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다락방의 사람들 (24) - 만남을 소중히 여긴 사람들

September 1st, 2019

ICA Sunday Pulpit Message



♠ 서론

▶ 영국 윈스턴 처칠 수상이 말을 했다. ‘ 이 여자는 이 시대에 가장 위대한 여성이다.’ 갤럽에서 조사를 했다. 20세기에 가장 널리 알려지고 존경받는 18명 중에 한명이다 라고 했다. 이 여성은 세가지 장애를 가지고 있다. 보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여성이었다. 그런데 그 여성이 댄스도 배우고 승마에도 익숙해졌다. 그 여성이 영어뿐만 아니라 라틴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어까지 습득을 했다. 그 세가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여성이 하버드 대학에 편입됐던 당시 레드클리프 대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다.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이 책 한권 쓰기도 쉽지 않은데 그 사람은 13권의 책을 내기도 했다. 대충 누군지 감이 올 것이다. 헬렌 아담스 켈러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여성을 향해서 인간이 닥칠 수 있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아픔을 경험했지만 모든 것을 극복한 여성이라고 한다. 헬렌 켈러가 그런 큰 인생의 역전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 기적과 같은 헬렌 켈러 여성 뒤에는 앤 설리번이라는 선생님이 계셨다. 이 헬렌 켈러가 앤 설리번과의 만남을 통해서 인생이 바뀌게 된 것이다. 아주 중요한 만남이 된 것이다. 결정적이 만남이 된 것이다. 영원한 축복을 남기는 만남이 되었던 것이다. 성경에 보시면 오네시모라는 남자가 있다. 빌레몬이라는 주인의 집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붙잡혀서 감옥에 간 사람이다. 그런데 그 감옥에서 바울을 만나서 복음을 받아 변화가 되었다. 감옥에서 나오고 나중에는 목사가 된다. 나중에는 한 지역의 감독, 비숍이 된다. 그 주인 빌레몬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바울과 빌레몬의 만남, 중요한 만남이 된 것이다. 바울과 오네시모 중요한 만남이 된 것이다. 이렇게 인생에 있어서는 만남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저도 20대 때 직장의 선배를 만났다. 그때 복음을 확인하고 복음을 체험했다. 그 이후로 내 인생이 바꾸어지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똑같다. 만나는 그 사람들을 통해서 그 사람의 인생이 만들어져 간다. 그 사람의 성품이나 그 사람의 수준, 그 사람의 능력도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이루어지고 만들어지게 된다. 오늘 성경의 본문 역시 마찬가지이다. 빌립 집사님과 한 에디오피아 흑인과의 만남이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중요한 것들을 찾아야 한다.

 

1. 단 한 번의 인생 속에서 찾아야 할 만남의 비밀

▶ 첫번째이다. 우리는 만남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딱 한번의 인생을 산다. 그 한번의 인생 속에 몇가지의 만남이 있다. 중요한 만남 속에서 우리는 중요한 의미를 찾아야만 축복되고 풍성한 인생을 살 수 있다. 한 세가지 만남을 소개하겠다. 첫번째는 부모님과의 만남이다. 이것은 내 선택사항이 아니다. 내가 부모를 고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도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천륜,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고 말한다. 하여튼 나라고 하는 존재가 부모님에 의해서 태어나게 되고 그렇게 시작이된 것이다. 자라면서 부모님의 극진한 돌보심, 사랑을 받는다. 이 관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아야 하는가? 육신의 부모님은 한시적이다. 그러면 영원한 부모님과의 관계가 있다는 말이다. 영원한 부모님이 누구인가? 영원한 아버지는 누구인가? 바로 하나님이다. 부모님과의 관계를 통해 이 땅에 살면서 영원한 아버지를 찾고 그것을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님의 권위를 통해서 하나님의 권위를 배워가는 것이다. 조건없이 은혜와 사랑을 주시는 부모님의 사랑을 통해서 조건없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더듬거려야 한다. 어떻게 이 하나님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가?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고백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결정할 때에 하나님과 나는 부자지간이 되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떨 때인가?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결정하고 결단하고 고백할 때 그렇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시고 인도하신다. 그것이 복음이다. 그것을 들으려고 이 자리에 앉아 계신 것이다. 예수를 믿게 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구나. 하나님의 아들이 되면 인생은 끝나는 것이다. 막말로 가만히 있어도 축복을 받는다. 그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게 되어지게 되면 육신의 부모님도 제대로 섬길 수 있게 된다. 출애굽기나 신명기에 나와있다. 육신의 부모님을 하나님 안에서 공경하면 자녀들의 수명이 길어지게 되고 자녀들이 이 땅에서 복을 받는다 라고 말하고 있다. 신명기 5:16절에 나와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저는 부모님과 사이가 안 좋은데, 저희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는데…’ 그러면 더욱더 질문할 수 있는 것이다. 왜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을까? 왜 나의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는가? 그 질문 속에서 진정한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 육신의 부모는 나를 버릴 수 있지만 여호와께서는 나를 지키신다. 여러분에게 혹시 육신의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면 육신의 부모님을 섬기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이것이 크리스천이 봐야 할 관점이다.

