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살리는 나

June 24th, 2018

ICA Sunday Pulpit Message



Uploaded by ICA ON AIR on 2018-06-24.

♠ 서론

▶ 오늘 주일강단 말씀의 제목은 ‘모두를 살리는 나’ 이다. 혼자 빛나는 별은 없다. 사람은 함께 살도록 지어졌다. 그렇지만 사람들과의 사이에는 불협화음이나 불일치가 있을 수 있다. 인간관계가 쉽지 않음을 우리가 체험을 했다. 많은 지혜자들이 인간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늙은 분들은 편하게 모시고 친구들은 진실한 마음으로 대하며 자기보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부드럽게 대하라. 공자가 한 말이라고 한다. 또, 사람의 가치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측정될 수 있다고 한다. 그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려고 한다면 그 사람과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에게 있어서 행복의 90%는 인간관계에 달려있다고 말을 한다. 처음에는 서로 사랑하고 좋아해서 결혼했는데 나중에는 서로 어려움을 겪는 부부들도 있다.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그만큼 인간관계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그토록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서로 간에 서로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서로를 잘 모르기 때문에 친절하게 대할 수 있지만 나중에 서로를 알기 때문에 불친절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인간관계에 대해서 잠깐 보겠다. 

 

1. 누구나 인간관계에 아픔이 있다.

▶ 첫번째이다. 인간은 누구나 인간관계에 아픔이 있다. 오늘 성경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 요셉의 생애에 아픔으로 기록되는 인간관계가 그에게도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성경을 보신 분들은 아실 것이다. 요셉이 나중에는 애굽의 총리가 될 만큼 어마어마한 출세를 했지만 그 전에는 많은 인간관계에 아픔이 있었다. 요셉에게는 어머니가 네 분이 계셨다. 한 분은 물론 친어머니이고 나머지 세 분은 서모였다. 그러다 보니 이복형제들이 많았다. 그 형들이 요셉을 시기, 질투하고 미워하는 관계가 되어서 사이가 불편하고 힘들었다. 왜냐하면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편애하고 극진히 사랑했기 때문이다. 형제들끼리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면 시기질투하게 된다. 요셉을 제외한 대부분의 이복 형들이 요셉을 향하여 증오하기까지 했다. 이것은 요셉이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인간관계였다. 왕따를 당하고 시기, 질투 속에 있으니까 요셉 마음 속으로는 애 끓는 상황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성장해왔다. 그래서 요셉이 아마 깊은 기도에 들어가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나중에는 형들이 요셉을 미워해서 죽이려고 까지 했다. 그런 와중에 한 이복 형의 도움으로 죽이지 말자고 해서 간신히 살아났지만 대신에 노예로 팔아버리자고 결정이 되었다. 아버지 야곱 모르는 사이에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 노예시절에는 일을 열심히 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인정을 받았던 때였다. 그런데 주인의 부인 때문에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아시다시피 주인 여자가 유혹을 했는데 요셉이 단호히 거절을 했던 것이다. 결국에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다. 요셉의 잘못이 아니다. 누명을 쓴 인간관계였다. 사실을 요셉이 말할 수 있었지만 요셉은 말을 하지 않았다. 요셉은 이미 남자주인으로부터 신용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전체 상황을 솔직히 말 했으면 남자 주인이 인정했을 텐데 말을 해버리면 남자 주인과 부인의 사이가 깨어지게 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요셉이 침묵을 하고 감옥에 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분한 일이다. 여주인과 함께 불의한 일에 동조하지 않으니까 괘씸죄에 걸린 것이다. 자기 잘못이 아닌데 누명을 써서 감옥에 들어가면 얼마나 마음이 힘들겠는가?

▶ 감옥에 있다가 요셉이 자신의 전문성을 가지고 감옥의 죄수들을 도와줬다. 요셉이 꿈 해석을 잘했다. 그래서 감옥에 있는 사람의 꿈을 해석해줬는데 그것이 그대로 된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은 감옥에서 나오게 됐고 고위관직에 복귀가 되었다. 요셉이 사실 간청을 했다. 나는 사실 아무 죄 없이 억울하게 감옥에 왔으니 당신이 좋은 자리에 복귀가 되면 나를 살려달라고 지극히 당연한 말을 부탁을 한 것이다. 그런데 창세기 40장 마지막 절을 보게 되면 요셉의 은혜를 받은 그 사람이 요셉을 잊었다고 나와있다. 내가 도움을 주었는데 무시를 당한 것이다. 내가 그를 구해주었는데 거절당하고 배신 당한 것이다. 울화통이 터질 수 있다.

