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다락방의 사람들 (21) - 결국 드러낼 분을 모신 사람들

August 11th, 2019

ICA Sunday Pulpit Message



♠ 서론

▶ 이런 속담이 있다. ‘사랑과 기침은 숨길 수 없다.’ 감추려 아무리 애를 써도 드러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막고 싶어도 자꾸 나온다는 이야기다. 사랑하는 사람들 역시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얼굴에 나타나지 않는가? 한국에는 홍석천이라는 방송인이 한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을 한 사람이다. 말씀드리는 것은 제가 홍석천이 맞다 틀리다, 동성애를 받아드려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천국에 가느냐 지옥에 가느냐 이 이슈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부분들은 다른 시간에 깊게 나누고자 한다. 이 홍석천을 이야기 하는 이유는 그가 앞으로 커밍아웃한 이후에 받을 수모와 고통을 알고 있으면서도 커밍아웃을 한 것이다. 자신의 성향을 감출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괴로움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커밍아웃을 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 말씀은 내 안에 감출 수 없는 그것, 견딜 수 없는 그것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이천 년 전 초대교회의 사람들, 마가의 다락방 사람들에 대해서 보는 가운데 오늘은 그들의 21번째특징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 어렴풋이 우리는 알고 있다. 초대교회 사람들이 침 대단했던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정말로 사자의 밥이 되어지고, 기름 가마에 던져지고, 자기 보는 눈앞에서 자녀들이 찢겨 죽는 그런 어마어마한 핍박의 역사를 감내한 사람들로 다 알고 있다.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은  21번째로 마가의 다락방 사람들이 도대체 어떠한 사람들이었는지 보겠다. 제목에 있는 것처럼 결국 언젠가는 토해내듯이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그 어떤 분을 모시고 있던 사람들이다 라는 것이다. 기침을 감출 수 없듯이 그랬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싱글싱글 웃게 되는 그 사랑하는 마음을 감출 수 없듯이 그들도 그 무언가를 감출 수 없을 만큼 드러내고자 하는 그분을 모시고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그분은 과연 누구였는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1. 우리가 그리스도를 모실 때 나타나는 축복

▶ 본론 첫번째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을 때 나타나는 축복, 드러나는 증거가 있다. 사실 한번도 얼굴을 뵙지 못하고 한번도 악수해 본 경험이 없는 그분을 지금 우리가 모시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일단은 그분을 모시고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야 한다. 예수를 믿고 있다는 크리스천, 신자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 믿고 천당에 간다는 뜻도 되겠지만 다른 더 중요하고 더 큰 이유가 있다. 알다시피 사람은 한번 태어나서 이 땅에서 살다가 한번 죽고 가는 인생이다. 너무나 중요한 이 한번의 생애에 가장 중요한 이유를 발견한 자가 크리스천이다. 인생의 이유가 뭔가? 이 땅에 태어난 이유가 무엇인가? 행복일 수 있고 우정과 사랑일 수도 있겠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 출세하는 것이 인생의 이유일 수 있다. 신자라고 하는 것은 그것을 넘어 다른 이유를 발견한 자를 말한다.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를 깨닫고 발견하는 유일한 이유가 인생에 있다. 왜냐하면 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구원과 천국, 예수 안에 들어있다. 우정과 사랑, 그리고 행복이 그리스도 안에 담겨있다. 돈과 인기, 명예, 권세가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인생의 이유를 깨닫고 발견한 자를 신자, 크리스천이라고 한다. 이것을 정말 깨닫고 체험한 사람은 교회를 다닌다고 다 신자가 아니구나 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 죽을 때 쯤에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공부 잘 못해도 괜찮다. 가난해도 괜찮다. 꼭 예수 그리스도 만나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인생의 이유를 발견한 사람을 신자라고 한다. 요한복음 1:3절에 말씀하고 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이중 반복을 하면서 강조하고 있다. 조금 이상한 말이긴 하지만 여러분의 눈곱, 흰머리조차도 그리스도에 의하여 시작된 것이다. 잘 믿기 힘든 말이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더 엄청난 것은 에베소서 첫번1:10절에 말씀하고 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한마디로 모든 것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끝난다는 뜻이다. 이 어마어마한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모시는 것을 신자라고 한다. 그 그리스도를 모시는 순간, 인생의 저주가 박살 나는 것이다. 운명의 세력이 무너지는 것이다. 엄청난 것이다.

