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가 아니면 관계인가?

May 20th, 2018

ICA Sunday Pulpit Message



♠ 서론

▶ 우리는 살면서 학교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지원서를 쓴다. 신상소개서, 이력서, 설문지를 받아보았다. 한국에서는 그런 것을 작성할 때에 종교를 쓰는 칸이 있었다. 예수 믿는 기독교가 여러 종교 중에 하나로 분류되었다. 그리고 도서관에 가보면 종교 관련 서적에 기독교 서적이 분류가 되어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세상 종교 중에 하나로 분류되는 기독교에 대해서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복음을 조금 깨달은 이후부터 기독교는 종교가 아닌데 종교 중에 하나로 여겨지는 것에 대해서 마음이 조금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여러 종교 중에 기독교가 최고다라는 말이 아니다. 기독교, 즉 그리스도에 대해서 복음이 얼마나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세상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른다. 유일 하시고 참된 신이신 하나님을 세상은 잘 모르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그리고 기막히고 엄청난 일을 이루신 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교차되었다. 이것을 반대로 생각해보면 세계 70억 인구 중에서 나는 이 복음을 조금이라도 깨닫게 되어서 감사했다. 구원받은 것에 대해서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그런데 한편 교회 안에는 얼마나 무기력하고 무능한 신자의 삶이 있는가? 얼마나 복음에 대해서 무관심했으면 세상사람들에게 비난 거리가 되었는가?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 안타깝게 여기게 되었다. 복음은 결코 종교가 아니다. 여러 종교 중에 하나가 아니다. 오늘 제가 그것을 말씀드리려고 한다. 

 

1. 이 세상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종교들이 있다.

▶ 첫번째이다. 여하튼 간에 세상에는 수많은, 셀 수 없을 만큼 종교가 많다. 그 많은 종교의 이름을 열거할 수는 없다. 세상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살펴볼 수 있다.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신을 찾는다. 참된 진리를 추구하려 한다. 즉, 종교를 향한 ‘열심’이 기준이 된다. 즉, 사람의 행위가 기준이 된다. 그런 종교적인 생각을 가지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세상 사람들도 그렇다.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예수를 믿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교회안에서도 “김 집사, 이 집사가 왜 저렇지?” 말할 수 있다.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기준이 사람의 행위에 가 있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복음은 사람의 행위가 기준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행위를 기준으로 구원했다면 한다면 천국 갈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행위에 잘잘못을 가지고 세례를 주느냐 마느냐를 따지면 저를 포함해서부터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상의 종교는 사람의 행위가 기준이 되는 특징이 있다.

▶ 또 한가지는, 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것이 또 다른 종교의 목적이기도하다.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다 보면 자기가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은 전능자의 능력, 전능한 신의 능력을 필요로 해서 종교와 신을 찾게 된다. 그리고 참된 진리는 무엇인가? 인간은 과연 누구이고 인생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 크나큰 우주의 실체는 또 무엇인가? 그 답을 찾아보려고 신을 찾기도 하고 진리를 구하기도 한다. 세상을 조금 살다 보면 나는 얼마나 연약하고 한계가 있는지 절감하게 된다. 그래서 전능하신 신의 능력을 구하고 신의 도움을 찾는다. 이 속세, 희로애락으로 번복이 되는 이 세상 속에서 살면서 얼마나 많은 갈등을 하는가? 그러한 걱정, 염려, 번민을 뛰어 넘어가고 싶고 초월적인 상태가 되어보고 싶은 사람들은 종교를 찾는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성불, 석가가 된다고 말한다. 열반의 상태, 미네르바의 상태를 구한다고 한다. 나쁜 것은 아닌데 결국 중심이 나 중심인 것이다. 인간 중심이다. 모든 것이 나로부터 출발한다. 내가 힘드니까 내가 동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종교의 특징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음은 이것의 정반대이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이다. 

▶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예수님의 적나라한 비유가 나온다. 두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사람은 바리새인이고 한사람은 죄인 세금쟁이로 기록되어 있다. 바리새인은 다른 사람과 따로 구별되고 싶은 마음에서 따로 서서 손을 들고 일어나서 당당하게 기도한다. 그러면서 기도하는 말이 이렇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삶과 다르게 살 수 있도록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 바리새인은 저 세리처럼 남의 돈을 빼앗지 않았고 불의를 행하지도 않았으며 간음도 하지 않았습니다. 일주일에 두번씩 금식기도 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십일조도 드릴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 그 바리새인의 기도를 세리가 들었다. 자기는 바리새인과 달라서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면서 엎드려 기도를 했다. 많은 말을 못하였다. 그냥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하나님이 저를 불쌍히 여기어 주옵소서. 이것을 하나님이 들으셨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판결을 내리셨다. 바리새인보다 이 죄인 세리의 기도를 더 의로운 기도라고 판결을 내리셨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하나님이 낮추셨다. 하지만 자기를 낮추는 자를 내가 그를 높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착하게 사는 것은 좋다. 우리는 의롭게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기준이 되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는 다 똑같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말이다. 종교는 사람의 행위에 관심을 두지만 복음은 우리를 보고 계시는 하나님께 관심을 갖는 것이다. 여러분의 행위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도리어 더 연약하고 방황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은혜로 찾아오신 것이다. 그러면 과연 복음은 무엇인가?