▶ 이런 여러 차례에 가슴 아픈 인간관계를 요셉은 체험했다. 여러분이면 어떻게 하겠는가? 가만히 내버려 두겠는가? 만나는 사람마다 다 이야기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런 가슴 아픈 관계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 있어서 더 많은 불편함과 어려움을 겪곤 한다. 사랑함과 증오가 섞인 애증의 관계, 돈을 주고 받았던 채권, 채무의 관계도 있다. 이권, 돈 되는 일에 결부된 관계도 있다. 섭섭한 관계도 있을 수 있고 아예 무시해보리는 냉소적인 관계도 있을 수 있다. 심각해지면 철천지원수 지간이 되는 경우도 있다. 성경에는 여러가지 인간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 출애굽의 주인공 모세가 있다. 그의 누이가 미리암이다. 미리암도 역시 믿음이 좋아서 여자 선지자라고 일컬었다. 동생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쓰임을 받을 때 적극 지원, 후원을 했다. 그런데 모세가 아프리카 구스 여인과 결혼을 하니까 미리암이 비난을 했다. 급격히 악화가 되었다. 이때 하나님이 개입하셨다. 결국에는 미리암이 처벌을 받고 어려운 심판을 받았다. 미리암 입장에서는 모세를 다시 보지 않을 정도로 악화된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문둥병 걸린 자신의 누이 미리암을 위해서 깊은 간구를 했다. 하나님의 심판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를 했다. 중보의 관계이다. 또, 여호수와와 친구 갈렙의 관계가 있다. 함께 모세 밑에서 동료였다. 나중에 모세가 죽고 나서는 차기 대권을 여호수아가 잡았다. 갈렙 입장에서는 어떻겠는가? 자신은 그대로 있고 친구는 대통령이 된 것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열등심을 느껴서 떠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갈렙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다. 끝까지, 나이 먹을 때까지 여호수아를 왕으로, 지도자로 섬겼다. 참 대단한 것이다. 스승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관계도 있다. 제자들은 3년 동안 열심히 쫓아다녔지만 예수님께서 체포되고 처형된다고 하니까 다 도망갔다. 수제자 베드로는 세번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다. 그리고는 고향으로 내려갔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베드로를 찾아오셨다. 자아비판을 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며 다시 품으셨다. 새로운 인간의 관계가 회복이 된 것이다. 사도행전을 보게 되면 바나바와 바울의 관계가 있다. 바나바가 선배이고 바울은 후배이다. 둘이 동역을 아주 잘했지만 사역적인 문제 때문에 싸우고 영원히 헤어지게 되었다. 어떻게 끝나는지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다. 또,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관계가 있다. 빌레몬이 주인이고 오네시모는 하인이다. 하인인 오네시모가 주인인 빌레몬의 재산을 훔쳐서 도망을 갔다. 오네시모가 붙잡혀서 감옥에 들어갔다. 거기서 바울을 만났다. 바울의 메세지를 듣고 예수님을 영접했다. 감옥 안에서 바울로부터 양육을 받은 오네시모는 은혜를 받고 사명자가 되었다. 오네시모가 감옥에서 나올 때 즈음에 바울이 파송을 했다. 편지도 함께 보냈는데 그것이 바로 빌레몬서이다. 너의 죄인인 오네시모가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앞으로 주인과 종의 관계아 아닌 동역자의 관계로 함께하라. 보통사람 같으면 거절 했겠지만 빌레몬이 믿음의 사람이었다. 하인으로 대하지 않고 믿음의 동역자로 대했다. 그래서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함께 동역하여 결국 종이었던 오네시모는 목사가 되었다. 빌레몬은 중직자로서 오네시모를 섬겼다. 멋지고 아름다운 관계이다.

