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다락방의 사람들 (20) - 문제를 기회로 만든 사람들

July 21st, 2019

ICA Sunday Pulpit Message



♠ 서론

▶ 오늘 제목은 문제를 기회로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다. 이런 말이 있다. 바람이 불면 어떤 사람은 담을 쌓고 어떤 이는 풍차를 만든다 라는 말이 있다. 똑같은 문제가 찾아왔을 때 사람에 따라 어떻게 반응하는지의 차이를 말한다. 문제가 왔을 때 어떻게 움직이고 반응하냐 에 따라서 그 사람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문제가 없는 곳은 딱 하나 무덤 밖에 없다. 사람 사는 세상에 문제는 있기 마련이다. 특히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이 모인 곳이 교회이다. 그 교회도 오늘 본문에 보니까 문제가 발생했다. 사도행전 6장 본문 1절에 보니 이렇게 되어있다. “제자의 수가 많아졌더라” 교회 멤버 수가 증가하고 부흥됐다는 말이다. 지난번에 살펴본 것처럼 외부적인 핍박의 문제가 일어났다. 다른 차원의 배경과 세계를 누리던 그들은 흔들리지 아니하고 당당히 신앙고백을 했다. 그 신앙고백을 하나님이 받으셨기에 더욱 역사가 일어났다. 믿음으로 가득 찬 신앙고백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낸 초대교회였다. 그리고 외부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이런 축복도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교회의 부흥을 응답으로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내부적인 시험의 문제가 일어난 것이다. 모든 재산을 모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었던 당시에 이런 문제가 일어난 것이다. 구제의 사역에 불공평함이 있다라는 불평의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이때 그들이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보는 것이다.

 

1. 지상의 모든 교회는 결코 천상의 낙원이 아니다.

▶ 첫번째로 여러분들이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전세계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는 단 한군데도 결코 천상의 낙원이 아니다. 그래서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는 일명 전투, 싸우는 교회다 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영적 싸움을 하는 교회라는 말이다. 그리스도 예수 때문에 구원의 복을 받았다. 그런데 그 그리스도의 비밀, 내용을 100% 누리지 못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다. 그 연약함 속에서 벌어지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살아서 활동하는 사단의 틈을 주게 되는 것이다. 쉼 없이 끝없이 활동하는 사단 때문에 이런 문제, 저런 문제 일어나고는 한다. 어떻게 보면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한 부분들을 모르게 되면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교회가 왜 이런가? 하나님 말씀 전하는 목사가 왜 저러는가? 저 장로, 집사가 왜 그러는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확히 보시게 되면 기독교 뿐만 아니라 어떠한 단체, 조직, 종교, 모임 속에 문제가 없는 곳은 없다. 뉴스 매체를 통해서 목회자가 문제를 일으키고 이상한 짓 해서 떠들썩한 것을 볼 수 있다. 카톨릭도 마찬가지이다. 수녀원에 보이지 않는 낙태사건들도 어마어마하게 많다. 오래된 성당 주위를 재개발 때문에 땅을 파면 어린아이 유골들이 많이 발견된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문제는 어느 곳에든지 다 있다는 것이다. 완전히 거룩히 살기로 작정하고 산 속에 들어간 중들을 보라. 총무원장을 뽑는 현장을 보라. 국회의원 선거 비길 바가 못된다. 중상모략에 뇌물이 어마어마하다. 중들이 모여 화투 치고 담배피고 고기 구워먹는 것이 다 나온다. 누가 이렇고 저렇고 하는 것은 실상을 제대로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것이 없고 죄인이다. 안 그러기를 바랄 뿐이다. 안 그러기를 바라는 기대치에 못 미쳐서 내 스스로 무너질 필요는 없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고 이루어나갈 수 있는 힘을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벌레 만도, 먼지 만도 못한 사람들이다. 한 순간에 은혜가 없으면 다 무너진다는 이야기다. 단지 우리는 주님의 선하심과 또 하나님의 그 능력을 바라보면서 한걸음 나아가고 도전하는 것 뿐이다.

