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도' 안에 있는 나

July 8th, 2018

ICA Sunday Pulpit Message



♠ 서론

▶ 중국이나 한국 같이 유교 문화권에는 칠거지악이라는 말이 있다. 일곱 가지 악한 내용이라는 말인데 남편의 일방적인 의사표시로 아내를 집에서 내쫓을 수 있는 일곱 가지 사유, 이유를 말한다. 중국의 공자라고 하는 철학자가 처음 쓴 것이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게 되면 말도 안되는 내용이다. 그런데 오래전에 중국이나 한국에는 이런 문화와 풍습이 있었다. 칠거지악에서 남편이 아내를 집에서 내 쫓을 수 있는 일곱 가지 사유 중에 몇가지는 시부모를 순종하지 않았을 경우, 질투가 심할 경우, 아내가 아들을 못 낳으면 내쫓을 수 있다고 한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그 당시에는 관습으로 진행이 되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세가지 사유에 해당된다면 아무리 칠거지악에 어긋나도 내쫓을 수 없었다고 한다. 만약에 아내를 내쫓았는데 아내가 쫓김을 당해서 의지할 곳, 거처할 곳이 없다고 한다면 내쫓을 수 없다고 한다. 또 다른 것으로는 시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남편과 함께 삼년상을 치르면 칠거지악을 범해도 내쫓을 수 없고 마지막으로 결혼하기 전에는 가난한 집안이었는데 아내가 들어오고 나서 재산이 불고 부유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내쫓을 수 없다고 한다. 특별히 아내가 아들을 못 낳을 경우에 많이 내쫓김을 당했다고 한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식 중에 특별히 아들을 구하는 마음이 강했다는 말이다.

▶ 두번째 소개할 문화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던 풍습이다. 계대결혼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남자 형제 중에 가장 형님과 형수님이 자식을 보지 못하고 형이 돌아가시면 밑의 동생이 형수님을 맞이해서 자식을 낳게 되어있었다. 그것이 계대결혼법이라고 유대인의 풍습에 나와있다. 실제로 성경 창세기 38장에 유다와 다말 사건에 계대결혼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또 유명한 룻도 남편이 죽어서 나중에 보아스라고 하는 부자와 재혼을 한다. 이 때에 계대결혼법에 의해서 인정을 받고 재혼을 하게 된다. 그 보아스와 룻 사이에서 나온 자식을 통해서 결국 예수님이 태어났다. 성경은 사실상 근친 결혼을 엄히 금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계대결혼법을 시행하면서 까지 자식을 낳게 하였는가? 결국에는 아시안 문화인 칠거지악이나 유대인의 계대결혼법 모두가 꼭 반드시 다음세대에 자식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자식을 많이 낳아야 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식을 낳아야 나의 것을 다음세대에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전달하려고 한다면 다음세대에 자식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그토록 자식 낳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육신적인 자녀라면 무언가를 전달하기 더 쉬울 것이다. 재산을 전달할 수 있고 가풍을 전달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집안 가문의 특별한 것이 있다면 그것도 전할 수 있다. 육신적인 자녀가 아니라 입양해서라도 무언가를 전달하려고 한다. 그래서 육신적인 후대가 아니라도 전달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제자라고 한다. 성경은 그것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1. 성공한 신앙인들의 삶이었다.