▶ 세상에는 여러 관계가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관계를 어떠한가? 양쪽 집안이 원수 관계였지만 그의 자녀들은 사랑하는 사이였다. 서로 사랑을 이루지 못하니까 비극으로 끝났다. 안타까운 관계이다. 전 대통령 빌 클린턴과 그의 아내 힐러리 클린턴의 관계는 어떠한가? 빌 클린턴이 사실 여러가지로 문제가 많았다. 보통 와이프 같았으면 아마 떠났을 수도 있지만 힐러리 입장에서는 야망이 있었던지 전 대통령이었던 자신의 남편과 끝까지 함께 동행했다. 애증의 관계, 필요의 관계였던 것 같다. 한국에 얼마전 도지사 선거에 당선된 이재명이라고 하는 정치인이 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는 행정력이 뛰어난 사람 같다. 하지만 그의 셋째 형과는 서로 폭로하고 진흙탕 싸움을 하고 있는 원수 지간 같다. 가족, 가정의 이야기가 드러나는 안타까운 내용이었다. 이런 인간관계뿐만 아니고 국가와 국가 관계도 있다. 예를 들어 영국과 프랑스는 대립하는 관계이다. 장황하게 여러 관계에 대해서 말을 했다. 영원히 원수지간으로 남는 관계가 될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는 관계가 될 수도 있다. 좋은 추억으로 남는 인간관계도 있다. 더 나아가서는 자녀들에게, 후대들에게 귀감이 되는 알려주고 싶은 인간관계도 있다. 저도 목회를 하면서 여러 관계를 체험했다. 불편했던 관계도 있었고 아쉬웠던 관계도 있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아름다운 관계도 있었다. 또 아직 숙제로 남은 인간관계도 있다. 말씀을 드렸다시피 인간관계 때문에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가슴에 남기도 하고 아픔이 되기도 한다. 특히 오늘 성경 본문의 주인공인 요셉도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되는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저런 인간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세상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구원받은 자들이다. 인생 모든 문제가 이미 끝난 자들이다. 내 마음대로 안되는 인간관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그냥 지나쳐야 하는가? 물 흐르듯이 맡겨야 하는가? 아니다.

 

2. 하나님의 사람은 인간관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

▶ 두번째다. 하나님의 사람은 인간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반드시 이루게 된다. 말씀드렸던 요셉을 봐라. 요셉은 형의 시기, 증오로 죽임을 당할 뻔했다. 가까스로 살아서 노예로 팔려갔다. 그야말로 안타깝고 원통한 인간관계였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인도로 요셉은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였다. 노예로 팔려갔지만 당시 초 강대국 이집트에 진출하는, 대 역사적 무대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다. 애굽에 비록 유학간 것이 아니라 노예로 갔지만 애굽으로 진출하는 기회가 된 것이다. 왜 애굽으로 진출했는가? 하나님의 숨겨진 계획이 있다. 하나님이 요셉을 애굽에서 높이시고 쓰실려고 하는 숨겨진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은 아무리 슬프고 원통한 인간관계에 빠진다고 할 지라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되면 승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발걸음을 시, 분, 초 지켜보고 계신다. 인도하고 계신다. 그러한 주님을 찬양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라.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숨겨진 위대한 계획을 가지시고 인도하신다는 그 사실을 인정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숨겨진 계획을 믿고 시인만 하게 되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발걸음을 인도하신다.

