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다락방의 사람들 (18) - 성령의 권능을 체험한 사람들

July 7th, 2019

ICA Sunday Pulpit Message



♠ 서론

▶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가 먹을수록 힘을 잃어간다. 20-30대 때의 젊은 날을 생각하면서 많은 생각과 아쉬움이 남는다. 젊을 때는 모르지만 나이가 들면서 힘, 능력이 절감이 되어 간절하게 느껴지고 생각이 든다. 연세가 드신 분들은 책을 읽기도 쉽지가 않다. 그것을 이제 시력이라고 표현한다. 볼 수 있는 힘을 한자로 시력이라고 쓴다. 심지어는 듣는 것도 청력, 들을 수 있는 힘이라고 말한다. 예전에 학생 때는 악력 테스트도 책정했는데 손으로 쥐는 힘을 악력이라고 한다. 신체적인 능력, 힘이 사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 같다. 신체적인 힘이 남달리 뛰어난 분들은 운동선수가 된다. 최고의 스포츠 선수가 되면 어마어마한 천문학적인 수입을 벌어 드리고 인기도 많다. 신체적인 힘이다. 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지적인 능력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공부를 많이 해서 학자가 되거나 교수, 과학자가 된다. 내 자신이 아이큐가 많이 떨어지지만 내 자녀들은 아이큐가 좋기를 원하고 그들의 배우자도 지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얻기를 원한다. 그것을 지력, 지적인 힘이라고 하고 그것도 힘이다. 뿐만 아니라 기능도 힘이 있다. 어느 특정분야의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게 되면 해당분야의 성공자가 된다. 그리고 경제적인 힘도 많이 중요하다. 우리 모두가 부자 되기를 바라고 있다. 내가 조금 고생을 하더라도 돈을 버는 이유가 자식들 잘 키우려고 돈의 힘을 얻고자 한다. 다시 말씀드려서 모두가 힘, 또는 능력을 갖고 싶어하고 추구한다.

▶ 전 세상이 힘의 논리, 능력 있는 사람들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유가 있다. 힘이 중요한 것인 것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능력에는 이토록 가치가 있구나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힘, 하나님이 주시려고 하는 능력은 무엇인가 이렇게 깨달을 수 있다. 그 하나님이 원하시는 힘, 하나님이 주시려고 하는 능력이 바로 성령의 힘, 성령의 능력이다.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가 체험하길 원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기를 하나님이 원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능력은 어떻게 얻고 체험할 수 있을지 거기에 대한 답을 오늘 찾는 것이다.

 

1. 오늘날의 교회와 대비되는 초대교회의 모습

▶ 우리의 주님, 예수님께서 마가의 다락방 사람들,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라. 그러면 땅 끝 지역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증거를 갖게 될 것이다.’ 그것이 초대교회이다. 오늘 성경 본문을 보면 초대교회가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서 역사 되었다. 특히 사도들을 통해서 표적과 기사 능력이 나타났다. 어느 정도 일어났는가 하면 병든 사람이 치유되었다. 악령 들린 사람들이 치유되었다. 이런 하나님의 능력이 사도들을 통해서 나타난다 라는 소문이 여러 도시들에 퍼졌다. 어느 정도로 대단하면 병든 사람을 침상에 눕혀서 거리에 두었다. 그러면 사도들이 지나가면서 그림자만 덮여도 병들이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어마어마한 역사가 이때 일어난 것이다. 이런 사도들을 통한 사도들의 역사 때문에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모였다고 되어있다. 그런 한마음으로 모인 초대교회의 모습을 세상 사람들이 보고 칭찬했다. 초대교회의 모습이다. 자세히 보시게 되면 현대 교회와는 크게 비교되는 모습이다. 오늘 날의 교회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사도들의 권능이 나타나기 보다는 목사님들이 부정부패를 하거나 추문에 시달리고 여러가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초대교회 성도님들은 한마음으로 모여서 기도하고 전도했는데 오늘 날의 교회는 성도들 간의, 목회자 간의 갈등과 시험 들어서 모이기는 커녕 자꾸 빠져나간다. 백성들의 칭송을 받기 보다는 사회의 손가락질, 지탄, 비판의 대상이 되어 배척당하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일이다. 도전이 되는 부분이다. 이런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또 복음을 찾아야 되고 그리스도를 찾아야 된다. 담임 복사가 변변치 못하고 성도들이 갈등 가운데 시험 들어있고, 교회의 성도들 대부분이 이 교회는 내가 뼈를 묻고 생을 걸 교회다 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지 않다. 이런 것을 보게 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고 받아드려야 하는가? 거기에서 그리스도를 찾아내야 한다. 거기서 예수님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원치는 않지만 불편한 현실 속에서 복음을 누려야 되는 것이다.