▶ 첫번째이다. 성경에는 많은 신앙의 인물들이 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제자의 삶을 살고 제자에게 중요한 것을 전달했다. 성경의 처음 창세기 3장 사건이 터지고 난 다음에 사람들이 소개가 된다. 첫번째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난 다음에 또 다른 아들 셋이라는 아들을 얻었다. 믿음이 좋은 아벨이 죽었지만 하나님은 또 다른 아들, 셋을 허락하셔서 믿음의 계보, 언약의 계보를 이어 가셨다. 성경에는 누가 누구를 낳는 내용이 나온다. 보통 사람들은 누가 아버지이고 누가 아들인지 신경을 쓰지만 성경을 자세히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전달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 라는 사실을 전달했다.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약속을 전달했다. 그래서 그런 언약들을 대대로 전달하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순종해 나간 후대들이 있었다. 그것이 아벨 이후에 셋에게 그리고 다음으로 흘러갔다. 특별히 에녹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았다. 므두셀라가 라멕을, 라멕이 노아를 낳았다. 여러분들은 노아를 아실 것이다. 모든 세상이 불신앙을 하고 하나님이 없다고 야단법석을 칠 때에 노아 한 사람만 하나님을 잘 믿었다. 그것이 막 생겨난 것이 아니라 바로 에녹에서부터 전달되었던 신앙의 유산이었다. 에녹이 체험했던 것을 므두셀라에게 전한 것이다. 그리고 므두셀라가 받은 살고 죽는 심판과 구원의 언약, 신앙의 언약을 라멕과 노아에게 까지 전달이 되었기 때문에 노아는 믿음의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부모 자식간의 관계가 뛰어넘은 정도이다. 육신적으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맞지만 정신적으로, 영적으로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갖게 된 것이다. 아버지가 말하는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드린 것이다. 아버지가 지시하는 모든 것을 그대로 순종한 것이다. 즉, 부자지간의 관계를 넘어선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다. 그것이 언약의 계보였다. 성경은 그것을 기록하고 있다. 아버지의 믿음을 따라서 아이들이 신앙생활을 잘했구나 정도가 아니다.

▶ 그리고 아브라함의 가문이다. 아시다시피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요셉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해서 부르셨다. 그런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이 아닌 이삭을 선택해서 부르시고 에서를 선택하시지 않고 야곱을 선택하셨다. 그것과 똑같이 하나님은 11명의 형제들이 아닌 요셉을 선택하셨다. 아브라함이 받았던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을 요셉에게 까지 전달 되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였다. 그래서 애굽에 재산과 땅도 많았지만 죽을 때는 자신의 유골을 아버지의 땅인 이스라엘 땅에 묻게 해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부활의 언약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잘 먹고 잘 사는 애굽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한 가나안 땅에 메시아가 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부자관계를 초월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중요한 언약이 전달된 것이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고 많은 기적을 일으켰다. 그 모세 주위에는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중요한 제자들이 있었다. 오늘 읽은 성경 여호수아서 1장이 바로 그 이야기이다. 모세가 죽은 후에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선택해서 부르셨다. 두려워하지 말라 담대하라.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처럼 너와 함께 하리라. 모세와 여호수아는 시종, 비서 관계이다. 다른 말로는 종이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모든 것을 다 지켜봤다. 주인과 종의 관계를 넘어서 하나님의 언약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하나님의 계획을 물려받았다. 바로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다. 상사와 부하의 관계가 넘어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이룬 것이다.

▶ 그리고 아까 룻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의 시어머니가 나오미이다. 시댁이 완전히 패가망신했었다. 시어머니가 양심상 며느리 룻에게 친정으로 가라고 했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상관없이 룻은 시어머니가 믿은 그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그 언약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에 관계없이 끝까지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하나님을 섬겼다. 그 언약을 붙잡고 있는 룻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결국 축복하셨다. 효심이 지극히 큰 며느리가 아니라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다. 사무엘과 다윗은 유명한 선지자와 왕이었다. 하나님의 선지자 사무엘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목동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서 왕으로 임명했다. 그 뒤 이야기를 보시면 다윗의 믿음의 내용이 나온다. 성전을 향한 마음과 하나님의 언약궤를 향한 믿음은 사무엘의 믿음과 영성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즉, 다윗은 제자의 축복을 받은 것이다. 왕이 된 다윗에게는 주위에 사람들이 많았다. 쉽게 왕이 되지는 못했다. 사울 왕의 시기심 때문에 다윗은 도망을 다녀야 했다. 도망을 다니며 외롭고 어려울 때에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나중에 충신이 되었다. 서로 먹고 마시며 즐거운 때를 넘어서 왕으로 부하로 섬기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다.