▶ 또 아픈 관계로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간 사건이 있다. 보디발의 아내 때문에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다. 그런데 거기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다. 감옥 안에 고위공무원들이 들어온 것이다. 요셉이 있었던 감옥이었더라 라고 기록이 되어있다. 술 맡은 관원장, 떡 맡은 관원장이 감옥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그들을 도왔다. 말씀 드렸다시피 나중에 술을 맡았던 관원장이 복직이 되었고 요셉을 기억하지 못해섭섭한 관계가 되었다고 말씀을 드렸다. 나중에야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게 된다. 자기가 모시는 왕 앞에 요셉을 데려왔다. 결국에는 요셉이 애굽 왕을 만나는 계획이 이루어졌다. 감옥에서 죄수와의 만남이었는데 이것이 발전하여 왕과의 만남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인생의 중요한 일은 만남의 축복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술 맡은 관원장이 한참동안 요셉을 잊었다고 했다. 잊지 않고 바로 요셉을 감옥에서 꺼내어줬으면 요셉은 총리가 될 수 없다. 요셉의 나이 때문이다. 애굽의 법에는 30세 이상만 고위직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요셉이 20대 때 나와서 애굽 왕을 만난다 한들 총리가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30세가 될 때까지 감옥에서 보호하신 것이다. 요셉이 30살 되던 때에 바로 왕이 꿈을 꾸었다. 아무도 이 꿈을 알지 못하고 해석을 하지 못했다. 바로 왕은 답답해서 엄명을 내렸다. 당장 내 꿈을 알아내고 해석하지 못하면 전부 죽이겠다고 했다. 긴박한 상황이 임하니까 술 맡은 관원장이 감옥에서 만났던 요셉을 기억했다. 바로 왕이 꾼 꿈을 해석할 적임자로 요셉을 천거했다. 얼핏 보면 무시당하고 배신당했던 것 같은 인간관계가 결국 바로 왕을 만나고 총리가 되어지는 중요한 기회가 된 것이다. 참으로 희한하고 기적같은 연결이다. 아까 말씀 드렸다시피 보통 사람들은 왕따를 당하고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가면 어떠한가? 혼신을 다해서 헌신해서 도와주었는데 무시당하거나 배신을 당하면 어떻겠는가? 이런 일을 계속 겪게 되면 거의 폐인이 되거나 범죄자가 되게 된다. 하지만 요셉은 낙심하거나 폐인이 되지 않았다. 요셉은 범죄자가 되지 않았다. 그는 인생 역전의 응답을 받았다. 요셉이 어떤 자였길래 이것이 가능했는가? 이것이 오늘 메세지의 본론이다. 요셉이 무슨 비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부정적이 인간관계가 역전의 발판이 되었는가?

 

3. 서밋의 언약을 붙잡은 자는 모두를 살리는 자리에 서게 된다.

▶ 마지막이다. 서밋의 언약을 붙잡은 요셉은 모든 만남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았다. 그리하여 모든 장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을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한 것이다. 서밋의 언약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살렸다. 무슨 서밋의 언약인가? 창세기 37장의 꿈이다. 여러분은 많이 들어서 알 것이다. 두번의 꿈을 꾸었다. 하나님이 주신 메세지, 계시가 있는 꿈이었다. 형들이 곡식 단이 내 곡식 단에 절을 했다. 해, 달, 11별이 나에게 절했다. 해는 아버지, 달은 어머니이고 11별은 나의 형제이다. 가족, 가문 전부가 내게 절했다. 이것을 하나님의 메세지로 받지 못하고 불신앙을 했던 이복형제들은 네가 그렇게 잘났느냐 라고 반응을 했다. 그런 것이 아니다. 요셉의 곡식 단은 추수, 수확, 열매를 말한다. 즉, 요셉 인생의 열매가 형제들의 인생 열매보다 크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해, 달, 별의 공통점은 빛을 비추는 것이다. 우리 가족들의 영광보다 내 인생의 영광을 하나님이 크게 하실 것이다 라는 메세지이다. 왜 그런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뜻을 세우셨기 때문이다. 요셉은 어릴 때부터 인생 열매와 영광의 비밀을 붙잡았다. 요셉이 거두고 누릴 열매와 영광,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크게 될 것을 믿은 것이다. 이것이 서밋의 언약이다.

