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다락방의 사람들 (17) - 성령의 흐름을 타는 사람들

June 30th, 2019

ICA Sunday Pulpit Message



♠ 서론

▶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디즈니에서 만든 영화가 인기가 많다. 제가 재미있게 본 것 중에 ‘라이언킹’이라는 만화영화가 있다. 라이언킹에는 심바라는 사자가 나온다. 심바의 아버지는 무파사이고 무파사의 동생은 스카라고 한다. 라이언킹 중에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밀림의 제왕에서 왕 노릇을 하는 무파사가 죽게 되는 장면이다. 끝이 안 보일 만큼 엄청난 떼로 이동하는 들소들의 질주에 어린 사자 심바가 놀다가 짓밟히게 되는 위기를 당하게 된다. 이때 아빠 사자인 무파사가 그것을 보고 뛰어들어 구출하려고 한다. 결국에는 무파사가 심바를 간신히 구해내지만 무파사는 질주하는 들소 떼에 깔려서 큰 부상을 당한다. 가까스로 들소 떼를 비집고 피해 나와서 절벽을 기어 올라가지만 절벽 위에 있던 동생 스카가 도와주지 않고 떨어뜨려 무파사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다시 들소 떼에 깔려 죽게 된다. 밀림의 제왕 사자라 할 지라도 어마어마한 질주의 흐름을 거스르게 되면 짓밟혀 죽게 된다. 그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들소 떼의 질주 방향으로 같이 가면 된다. 멈추어 있거나 거스르면 짓밟히게 된다. 비지니스의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전화를 많이 쓴다. 처음 일반 전화는 상대방의 소리를 듣고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발전해서 피처폰이 나왔다. 전화통화도 하고 문자도 보내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능이 탑재 되어있는 폰이었다. 피처폰 중에 세계적으로 많이 팔렸던 폰이 노키아 폰이었다. 핀란드 노키아 지방에서 시작했던 회사가 전세계의 휴대폰 시장 절반 이상을 점유했었다. 그 폰 하나가 핀란드 전체 국민 총생산의 1/4을 차지할 만큼 어마하게 세계적으로 팔렸었다. 그런데 노키아가 이 폰 시장의 흐름을 타지 못했다. 아이폰을 비롯해서 삼성과 다른 회사에서 스마트폰이 나왔다. 이것은 피처폰에서 더 많은 기능이 탑재되어 나온 것이다. 모양만 폰이지 사실상 작은 컴퓨터이다. 이 스마트 폰에 대해서 제대로 연구를 하거나 흐름을 타지 못하고 비용 절감에만 신경을 쓰다가 시장을 모조리 빼앗겼다.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가는 흐름을 놓친 것이다. 그래서 3위나 4위가 아니라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지난 번에 말씀드렸던 미국의 코닥 회사가 있다. 사진기로 사진을 찍을 때 필름이 있어야 했다. 코닥이 필름으로 세계적인 기업이다. 그런데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기 시작했고 더이상 필름이 필요가 없어졌다. 이 부분에 흐름을 타지 못한 코닥은 망하게 되었다. 흐름이 있다. 변화가 있다. 이 흐름에 대해서 오늘 말씀드리려고 한다. 예전 옛날 가요는 뽕짝과 트롯트였다. 그분들 시절에는 6.25사변이 있었기 때문에 감정이입이 잘 됐었다. 하지만 그것이 저희 세대에는 고리타분하게 느껴졌었다. 우리 같은 386 세대, 40-50대는 아메리칸 팝, 발라드를 좋아한다. 이것이 흐름이었다. 하지만 어린 친구들은 랩을 좋아하고 발라드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이 흐름이다.

▶ 자세히 살펴보시면 모든 곳에는 흐름이 있다. 영적인 세계, 영적인 사실 속에도 흐름이 있다. 오늘 성경 본문에는 차마 설교하기 힘든 사건이 벌어졌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헌금을 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산을 팔아서 절반을 내었다. 많이 낸 것이다. 그런데 그 절반을 속였다고 베드로한테 책망을 받더니 어떻게 되었는가? 경책의 말씀을 듣더니 아나니아가 그대로 혼절해서 죽었다. 그리고 세 시간쯤 지나서 삽비라 와이프가 따라와서 똑같이 베드로가 질문하고 거짓말하더니 와이프마저 죽었다. 이것은 놀랄만한 사건이다. 여러분들 주위에서 볼 때는 어떻겠는가? ‘목사님께서 헌금을 안했다고 사람을 죽이네’ 생각하고 성도들이 다 나갈 것이다. 그런 사건이 터졌다. 중직자 아내와 남편이 즉사했다.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드릴 것이며 이러한 비극을 어떻게 해석하겠는가? 제가 목사가 되기 전에 이 부분의 설교를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중직자 여러분, 헌금 떼먹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이런 꼴 납니다.’ 저는 이런 설교를 많이 들었다. ‘헌금 똑바로 하십시오. 하나님 것을 떼어먹지 마십시오.’ 이런 설교를 많이 들었다. 만약 이런 식으로 한다고 한다면 돌아가실 분들이 많다. 그렇다면 이 부분을 우리가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오늘 제목이 ‘성령의 흐름을 타는 사람들’ 이다. 우리가 지금 사도행전을 통하여 마가의 다락방의 사람들에 대하여 보고있다. 오늘은 17번째 시간이다. 마가의 다락방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지난 주에는 ‘모든 것을 살리는 사람들’ 이었다. 오늘은 성령의 흐름을 타는 사람들이다. 무슨 뜻인가?

