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23rd, 2019
ICA Sunday Pulpit Mess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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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에게
▶ 나에게 경제를 보는 눈이 열리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돈이 모이는 길목이 눈에 보인다면 좋을 것이다. 경제를 보는 눈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 어느 장소에서 사업을 하면 잘될 것인가 볼 수 있는 그런 눈이다. 어떤 비지니스를 하고 어떤 아이템, 품목을 가지면 대박을 칠 수 있겠다는 눈을 가지고 있는 분이 계신다. 분명히 대박 날 것 같다면 자신의 모든 재산을 투자해서 비지니스를 오픈하고 시작할 것이다. 보이기 때문에 확신해서 돈을 투자하고 이익을 취하려고 할 것이다. 또 나에게 사랑하는 마음이 임하면 어떠한가?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하게 되면 어떠한가? 내 시간, 내 돈, 내 에너지를 그 상대방에게 투자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서로의 관계가 깊어지도록 도모하게 된다. 이런 것과 똑같다. 같은 원리이다. 하나님을 믿는 신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어떻게 되는가? 즉, 복음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체험하면 어떻게 되는가? 신앙 생활을 하는데 말씀이 성취되고 기도해서 응답 받고 전도의 문이 열리게 되면 감사, 감동, 감격하고 흥분하게 된다.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이 땅에 것들,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다르게 보이게 된다. 내 것이 아니라 원래 주인이 하나님이 주인이시구나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내가 애써서 벌었지만 주인이신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가난한 성도에게나 필요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게 되는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받고 무언가가 임하게 되어지면 나누게 된다. Input이 되면 Output 이 Release가 되게 되어있다. 감기가 걸리게 되면 기침이 나오게 된다. 내가 돈을 많이 벌게 되면 나도 모르게 얼굴이 피고 여유가 생기는 것과 똑같다. 우리가 지금 마가의 다락방의 사람들을 보고 있다. 그들을 자세히 보니 주위에 어려운 환경과 사건이 계속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응답과 은혜가 끊이질 않았다. 그래서 오늘 본문 4:33절에 이렇게 말한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이 하나님의 은혜는 세상에서 줄 수도 없고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하늘의 은혜이다. 그 하늘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 하늘의 은혜가 임한 것이다. 이렇듯이 하늘의 것을 소유하니까 이 땅의 것을 풀어내게 된 것이다. 이 땅에서 가지고 있는 소유물을 가지고 연약한 사람, 가난한 사람들을 살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마가다락방의 사람들은 모든 것을 살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그들이 어떠한 일들로 살렸는지 보겠다.
2. 그들은 하늘의 것으로 땅의 것을 살렸다
▶ 오늘 본문 사도행전 4:32절을 보시면 이런 말이 나온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우리가 늘 말하는 원니스의 축복을 받은 것이다. 하나가 되는 것. 지난번 말씀 드렸다시피 하나가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마지막 기간 동안에 아버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던 내용이다. 요한복음 17:11-22절에 나온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신다.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22절에는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간절한 기도제목이 바로 교회 성도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 하나됨은 하나님 앞에 정말 특별한 축복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게 되면 가공할 무시무시한 영적 무기이기도 하다. 성삼위 하나님이 하나로 함께 존재하시는 것처럼 성도들도 한 몸, 하나를 이루기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우리가 성삼위 하나님께서 일체이신 것처럼 우리 성도님들도 하나의 몸, 특별한 축복을 누리기 원하신다. 그리고 그 다음이 중요하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머리가 되어주시고 우리는 그분의 몸이 된 것이다. 주님과 우리가 하나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하나님의 본체가 우리와 하나가 된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10:30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이 말은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비밀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10:30은 예수님의 이러한 선언을 통해서 하나님을 그토록 잘 믿는 바리새인들이 신성모독죄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작정하게 된 것이다.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목수 쟁이 아들과 하나라고 하니 괘씸해서 죽이려던 것이다. 그분들은 모르는 것이다.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미디어에 나오는 이단 교주들 같이 ‘내가 메시아니 나에게 절하고 헌금을 바쳐라’ 이런 말을 하는게 아니다. 