▶ 왜 그러면 요셉을 서밋으로 세우셨는가? 당연히 높은 자리에서 아래에 있는 다른 사람을 살리고, 군림하지 않고 도리어 섬기려고 서밋으로 세우셨다. 그래서 서밋의 약속을 주신 하나님이 늘 요셉과 함께 하셨다. 내가 믿음으로 가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임마누엘을 누린 요셉은 알았다. 그래서 기도하고 기대하며 기다렸다. 당연히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니까 다 살렸다.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 시절 때 보디발의 집안을 살렸다. 그 집의 경제와 행정을 살렸다. 일터와 밭까지 하나님이 복이 임했다고 되어있다. 자신이 억울한 일을 당해도 변명하지 않았다. 그 부부의 인간관계를 살렸다. 감옥에서도 서밋의 축복을 붙잡고 살아났다. 죄수복을 입었지만 서밋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돕고 섬기며 살렸다. 그러니까 감옥의 총 책임자가 요셉을 높이고 중요한 일을 맡겼다. 서밋의 언약을 붙잡고 있으니까 실제 현장에서 서밋이 눈에 드러나게 보이는 것이다. 나중에는 애굽 왕을 지도했다. 국가의 경영 정책을 제시한다. 신기한 꿈 때문에 갈등하고 있는 바로 왕을 꿈을 해석해주어 살렸다. 앞으로 기근, 재앙이 임하게 될 애굽 나라를 살렸다. 그리고 오늘 성경 본문 창세기 45장에 원수지간이 될 수 있었던 형들과의 관계를 복원하고 살렸다. 그 이복 형들에게 원수를 갚지 않고 도리어 선처, 대우를 했다. 마음을 위로 했다. 형들이 나를 판 것이 아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이 나를 애굽에 앞서 보낸 것이다. 얼마나 상대를 배려하는 말인가? 그리고 아버지 야곱을 평안한 자리로 모시고 가서 봉양했다. 죽었던 아들 요셉은 아버지 야곱에게는 평생의 한 이었을 것이다. 부모보다 먼저 간 자식들은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야곱이 그랬다. 끔찍이 사랑하고 편애할 수 밖에 없는 그 아들 요셉이 죽은 줄로 알고 있었다. 요셉은 그 평생의 한을 풀어서 아버지 야곱을 살렸다. 대기근 때문에 아버지 야곱의 집안 전체가 굶어 죽게 되었는데 모두 고센 땅으로 이끌어서 먹이고 입히고 살렸다. 요셉은 원수를 갚은 적이 없다. 원수를 도리어 선으로 갚았다. 대충 살리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을 살리는 나였다. 

 

♠ 결론

▶ 결론이다. 오늘 강단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중요한 도전을 하고 있다. 서밋의 언약을 붙잡고 모두를 살려라. 이것이 우리의 부르심이다. 이것이 우리의 일평생의 추억이 되어야 한다. 사람 차별하지 말고 동등하게 대접하라. 사람을 무시하지 말고 존중하기 바란다. 칭찬하시고 격려하시기 바란다. 배려하고 본을 보여주시기를 바란다. 함부로 대하지 말고 귀하게 대하기를 바란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 말씀하고 있다. 11절에 보시게 되면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14, 15절에는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내가 더 이상 옳을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라고 하는 서밋의 신분을 누리면 당연한 자세이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길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잘 알고 계실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한 명도 멸망하지 않고 구원하려고 자신의 목숨을 드린 것이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로마서 5장에도 말씀하시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우리가 어떨 때 구원하셨는지 말씀하고 있다. 로마서 5장 6, 8, 10절에 나오는 세가지 상태였을 때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고 말하고 있다. 6절에는 우리가 연약할 때, 8절에는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에, 10절에는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했다고 말씀하고 있다. 내게 유익을 주는 사람, 높은 사람에게는 잘 해줄 수 있다. 하지만 연약한 사람은 무시할 수 있고 죄인은 쳐다보지 않을 수 있으며 원수에게는 복수하려는 마음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인 나를, 원수인 나를 위하여 자신을 드려서 나를 살리셨다. 여러분들이 그러한 삶의 행보를 걸어갈 때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증인의 길 가는 것이다. 메세지의 증인, 삶의 증인도 되는 것이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드러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끔 되어있다. 내가 안하던 짓을 하면 되겠나 생각할 수 있다. 성격대로, 내 체질대로 살아야지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체질에 속한 자가 아니고 우리의 부르심에 속한 자이다. 모두를 살리는 나,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기도합니다. 지극히 존귀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언약을 붙잡습니다. 모두를 살리는 그리스도의 제자 되게 하옵소서. 손해의 인간관계, 부정적인 인간관계를 발판으로 삼게 하옵소서. 실망하거나 슬퍼하거나 낙심하지 아니하고 숨겨진 하나님의 큰 뜻을 찾아내는 믿음을 갖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실제로 서밋의 응답을 찾아내게 하옵소서. 모든 사람을 살리는 서밋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