 

1.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서 시작된 성령의 흐름

▶ 영적인 흐름이 있다. 태초에 성령께서 수면에 운행하셨다고 되어있다. 성령이 활동하신 것이다. 창조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시고 하나님의 기운, 성령을 불어 넣으셔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 즉,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인류를 시작하신 것이다. 구약 전체에 성령이 역사하신 것이다. 여호와의 신이 역사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매 이 날로 여호와의 기름부음이 충만케 되어,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시간표 전체에는 성령의 역사를 뗄레야 뗄 수가 없다. 오늘은 예수라는 포인트를 통하여 보겠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 시점이 있다. 구약 성경 맨 마지막 책이 말라기서이다. 말라기라는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다. 말라기 선지자의 메시지 이후에 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끊겼다. 이것을 영적 침묵기 라고도 표현한다. 이 영적 침묵기 400년의 시간표를 깨트리는 때가 있었다. 바로 구약 수천년 동안 예언되어진 메시아가 출현하게 되어진 것이다. 어떻게 이 땅에 오셨는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동정녀가 임신을 한 것이다. 아시다시피 원죄가 없는 인간으로 오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온 것이다. 그분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다 안다. 그분을 신앙 고백할 때 인생 모든 문제가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를 포함해서 인류의 모든 문제를 십자가에서 끝낸 그분이 성령으로 잉태되셨다. 성령의 흐름이 시작된 것이다. 성령의 감동을 받고 메시아의 출연에 관해서 예언했던 그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성경을 읽어서 알고 있듯이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고 출산했다. 사단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당시 헤롯왕을 통해서 아이들을 싹 다 죽였다. 그 살해 명령에도 불구하고 성령이 역사하심으로 예수님은 그 위기를 피해 가셨다.

▶ 그리고 때가 되어 공생애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시작하셨는가? 마태복음 3:16절이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성령이 임하므로, 성령의 인침로 그분의 사역이 시작된 것이다. 성령이 지금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사도행전 10:38에 이런 말씀이 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제가 누누이 말씀드렸다. 성자 하나님은 자신의 권능을 단 한번도 쓰지 않으셨다.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제 3위 하나님, 성령의 능력을 가지고 일을 하시고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키신 것이다. 로마 군이 체포하러 왔을 때 베드로가 나섰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권능이 있는데 안쓰신 것이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가 주신 성령의 능력으로 힘을 얻고 귀신을 쫓아내며 질병들을 치유했던 것이다. 성령의 넘치는 능력으로 자신의 일을 수행하셨다. 성령의 기름부음 받은 자. 그래서 그분을 그리스도라고 한다.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고백한다.

 