그분은 홀로 스스로 계신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영벌 지옥 불에서 심판 받아야 될 벌레 만도 못하고 먼지 만도 못한 피조물이다. 감히 비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와 하나가 되신 것이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축복이다. 절대로 설명할 수 없는 비밀이다. 그런데 우리만 모른다. 사탄, 마귀, 귀신들은 이것을 잘 안다. 그래서 이것이 그들에게 가공할 위험한 무기가 되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성령충만하여 하나님과 내가, 그리스도와 내가 하나다 라는 믿음을 가지고 가는 현장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 연약한 신자인데 하나님의 영적 배경, 보좌의 축복이 함께하니까 마귀들은 그것을 보고 벌벌 떤다. 오늘 이 믿음을 회복하시기 바란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니라’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고백을 하신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하나도 쓰지 않으셨다. 인간 그대로 모든 것을 부딪치시고 통과하신 분이시다. 그런데 하나라고 말하셨다. 그 그리스도가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 여러분들은 고백할 수 있고 주장할 수 있고 선포할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주님은 나와 하나이시다. 우주 만물보다 크신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다. 그분이 하나이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가 된 것이다. 이 비밀이 이 축복이 엄청나기 때문에 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한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 그래서 교회 안에 새가족이나 새신자들 같이 영적인 축복을 아직 체험을 아직 하지 못한 분들은 이것을 아직 모른다. 모르니까 세상 방식이나 자신의 성격으로 말을 하거나 나타낼 수 있다. ‘저 사람은 내 취향이 맞으니까 내가 좋아하고 저 사람은 내 기호에 맞지 않으니까 나는 말하기 싫다’ 이럴 수 있다. 그래서 불협화음이 일어나곤 한다. 갈등에 빠지기도 하고 시험에 들기도 한다. 심지어는 긴장감 마저 흐른다. 몰라서 그런 것이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은 이해하시고 수용해야 한다. 아직 시간표가 안된 것 뿐이다. 기다려주고 기도해주시면 된다. 문제는 내가 손해나 피해를 볼 까봐 하는 마음이다. 그러한 부분들이 노골적으로 들어나게 되면 정중하고 힘있게 깨끗하게 말해줄 수 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이 부분은 내 양심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치가 됨으로 할 수가 없다. 인간적으로 이런 것들을 수용해주게 되면 좋을 수 있겠으나 당신과 나의 영적인 축복을 잃게 된다.’ 그런 것을 말해주시면 된다. 그렇게 깨끗하고 정중하게 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떠나간다면 그것은 우리의 손 밖의 일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내가 손해볼 것을 두려워하고 인사도 안 한다 던지 말을 섞지 않는다 던지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처신하고 그렇게 대접 한다면 나는 교회를 오래 다녔을지 모르지만 나도 똑같은 어린 신자요 영적인 축복을 모른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 뿐이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셔서 십자가에 나를 위해 피를 흘리신 그 분이, 저 새가족, 새신자에게도 흘려 주셨음을 내가 믿는 것이다.
▶ 다음 주일 예배 때 보시겠지만 사도행전 5, 6장을 보면 초대교회 안에서 서로 그룹으로 나뉘어져서 갈등하고 다투는 장면이 나온다. 헬라 그룹과 유대그룹으로 나뉘어서 나누어 주는 구제의 이유, 문제로 서로 대립하고 다투는 것이 나온다. 성령충만 받은 초대교회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지상의 어느 교회나 어느 시대나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라는 것을 보여준다. 임마누엘 오스틴 교회는 그런 부분이 없어서 참 감사한데 여타 교회를 보게 되면 그런 지역 간에 은근히 기 싸움을 한다. 영남 사람들과 호남 사람들 은근히 기 싸움을 한다. 또는 미국에 언제 들어왔는지 이민의 기간에 우열을 가리려 몸부림을 친다. 한인교회 대부분들이 이런 부분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하시고 뜻하신 성도들이라고 하면 이런 영적인 축복들을 깨닫고 그런 부분들을 넘어서게 되는 것이다. 모든 분들을 살리는 응답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들을 통해서 내가 그리스도를 신앙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체질이 아닌데 그리스도께서 원하시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를 따라간다. 이런 부분들은 세상에 없다. 이것을 그래서 ‘복음 문화’ 라고 말한다. 세상의 지휘 고하에 높고 낮음에 관계 없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지난 번 류 목사님 설교 중에 이런 실화가 예로 나왔다. 부산지역의 경찰청장이 부산 임마누엘 교회의 장로로 섬겼다. 경찰청장이지만 교회에서는 한 신자, 성도이기 때문에 주일날 차량들을 주차하는 것을 도와주는 주차요원으로 헌신하셨다. 그런데 교회 성도가 아닌, 술을 어느정도 드신 분이 교회를 지나가다가 시비를 거셨다. 교회를 찾아오는 성도님들을 위하여 교통정리를 하면서 섬기고 있는 그 장로님이 경찰청장인지 모르고 싸움을 일으키려고 했다. 경찰청장 장로님이 그때만큼은 한 장로로 섬기는 일꾼이었기에 장로님께서는 경찰청장의 지위의 힘을 쓰지 않고 사과를 하시고 그냥 넘어가셨다. 무엇을 말하는가 세상의 지위 고하에 관계없이 교회 안에서는 다 한 형제, 한 자매라는 말이다. 똑같이 예배를 드린다. 똑같이 말씀을 받는다. 그것이 교회이다. 원니스의 축복이다. 하나가 되어. 이런 복음 문화로 여러분의 삶 속에 아름다운 영적 꽃과 열매가 피길 바란다. 여러분들이 그런 응답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예수님이 간절히 기도했던 그것이 성취되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 문화이다.