▶ 특별한 것을 가르치고 특별한 것을 위임하셨다. 그 제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 교회가 세워지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자가 바울이다. 그 바울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결국에는 예수님 이후에 전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 되었다. 이런 바울이 위대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울 주위에 많은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이 바울에게 붙여준 제자들 때문에 바울이 큰 사역을 이룰 수 있었다. 특히 로마서 16장에 나오는 사람들이 바로 바울의 제자이다. 그들이 바울과 함께 중요한 응답들을 받았다.

▶ 구약에서부터 신약까지 큰 대목들, 인물들을 살펴봤다. 몇몇 예외의 인물들이 있다. 단독적으로 불러서 한번 쓰고 사라진 인물들이 몇몇 소수가 있다. 그런 소수를 제외하고 전부다 제자의 관계 안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인물들, 하나님이 본으로 부르신 신앙인들,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인생 성공한 하나님의 사람들, 전부 제자의 도 안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과 도전을 준다. 어떤 질문인가? 나는 지금 과연 정말 제자인가?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다. 또 한가지 도전도 줄 수 있다. 하나님은 사실상 나를 제자로 부르셨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도전을 받을 수 있다. 성경의 사람들, 하나님의 사람들, 신앙인이라고 하면 전부다 이 제자의 도 안에 있었던 인물들이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셔야 한다.

 

2. 그리스도 예수님의 명령이다.

▶ 두번째, 예수님의 명령이다. 마태복음의 마지막 장인 28장 마지막 절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중요하고도 놀라운 약속을 주시면서 제자의 삶을 살라고 하시면서 다른 사람들도 제자로 삼으라고 하셨다. 이것이 주님의 명령이다.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하시는 주님이시다. 그 속에서 제자의 도를 깨닫고 제자의 삶을 사는 성도들을 특별히 지키시겠다는 주님의 의지이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말을 따르지 않더라고 지옥에 가지 않는다. 예수 믿고 그렇게 저렇게 살아도 천국에는 간다. 그러나 성경에 중요한 내용과 하나님의 마음 속에는 제자를 찾고 있다는 말이다. 오늘 제가 왜 무거운 단어인 제자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가. 그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

 

3. 교회를 섬긴 사도의 가르침이다

▶ 세번째이다. 교회를 섬기고 세웠던 사도의 가르침이 바로 제자의 도이다. 디모데후서 2장 2절이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사도바울의 말씀이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도바울의 말을 하나님이 성경으로 만드셨다. 사도바울이 여러 편의 편지, 성경을 썼다. 제일 마지막 글이 디모데후서이다. 거기에 수제자 디모데에게 간절히 메세지를 전하고 있다. 충성된 자들에게 부탁하고 전하라. 충성된 자는 제자들을 말한다. 그러면 그 제자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제자로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 성경의 본이 되는 신앙인들, 주님이 엄하게 말씀하신 명령, 사도의 간절한 가르침, 전부 제자의 도를 말씀하고 있다. 왜 이것을 성경은 담고 있는가? 성경의 핵심 모델이 되어지고 주님의 명령이며 사도의 가르침이 왜 제자를 말하고 있는가? 그것은 내가 제자의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닌가에 따라서 이 땅의 축복과 내세의 상급이 직결되어있기 때문이다. 저와 여러분들이 사실상 하나님을 섬기고 믿으면서 축복받기를 원한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우리에게 축복주시기를 원한다. 저도 그렇게 기도한다. 지금에 있는 상태보다 더 큰 축복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여기 있는 성도님들 절반이 시험들만큼 저는 큰 축복을 기도하고 있다.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저는 인생을 통해서 언약을 잡았다. 그리고 성경 말씀을 통해서 확증이 되었다. 모든 것을 통해서 확증이 나왔다. 하나님은 나를 축복할 수 밖에 없겠구나 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제가 매주 헌금 봉투에 앞으로 받을 축복들을 기록을 한다. 되어질 일이기 때문이다. 저를 포함해서 하나님의 성도는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기로 되어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다. 여러분이 찾아내셔야 한다. 그래야 큰 복음을 전하고 후대에게 자랑스러운 유산을 남길 수 있다. 그 어마어마한 축복과 하늘의 상급이 제자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 