2. 초대교회에 나타난 강력한 성령의 강력한 흐름

▶ 지난 주에 계속 확인했다. 사도행전 3:6 “…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예수님은 명령하시고 성령이 역사하셨다. 운명이 바뀌어진 것이다. 앉은뱅이의 저주가 깨진 것이다. 기적이다. 사도행전 4장이다. 어마어마한 핍박이 초대교회 신자들에게 임했다. 성령충만을 받은 그들은 정확한 신앙고백을 했다. “너희들이 죽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자가 살아난 것이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이 엄청난 성령의 흐름 때문에 분위기, 문화까지 바뀌었다고 지난 주에 살펴보았다. 그 성령의 흐름이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킨 것이다. 복음 문화, 복음 경제, 복음 정치가 일어났다고 지난 주에 살펴보았다. 지금 요즘에 종종 보는 구제 헌금, 도네이션 정도가 아니었다. 자신의 모든 재산을 팔아서 교회 앞에 헌금한 것이다. 필요에 따라서 나누어 주었다. 지금 이런 일들이 벌어지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저 사람은 미치거나 이단이라고 말한다. 성령충만함의 결과였다. 이런 어마어마한 바람, 이런 엄청난 흐름 속에서 바나바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중직자 한명이 자신의 재산을 내어 놓았다. 그것을 옆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본 것이다. 동료 중직자가 이렇게 헌금하고 헌신을 하는데 나도 중직자로서 해야 되지 않겠나 그런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이 복음 경제가 실현되는 현장이었다. 아나나니아 중직자가 자기 전 재산을 팔긴 팔았는데 생각해보니 노후가 걱정된 것이다. 그래서 아내인 삽비라와 상의한 후에 얼마를 떼어 놓고 나머지를 헌금하게 된 것이다. 헌금을 안 한 것이 아니다. 재산의 절반은 큰 액수이다. 지금은 이렇게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런데 베드로가 말을 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경책하였다. “…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 사람이 아니라 성령을 속였다고 되어있다. 즉, 액수가 문제가 아니다. 크기가 문제가 아니다. 지금 어마어마한 성령의 흐름을 타는 중에 그 마음을 속인 것 자체가 성령의 바람과 역행했던 것이다. 성령의 강력한 흐름과 아나니아의 마음과 행동이 정면으로 충돌했던 것이다. 그래서 부인까지 함께 죽게 된 것이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복음의 문화, 복음의 경제, 복음의 정치를 누릴 만큼 어마어마한 바람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 안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였을 때 비극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성령의 바람 속에서, 성령의 흐름 속에서 인도받는 것이 이렇게 치명적이고 중요하다 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교회에는 그렇게 크게 큰 바람, 큰 흐름이 없다. 흐름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한 두가지 예를 더 들겠다. 

▶ 예수님의 수제자가 베드로이다. 마태복음 16:16 유명한 신앙 고백을 베드로가 한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때 예수님께서 칭찬과 축복을 전해 주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어마어마한 축복이다. 그리고 나서는 21절에 예수님께서 자신의 미래 스케줄을 말씀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이 때 베드로가 22절에 예수님을 붙들면서 간절히 말한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인간적으로 이해 되는 말이다. ‘우리 어머님은 120세까지 무병장수 할 것입니다’ 이런 심정이다. 그런데 23절에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베드로를 향해서 사단 마귀라고 하셨다. 생각해보라. 담임목사가 강단에서 설교를 하다가 집사님을 향해서 ‘마귀야 나가라’ 이렇게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다시는 쓸어 담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교회를 떠날 수 밖에 없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신 것이다. 오늘 제자학교를 시작하기 전에 성경을 통독했다. 잠언 12장에 뭐가 나오는가? 지혜로운자는 경책을 달게 받는다고 나와있다. ‘베드로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 구나, 베드로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구나’ 그것을 몰래  1대1로 와서 상담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다 듣는 앞에서 ‘마귀야 물러가라’ 이런 식으로 책망을 한 것이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성령으로 시작하고 진행하며 끝나게 된다. 베드로가 ‘그리 마옵소서’ 라는 말은 ‘십자가에서 죽지 마소서’ 라는 뜻이다. 하나님과의 뜻과 계획, 스케줄과는 전혀 상관없는 말이다. 흘러가야 될 성령의 흐름을 거역하는 말이었다. 마귀에게 속한 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책망 받은 것이다. 인간적인 위로는 될지언정 성령의 흐름에는 대치가 되었다. 죽지않고 혼나기만 해서 다행이다. 그러나 바울 같은 경우는 어떠한가? 마게도냐에서 환상을 보고서 그쪽으로 갔다. 아시아로 가기를 원했는데 마게도냐로 가라고 하는 성령의 사인을 받고 순종하게 된 것이다.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내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리라.’ 성령의 흐름을 봤고 그대로 따라간 것이다. 그렇게 고백했던 바울을 대 사도로 하나님이 쓰셨다. 여러분 성령의 흐름에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이렇게 개인들이 있었고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 촛대 라고 이야기 한다. 마가의 다락방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부흥을 시키고 예루살렘 교회가 정착되었다. 사도행전 1:8 언약을 붙잡고 시작한 교회였다. 여러 일련의 큰 사건들을 체험하고 후에 사도행전 10장에 이르렀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환상을 베드로에게 3번이나 보여주셨다. 고넬료를 만나러 가라는 뜻이었다. 처음에는 헬라인이었던 고넬료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 3번이나 지속적으로 보여주니 억지로 베드로가 끌려간 것이다. 그런데 고넬료가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고넬료가 자신의 가정과 가문을 초대하고 복음화 시켰다. 베드로 사도가 축복 기도할 때 성령까지 임하였다. 어마어마한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그 다음 장이 문제이다. 사도행전 11장에 예루살렘 교회 전체가 공회로 모였다. 이때 베드로에게 따졌다. ‘왜 이방인을 만났는가? 왜 이방인과 식사를 했는가? 왜 이방인의 집에서 머물렀는가? 앞으로 조심하세요.’ 베드로가 순간 당황해서 ‘아 그게 아니고’ 변명하듯이 땀을 흘리면서 말했다. 분명히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가라고 하셨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다.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 하라고 하셨다. 결국 사마리아를 넘어 이방인에게 까지 성령이 역사하시는구나 환영하고 반겨야 됐는데 성령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성령의 흐름을 거역한 셈이 되었다. 그래서 결국 스데반의 환란 때문에 모든 예루살렘 교회 성도가 흩어진 것이다. 공중분해가 되어 사도들만 남았다. 그러다가 흩어진 성도들 중에서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한 사람들 중심으로 뭉쳐서 안디옥 교회를 시작한 것이다 . 여기에 하나님이 축복하셨다. 하나님이 사용하시기 시작했다. 여기에 축복을 부어 주셔서 본 교회인 예루살렘까지 구제하도록 만드셨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사도행전 13장 이후에 예루살렘 교회, 베드로 언급이 한차례도 없다. 예루살렘 교회에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진리의 빛을 밝혔던 촛대를 안디옥 교회로 옮기셨다. 예루살렘 교회에 구원이 없었던 것인가? 그들이 구원을 잃어버린 것인가? 아니다. 다 먹고 살고 나중에 다 천국에 간다. 그런데 하나님의 눈동자가 다른 곳으로 옮겨간 것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구원을 잃어버렸는가? 구원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죽음을 당한 것이다. 목숨이 끊어진 것이다. 예수님을 주로 섬겼으니 천국으로 갔다. 단지 이 땅에서의 삶은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남은 여생에 하늘의 상급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몰 수 한 것이다. 즉, 교회가 끝나버린 것이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흐름을 타며 끝까지 쓰임 받았던 것이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린다. 여러분들 모두 바울과 같은 선택이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들 전원이 안디옥 교회 같은 인도를 받길 바란다. 성령의 흐름을 타는 것이다. 이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겁을 주거나 헌금을 하라고 협박하는 설교가 아니다. 문화와 정치 경제를 뒤집을 만한 성령의 흐름, 영적 상태가 충만했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을 봐야 되고 이 흐름 속에 들어가야 한다.