▶ 두번째 만남이 있다. 배우자와의 만남이다. 이것은 요즘 선택할 수 있다. 오래전에는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서 부모님이 소개 시켜서 결혼하신 분이 계시는가? 사실 이것이 성경적이다. 하늘의 뜻이 그렇다. 부모님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그 부모님이 자녀를 놓고 기도하고 자녀의 미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자녀의 미래를 쳐다보면서 자녀의 필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품을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어떠한가?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다. 나의 배우자는 내가 마음에 드는 것을 얻으려 한다. 많이 변화 되었다는 이야기다. 제가 지금 주일날 예배를 통해서 중매결혼을 하라는 뜻이 아니다. 예전에는 선택권이 없었는데 요즘에는 선택권이 있다는 이야기다. 하나님이 신랑 아담에게 신부 하와를 갖다 붙였다. 이것이 성경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세상 현장에서 아주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난다거나 내가 캠퍼스 현장에서 꼭 데이트 하고 싶은 이성을 만난다면 반드시 부모님에게나 영적 권위자에게 소개를 하고 허락을 받고 축복을 받는 것이 성경적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젊은 세대들은 그러한 관념, 개념조차 없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자신들끼리 만나고 데이트하다가 헤어지고 사이가 안 좋아지니까 교회에 안나오게 된다. 배우자 이야기를 하겠다. 부부는 무촌지간이라고 한다. 촌수가 없는 만큼 가까울 수도 있고 촌수가 없는 만큼 멀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뭐라고 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취해야 할 기준이 된다. 배우자와의 관계,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무엇인가? 남편은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하여 자기 몸을 준 것처럼 사랑하라고 되어있다. 아내는 남편을 향하여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복하듯이 복종하라고 되어있다. 여기에서만 머물게 되면 나는 우리 남편에게 복종만 해야 하는가 짜증 섞인 클레임을 걸 수 있을 것이다. 남편도 똑같이 하소연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 부모를 통해서 전능자를 찾듯이 부부관계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교회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기 전체를 드렸다. 그런 것처럼 남편은 아내를 향해서 모든 것을 주는 것이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한다. 몸도 주고 마음도 주고 돈도 줘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다. 아내가 부족하던 잘나던 간에 아내를 향해서 모든 것을 평생 주는 것이다. 그래서 잘난 아내든지 못난 아내든지 아내를 사랑하면서 내가 그리스도의 분량을 채우는 것이다. 아내도 마찬가지이다. 못난 남편이 있고 돈을 못 버는 남편이 있다. 벌써 시들시들해진 남편도 있고 벌써 나이를 먹어서 잔디를 못 깎는 남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 버려야 하는가? 내쳐야 하는가? 아니다. 그 불완전하고 부족한 남편을 위하여 복종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님을 찾아가는 것이다. 내 안에 그리스도를 채워가는 것이다. 여러분 나중에 하늘 나라에 갈 것이다. 그러면 깨달을 것이다. 내가 왜 결혼을 했는지 깨달을 것이다. 내 아내를 통해서, 내 남편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닫게 하려고 결혼을 시키셨구나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에베소서 5장에 그것을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것을 설명하고 마지막에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라고 말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내 배우자가 정말로 마음에 안 드는 분이 있는가? 그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찬스이다. 돈 잘 버는 남편, 누가 못 섬기는가? 쭉쭉빵빵한 아내를 왜 못 사랑하는가? 징그럽지만 사랑하는 그것이 그리스도의 분량을 채우는 것이다. 아내가 착하고 순진한 양 같다면 왜 못 사랑하는가? 데리고 갔더니 고양이가 변하여 호랑이로 변한 그런 와이프를 사랑하는 것이다. 애교 많은 와이프를 누가 못 사랑하는가? 소리지르고 두들겨 싸우려는 그런 와이프를 품고 사랑하는 것이다. 나의 인격을 드리는 것이다. 같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내 인격을 그리스도께 드리면서 섬기는 것이다. 배우자 간의 장점이 있다. 장점은 계속 키워주는 것이다. 단점이나 다른점은 내가 가리어 주고 품어주는 것이다. 덮어주어 남에게 공개하지 않는 것이다. 부부지간에 공통점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같이 누리라고 공통점을 주신 것이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고 와이프도 여행을 좋아하면 같이 누리는 것이다. 부부를 통해서 복음의 비밀을 찾아내서 승리하는 것이다.