▶ 어느 곳이나 문제는 있는데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잘나가는 마가다락방, 초대교회에 이런 문제가 일어났는데 왜 이러한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기록을 해서 2000년이 지나도록 보고 알게 끔 하셨는가? 원니스가 되었던 초대교회가 헬라파, 유대파로 나뉘어졌다. 헬라파는 그리스 말을 할 줄 아는 유대교 사람을 말한다. 당시는 헬라시대였다. 모든 문화가 헬라니즘 시대로 번성을 이루었던 시기였다. 당시의 헬라어를 했던 자는 주류이기도 했던 것이다. 즉, 헬라 말을 할 줄 아는 교회 멤버들이 왕따를 당하였다. 헬라 말을 할 줄 아는 교회 멤버들의 과부들이 있었다. 한국성경에는 구제로 되어있지만 원래의 단어는 배급이다. 남편이 없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과부들의 삶을 돌아 봐주기 위해서 양식을 배급했었다. 그런데 헬라말을 할 줄 아는 교회멤버들이 자꾸 배급에서 배제되었다.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교회 안에 불공평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헬라말을 할 줄 아는 교회멤버들이 컴플레인을 한 것이다. 우리가 많이 참았는데 이것은 아닌 것 같다면서 불평불만을 쏟아낸 것이다. 영적분위기가 잡혀야 말씀이 전달되고 성령이 역사하는데 서로 갈라져서 웅성웅성했다. 여기에 사도들이 성령인도를 잘 받은 것이다. 이런 사건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이런 부분들을 우리가 잘 해결하기 위해서 메시지 포인트에 게시해 놓은 것처럼 어떻게 우리가 주님의 선하심을 바라보면서 선의의 도전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인가? 주신 것들을 잘 누리시면 된다. 성도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확정된 신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주어진 권세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숨겨두시고 예비하신 축복이 반드시 있다. 그 확정된 하나님 아들의 신분을 누리는 것이다. 잊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리고 주어진 부여된 권세를 누리는 것이다. 사용하는 것이다. 천지,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고 계신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그 권세를 가지고 불신앙을 일으키는 사단을 향해 정조준을 하는 것이다.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문제를 일으키는 영적 세력을 향해서 권세를 사용하는 것이다.

▶ 예비된 축복을 어떻게 찾고 어떻게 도전하는가? 그리스도께서 주신 언약, 세계복음화이다. 현장의 영혼을 살리는 전도의 여정 속에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있다. 어제 우리 집중훈련 마지막에 간증을 들었다. 렘넌트 세우고 전도의 여정 속에 있으니까 아팠던 허리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했다. 한국의 내로라 하는 대학병원을 찾아가도 낫질 않았다가 렘넌트 위해 헌신하면서 나았다는 것을 들었다. 언약의 여정을 따라 가게 되면 그 안에 건강, 경제, 자녀, 모든 것이 다 나온다. 주신 신분, 권세, 축복을 찾아 누리게 되면 모든 것에 승리하게 된다. 그러한 과정 속에 하나님이 우리의 연약한 부분을 드러내신다. 즉, 우리의 옛 체질이 나도 모르게 노출되는 것이다. 그 때 문제가 발생한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뜻이 과연 무엇인지 치유 받고 회복되는 길로 인도받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치유의 길을 가게 되면 반드시 회복이 되어서 서밋의 길에 서게 된다. 그래서 오늘 본문 6장 1-6절 뒤의 7절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가 복종하니라.” 서기관, 제사장들이 초대교회의 라이벌이다. 핍박하는 주체들이었다. 그들 중에 적군들이 투항한 것이다. 그들이 복음 앞에 굴복한 것이다. 서밋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갈릴리 깡촌 어부들이 제사장들을 굴복시킨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서밋의 자리로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다. 연약한 곳에 문제가 많지만 이런 부분들을 우리가 잘 인도받게 되어지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문제가 많은 지상교회이지만 그 지상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은 천상의 숨은 뜻을 이루신다.

 

2. 그러나 하나님은 그곳을 통해 천상의 뜻을 이룬다.