▶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는 그 분의 피조물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알려주셨는가? 처음에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즉,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로 설명이 되어있다. 그리고 나서 세월이 흘러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표현하고 우리를 자녀라고 표현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이다. 즉, 절대로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말한다. 우리가 비록 실수하고 실패하고 철이 없어도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놓치지 않으신다는 말이다. 하나님 아버지가 되시는 그 하나님께서 하늘의 신령한 복을 자녀인 우리에게 주시려고 작정하셨다는 이야기다. 모든 신령한 축복을 상속받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나서 성경에는 바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분을 주님으로 우리를 제자의 관계로 맺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 즉,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며 정복하고 다스리는 축복을 주셨는데 계속  놓치고 깨닫지 못하니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발전시키신 것이다. 구약에는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장자라고 표현되어 있고, 신약시대 때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표현되어 있다. ‘영접하는 자, 곧 그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생육, 번성, 충만, 정복과 통치의 축복을 못 찾아내니까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을 상속할 아들에게 주시려고 아들로 부르신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것을 못 찾고 못 누리니까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의 단어를 꺼내셨다. 그것이 제자이다.

▶ 하늘의 모든 축복이 예비되어 있다. 축복을 받고 누릴 그릇을 준비한 자들이 사실상 많지 않다는 말이다. 제자는 스승을 전적으로 따라가는 자들을 말한다. 그 하나님을 그 주님을 일심, 전심, 지속으로 따라가는 자들이 많지 않다. 전적으로 따라가게 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 축복들을 찾아낼 텐데 그것이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제자라고 명령하고 관계를 재설정 한 것이다. 창조주와 피조물이 맞다. 아버지와 아들이 맞다. 더 나아가 전적으로 나를 따라오라고 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 준비된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주님과 제자와 관계를 맺은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5장 8절이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오늘부터 하나님은 여러분을 향하여 말씀하신다. 여러분들은 참된 성도요, 진정한 서밋의 축복이 준비되어 있다. 그것을 찾고 누리기 위해서 제자의 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제자가 안돼도 천국에는 간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러분을 향하신 중요한 이유와 계획이 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단 한번 인생을 제자로 살기를 원하신다. 꼭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이 교회의 제자가 안되어도 괜찮으니까 어디에서든지 서밋의 축복을 받게 끔 되어있으니까 내가 제자의 삶을 살리라 기도하시기 바란다.

▶ 그리스도의 제자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제자가 되게 끔 되어있다. 교회의 제자는 교회의 강단의 제자가 되게 끔 되어있다. 이것은 치유메세지다. 그리스도의 메세지는 반드시 교회 메세지가 되게 끔 되어있다. 교회의 제자는 반드시 강단의 제자가 되게 되어있다. 사단 마귀가 우리로 하여금 이 흐름을 못 타게 하려고 계속 방해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다.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 때문에 있는 줄 모르고 그리스도 한 분이면 다 끝나는데 이것을 모르게 하는 것이다. 나는 예수를 믿기 때문에 성탄절과 부활절에 교회를 온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모르는 것이다. 즉, 영적무지, 복음에 대한 몰이해, 그 속에 빠뜨리는 것이다. 거의 사단의 속임수에 걸려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가치와 능력을 모르는데 어떻게 그리스도를 향해서 인생을 걸겠는가.