▶ 또 한가지는 사도행전 4:32 절 전반전에 보시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라고 되어있고 34절에는 가난한 자가 없다고 되어있다. 자기 것을 팔아서 전부 헌신했다고 되어있다. 자신의 소유물을 나누어주는 은혜를 받은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돈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예민하다. 우리가 당장 세상에 나가보게 되면 가장 최고는 돈이다. 그 돈 때문에 사람도 죽이고 가족도 져버리곤 한다. 하나님이 없다고 가정하게 되면 돈이 이 지구촌을 지배한다고 할 수 있다.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입히고 있는 것이 바로 돈의 파워이다. 영적인 눈이 열린 분들은 말한다. 돈을 사랑하고 돈을 쫓아가는 이것을 바로 맘몬의 신이라고 한다. 다 돈에 집중 되어있다. 예수님이 잘 보신 것 같다. 누가복음 12장에 말씀하신다. “너희 재물이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땅의 보화를 쌓지 말고 하늘의 보화를 쌓아라’ 말씀하셨다. 마가다락방의 사람들이 바로 땅의 재물을 가지고 하늘의 보화를 쌓는 모델이 되었다. 이 말은 교회에 헌금을 설교할 때 많이 등장한다. 내 것, 내 재물, 내 소유물을 가지고 남을 구제하고 도와주는 것이 좋은 일이라는 것은 다 알고 있다. 문제는 내 자신이 충분할 만큼 벌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 만큼, 뜻하는 것 만큼 돕거나 구제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교회에 헌금하는 부분, 가난한 자에게 기부하는 부분, 교회 프로젝트가 있을 때 기부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다 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사정을 다 알고 이해하고 계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시간표를 준비하고 계신다. 여러분들이 마음껏 시원할 만큼 헌신할 수 있는 그런 시간표를 주실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실 결정적인 시간표가 올 것이다.