 

2. 하나님은 우리에게 종교를 주지 않으시고, 실제적인 관계를 맺는 구원의 길을 주셨다.

▶ 두번째이다. 하나님은 그래서 종교를 주시지 않으셨다. 무엇을 원하시는가? 하나님은 실제적인 관계를 원하신다. 하나님을 떠나 심판 받아야 되니까 구원의 길을 주셨다. 참 신이신,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신 것이다. 진리로 우리에게 오셨다.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우리 영혼의 주인이신 분이 오셨다. 나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 오셨다.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인간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아시는 분이 오신 것이다. 인간의 진짜 필요가 무엇인지 아시는 분이 그 필요를 채우시려 오셨다. 구원자이신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셨다. 오셔서 무엇을 하셨는가? 하나님을 떠난 우리를 만나러 오신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우리에게 참된 깨달음을 주시려고 오셨다. 죄 때문에 재앙 당하려는 우리를 위해서 찾아오셨다. 저주에 묶여있는 자를 구해주려고 오셨다. 악령에 시달리는 고통을 해결해 주시려고 오신 것이다. 무섭고 끔찍한 영적 문제에 걸려있는 우리를 살리시려고 오셨다. 그런 모든 고통의 끝은 죽음이다. 그 죽음을 대신 통과해 주시려고 오신 것이다. 우리의 모든 문제와 고통을 십자가에 다 모으셨다. 그 문제와 함께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이다. 그리고 심판의 자리에, 심판의 구덩이에 스스로 빠지신 것이다.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모든 실제적인 고통을 본인이 감당하신 것이다. 심판의 끝인 죽음으로 자신을 몰아 가셨다. 모든 문제가 끝났다. 모든 저주, 재앙에서 해방되었다. 다시는 심판을 받지 않게 된 것이다. 그 증거로 부활하셨다. 새 몸을 입으셨다. 새로운 인간이 되셨다. 새로운 피조물로 돌아오셨다. 죄, 사탄, 지옥과 전혀 관계 없는 새로운 몸을 입고 부활하셨다. 죄, 사탄, 지옥과 관계 없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신 것이다. 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일은 그 어떠한 종교인, 사상가, 철학가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낸 것이다. 세상의 어떠한 영웅호걸이 할 수 없는 그 일을 그 분이 해내신 것이다. 인간의 원초적인 죄의 문제를 끝내신 것이다. 그 부활하신 분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그분의 능력이 임하게 만드셨다. 그 분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게 되면 내가 그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새로운 몸을 입으신 그리스도처럼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새로운 인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우리 육신은 그대로 인데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 되는 것이다. 이것을 영접이라고 한다. 그것을 구원이라고 한다. 그것을 복음이라고 한다. 엄청난 것이다. 제가 장례 예배 때 잠깐 이야기 했다. 어느 대통령도 할 수 없는 것을 주님이 하셨다. 돈 많은 재벌이 할 수 없는 일을 그리스도께서 하셨다. 그분의 영광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그분의 눈빛만 마주쳐도 그분의 위대하심을 알게 된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게 된다. 그분의 입김에 스치기만해도 감동이 일어난다. 나도 모르게 찬송이 나온다. 그분의 터치에 치유가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기쁨이 일어난다. 바로 그분이 그리스도 예수이시다. 그분이 오셔서 길을 여신 것이다.

 

3.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교제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 세번째, 이분이 구원의 길을 여신 이유가 있다. 하나님을 만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교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종교의 교주가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과 긴밀히 관계를 맺고 교제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오늘 세례를 받으시는 분들은 이것을 명심하셔야 된다. 아이들의 부모님은 이 사실을 깨닫고 아이들에게 전달해 주셔야 한다. 하나님은 어떤 관계를 맺게 하시는가? 어떤 fellowship을 주시기 때문에 그런가? 그리스도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관계가 된다.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그리스도 이름으로 우리가 아들이 되는 것이다. 왜 하나님의 딸이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가 묻는 분이 있다. 여자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의 하나님의 딸이라고 하는 표현은 한군데도 없다. 전부 하나님의 아들이다. 남자만 사람이고 여자는 사람이 아니다 라는 뜻이 아니다.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들이라고 표현하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유업을 상속받을 아들이라는 뜻이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 왕자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하나님의 왕자이다 고백하시기 바란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시간표에 들어가서 통치하는 자로 하나님이 쓰게끔 되어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관계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렇게 바뀌는 것이다.