▶ 이러한 추한 모습 속에서 복음이 없는 사람, 예수가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가? 목사가 저 모양, 저 꼴이다 라고 손가락질 한다. 장로가, 집사가, 권사가 되어서 저렇게 돈 떼먹고 도망 다니는 구나 비판한다. 종교 중에 최악의 종교는 기독교, 개독교라고 말한다. 그것이 세상의 흐름이다. 이러한 교회의 모습을 쳐다보고 반응하는 세상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정말 구원받은 자녀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추한 모습, 무너진 모습, 멸망하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에서 진짜, 가짜가 구별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집 한 채가 있는데 대문 유리창이 깨졌다. 지나가는 행인은 보고서 방관한다. 악질적인 사람은 빈집이니까 거기에 방뇨를 하거나 나쁜 짓을 한다. 그러나 유리창이 깨진 그 집이 내 집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는가? 내 돈을 투자해서 그 유리창을 새로 끼우고 청소할 것이다. 교회가 나의 몸 된 하나님의 교회가 맞고 내가 구원받은 자녀가 맞다면 그런 처참한 현실 앞에서 무너진 성벽을 두 팔을 벌려 막는 선지자처럼 품게 될 것이다. 하나님 앞에 내가 대신 회개하고 기도할 것이다. 그것이 진짜이다. 진짜 구원받은 사람일 것이다. 오늘날 현대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를 붙잡기 바란다. 사실상 이 초대교회 모습은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냐 하면 예수님으로 결론이 난 사도들로부터 권능이 나타났고 이러한 축복의 증거들이 나타났다. 오늘날의 이런 가슴 아픈 교회 현실의 그 책임은 담임목사한테 있다. 90%의 책임이 목회자에게 있는 것이다. 여기에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가슴 아픈 현실 속에서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하고 성도들을 품고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자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램넌트들은 기억하시기 바란다. 앞으로 많은 만남이 있을 것이고 많은 모임에 관여될 것이다. 이 때 상승 곡선이 있는가 하면 하강 곡선도 있을 것이다. 잘 될 때가 있고 안 될 때가 있을 것이다.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 받고 복음의 능력을 아는 여러분들은 거기에 주인 되시기 바란다.

▶ 성경에는 중요한 예들이 있다.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를 알 것이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한테 선택권을 미리 주었다. 우리 같으면 속으로 원하기는 원하지만 나를 지금까지 보호해준 연장자 삼촌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었을 것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저 주인 아브라함은 나의 삼촌이다 나를 지금까지 키워준 분이시기 때문에 그 분의 우물을 건들지 말아라’ 단속할 것이다. 그런데 롯은 롯의 종들과 아브라함의 종이 다투는 것을 방관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선택권을 줬을 때 날름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했다. 그런데 마침 소돔과 고모라에 세계 대전이 터졌다. 그 전쟁 통에 롯이 가족도 잃고 재산도 잃어버렸다. 이 소식을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는가? 창세기 14:12‑13 절이다.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전쟁 중에 도망가던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었다. 창세기 14:14장을 보시면 아브라함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나와있다.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16절에는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세상의 인간관계는 자신에게 손해를 주는 사람이 잘못되었을 경우에 우리는 기분 좋아한다. 고생할 때에 한번 깨달어보라며 내버려둔다. 아브라함은 달랐다.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고 찾아 들어가서 모든 것을 살려냈다. 롯의 실패, 롯의 멸망한 현실을 쳐다보고 뛰어들어가서 함께 했던 것이다. 여러분들도 깨닫기를 바란다. 여러분들이 언약을 붙잡기를 바란다. 이런 부분이 여러분들의 체질이 되기 바란다. 이것이 신앙인의 모습, 복음 가진 자의 자세이다.