▶ 또 한가지 만남이 있다. 이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선택이고 필수적인 선택이다.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여러분이 살면서 반드시 만나야 할 존재,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그러면 이 땅에서 왜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가? 여러분이 세상을 살면서 깨닫는 것이 있을 것이다. 나도, 저 사람도, 모두가 행복을 향하여 달려간다. 행복을 꿈꾸지만 자꾸 불행이 찾아온다. 서로 뜨겁게 사랑하지만 또 식어지고 또 헤어진다. 성공에 탑을 쌓으려고 전력투구를 하지만 자꾸 실패나 좌절이 찾아온다. 언젠가는 그 어마어마한 부와 명예도 다 내려놓고 떠나가야 한다. 영원한 사랑, 영원한 행복, 영원한 우정, 영원한 권세, 그 영원한 그 무언가를 찾아가지만 다 내려놓고 떠나간다. 결국 빈손만 남게 된다. 영원한 행복이 어디 있는가? 영원한 사랑과 영원한 복이 어디 있는가? 천국을 소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 천국에 영생과 복락이 있다. 그 천국 안에 있는 영생복락을 얻으려면 바로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를 만나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복락과 천국을 얻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되어있다.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실력과 관계 없다. 우리의 성품, 수준이나 과거와 관계 없다. 여러분이 예수를 붙잡는 순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엄청난 축복이다. 이것을 복음이라고 말한다. 여러분들이 이 복음 붙잡고 일평생 승리하시기 바란다. 인생을 한번 사는데 세가지 만남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다. 단 한번의 인생 속에 중요한 세가지 만남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찾고 누리는 데에 있다. 여러분들이 살면서 그리스도의 분량을 채워가야 된다. 그리스도가 되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예수를 닮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2. 초대교회의 빌립 집사가 누린 만남의 축복

▶ 두번째이다. 이렇게 복음을 누리는 자는 복음 안에서 아주 소중하고 중요한 만남을 가지게 되어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 빌립 집사가 하나님이 주시는 만남의 복을 얻는다. 특별한 만남을 갖게 된다. 장소는 광야, 사막이다. 빌립 집사가 만나는 사람의 이름은 기록되어있지 않지만 신분은 나와있다. 그 사람의 소속, 국적이 나와있다. 아프리카 에디오피아 사람이다. 그 사람의 수준도 나와있다. 여왕의 국고를 맞고 있는 장관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재무부 장관쯤 될 것이다. 그러면서 내시, 환관이라고 되어있다. 남성 기능을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여왕 밑에서 일을 했을 것이다. 이 자와 만나게 된 것이다. 그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받은 환관이 8:37-38절에 말을 한다. “빌립이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합당하니라.”고 하니 그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나이다.” 라고 하더라. 그리고 나서 그가 마차를 세우라고 명한 다음 빌립과 내시가 둘다 물로 내려가서 빌립이 그에게 침례를 주니라” 그리고는 빌립 집사는 주의 영과 사라져 버린다. 영어 성경에는 낚아챘다고 나와있다. 여러분들이 나중에 휴거되면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마지막 절에 보게 되면 아소라는 동네에 나타났다고 되어있다. 이것은 무엇을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완벽한 인도를 말한다. 하나님이 움직이는 만남의 축복이었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이르기를, 주의 성령이 빌립에게 말하여, 주의 성령이 빌립을 낚아채어.’ 완벽한 하나님의 인도였다. 단 한번의 만남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결정적인 만남이 되었다. 죽느냐 사느냐 구원받느냐 지옥이냐 결정적인 만남이었다. 그 아프리카 사람, 한사람을 통해서 아프리카 복음화가 되는 영원한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단 한번의 만남이라도 이렇게 복음 안에서 가장 가치있게 만들라. 하나님이 축복하신다. 이 빌립 집사에게는 여섯 딸이 있었다. 빌립 집사가 단 한번의 만남이었지만 중요한 만남으로 인도를 받았다. 나중에 보니까 이 여섯 딸 전체가 여성 선지자가 된다. 가족 전체에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가 임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바울의 미래를 걱정할 만큼, 예언할 만큼 성령충만을 받았다. 여러분 자녀들이 성령충만 받으면 좋을 것인가 싫을 것인가. 자녀들이 성령충만 받고 모든 예배에 나오고 헌신한다면 얼마나 기쁠 것인가. 한번의 만남이지만 복음의 중요한 축복을 누리게 될 때 여러분의 후대가 축복을 받는다.