▶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케 된다고 되어있다.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지고 제사장의 무리가 복종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축복들 과정들을 보시게 되면 구제 사역을 맡은 자들이 누구인지 찾아내서 시시비비를 가려라 하지 않았다. 왜 이렇게 했는지 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없앤 것이 아니다. 도리어 구제사역을 더 잘할 수 있는 일꾼을 찾아 세운 것이다. 그 세워진 7집사 이름이 기록되어있다. 7사람 이름 전체를 살펴보니 전부 헬라파 출신이었다. 구제를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헬라파 사람들이 자꾸 배제되었다. 유대파들은 많이 배급을 해주고 헬라파를 배급을 안 했다는 것은 원래 배급 담당이 유대파라는 말이었다. 아무래도 손이 안으로 굽으니 자신의 사람들을 더 챙겨준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성도님들이 영어권 성도님들이 숫자가 되지 않아 왕따 시키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마가다락방에도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즉, 기득권을 내려놓고 헬라파 7명으로 채워놓은 것이다. 채울 때 안수 축복기도를 했다. 그 다음에 믿음이 좋고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을 세웠다. 구제를 집사들에게 맡기고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게 된 것이다. 복음을 가지고 있는 자로서 복음의 방법과 복음의 자세와 복음의 내용으로 일을 대처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했더니 말씀이 왕성케 되어지고 제자의 수가 더 많아지고 심지어는 라이벌인 제사장 무리까지 굴복하게 되었다. 문제를 일으켜서 교회 내부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한 것은 분명 사단의 활동이 맞다. 그러나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신 하나님 앞에서 뒤집어진 것이다. 말씀이 왕성하게 됐다는 말은 전 성도가 사도의 가르침 속에 들어갔다는 말이다. 우리가 이렇게 되기 바란다. 주일 강단말씀을 가지고 전 성도가 완전히 깊은 은혜 속에 들어가기 바란다. 주일 말씀이 서로 소통이 되어져야 한다. 이렇게 되니 부흥도 되고 그리스도의 복음이 강력하게 능력을 발하게 된 것이다. 사단이 비록 방해를 했지만 하나님은 더 큰 응답으로 갚아주신다. 이것이 하늘에 속해진 비밀이다. 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미 하늘에서 작정하셨을 것이다. 더 큰 축복을 받은 것이다. 문제를 더 큰 축복, 더 큰 응답의 기회로 삼으시기 바란다.

▶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갈 부분이 있다. 이 7집사 중 2-3분 중에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즉 7집사에게 구제 일을 전문적으로 맡겼는데 이들에게 더 큰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특히 행 6:7을 보면 스데반 집사의 역사가 일어났다. 8장에는 빌립집사가 나왔다. 6:8에는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에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게 행하니” 유대교인들이 화들짝 놀랄만한 대역사가 집사님을 통해 일어난 것이다. 스데반 집사님의 엄청난 메시지가 사도행전 7장의 전 장을 통해서 나와있다. 이 스데반 집사님이 설교를 했는데 사단이 발악할 만한 메시지였던 것이다. 발악하는 사단을 통해서 유대교인들이 돌을 던지고 스데반 집사님은 위대한 순교를 하게 된 것이다. 유대교인들이 놀라고 사단이 발악할 만한 메시지였단 증거로 스데반이 순교할 때 예수님이 벌떡 일어나 그 영혼을 맞이했다. 순교하는 그 현장에 청년 사울이 있었다. 그것을 보게 된 것이다. 어떻게 돌을 맞아 죽으면서 천사의 얼굴을 하고 순교를 할 수 있는지, 크리스천을 잡아 박해하던 사울의 입장에서는 내적 충격을 입은 것이다. 고민했을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엇인가 갈등했을 것이다. 그리고 9장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서 회심을 하는 실마리가 된 것이다. 구제의 문제로 인한 이 사건이 제자들을 안수하고 축복기도 하더니, 안수하던 것 때문에 대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대역사의 시기, 발악하던 사단에 의해서 순교를 당하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이 종지부를 찍는 것 같았다. 더이상 설교나 구제를 할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 청년 사울을 두셔서 나중에 대전도자로 바꾸는 실마리를 남겨 놓으셨다. 바울로 이름 지어진 그 청년 사울이 복음을 전한 것 때문에 우리까지 복음을 받은 줄 믿는다. 이게 하나님의 숨겨진 뜻이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났던 컴플레인이 이 일까지 일어날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천상의 바둑판에 숨겨진 하나님의 수였다. 이런 숨겨진 하나님의 수가 하나씩 드러나면서 그 뜻이 성취된 것이다. 부족한 초대교회였지만 천상의 뜻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 여러분들이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문제들을 당한다. 그게 전부 하나님의 크신 뜻과 큰 축복을 이루기 위한 중요한 커넥션들이다. 이 눈을 뜨셔야 한다. 이런 것을 누릴 수 있는 체질을 만드셔야 한다. 그래야 여러분들이 응답 받고 증거를 얻어서 후대들에게 말해줄 수 있다. 8장의 빌립집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마리아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 성 전체가 뒤집어질 만큼 역사가 일어났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여기는 이방사람들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것이 사도행전 1:8절 예수님이 주신 언약이 성취되는 놀라운 현장이었던 것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마리아에 이 복음이 전파된 것이다. 놀라운 역사였다. 시험이 든 초대교회에서는 그 일을 제대로 수행할 집사 몇 사람을 안수했던 것이다. 안수가 무슨 뜻인가? 사도의 신령한 축복을 옮겨지게 한 것이다. 사도들에게 나타났던 기적과 표적이 이 집사들을 통해서 나타난 것이다. 이것이 바울을 회심 시켰고 바울은 결국 안디옥 교회의 주 멤버가 되었다. 빌립집사를 통해서는 사마리아 현장에 복음이 증거 되므로 주의 말씀이 이루어졌고 사마리아 성 이후에는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게 되어 복음을 증거하게 된다. 아프리카에 복음을 전하게 되는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안수를 한번 했는데, 그 문제 때문에 안수를 한번 했는데 이것이 어마어마한 파장으로 끊임없는 축복의 문들을 열게 한 것이다. 시험, 갈등의 문제가 대역사로 바뀌는 기회가 된 것이다. 이게 하나님의 방법이다. 이러한 비밀들을 여러분들이 붙잡고 계셔야 한다.

