려고 그분이 모진 고통을 통과하시고 다시 부활의 영광을 나타내신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새로운 연결을 붙잡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새로운 삶을 살수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권세있는 삶을 살 수 있겠는가? 오늘의 제목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고백만 하시면 된다. 

 

3. 부활의 그리스도를 고백하라.

▶ 어떻게 고백하는가? 최초의 고백이 있다. 그것을 예수님 영접이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이시다. 나의 주인이 되어 주옵소서. 이것이 영접 고백이라고 한다. 이때 새로운 연결이 시작 되는 것이다. 원죄라고 하는 강력한 연결이 하나님의 아들로 바뀌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말씀하고 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신분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누릴 수 있는 권세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언제 얻을 수 있는가?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이다. 새로운 연결을 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인생을 살아나가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됬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문제와 사건이 따라온다. 우리는 이때 보통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잊는다. 영접하기 전처럼 또 걱정 염려를 하게 된다. 새로운 연결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또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하소연을 한다. 그러지 말고 또 다시 고백을 하는 것이다. 매 순간 마다 고백을 하는 것이다. 매 사건마다 고백을 하는 것이다. 이 질병을 가져다 주는 주인, 이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분을 그리스도, 나의 주님이십니다. 또, 내가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이것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셔서 인도하실 것이다. 이것을 예수님께 기도한다 라고 표현한다. 즉, 문제나 사건 자체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요리하도록 맡기는 것이다. 그러면 그 속에서 하나님이 지혜를 주신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보인다. 한걸음, 한걸음 따라가다 보면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삶을 죽을 때까지 사는 것이다. 육신적으로는 비록 죽지만 그래도 다시 살아난다고 약속하셨다.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부활하는 것이다. 영생을 누리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활이나 천국을 생각하기보다 지금 행복해하고 싶어한다. 그것의 답 또한 고백하는 것이다. 문제나 사건, 갈등, 위기 앞에 이 문제를 다스리시는 주인은 나의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라. 왜 우리 집안에는 불화가 많을까 생각되면 고백하라. 이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실 하나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신앙생활에는 예배와 기도, 봉사와 헌신도 있는데 왜 고백만 하라고 하는가 질문을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 설명을 하겠다.

▶ 오늘 읽은 본문은 요한복음 11장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에 죽은 사람 하나를 부활시킨 유명한 장면이다. 예수님께서 특히 친애하던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 남매의 집안에 문제가 생겼다. 삼 남매 중에 오빠인 나사로가 죽은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뒤늦게 방문하셨다. 그러면서 마르다와 마리아가 울면서 예수님께 원망 섞인 말을 하게 된 것이다. 요한복음 11장 21절과 32절을 보면 “…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마르다와 마리아 둘 다 그런 원망 섞인 말을 했다. 비통한 마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11장 전체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예수님께서 일부러 늦게 찾아가셨다. 나사로가 죽고 돌무덤 속에서 시체가 부패하기를 기다리신 것 같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오라버니가 다시 살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나는 줄은 안다고 대답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라는 말을 던지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한마디의 말을 들으시고 움직이셨다. 무슨 말을 듣고 움직이셨는가?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마르다가 정확한 고백 하나를 했다. 다른 말은 불신앙과 연약함 속에 빠져 있었지만 정확한 고백을 하나를 했다.

▶ 뒤늦게 찾아온 마리아 마저도 32절에 “…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라고 원망 섞인 말을 했다. 그때 예수님께서 비통한 마음을 가졌다고 되어있다. 나사로가 죽었기 때문에 슬펐다는 말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생명이고 부활인 그리스도인 사실을 아무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이 영 가운데 굉장히 곤혹해진 것이다. 그러시면서 그리스도의 명령을 하셨다.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셨다. 시체 썩은 자가 살아서 붕대 감은 채로 나왔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 위대한 기적은 어디서 시작이 되었는가?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이 맞다. 인간 편에서는 마르다의 신앙 고백 하나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아무리 연약하고 불신앙 가운데 빠졌더라도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바르게 고백하면 하나님은 일을 하신다. 2000년전 나사렛 출신의 예수님을 향하여 모든 인생 문제를 끝내신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위대한 기적은 시작된다. 아무리 힘든 순간과 불가능한 순간에도 예수가 누구인지 내 중심과 양심을 가지고 신앙고백을 하게 되면 성령의 권능이 역사하시게 된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신앙고백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꼭 깨닫고 돌아가시기를 바란다. 