▶ 어느 구두쇠가 한 명 있었다. 자기는 예수님을 가장 잘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교회 헌금을 하나도 안하는 사람이 있었다. 전후사정을 잘 아는 한 집사님이 ‘당신은 왜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소리를 치느냐’ 따져 물었다. 구두쇠가 말했다. ‘마가복음 6:8절에 말하고 있지 않느냐 집을 떠날 때는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그래서 나는 집에서 나올 때 지갑에 돈을 다 빼고 나온다. 예수님은 뱃삯도 아끼시려고 물 위를 걸으셨다. 예수님은 이발비도 아끼시려고 머리를 기르셨다. 나는 예수님을 잘 따라가는 구두쇠이다’ 물론 웃자고 하는 말이다. 제가 개인적인 경험을 말씀드리겠다. 저의 체험이다. 처음에는 교회 헌금을 전혀 드리지 않을 때도 있었다. 내가 하나님께 드리게 되면 하나님이 그것을 갚으신다는 원리를 제가 전혀 모를 때 였다. 우리가 Giving 을 하게 되면 반드시 Receiving 이 온다고 하는 것을 전혀 몰랐던 때는 교회 헌금에 대해 아예 관심도 없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조금 지났다. 다들 헌금을 내는데 나만 안 내니까 눈에 띄었다. 그래서 무언가 불편했다. 남에게 흉잡히지 않으려고 봉투에 돈을 넣었는데 이름도 안 적고 금액도 안 적고 봉투를 내었다. 1불도 넣다가 5불도 넣다가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교회에 헌금하는 것이 조금 아깝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러게 되면 헌금 봉투에 돈은 안 넣고 봉투만 내면 헌금을 낸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제가 그럴 때가 있었다. 헌금을 내긴 내는데 빈 봉투를 낼 때도 있었고 이름과 금액을 안 쓸 때가 있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저를 조금씩 깨닫게 하셨다. 내가 교회에 헌금을 드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영원한 천국에서 나의 모든 헌신이 기록되고 남게 되는 것이 믿어졌다. 그래서 마음을 담아서 드리기 시작했다. 당신의 아들인 내가 나의 아버지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렇게 되어졌다. 그러니까 작정을 하기도 하고 예배 전날에 헌금 봉투도 준비하고 이름도 쓰고 금액, 기도 제목도 써서 나를 드렸다. 하나님께 들은 말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다 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서 십일조에 관한 비밀을 터득하게 되었다. 십일조의 비밀을 깨닫고 나서는 나의 모든 소득, 내가 받는 월급 또는 선물, 그리고 식사를 제공 받으면 그 값의 십일조까지 쳐서 계산하여 드리게 되기 시작했다. 그때는 하나님이 내 재정상태를 아시고 내 재정상태를 주도해 가시는 것을 체험하고 느끼게 되었다. 필요한 부분을 적재적소에 하나님이 채우시고 공급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것을 체험하였다. 나중에는 어떤 부분이 알아지게 되었냐 하면 헌금의 제목에 따라서 나의 믿음의 씨앗을 심고 그것을 하나님이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사 헌금, 건축 헌금, 선교 헌금도 내게 되었다. 그래서 4대 헌금이라는 메시지도 나오게 되었다. 그런 부분들에 하나씩 인도를 받았다. 몇 년 전부터는 제가 새롭게 바뀌었다. 미리 헌금을 드렸다. 내가 1000불의 소득이 필요하다면 십일조로 100불을 미리 드렸다. 미리 감사헌금을 드려서 하나님이 감사할 제목을 주시겠구나 라는 믿음이 생기니까 미리 드리게 되었다. 또 마지막으로 제가 체험한 것은 전도와 선교, 현장으로 인도를 하실 때 그 전도와 선교 현장에 하나님의 경제가 숨어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물질, 경제, 재정, 가난과 부요, 모든 것을 하나님이 움직이신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저의 작은 체험일 뿐이다. 그러나 헌금의 대원칙은 바로 내가 Giving 하는 만큼 하나님이 Receiving 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고린도 후서 9:6절에는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말하고 있다. 심는 자의 법칙이다. 이게 바로 복음 경제이다. 여러분에게 깨달음이 있고 참된 체험이 있기를 축원한다.
▶ 세상에서 돈을 번다는 것이 참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돈을 벌려고 하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내 재능과 기술을 발휘해야 한다. 일을 하러 나가야 되는 의지를 동원해야 한다. 내 몸으로 일하기 때문에 땀을 흘려야 하고 어떨 때는 목숨의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런 시간과 재능, 의지, 땀, 모든 것이 합해지고 담겨진 산물이 돈이다. 나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는 것이 돈이다. 그러면 볼 때에 복음을 생각할 수 있다. 정말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영접하고 고백했다고 한다면 나의 모든 것, 많은 것이 담겨있는 것을 드리는 것은 당연하다. 나의 모든 것이 녹아진 이 돈을 내가 주님께 드리는 것은 당연한 신앙고백의 기회이다. 