▶ 이런 축복이 어떻게 가능한가? 바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주의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들어올 뿐만 아니라 우리를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베풀어 주신다. 이것을 성령의 내주, 인도, 역사 또는 성령의 내주, 인도, 충만이라고 표현한다. 내주, 들어와서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떠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영광을 결코 잃어버릴 수 없다는 말이다. 들어오셔서 나의 몸을 그분의 집, 성전 삼으신 줄로 믿는다. 영원히 동행하시겠다는 말이다. 여러분이 힘을 잃고 노쇠 해졌을 때도 하나님은 함께 하신다. 이것을 깨달았던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가 함께 계심을 고백한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바울이 물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주의 성령으로 여러분과 함께 계신다. 중요한 축복을 주시려고 하시는 것이다. 그분은 안에서 절이나 받는 우상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우리와 함께 생각하고 말하시면서 인도하시기 원하신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인도이다. 그분이 주인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인도하시겠다는 말이다. 만약 우리가 시험에 들면 이길 힘을 주신다. 위기에 닥치면 피할 길도 내신다.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지혜, 지식, 총명, 명철로 함께 하실 줄로 믿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의 비밀이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것을 하나씩 깨닫게 된다. 갈수록 정시 기도, 정시 예배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 체험케 된다. 우리의 가장 선하신 것으로 인도하신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힘을 공급하시는데 충만함을 주신다. 성령충만이 무엇인가? 방언이 터지고 통역을 하는 것도 맞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모습은 피조물 인간이지만 하나님의 말을 하는 것이다. 사람의 형상인데 하나님의 능력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피조물인지 전능자인지 구별이 안될 만큼 하나가 될 때 그것을 충만하다고 한다. 하나님의 것이 내 것이 되는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를 모신다는 것이 이토록 어마어마한 것임을 알게 된다. 이천 년 전에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내 인생 구주로 영접하고 모시게 될 때 이런 어마어마한 영적인 변화가 일시적으로 순간적으로 벌어진다. 인간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손으로 안 잡히는 내용이다. 그래서 영적인 축복이라고 한다. 대신에 영원한 축복이다. 이 영원한 축복과 배경을 가지고 일시적인 이 땅을 정복해 나가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기본 메시지이고 복음의 내용을 나눈 것이다. 확인하는 것이다. 아주 기초적인 메시지이고 반드시 알고 누려야 될 내용이다. 만약 담임목사님께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세요 하면 이런 내용들을 평소에 알고 누리고 체험하고 있다가 전달하는 것이다.

 

2. 스데반 집사는 결국 드러낼 만큼 그리스도를 모셨다.