▶ 세가지 예를 들고 마치겠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했다. 하나님의 유월절 기적을 통해서 애굽의 손에서 빠져나왔다. 승리의 순간이었다. 감격스러운 해방의 순간이었지만 나와보니 홍해가 앞에 있었다. 홍해를 어떻게 건널지 갈등에 빠졌었다. 그런 순간에 뒤에는 애굽의 병사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러 추격해오고 있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안에 떨면서 나중에는 모세마저 원망했다. 모세의 말을 듣고 나왔다가 여기서 죽는구나.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불안에 떨며 낙심해 있었다. 그런데 홍해 바다가 갈라졌다.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출애굽기 14장 13절에 보게 되면 모세 한사람의 신앙 고백이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이백만 명 중에 딱 한사람의 신앙 고백을 듣고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키셨다. 바람이 불어 홍해 바다는 갈라졌고 이스라엘 백성은 강을 건넜다. 추격해오던 애굽의 병사들은 물이 다시 함몰되어 전부 수장되었다. 이러한 위대한 사건 속에 모세 한사람의 신앙고백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한사람의 신앙고백을 붙잡고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키신다. 여러분의 가정 속에 답답한 순간이 많은 수도 있다. 그것을 보시고 여러분의 신앙고백을 받기 위해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 두번째 증거로 마태복음 16장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이끌고 데려 가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세상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는지 물어봤다.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 하나라고 대답을 했다. 세상 사람들의 평가에 대해서 일절 반응하지 않으셨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베드로가 고백을 했다.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때 예수님께서 반응하셨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하늘과 땅에 속한 모든 복을 총동원하여 베드로에게 쏟아 부으셨다. 이 신앙고백 이후의 베드로의 삶을 예수님께서 아셨다.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붙잡혀 갔을 때에 세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고 배신을 할 것을 이미 아셨다. 모든 것을 다 아시고 계신 전지전능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왜 그를 버리지 않고 하나씩 변화시키면서 수제자, 사도가 되게 하셨는가? 사실 베드로는 참 형편없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멋지게 고백하고 나서 금방 예수님과 모세, 엘리야를 위해서 집을 짓겠다 말하고 예수님께 호통을 당했다. 그리고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남은 무리를 이끌고 끝까지 복음운동을 해야 됐었는데 옛 고향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시몬이라는 이름과 걸맞게 굉장히 잘 흔들렸던 연약한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붙잡고 끝까지 인도해 나가셨다. 말씀을 주시고 믿음을 주시고 은혜를 주셨다. 능력을 베푸셨다. 왜 그러셨는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하는 하나의 신앙고백을 주님이 기쁘게 받으셨기 때문이다. 여러분들 고백하시기 바란다. 여러분께서 백 년 뛰는 것보다 주님께서 일 초 역사하시면 모든 것이 끝난다. 나는 왜 이럴까?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이 세상은 왜 이럴까? 그걸 보게 하신 하나님의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할 수 없지만 하실 수 있는 주님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을 바꾸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서 신앙고백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 세번째 증거이다. 도마라고 하는 제자가 있었다. 요한복음 20장에 나온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제자들과 만났다. 그 중에 특히 못 믿겠다 하는 도마를 향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어리석고 믿음이 없구나 라고 질책을 받는 것이다. 그 다음에 바로 도마가 신앙고백을 했다.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도마가 어떠한 사역을 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다른 사도들보다 더 멀리 갔다고 한다. 유대 땅에서 저 멀리 인도 땅 까지 갔다고 한다. 심지어는 인도에서 한국까지 갔다는 말도 있다. 그리고 순교를 했다. 가장 확장된 삶을 살고 순고한 삶을 드렸다. 이것이 인간의 계획으로 되는가? 하나님의 능하신 오른손이 도마를 붙잡고 인도하셨다. 그리스도의 연결이 그의 마지막까지 붙잡은 것이다. 오늘 이 시간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백하시기를 바란다. 여러분의 모든 기도제목 위에 그리스도를 고백하시기를 바란다. 잘 안되는 나의 체질을 내려놓고 그리스도를 고백하시기를 바란다. 죽어도 안 변하는 배우자를 놓고 그리스도를 고백하시기를 바란다.

▶ 이런 비밀을 못 누리게 되면 자꾸 선악과를 따먹는다. 누가 맞고 누가 틀린지를 따지고 사람을 지적하며 내용 분석하는 것을 빠르게 한다. 하지만 선악과를 먹게 되면 죽게 된다. 반드시 죽게 된다. 우리는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 과실을 붙잡아야 한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그리스도를 붙잡기를 바란다. 그리스도를 고백하시기를 바란다. 그 뒤의 역사는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올해 부활 주일을 맞이해서 여러분 인생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고백하시기를 축원한다. 새로운 연결을 붙잡기를 바란다. 옛 연결을 바꾸시고 바꾼 후에는 고백만 하면 된다. 그래도 안되면 제게 찾아오시기를 바란다.

▶ 기도하겠습니다. 새로운 시작과 진행, 결과를 원합니다. 누구도 바꿀 수 없는 강력한 연결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시작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지금까지 아담의 후손의 연결선상에 있었습니다. 제 힘으로 안되는 것을 고백합니다. 제 인생의 새로운 연결, 라인이 필요합니다. 동정녀에서 탄생하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승리하셨던 그리스도를 내가 믿고 영접합니다. 부활의 영광에 이르기까지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은 나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의 아들이 되십니다. 일평생 인도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기도합니다. 주님, 오늘 이 시간 그리스도의 새로운 능력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위대한 기적이 필요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음성을 통하여 답을 찾았습니다. 주님께 진심으로 고백하고 끝까지 믿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높이시고 낮추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심을 믿습니다. 약속하신대로 부활의 영광을 일평생 보게 해주옵소서. 육신이 죽는 그날까지, 주님의 얼굴을 보는 그날까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고백을 드리게 하옵소서. 부활하시어 영광스러운 주님께서 모든 영광을 거두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라고 하는 사실 앞에, 주님 앞에 새로운 사실로 나아갑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연결을 붙잡고 내 인생 모든 것을 도전합니다. 인간의 지혜가 아닌 세상의 능력이 아닌 하늘의 능력과 하나님의 권세가 임하게 해주옵소서. 모든 만남과 사건과 장소에서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