내 중심을 드리는 기회이다. 신명기 6장에 말씀하시고 계신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나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사랑한다는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돈과 물질이 내게서 줄어든다고 생각하면 어떠한가? 큰 손해를 볼 수 있을 것 같고 나중에는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느 부분만큼 떼어서 헌금을 드리기 때문에 줄어들게 되어있다. 그 줄어든 부분에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 경제’이다.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기회가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그 모멘텀이 헌금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 그리고 오늘 본문 35, 37절을 보시게 되면 헌금을 드리긴 드리는데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고 기록되어있다. 레위지파의 요세라고 하는 인물이 자기의 땅을 팔아서 사도들 앞에 돈을 가져다가 바쳤다. 그의 별명은 바나바라고 되어있다. 사도행전 13장에 나타난 그 바나바가 맞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복음 문화, 복음 경제를 봤는데 이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헌금을 준비하게 되면 헌금 바구니에 넣던지 또는 필요한 선교 헌금을 드릴 때 목사님께 갖다 드리면 될 텐데 발 앞에다가 놓았다고 되어있다. 사적으로 드리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교회 앞에 공식적으로 드렸다고 하는 증거이다. 하나님을 대표하는 교회의 사도 발 앞에, 즉, 하나님 발 앞에 드렸다는 것이다. 돈이 아무리 귀하고 영향력이 있지만 그 돈의 주인은 하나님이고 하나님 발 밑에 있다 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도 영적인 비밀이기 때문에 새가족이나 처음 오시는 분들은 이것을 잘 모를 수 밖에 없다. 이해를 못하는 것을 우리가 받아드려야 된다. 예를 들겠다. 돈에 여유 있는 성도가 개인적으로 사적으로 가난한 자에게 구제했다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행위 자체는 훌륭한 일이고 칭찬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배경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 가난한 신자는 교회 앞에서 하나님으로부터 공급 받았다 라는 생각보다는 그 부자를 주목하게 된다.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여유 있는 신자에게 매이게 된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기 보다는 자신의 필요를 직접 채워주는 그 사람에게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된다. 영적인 질서가 나도 모르게 왜곡되어지게 되므로 결국 피차의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왜냐면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신다. 하나님께서 그 동기를 보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즉, 뭐가 가장 아름답고 지혜로운 것인가? 성도가 내가 다른 성도를 구제하고 도울 때 담임 목회자를 통해서 전달하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이 되고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것이다. 그것이 담임 목회자의 권위를 세워주고 교회 영적 질서가 바로 잡히기 때문에 서로에게 더 큰 응답으로 다가온다. 마가다락방의 사람들은 사도의 권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모든 구제의 재물은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던 것이다. 서로에게 유익이 되어지는 것이다.
▶ 오늘 우리가 제자 학교 때 잠깐 나누었다. 요셉이 총리가 되었다. 바로 왕은 자리만 가지고 있을 뿐, 전 실권은 요셉이 행사했다. 요셉의 예언대로 7년동안 풍년이 들고 7년 동안 흉년이 찾아왔다. 모든 풍년 때에 쌀을 모아두었다. 흉년이 찾아왔을 때 쌀을 모아두지 못한 사람들은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쌀이 어마어마하게 비축됐다는 소문을 듣고 애굽으로 찾아와 요셉에게 구걸하게 된 것이다. 이때 요셉이 쌀을 그냥 주지 않고 다 팔았다. 받은 돈을 가지고 애굽 전역에 땅을 사기 시작했다. 그래서 제사장들의 땅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땅을 요셉이 다 사드렸다. 그 모든 땅을 바로 왕에게 갖다 바쳤다. 실제로 전권은 요셉이 가지고 있었지만 포지션은 이인자 였다. 만약에 요셉이 전권을 행사하면서 바로 왕의 권위를 세워주지 않았다고 한다면 바로 왕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간밤에 자객을 보내서 목숨을 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요셉은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 야곱의 총애, 관심이 집중 될 때에 형들의 시기, 질투를 체험한 것이다. 