▶ 그리고 또 소속이 바뀐다. 어디 소속인가? 보좌의 소속되는 것이다. 에베소서 2장 6절을 보게 되면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보좌에 소속된 자임을 믿으시길 바란다. 이것을 여러분이 체험하시게 되면 능력이 회복되어진다. 이미 구원받았다. 예수님 때문에 모든 문제가 다 끝났다. 그런데 우리에게 자꾸 문제가 온다. 이게 왜 이러지? 주일예배를 빼먹어서 그런가? 기도를 안해서 그런가? 헌금 안해서 그런가? 그것은 다 착각이다. 하나님이 그런 문제나 사건을 허락하신 것은 너희의 신분이 무엇이고 너의 소속이 무엇인지 체험하라는 사인이다. 이런 저런 문제가 올 때는 사람하고 싸우지 말라.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보좌의 속한 자이다. 어떤 문제도 와라. 나는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의 왕자이다. 그 고백을 하시고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라. 하나님이 역전을 시키신다. 그러면 여러분이 이제 알아가게 된다. 여러분이 믿어지기 시작한다. 나는 내가 봐도 하나님의 자녀 같지 않은데 하나님의 아들이 맞는 가보다. 나는 보좌의 속한 자가 맞는가 보다. 그 믿음을 주시려고 문제나 사건을 허락하신다. 문제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를 바꾸신 참된 나를 찾게끔 하신다. 거꾸로 깨달으면 안된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는데 자꾸 구원받기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그것은 속는 것이다. 바로 그때 믿음이 필요하다. 이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 증거를 주옵소서. 도와주시옵소서. 성령으로 역사 해주옵소서. 천군천사를 보내주옵소서. 내 약한 믿음을 강하게 해주옵소서. 이번 기회를 통해서 내가 증거를 얻게 해주옵소서. 그런 관계, 교제를 하기를 원하신다. 살아있는 관계이다. 현재의 관계이다. 미래의 관계가 아닌 것이다. 대충 고생하다가 죽으면 천국 가겠지 가 아니다. 이미 나는 천국 보좌에 속해있고 내 심령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3년동안 지상에 사역을 하시면서 늘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를 맺으셨다. 늘 주의 음성을 들었다. 그분의 기도 내용을 봐라. 우리는 해달라고 많이 기도하지만 예수님은 아버지여 제 기도를 들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 한다. 여러분의 기도내용이 바뀔 수 있기를 축원한다.

▶ 신분, 소속 뿐만 아니라 배경이 바뀐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의 배경을 갖게 되었다. 빌립보서 3장 20절의 말씀이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천국의 시민권이 된 것이다. 성령의 역사를 배경으로 가진 자가 된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된 신분이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아 있게 된 것이다. 성령의 역사를 배경으로 갖게 되었다. 성삼위 하나님의 축복이 영원히 함께 하시는 것이다. 이런 비밀을 실제로 누리게 되면 다윗과 같은 고백이 나오게 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하면 내게 부족함이 없는 풍성한 관계를 누리게 된다. 쉼을 얻게 된다. 휴식을 얻게 된다. 굉장히 시원해지게 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어떠한 만남과 사건, 장소 속에서도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신다는 말이다. 지팡이는 인도를 말한다. 작대기는 사단을 때려잡는 것이다. 보호하실줄로 믿는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원수 앞에서 상을 베푼다는 말은 승리한 다는 말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영원한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런 실제적인, 내밀한, 영원한, 살아있는 관계를 하나님은 원하신다. 여러분들 개인으로 있을 때 기도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그리고 밤에 잠들기 전에 이런 기도할 수 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합니다. 내 생각과 마음, 판단과 결정을 주장하여 주옵소서. 내 발걸음을 인도하사 만남의 축복을 주시고, 닫힌 문들을 열어주옵소서. 잠에 주무실 때 기도할 수 있다. 나의 영,혼,육, 오장육부, 두뇌,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주의 기름부음으로 내 몸을 새롭게 하옵소서. 낮에 바쁠 때는 어떻게 하는가? 속으로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속으로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는가? 그때는 집중기도하면 된다. 하나님이 집중적으로 교제, 관계를 원하셔서 문제를 허락하신 것이다. 내가 이러한 문제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를 집중하기를 원하신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집중하게 되면 능력이 회복되어 진다. 영권이 회복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왜 영권을 회복하게 하시는가? 큰 축복을 주시려고 하는 것이다. 그릇을 넓히려고 하시는 것이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려고 그런 관계를 맺는 것이다. 

 

♠ 결론

▶ 말씀을 맺겠다. 세례 받는 여러분들은 기억하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실제적인 관계를 원하신다.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모든 것을 아뢰는 것이다.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인정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다. 그것이 주님과의 관계이다.

▶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복음으로 실제적인 관계를 회복하게 하옵소서. 살아있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해주옵소서.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주님의 능력을 회복하게 하시며. 하나님 속으로 집중하게 하옵소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천국 보좌의 능력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나라 임하게 하시고 성삼위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