▶ 두번째, 사단은 교회의 제자가 못 되게 만든다. 교회에 대한 상처를 받게 만든다. 성도들 대부분이 여기에 걸려 넘어져 있다. 교회는 지상낙원이 아니다. 영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상한 교회들이 많다. 이상한 교인 만나서 돈 빌려주고 못 받으면 상처받는다. 그러면 교회에 대한 쓴 뿌리가 박히게 된다. 사단은 사람들이 교회에 깊게 관여 못하게 하고, 교회의 제자가 못 되도록 하고, 준비된 서밋의 축복을 못 받게 한다.

▶ 마지막으로는 사단은 교회 강단의 제자가 못 되게 하는 것이다. 강단 말씀에서 은혜를 못 받게 하고 말씀의 흐름을 못 타게 만든다. 담임목사와의 관계를 흐트러지게 하며 선입견이 들어가게 해서 오해에 걸리고 신뢰를 잃게 만든다. 그러면 백 년을 설교 준비해도 은혜를 전혀 받지 못한다. 알 것 같은데 모르고 축복 받을 것 같은데 못 받는다. 그리고 결국에는 오랜 세월 후에 예수 믿어도 소용없고 교회 다녀봐야 소용 없다고 고백한다. 자신한테 체험이나 증거가 없으니 맞는 말이다. 자신이 어디서 어긋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사단의 속임수이다. 여러분들은 영안이 열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성령인도 받기를 축원한다. 치유 받기를 축원한다.

 

♠ 결론

▶ 메세지를 요약하겠다. 성경의 인물들, 믿음의 선진들 모두가 제자의 도 안에 있었다. 그것이 성공의 길이다. 또 한가지는 제자의 도는 주님의 명령이요, 교회 사도들의 가르침이다. 실제적인 축복과 상급에 직결되는 것이다. 또 한가지, 부자지간의 관계 뿐만 아니라 주님과 제자의 관계를 깨달아야 한다. 전심으로 따라가야 한다. 이 제자의 도 안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사단마귀는 영적인 무지, 상처, 선입견, 불신에 빠지게 만든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르신 것을 확신하고 믿는다. 여러분이 생각하거나 상상을 넘어선 축복을 하나님이 준비해 놓고 계신다. 제자의 언약을 붙잡고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 성경말씀 하나를 전달하며 메세지를 맺겠다. 구약성경 잠언 27장 17-18절이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쇠가 쇠와 부딪치게 되면 날카로워지면서 예리해지고 빛을 반사하는 광채가 난다. 마모가 되면서 밝게 빛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것처럼 사람과 사람이 부딪칠 때 사람의 얼굴에서 광채가 난다는 뜻이다. 무슨 말인가? 사람이 사람을 돕고 섬기며 부딪쳐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사회에서는 개인주의가 강하다. 가족이외에는 거의 상대를 안한다.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개인 전도나 이웃 전도는 절대 안 한다.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주자고 나온다. 전도를 하지 않으니까 제자의 관계는 더더욱 맺지 못한다. 교회에서 부담을 주거나 미션을 주면 교회를 다 떠난다. 배후에 숨겨진 하나님의 숨은 계획들은 전혀 못보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피하지 말기를 바란다. 내가 그 사람의 제자가 되던지 그 사람을 제자로 삼던지 인간관계에서 승리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다음 절이 나온다.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에게 시중드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맺게 되면 영화를 얻고 존귀하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여러분들께서 제자의 도 가운데 거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약속하셨다. 여러분들의 얼굴을 빛나게 할 것이며 여러분의 생을 존귀하게 영화롭게 할 것이다. 

▶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버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제자로 불러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신령한 축복을 주시기 위함 임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제자가 되기를 원치 않는 마음이 많습니다. 부담이 싫습니다. 관여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사람과의 관계, 불편한 관계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귀찮은 마음이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제자의 도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할 마음과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시작합니다. 제자의 도,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힘을 주시옵소서. 나의 마음을 바꾸어 주시옵소서. 연약한 믿음을 강하게 하옵소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영안을 열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제자의 도 속에 들어가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것들을 찾아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