▶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어떻겠는가?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 성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이 광야, 사막 길로 왔다. 도시 전체를 움직일만한 하나님의 능력이 빌립 집사 한 사람을 통해서 나타났다. 병자가 치유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따랐다. 그런데 한 사람 때문에 갑자기 아무도 없는 광야 길에 들어선 것이다. ‘사실은 내가 예루살렘 교회 대표적인 중직자였다. 교회에 중요한 문제가 터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스태프였고 사마리아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많은 사람을 치유하고 대도시의 사마리아성을 들었다 놨다 했던 사람이었다.’ 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원래 보통 그렇다. 그리고 에디오피아 내시가 또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여왕의 직속기관을 맡은 재무부 장관이다. 내가 타는 마차를 한번 봐라.’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빌립이 보통 사람이었으면 어떻게 답했겠는가? ‘그 두루마리 성경의 뜻도 모르면서 왜 사고 왜 읽느냐’ 이렇게 말하고 핀잔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에디오피아 내시는 ‘이 글이 누구에 관한 것이요?’ 진심으로 질문한다. 빌립 집사는 ‘그분이 누군지 아시오’ 물어보고는 그리스도를 설명해준다. 저 사람과 나와 만나게 하신 이유는 그리스도 때문에 만나게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를 전하라는 말이다. 복음을 설명하라는 말이다. 여러분들의 만남과 만남은 그리스도를 알아가게 하시려고 주시는 것이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뽀뽀하고 애 낳으려고 만난 것이 아니다. 그것을 못 찾으니까 사람들이 섭섭해 하는 것이다. 그 부분을 못 누리니까 피차 원수가 되는 것이다. 부모관계 마찬가지이고 부부관계, 친구지간, 교회 성도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를 찾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시작이고 마지막이다. 마지막 날에 모두가 그리스도 앞에 선다고 되어있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그리스도의 분량이 얼마만큼 채워졌는지 체크하는 심판이다.

▶ 역으로 말하면 이렇다. 하나님이 빌립 집사에게 단 한번의 만남을 허락하셨다. 가장 중요한 만남을 허락하셨다. 가장 결정적인 만남을 허락하신 것이다. 영원한 축복을 남기는 만남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빌립 집사에게 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는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하나님이 아셨다. 그 하나님의 성령이 초자연적으로 역사하므로 그 둘을 만나게 하신 것이다. 이것을 눈치챈 빌립 집사가 정확하게 복음을 전한 것이다. 다시는 만남이 없이 흔연히 헤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에게 복음이 있는 줄 알고 계신다. 그리고 여러분 주위 현장에 복음이 필요한 사람이 누군지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하나님이 알아서 만나게 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의 축복이다. 그것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인생이다. 내가 살면서 단 한명도 복음을 전해서 영접을 시킨 적이 없다면 빨리 기도를 시작하셔야 한다. 내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사람으로써 한번이라도 쓰임 받게 하옵소서.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시간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여러분들에게 소중한 만남의 기회가 있기를 축원한다. 복음을 전달하고 복음을 받아드리는 만남이다. 이것이 생애 최고의 만남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만남이다. 초자연적인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만남이 바로 전도 현장의 만남이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런 만남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하나님께 쓰임 받을 줄 믿는다. 성경은 그런 만남으로 가득 차 있다. 아브라함에게는 엘리에셀이라는 종과의 만남이 있었다. 요셉에게는 보디발, 바로 왕과의 만남이 있었다. 모세에게는 이드로와의 만남이 있었다. 또 여호수아와 갈렙의 만남이 있었고  그들은 정탐꾼으로 갔을 때 라합과 만남을 갖게 된다. 선지자 사무엘은 어린 목동 다윗과 만나게 된다. 다윗은 요나단과 만남을 갖게 되어 목숨을 구하게 되고, 베드로는 억지로 였지만 고넬료와 만남을 갖게 되었다. 룻은 보아스를 만났다. 에스더는 모르드게를 만났다. 엘리야는 엘리사를 만났고 오바댜를 만나게 된 것이다. 바울은 루디아, 야손과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났다. 그리고 디모데를 찾아서 만나 제자로 삼았다. 모든 인생사는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 모든 신앙생활은 만남을 통해 문이 열려진다. 축복의 시작은 만남이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에게 기쁨이 넘치고 감사로 충만케 되는 만남이 계속 지속된다. 소중한 만남, 결정적인 만남, 영원한 만남이 되어지기를 축원한다.