▶ 두번째이다. 성경에 있는 본문을 조금 깊게 보겠다. 성경의 내용, 실제 일어난 사건을 통해서 내가 간접 체험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보고 기도제목을 찾는 것이다. 오늘 본문이 무엇인가? 사도행전 7장 마지막 부분을 보시면 스데반 집사가 위대한 설교를 하고나서 돌에 맞아 돌아가시는 장면이 나온다. 이 부분에서 스데반 집사 안에는 감출 수 없는 그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계시는 이 부분을 찾아내는 것이다. 얼핏 우리는 이렇게 알고 있다. 스데반 집사는 순교하면서도 환하게 천사처럼 웃으면서 돌아가셨다고 알고 있다. 우리는 스데반 집사가 참 믿음이 좋으시구나 받아 드려지는데 세상사람들은 못 받아드리는 내용이다. 종교에 미치면 저렇게 죽는구나 라고 받아드린다. 이해하지 않는 벽을 치는 사람들에게는 전달이 안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사역자, 예비사역자분들은 이 부분까지 아셔야 한다. 성경을 조금 풀어야 한다. 초신자나 세상사람들은 이렇게 예수를 믿으면 돌에 맞아 죽는구나 겁을 먹는다. 이렇게 까지 할 바에는 대충 살다가 가는게 낫겠다 라고 생각한다. 그 이면에 어떠한 비밀과 내용이 담겨 있는지를 보고 듣고 깨달아서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 스데반 집사님의 이름이 기록된 부분인 사도행전 6장을 지난주에 봤다. 교회가 어떠했을 때 이분의 이름이 기록되었나? 교회 내부에 계신 과부들에게 주는 배급이 불공평하다는 문제가 이슈가 되었다. 그리스파와 유대파와 나뉘어졌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참고 참았는데 이건 아닌 것 같다.’ 심각한 문제가 일어난 것이다. 생각해보시라. 교회를 세우신 어른들과 청년들과 갈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오스틴 그룹하고 킬린 그룹하고 갈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영어권과 한국어권이 갈렸다면 어떻겠는가? 교회에 올 맛이 안날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내게 유익이 되는 편에 개입을 한다. 아니면 이런 꼴, 저런 꼴 보기 싫어서 대부분 교회에서 나간다. 그런데 스데반 집사님은 어떻게 했는가? 그 와중에도 성령과 지혜의 충만함을 잃지 않았다. 남들로부터 칭찬 받는 평판을 계속 유지하면서 그 배급 문제, 과부 구제 문제를 해결할 7명의 Task Force 팀에 선발될 정도가 되었다. 교회를 대표하여 곤란한 문제를 해결하고 봉사 할 만한 수석 집사로 선발된 것이다. 곤란한 문제가 있으면 보통은 도망가거나 성질 안 좋은 사람은 싸우려고 한다. 그러나 스데반 집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것이 스데반 집사의 인격, 윤리, 아니면 성품인가? 아니다. 그분 안에 있는 그리스도가 드러난 것이다. 자기는 죽고 그리스도가 살고 있다는 것을 스데반 집사는 알고 있었다. 내가 몸 담고 있고 섬기고 소속되어있는 교회에 있어서 안될 문제가 자신의 눈에 보인 것이다. 어떻게 하겠는가? 예수님께서 유대인파에 속해라, 헬라파에 속해라, 아니면 교회에서 나가라 이렇게 말하셨는가? 그는 그 문제 앞에서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부분을 찾았을 것이다. 주님께서 이 자리에 계시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라고 질문하고 구했을 것이다. 성령의 인도를 구한 것이다. 당연히 그리스도가 하신 대로 인도를 받은 것이다. 아무도 차별하지 않는 그리스도가 나서신 것이다. 로마서 3장 22절에 말씀하고 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스데반 안에서 그리스도의 성품, 인격, 사역이 드러난 것이다.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가. 교회에 내부 문제가 있었을 때 그리스도가 드러난 것이다.