애굽을 포함한 전 나라의 사람들이 요셉 앞에 무릎을 꿇었다. 모든 인기, 명예, 관심이 요셉에게 집중되었다. 그것을 마음껏 누렸다면 반드시 바로 왕의 손에 처단을 당할 날이 왔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바로 왕은 이름만 왕이지 실권은 요셉이 가지고 있구나. 그러면 바로 왕은 레임덕에 걸리게 되고 나중에는 바로 왕이 눈치를 챌 것이다. 다윗이 그렇게 당했었다. 요셉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바로 왕의 권위를 세워준 것이다. 이것은 지혜로운 처신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복음 정치’라고 한다. 세상 정치가 아니라 복음 정치이다. 세상은 전부 남을 죽이고 자기를 드러내려 한다. 요셉은 공식적으로 왕에게 갖다 바침으로 바로 왕의 권위를 세웠다. 복음 정치에 관한 부분들을 모르게 되면 나의 동기를 가지고 구제를 하게 되고 그 동기 크기 만큼 사단이 역사하게 된다. 제가 시장에 있는 지하의 개척교회부터 신앙생활을 했다. 제가 당시에는 국세청에 근무해서 저를 재정부장으로 세웠다. 그리고 선교 활동을 하며 선교 위원회를 섬겼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많이 봤다. 복음 정치에 입각하지 않은 사적으로 동기를 가지고 했던 모든 부분들은 전부 무너지는 것을 봤다. 정말 감사하게도 우리 교회의 중직자 분들 장로님이나 권사님들은 한 분도 그런 분들이 없어서 하나님께 감사하다. 저희 장로님들, 권사님들 모두가 저에게 일일이 상세히 보고 하시고 제 허락없이 움직이는 분들이 없는 것을 너무나 감사하다. 제가 저를 안다. 제가 부족한 목사임에도 하나님께서 제게 인복을 주셨음을 고백할 수 있다. 지난 주일 제자 학교 때 김일동 목사님께서 김목사는 인복이 있는 것 같다고 고백해 주셨을 때 속으로 ‘맞습니다 아멘입니다’ 고백했다. 특히 우리 교회 청년 제자들과 램넌트들은 이런 복음 문화, 복음 경제, 복음 정치 하시는 장로님들, 권사님들의 삶들을 본받기를 바란다. 그렇게 할 때에 주의 종으로부터 신임을 받기도 하고 기도의 가슴에 담기게 된다. 이런 것들이 복음 안에 있는 삶이 되는 것이다. 정말로 복음을 사랑하고 정말 오직 그리스도가 될 때 이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삶으로 드러나게 된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 복음 문화, 복음 경제, 복음 정치의 꽃과 열매가 가득하기를 축원한다.
3. 우리도 하늘의 은혜를 받아 이 땅을 살려야 한다.
▶ 결론이다. 마가다락방의 사람들이 하늘의 은혜를 받고 땅의 것을 살렸는데 우리도 그렇게 인도를 받아야 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우리도 하늘의 은혜를 받아야 될 줄로 믿는다. 어떻게 하면 하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가? 말씀, 기도, 전도이다. 말씀의 은혜를 받으면 된다. 마가의 다락방의 사람들,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모든 것을 인도받으면 되는 것이다. 6월 집중 훈련을 통해서 주일 강단의 중요성을 살펴봤다. 여러분들이 주일 강단 말씀에 생을 걸면 하늘의 은혜가 임하게 된다. 내가 힘을 얻고 남을 살릴 수 있을 만한 힘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일주일 삶에 성취될 말씀을 주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또한 기도응답을 받게 되어지면 하늘의 힘을 얻게 된다. 기도할 때 질문하시면 된다. 무엇이 주님의 뜻인가? 무엇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인가? 무엇이 영적인 것인가? 무엇이 교회에 유익이 되는 것인가? 어떻게 할 때 전도의 문이 열리게 되는가? 그런 질문과 함께 기도를 드리게 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양심의 답을 주신다. 그리고 나는 전도 제자로서 현장을 살릴 것이다 결단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미리 힘을 주신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이다. 주의 천군천사가 동원되어지고 불말과 불병거가 동원될 줄 믿는다. 이런 하늘의 배경이 동원되어질 때 절대 불가능한 것이 절대 가능으로 바뀌게 된다. 아무도 열지 못했던 현장의 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아무나 만나지 못하는 절대제자와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주님 오실 때까지 흔들리지 않고 지속되어지는 절대 시스템이 나를 통해 세워지게 될 것이다. 이런 응답들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체험되어지게 되면 하나님과 내가 하나로구나 절로 고백이 되어진다. 감동이다. 그러게 되면 여러분의 머리 끝 에서부터 발 끝까지 눈에 안보이는 생기가 살아난다. 전에 느끼지 못했던 능력이 나를 휘감는 것이다. 이런 것이 복음이구나 말할 수 있게 된다. 여러분들 하늘의 은혜를 받고 이 땅을 살리는 증인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 기도
▶ 기도합니다. 존귀하신 하나님, 복음 속에 들어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삶과 현장에 복음 문화, 복음 경제, 복음 정치 응답을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