▶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와 사건이 성경에 들어있다. 제가 늘 반복하면서 단골손님처럼 말하는 것이 있다. 홍해 앞에 위기를 맞은 이스라엘 백성들, 그 위기가 어떻게 바뀌었는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기회가 된 것이다. 애굽의 전차부대가 완전히 수장되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는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건너게 된 것이다. 문제를 넘어서 엄청난 위기가 기회로 바뀌게 된 것이다. 또 다윗 왕 말년에 쿠데타 사건 기억하실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라. 자신의 아들에게 쿠데타를 당했다면 이것이 얼마나 인간적으로 비참한가. 김태성 목사가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데 아들은 사탄교의 사제가 되는 것이랑 같은 것이다.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께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말년에 이것이 얼마나 비참한 고생인가. 자신 아버지의 목에 칼을 겨누는 아들 때문에 신발도 못 신고 도망가는 쪽팔린 상황에서 시므이한테 욕과 저주를 또 받았다. 이쯤 되면 다 끝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큰 기회가 되었는가? 망해가는 다윗을 보면서 많은 신하들이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었다. 다윗의 편에 섰다 가는 같이 망할 것 같아서 사람들 대부분이 다윗을 배신하였다. 다 압살롬에게 갔다. 그런데 무너져서 망해가는 다윗을 보면서 끝까지 배신하지 않았던 신하들이 있었다. 결국 다윗은 복귀가 되었고 정말 웃기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다. 역전이 될 줄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다윗과 함께 고생했던 그 사람들은 1등공신이 되었다. 그 충성된 심복들을 중심으로 솔로몬에게 그대로 넘겨주었다. 그때 배신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겠는가. 겉으로는 다윗을 섬기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전부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그들은 스스로 자진신고를 한 셈이 되었다. 얼마나 완벽한 기회였는가. 참 놀라운 것이다. 하나님에게는 지나가는 법이 없다. 하나님에게는 손해가 없다. 하나님 앞에는 헛것이 없다. 정말로 믿음으로 보고 믿음으로 도전하게 되면 모든 것이 뒤집어지게 되어있다. 이게 언약 백성이 누리는 축복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비밀이다. 그리스도는 사망에서 부활로 바뀌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저주가 축복으로 재창조 된다. 세상이 말하는 전화위복, 대역전은 아무것도 아니다. 어려운 상황, 위기 가운데 그리스도의 이름만 기억하더라도 하나님은 완전히 바꾸신다. ‘이 문제를 허락하신 주님만을 내가 사랑합니다. 나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선하심을 인정합니다. 죽은 자를 살리실 뿐만 아니라 없는 자를 있게끔 하시는 당신의 능력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그런 응답과 증거를 가지고 아이들한테 포럼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부족함을 채우시고 우리를 능하게 하사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시는 증거를 전달하는 것이다. 