▶ 그리고 나서 사도행전 6:8절에 보면 수석 집사로 추대되고 나서 과부들을 섬기는 것 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했다. 8절에 보시게 되면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이렇게 기록되어있다. 현장에 그리스도 이름을 증거하고 현장에 능력이 나타난 것이다. 저 같으면 세상 현장에서 조용히 일하고 돈을 벌 텐데 스데반 집사님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난 것이다. 이 스데반을 통해 나타난 능력이 40일 금식 기도를 하고 나타난 신비주의인가? 결코 아닐 것이다. 이 안에 계신 분을 주체하지 못하니까 죽어가는 현장, 병든 현장을 향하여 전했고 능력이 나타난 것이다. 10절에는 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회당에서 변론, 논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결론이 적혀있다.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성경을 같이 보고 해석하고 결론을 맺을 때 정확한 복음을 전한 것이다. 하늘에 있는 지식, 지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총명과 명철이 스데반을 통해서 나온 것이다. 변론에 진 사람들이 나중에는 거짓 증인들을 세워서 억울하게 수모를 겪게 만든다. 스데반 집사가 무언가를 가르치는데 신성모독죄를 범하고 있다고 이렇게 곤경에 처하게 만들었다. 사도행전 6:15절을 보니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라고 되어있다. 자신은 신성모독을 하지 않고 진실을 말하고 체험한 것을 말한 것 뿐이었다. 보통 억울한 일을 당하면 우리는 맞고소를 하거나 변호사를 구할 수 없으면 목소리를 크게 대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데반은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스데반 집사님이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라는 것이 아니라 스데반이 모시고 있던 그분, 주체할 수 없이 감출 수 없었던 그분이 얼굴 표정에서 나타난 것이다. 스데반 집사는 알고 있었다. 저들이 못 깨달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은혜로 계시를 열어준 것을 알고 있었다. 저들이 원수 같은 짓을 행하고 있지만 주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선대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누가복음 6장에 나온다.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6:35절에는 더 자세히 풀고 있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이것이 그리스도의 중심이다. 원수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냐의 자세이다. 그 그리스도가 스데반 집사를 통해서 흘러 넘친 것이다. 나중에 두고 보자며 복수를 품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후에 이렇게 사람들이 고소하는 일들이 벌어지니까 대제사장이 등장한다. 대제사장이 스데반을 향하여 이들이 말하는 것이 과연 사실인지 심문을 하기 시작한다. 보통 권세자, 권위자 앞에서 심문을 당하게 되면 어떠한가? 변명을 하고 타협하여 절충을 하게 된다. 심각한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되면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기도 한다. 스데반은 달랐다.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을 관통하는 그 핵심 주제인 예수 그리스도를 역사적으로 풀면서 설명을 한 것이다. 모세의 율법과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가 메시아 구원자이시다. 스데반은 중심을 흔들리지 않고 정중하면서도 장중한 놀라운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스데반 안에 모시고 있던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차고 넘처 났던 것이다. 디모데후서 4장에 말씀하고 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말세를 맞이한 성도들을 향하여 주님의 심령을 바울에게 담은 것이다. 그 바울은 디모데 제자에게 똑같은 언약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말씀을 전해야 되는 것이다.

▶ 이 말씀을 다 전하고 나니까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서 이를 갈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스데반의 모습을 보시기 바란다. 스데반이 성 밖으로 내쳤다. 돌을 맞았다. 이때 스데반이 뭐라고 외쳤는가? 성령에 충만해서 하늘의 문이 열린 것을 보고 말한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 만 바라보고 섬기며 인도받았던 스데반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모습을 보다가 참지 못해서 스데반을 성밖으로 내치고 돌로 쳤다. 외부의 핍박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전달된 것이다. 성밖으로 내치고 돌에 맞으면서 죽음의 고통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의 비밀이 드러났던 것이다. 저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했다. 자기를 돌로 쳐죽이는 자들을 용서해달라는 그의 부르짖음은 십자가에서 죄인을 위하여 죽으시면서 죄인을 용서하시는 그리스도의 기도와 너무 닮아있다. 죽음의 고통 가운데서도 자기 안에 모시고 있던 그리스도가 드러난 것이다. 아까 말씀 드렸다시피 보통은 두고 보자며 복수를 꿈꾸고 다짐한다. 스데반 집사님의 믿음이 대단하다 뭐 이런 차원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육신의 모습을 통해서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그 무언가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분 안에 있던 그리스도가 얼마나 강렬히 넘쳤던지 교회 내분 속에서도, 바깥의 핍박 속에서도, 죽는 그 현장 속에서도 그리스도가 흘러 넘친 것이다. 스데반이 그리스도를 섬기고 모신 것은 흘러 넘칠 수 밖에 없는, 감출 수 없는 그런 신앙의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비밀, 이런 축복의 내용을 가진 자는 주님이 서서 기뻐하신다. 이런 자들의 축복을 받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우리는 부르신 것이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적용하고 찾아내야 할 부분이다.