 

3. 우리가 타야 할 성령의 흐름이 있다.

▶ 사도행전 5장이 그런 내용이고 우리에게 이런 메시지를 주고 있다. 그러면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해야 한다.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 임마누엘 오스틴 교회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봐야 한다. 그 흐름을 여러분이 보고 타시면 된다. 이것이 실제적인 본론이다. 사도행전 1장을 보시게 되면 초대교회 성도님들이 언약을 붙잡고 시작했다. 그리스도로 인생 결론 내린 마가의 다락방 사람들이 언약을 붙잡고 기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러분들께 제가 현장, 평생 언약 찾으라고 했었다. 여러분이 이것을 찾아내시면 된다. 그리고 강단 언약에 생을 걸라고 했었다. 그것이 흐름이다. 왜 성도님들이 설교를 받아 적는가? 그런 흐름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적는 것이다. 여기서 붙잡아야 될 언약이 무엇인가? 언약을 붙잡아야 되기 때문에 언약으로 시작해야 한다. 이 흐름 가운데서 주제들을 하나씩 던져 드리고 있는 것이다. 40일 동안 하나님의 나라의 일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말씀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가 미션홈 집중훈련을 매월 마다 하고 있다. 우리는 40일 하지 못하니까 1박2일로 하고 있다. 토요일, 일요일 하다가 여건으로 인해서 금요일, 토요일로 옮겨서 한다. 그것도 흐름이다. 그런 성령의 흐름 가운데서 하나씩 하는 것이다. 언약을 붙잡고 기도에 집중하게 되어지면 우리의 믿음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되는 것이다.