▶ 다윗 이야기도 있다. 다윗을 항상 사울 왕이 추격했다. 장난치는 것이 아니라 죽이려고 한 것이다. 이때 다윗에게 기회가 왔다. 원수를 갚을 복수의 기회가 찾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무엘상 24장을 보시면 다윗이 사울 왕의 목숨을 거두지 않고 옷자락만 살짝 베었다. 무언가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었다. 사울 왕 당신이 잠들었을 때 나는 칼을 들고 있었고 당신의 옷을 베었다. 즉, 당신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나는 당신의 목숨을 해하지 않았다라는 메시지이다. 옷을 베는 것조차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고 되어있다. 왜 그런가? 다윗이 고백한다. 5-6절에 나온다.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다윗은 사울 왕의 현재 상태를 알았다. 도저히 왕이라고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 왕이 하나님이 기름 부어서 세운 종인 것을 알았다. 기름 부음 받은 자는 기름부음 받은 자를 안다.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았는가? 다윗은 왕이 되기 전에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하나님이 끝까지 인도하시는 것을 알았다. 다윗은 사울을 품고 그를 지킨 것이다. 사울 왕은 자기 죄 값을 받아 나중에 비참하게 죽었다. 다윗은 속 시원해 하지 않고 40일 밤낮을 슬피 울었다고 되어있다. 자기를 괴롭힌 자, 사울 왕의 무너진 모습조차 품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진짜 복음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과 맞았던 것이다. 사울 왕의 대를 이어서 진정한 왕이 될 만한 그릇이 된 것이다. 여러분들에게 이런 깨달음이 있기를 바란다. ‘내가 너보다 인격이 좋아’ 이것이 아니다. 나 자신은 그렇게 할 인격이 안되는데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원하신다. 그것이 그리스도이다. 그것이 복음이다.

▶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 하나님의 형상을 주셨다. 통치와 정복, 권세를 주셨다.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인 아름다운 아내도 주셨다. 4개의 강이 흐르는 에덴 동산마저 주셨다. 모든 생물을 쳐다 보자마자 이름을 지을 수 있는 직관 능력도 주셨다. 그런데 아담은 하나님을 떠나 마귀의 종 노릇을 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자기 아들을 희생하고서 인류를 건져 내셨다. 인류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 복음이다. 인격 윤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비밀을 찾는 것이다. 승리하기를 축원한다.

 