▶ 성경의 내용을 통해서 우리가 볼 부분이다. 그것을 진짜로 보게 되면 무엇이 다가온다. 이천 년 전 마가의 다락방의 사람들과 현대 크리스천의 차이는 어마어마한 것을 알게 된다. 이 성경을 푸는 해석이 주님의 음성으로 들리는 자는 '나는 그들과 다르구나 나는 구원을 받았는데 너무나 구원의 비밀을 모르고 구원의 축복을 놓치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라는 고백이 나온다. 이런 본문을 통해서 기도제목이 나오고 내가 도전할 부분들을 찾는 것이다. 무언가가 아니구나, 내가 과연 무엇을 놓쳤는가? 2019 여름 강단을 통해서 목사의 설교가 아니라 주님의 음성으로 듣는다고 한다면 이런 부분들이 가슴에 밀려오는 것이다. 그런데 말씀을 받는 부분이 준비가 안되면 빨리 설교가 끝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제가 그랬다.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된다는 거룩한 열망이 있는 사람은 찬송을 부르게 되면 뜨겁게 찬송한다. 전에는 제가 그러지 않았다. 일단 교회에 와서 앉으면 주위부터 둘러본다. 찬양하고 성경봉독해도 아무 관심이 없고 둘러보면서 사람들에 관심이 가있다. 그러다 보니 예배의 흐름을 못 타고 왔다갔다 하게 된다. 우리 모두에게 은혜의 큰 물결 속에 들어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3. 그리스도를 모시면 드러나는 증상들

▶ 마지막 세번째이다. 결론 부분이다. 이것은 어떻게 내가 적용해야 하는지 봐야 한다. 그리스도를 우리가 모시면 드러나는 증상들이 나타난다. 내 안에 그리스도를 정말 모시게 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가? 당분간 우리의 결론은 말씀, 기도, 전도이다. 여러분들이 주일 예배만 왔다 갔다 하더라도 남을 수 있도록 계속 반복하고 있다. 왜냐면 일단 여러분들은 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내가 얼만큼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이 되느냐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가 가름이 된다. 왜냐면 내가 당황하는 순간이 온다. 문제가 터지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말씀으로, 믿음으로 각인, 뿌리, 체질이 안되면 금방 사람 찾아가게 된다. 구원은 안 잃어버리고 천국은 이미 보장이 됬지만 세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 사람의 삶, 문화는 불신자의 것에 잠기게 된다. 정말로 힘들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라야 한다. 그런 모습을 자녀들이 보게 되면 믿음이 전달되는 것이다.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가? 말씀이 성취되고 기도가 응답되고 전도 열매가 나타난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일점일획도 다 이루어진다는 것을 누차 들었다. 이것이 왜 그러한가? 하나님은 자존심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내뱉은 말씀은 반드시 성취를 시키신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얘기를 한마디 했는데 콧방귀도 안 뀌고 관심도 갖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마음이 어떠한가? 자존심이 상할 것이다. 대화를 했는데 내 말을 안 담아 듣는다. 하물며 사람도 그럴진데 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떻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던져놓고 그 말씀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 사람은 그 믿음대로 성취시키신다. 하나님의 자존심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신다. 반드시 이루어 내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존심 문제이다. 그것을 성경에 기록 해놓았는데 다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실 것이다. 두번째는 기도응답 하신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응답하신다. 무엇인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신다. 이것은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하게 인도하시고 축복 주시기 원하신다. 사람들 중에는 끝이 안 좋은 사람들이 있다. 꼭 끝 시간에는 서로 안좋게 헤어지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시다. 우리가 당장 불신앙을 하고 연약하고 부족해도 계속 인도하시면서 가장 좋은 것으로 도와주신다. 그리고 우리가 전도에 대해 고민하면 반드시 응답, 열매를 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소원이며 약속이다. 내게 구원받을 영혼을 붙이신다. 내게 치유 받을 영혼을 만나게 하신다. 훈련 받을 영혼 뿐만 아니라 사명을 감당한 제자까지도 붙이신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이 정말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다고 한다면 나를 통해서 제자가 더해지는 것이다. 바울에게는 로마서 16장의 인물들과 같은 평생 제자들이 함께 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표준이 되어야 한다. 약속하셨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런 제자들을 남기고 주 앞에 서시는 승리자 되기를 축원한다.

 

♠ 기도

▶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게 하시고 스데반을 통해 나타났던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내 인생 속에서 나타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따라 받은 말씀이 성취되게 하시고 하나님은 선하시오니 우리 기도에 응답하실 줄로 믿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 그 열매를 우리에게 허락하실 줄 믿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