 

3. 결국 세가지 누림을 통해 이루어진다.

▶ 결론을 맺겠다. 그러면 우리가 적용을 하고 실제화를 시켜야 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서 축복받은 사람들에 대해서 들으면 나도 그렇게 될 것 같이 기분이 설레고 좋다. 나도 하면 될 수 있겠구나 라는 확신이 들어온다. 그러나 막상 말씀을 듣고 실제 삶에 들어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결론을 잘 들으셔야 한다. 스데반과 빌립집사 두 사람이다. 스데반은 어마어마한 메시지를 통해서 유대교 사람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벌떡 일어나시며 환영할 만한 메시지를 스데반이 전했던 것이다. 주님의 심령을 시원케 할 만한 메시지를 스데반이 전했던 것이다. 사도행전 7장 1절에서부터 이 스데반의 설교 내용이 나온다. 성경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복음의 메시지를 전한다. 무슨 뜻인가? 하나님의 말씀, 성경의 메시지가 정리되어 있었던 것이다. 여러분들이 말씀을 각인시켜야 하는데 얼만큼 각인 시켜야 하는가? 여러분들이 말씀이 정리될 만큼 각인이 되면 이런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포럼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가 3오늘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도전이 있기를 축원한다. 그리고 스데반은 돌을 맞더라도 주님을 바라 볼만큼, 천사의 얼굴이 될 만큼 평소에 깊은 기도의 비밀을 누렸었다. 즉, 말씀에 각인된 스데반은 기도에 뿌리를 내렸던 스데반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여러분이 영적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말씀이 각인되어야 한다. 우리 다락방 초창기 때는 훈련 메시지가 나오면 테이프가 늘어질 정도로 들었다. 카세트 테이프는 20-25회 쉬지 않고 들으면 길이가 늘어나고 마모가 된다. 그리고 40회정도 들으면 나중에 끊어진다. 그 정도로 집중해서 각인을 시켰던 것이다. 빌립집사는 어떠했는가? 그리스도를 전심으로 증거했다고 되어있다. 사마리아 성에서 부흥이 일어났는데 성령의 음성을 따라 아무도 없는 광야로 가라니까 그대로 광야로 갔다. 거기서 딱 한사람,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그리스도를 전한 것이다. 무엇을 뜻하는가?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 체질이 되었던 것이다. 복음을 증거하고 설교를 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는 그것에 익숙한 사람은 혼자 가서 하는 것을 잘 안하게 된다. 많은 사람 앞에서 메시지를 전하고 은혜를 끼치다가 막상 혼자 하는 것은 잘 안하게 된다. 참된 전도자의 삶이 체질이 되었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사마리아 성에 병마, 악귀들이 쫓아낼 만큼 기도의 영권을 빌립집사가 가지고 있었단 이야기다. 스데반, 빌립을 합치게 되면 결국 말씀, 기도, 전도에 정통했던 중직자였다. 말씀, 기도, 전도를 제대로 누린 자들 이었다.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을 선택한 것이다. 초대교회 내부의 시험을 통해서 7집사를 세우게 했던 것이다. 그러더니 사도의 안수 축복을 받게 하신 것이다. 이것을 통해서 일파만파 숨겨진 뜻들이 이루어진 것이다. 비록 초대교회 성도들이 연약 했고 여러가지 문제가 많았지만 그 부분을 기회로 삼아 하나님은 사마리아 성을 터뜨리고 아프리카 문을 여신 것이다. 청년 사울을 뒤집어서 대전도자 바울로 만든 계기가 된 것이다. 오늘 이후부터 고백하시기 바란다. 어떠한 문제가 생겨도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이다.

 

♠ 기도

▶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마음의 허리를 굽힙니다. 하나님은 숨겨진 하늘의 뜻을 위하여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 많은 연약함이 있더라도 하늘의 큰 뜻을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한 주님을 이 시간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