2. 사도들을 통해 성령의 권능이 나타난 배경

▶ 이런 초대교회 모습에 성령의 능력이 나타났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사역을 했던 그 모습과 동일한 내용이다. 병자들을 치유하고 귀신을 떠나가게 한 것이다. 예수님이 행했던 그 기적과 표적, 어떻게 동일한 역사가 일어났겠는가. 이것이 초대교회 모습이었는데 우리가 지향하고 바라보고 원하는 그런 교회이다. 이런 동일한 역사가 나올 수 밖에 없었던 배경, 이유가 있다. 무엇인가? 바로 예수님과 함께했던 것이다. 메시지 포인트를 보시면 3가지 내용을 적어놓았다. 마가의 다락방 사람들, 특히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3년반 동안 동행하고 동거하고 함께 현장에서 살았다.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40일 동안 감람산에서 집중적으로 말씀 훈련을 받았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고 안 계셨지만 즉시 제자들과 함께 언약을 붙잡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10일간 지속하여 집중 기도를 한 것이다. 사실상 평소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이 불쑥 드러나기 마련이다. 늘 모아두고 쌓아 두던 것이 결정적일 때에 터지는 법이다. 3년 반의 공생애, 40일 동안의 감람산 훈련, 10일 동안의 집중, 이러한 시간표를 통해서 제자들은 무언가를 얻고 무언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가진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쌓아둔 것이 무엇인가? 첫째로는 현장의 실제 상황이다. 창세기 3장의 저주로 고통 당하는 수많은 영혼의 모습을 본 것이다. 그런 현장 속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표적과 기적을 나타낸 것이다. 성령의 권능이 역사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현장을 치유하고 변화시키며 회복을 시켰던 것이다.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이 이 제자들에게 각인, 뿌리, 체질이 된 것이다. 그들의 평상시 생각이 의식이 된 것이다. 움직일 수 없는 사상이 되어졌고 삶의 철학이 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운명을 해결한 것이다. 흑암을 꺾고 하나님을 만나게 한 것이다. 그것이 생에 들어온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다. 그 부분이 들어왔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함께 동거하고 동행하고 집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 우리는 교회 자체 집중훈련을 3번했다. 우리가 이 훈련을 ‘미션홈 집중훈련’ 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짧은 1박2일이지만 같이 잠을 자고, 같이 메시지를 듣고, 같이 일어나서, 같이 세수하고, 같이 아침 운동을 하려 했던 것이다. 모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가정에 들어가서 세수를 하거나 샤워를 하고 잠자리를 준비할 때 자기의 본 모습을 드러나게 노출한다. 양치질을 하거나 샤워를 할 때 남들이 보라고 각도있게 하지 않는다. 자신의 모든 모습 속에서 훈련을 같이 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션홈 집중훈련이라고 제목을 단 것이다. 하루라도 복음의 이름 안에서 모이고 생활하려고 했던 것이다. 우리가 3년 반 동안을 하지 못하더라도 한달에 한번씩이라도 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흐름을 타면서 조금씩 하나씩 갖추려고 한다. 우리교회는 한달에 한번씩 집중 훈련을 하는구나 라고 생각이 어느 정도 들 때에 한달에 2번 격주로 하려고 한다. 훈련을 한달에 2번 격주로 한다고 생각이 들 때쯤에 일주일에 한번씩 하려고 한다. 그 생각이 일반화 되어지게 되면 매일 훈련을 하려고 한다. 월요일날에는 쉬고 화요일 날 모이는 것이다. 수요일 날도 모인다.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모인다. 그래서 임마누엘 오스틴 교회가 완전히 신학교화가 되게 기도하고 있다. 화요일은 어느 주제를 가지고 수요일 날에는 요일 별로 주제를 가지고, 힐링 스쿨, 기도 스쿨, 제자 스쿨, 캠프 스쿨 하나씩 하려고 한다. 여러분들이 빨리 눈치채시기 바란다. 세상에서 먹고 살기 바쁜데 이러다가는 큰일나겠다 생각할 수도 있다. 교회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여러분의 신앙이 인생의 중심이 되어야 되는 것이다. 이것이 훈련되지 아니하면 아무 것도 쓸모 없게 된다. 복음의 깊은 맛을 뼈저리게 체험하고 누리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 생길 때마다 나가는 것이다. 비록 나이가 어리고 박사 학위가 없는 저이지만 뼈저리게 통감하고 이 문화권을 바꾸겠다 생을 걸었다. 조금만 문제 생기게 되면 다 무너진다. 사람들의 잘잘못을 따지고 교회는 능력이 없어서 구걸을 한다. 하나님 앞에서 이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뒤집는 하나님의 성령의 권능을 생애 한번 만큼은 드러내야 된다. 여기에 군대 갔다오신 분들이 많다. 일반 사병과 장교와 훈련의 양, 시간이 완전히 다르다. 훈련된 만큼 그릇이 준비된다. 그릇 준비된 만큼 응답과 축복이 담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을 광야에서 그냥 보낸 것이 아니다. 완전히 훈련된 것이다. 요단 강을 건넌 것이다. 여리고도 무너뜨린 것이다. 일곱 족속, 서른 셋의 왕들을 박살내었다. 이것이 믿음 안에서 훈련 받은 결과이다. 어른분들에게는 강요하지 않겠지만 램넌트들 만큼은 반드시 이 부분을 통과시켜 놓고 내보내던지 결혼을 시키던지 할 것이다. 장로님, 권사님들께는 뒤에서 기도해주기를 부탁드린다. 예수님과 동행하더니 이러한 역사들이 일어난 것이구나. 오직 성령으로 잉태되고 출생하시고 성령의 인도만 받았던 예수님과 함께 했더니 이런 역사들이 일어나는구나. 성령의 권능은 어떻게 받는가? 내가 예수님과의 관계만큼 나타난다. 예수님과 함께 했던 것 만큼 나타난다. 그 깊이 만큼 나타나는 것이다. 내가 집중한 만큼, 지속한 만큼 나타나는 것이다. 여러분들에게 이런 성령의 권능이 일평생 나타나기를 축원한다.