 

3. 만남의 축복을 위한 세 가지 길

▶ 결론이다. 이런 만남을 내가 가지고 싶은데 내가 어떻게 준비하면 되겠는가? 기존의 만남을 복음으로 완성시키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가지 길이 있다. 말씀, 기도, 전도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말씀을 사모하고 주일 예배 때 말씀을 들어야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예수를 보내신 분이 누구신가? 성부 하나님이시다. 그분의 뜻을 알고 온전히 이루는 것이 내 양식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새벽같이 기도하는 이유가 아버지의 뜻을 찾기 위함이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었다. 말씀을 듣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의지가 무엇인가? 단 한가지 밖에 없다.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향하여 찾아내고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 역시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서 말씀 흐름 속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주일날 예배 말씀을 듣는 것이 일주일 168시간을 승리하느냐 허비하느냐 결정적인 순간인 것이다. 말씀을 찾고 말씀 속에 하나님을 찾는 자를 향하여 하나님은 축복하시고 쓰시는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 18장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다. “내가 하려고 하는 뜻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말씀으로 계시한다는 이야기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우리는 그 말씀을 받아야만 산다. 그 말씀 붙잡은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되었다. 아브라함이 강대한 나라를 이루었다. 천하만민이 아브라함의 후손인 그리스도를 통하여 복을 받게 된 것이다. 말씀 속에서 주의 뜻을 찾아내야 한다.

▶ 그 다음은 기도이다. 마태복음 6장에 보시면 “뜻이 하늘에게 이룬 것처럼 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 라고 기도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이다.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능력있는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 기도를 왜 하는가? 이미 하늘에서 하나님의 응답이 결정되어서 준비되어있다. 그것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문제를 만나게 되면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이 문제를 통해서 주실 답이 무엇입니까 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것을 찾으면 기도에 승리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완벽한 것을 찾을 때 완벽한 응답이 된다. 그 다음은 전도이다. 사도행전 13장을 보시면 영생을 받기로 작정된 자들이 있다고 나와있다. 즉, 하나님께서 영생, 구원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되어있다. 이 지구에 70-80억 인구가 있다. 구원을 받기로 작정된 자가 있다. 나를 통해서 제자로 세워질 자가 있다. 여러분의 24시간이, 여러분의 흥미와 관심이 거기에 맞추어지면 모든 축복을 다 주신다. 모든 질병이 다 떠난다. 모든 가난이 다 무너져 버린다. 엄청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이것을 하는 구원받은 신자들이 없다. 거의 없다. 그래서 그것을 놓고 여러분이 조금만 움직이면 다른 사람이 안 받아간 것까지 함께 쏟아진다. 그것을 노리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소원인 영혼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말씀, 기도, 전도에 조금만 집중해도 축복이 쏟아진다. 인생의 저주가 풀려나간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난다. 암 걸리신 분은 암이 떠나간다. 절대로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그 문제가 해결된다. 그 뜻은 하나님이 움직였다는 뜻이다. 여러분들이 말씀, 기도, 전도에 올인해서 하늘의 신령한 축복을 다 찾아 누리시기를 축원한다. 그것이 만남 속에 있다.

 

♠ 기도

▶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준비된 만남을 소중히 여기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하늘의 뜻을 이루고 이 땅에 기름진 복을 찾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