▶ 우리가 은혜를 받고 가면 되는데 자꾸 3오늘을 하라고 한다. 이것도 흐름 가운데 하려고 하는 것이다. 특히 3오늘이다. 말씀의 흐름이 있다. 전에는 우리가 은혜를 받는 말씀이었다. ‘오늘 목사님 설교가 참 좋았다.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돌아갈 수 있다. 그러다가 이제는 말씀 속에서 내가 한 주간 붙잡아야 될, 168시간 동안 내가 늘 기억해야 될 말씀이 무엇인지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말씀의 흐름이다. 기도의 흐름은 무엇인가? 전에는 우리가 기도할 때는 일이 터지면 기도했다. 갑자기 아프거나, 갑자기 애들이 잘못되거나, 갑자기 돈이 궁해질 때, 갑자기 시험에 들 때 필요에 맞추어서 기도를 했다. 이제는 조금 더 나아가 내 응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주실 응답을 찾는 것이다. 그런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다. 전도 흐름은 무엇이 있겠는가? 우리가 개인에게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영접시키는 이런 흐름이 있다. 그러다가 그들 중에 일꾼 될만한 사람을 양육시키는 훈련, 이런 시간표가 있는 것이다.

▶ 예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초창기에 미국교회를 빌려서는 어떻게 예배를 드렸는가? 미국 교회를 빌려서 오후에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미국 교회 성도님들이 다 나가는 것을 기다려야 했다. 정시에 시작을 하지 못했고 교회가 어수선했다. 그러다가 우리 교회가 20년을 향해서 가고있다. 제가 작년 말부터는 조금씩 바꾸고 있다. 아침 9시에 제자학교를 시작해야 하는데 15분전에 미리 와서 호흡기도와 성경을 같이 통독하면서 시작을 한다. 호흡기도 하고 성경 한 장을 두차례 읽으려면 10-15분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다른 많은 말이 필요 없이 삶 속에서 체질이 되게 하려 한다. 모든 미팅, 약속에 10-15분 앞서가는 것이다. 그것이 램넌트들에게 몸에 배게 하려고 일부러 하는 것이다. 주일 대 예배도 10시 반에 시작이다. 그런데 제가 찬양단에게 10:10분에 찬양을 시작하라고 했다. 15-20분 전에 찬양을 하는 것이다. 성도들로 하여금 미리 오게 하려 하는 것이다. 미리 와서 주보를 통해서 전체 흐름을 파악하게 한다. ‘강단의 제목이 이것이고 메시지 포인트는 이렇구나. 성경본문은 이것이구나. 주보 광고를 통해서는 다음 주에 이런 미팅이 있구나.’ 미리 준비하도록 삶 속에서 배게끔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배를 드릴 때 사회자가 나와서 처음에는 멘트를 했다. ‘앉으세요, 일어서세요, 찬양 몇 장입니다’ 하나씩 흐름을 바꾸어 나가고 있다. 초대교회 때 사도가 나와서 사회를 봤겠는가? 사회를 보지 않았다. 다같이 회중 찬양을 했다. 회중 찬양을 뜨겁게 하고 나서 아무말 없이 사도가 나와서 강의를 한다. 초대교회처럼 100% 똑같이 할 수는 없다. 주보를 보고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토요일에 주보 광고가 발송된다. 1부, 2부, 3부 예배 사회와 기도를 누가 하는지 미리 나간다. 준비하는 것이다. 나와서 준비기도 하면서 찬양이 시작되면 알아서 성경을 읽고, 알아서 나와서 대표기도 하게 앞으로 그런 식으로 바꾸어 나가려고 한다. 앞서 준비하고 전체를 이해하고 나서 하나님께 나가는 것이다. 토요일 날 준비하고, 미리 와서 준비하고 성숙한 예배 문화로 조금씩 흐름을 바꾸어 나갈 것이다.

 

♠ 결론

▶ 말씀을 정리하겠다. 성경구절 한 구절을 확인하겠다. 마태복음 12:31-32절이다. 여러분들이 겁을 먹으라고 주는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비밀을 붙잡으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겁나는 말씀이다. 협박의 말씀이 아니라 비밀을 찾는 것이다. 내가 능력이 모자라도 괜찮구나. 내가 마음껏 헌신을 못해도 괜찮구나. 눈을 떠서 성령의 흐름을 타야 되겠구나. 이 속에 들어가게 되면 인간이 노력하는 것 이상의 축복을 받게 된다. 성령의 흐름 속에 여러분의 삶을 맡기게 되면 인간이 100년, 1000년 일한 것보다 더 능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사도행전이 바로 그런 스토리이다. 여러분과 저, 우리의 모든 삶 속에 사도행전의 승리, 증거가 있기를 바란다.

 

♠ 기도

▶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영광을돌려드립니다. 오늘도중요한언약을붙잡게하옵소서. 우리는연약하고 허물 많으며 부족한자들임을고백합니다. 그러나믿음의은혜를 주사성령의흐름을놓치지않게하옵소서. 예수님의이름으로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