 

3. 우리가 집중해야 할 신앙생활의 방향

▶ 세번째이다. 그러면 우리가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끌어다가 예수님과 동행할 수 없다. 우리 교회가 신앙생활을 같이 하면서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될 것인가? 결론이 무엇인가? 역시 3오늘이다. 말씀과 기도, 전도이다. 어떤 말씀인가? 성경의 지식을 넘어선 복음의 말씀운동을 해야 한다. 사람에게는 지적 욕구가 있다. 무언가를 알고 싶어하는 그 마음이 충족되어지면 기쁘게 된다. 그것이 인생의 맛이다. 우리가 살면서 무언가를 알고 깨닫고 배우는게 중요하다. 그것을 넘어서 우리는 받은 말씀이 성취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왜냐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의 내용을 가지고는 영적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는다. 흑암을 꺾을 수 없다. 내게 임한 복음의 말씀이 내게 체질이 될 때 흑암이 무릎을 꿇는 것이다. 내가 깨닫고 누리며 내가 적용할 때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한다는 사실과 나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말씀과 동행 할 수 있기를 축원한다. 복음의 말씀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인 것이다. 성경 속에서 그리스도를 찾고 여러분이 처한 순간과 현장과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기도이다. 우리는 필요할 때 하나님께 기도한다. 중요하다. 우리의 소원성취 기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을 넘어서야 되는 것이다. 이미 다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기도운동해야 하는 것이다. 복음을 위한 기도운동이다. 즉,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 운동이다. 나의 필요를 채우는 기도 응답을 넘어서 하나님의 필요를 찾는 기도이다. 하나님이 이루실 계획이 무엇인가 알아내는 기도이다.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하신다는 그 하나님의 뜻을 알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어떻게 기도해야 되는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라. 그리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6:10절 말씀이다. 같은 장 33절에는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되어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기도를 하는 것이다. 답이 나온 것이다. 영원한 언약, 그리스도. 앞으로 이 시대에 이루어질 세계복음화. 답이 나왔기 때문에 이루어질 기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을 위한 기도운동이다. 전도는 무엇인가? 복음의 의한 전도운동이다. 복음의 의한다는 말은 그리스도에 의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전도를 할 때에 개교회 부흥을 위해서 기도하고 애를 쓴다. 이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즉,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것이다. 복음에 의한 전도운동, 그리스도를 전하는 전도운동이다.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해서 반응하는 사람을 초청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했더니 인생 결론 내린 사람을 모시고 오는 것이다. 주일학교 시설이 좋으니까 교회에 올 수도 있다. 목사님 말씀이 은혜 스러워서 올 수도 있다. 그것을 뛰어넘자 라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가 드러나고 그리스도께 영광 돌려지고 답 나는 사람을 찾자는 것이다. 하나님이 숨겨놓으셨다. 그래서 숨겨놓은 이 제자들을 모든 족속으로 가서 찾는 것이다. 마태복음 28:19절의 말씀이다. 모든 족속으로 가라. 제자를 삼아라.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반응하는 사람들은 제자이다. 그리스도로 인생결론을 내렸다면 제자이다. 이것이 우리가 집중해야 될 방향이다.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이 3 오늘을 누리는 것이다. 말씀을 찾고 기도의 제목을 찾으며 전도 현장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성령의 권능이 나를 통해서 나타나신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게 될 때 마가의 다락방, 즉 초대교회의 이때 모습이 재현될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하나님이 부르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맛보게 하시려고 여러분을 부르신 것이다. 성령의 권능을 체험하시고 일평생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기도

▶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리고 참된 제자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바라고 원하며 기도컨데 우리교회가 초대교회 모습을 나타나게 하옵소서. 흑암을 깨트리는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며 장년부에서 주일학교에 이르기까지 원니스가 이뤄지게 하옵소서. 오스틴 지역과 텍사스, 전 미주 현장에 모델이 되며 칭송을 받는 여호와의 백성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