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다락방의 사람들 (25) -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사람들

September 8th, 2019

ICA Sunday Pulpit Message



♠ 서론

▶ 성경을 읽어보시면 알게 된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 기록되어있다. 흑암, 혼돈, 공허, 여기에 하나님의 빛이 임했고 하나님의 창조물과 피조물들이 채워졌다. 하루라는 시간 동안에 밤과 낮을 구분해 놓았다. 바꾸었다는 이야기다. 구분을 지었고 전환을 시켰다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것을 새것을 전환시키시는 분이시다. 우리 인생 속에도, 여러분과 저의 삶 속에도 전환의 시점들이 있다. 이것을 우리 삶 속에 안배하시어 적절하게 배치해 놓으셨다. 어떤 전환점이 있는가 살펴보면 우리는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육신적인 전환점이 있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살기 때문에 사회적인 전환점도 있다. 뿐만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큰 전환점이 있다. 이것을 한번 보려고 한다. 우리 교회도 16주년을 맞이해서 전환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혹 여러분 중에 교회 처음 나오는 분도 계실 수 있다. 이것이 또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1. 하나님이 인생을 위해 안배하신 전환점

▶ 육신적인 전환점에는 하나님께서 무엇은 안배해 놓으셨는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중요한 사춘기가 있다. 십대의 질풍노도의 시기이다. 몸, 육신은 어른처럼 많이 성장을 했다. 그러나 그 안에 경험이나 지식, 여러가지 것들이 차 있지 않은 상태이다. 그래서 나 자신은 어른인 것 같지만 어른처럼 대접도 못 받고 어른처럼 잘 되지않는 경우가 있다. 거기서 갈등도 느끼고 충돌도 하면서 방황하는 시기이다. 또 나이를 먹어서 제 2의 사춘기라고 하는 갱년기가 있다. 몸이 노쇠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 몸이 예전처럼 기능을 잘 안한다. 눈이 침침하기도 하고 조금만 뛰게 되면 심장이 찬다. 이런 신체적인 변화 때문에 우리의 마음과 감정도 바뀌게 된다. 기분이 울적 하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하고 그렇다. 의학적으로는 호르몬의 상태가 변화된다고 이야기 한다. 맞는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이 사춘기나 갱년기를 통과하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내가 왜 이럴까 라는 고민에 빠지지 말고 나에게 하나님이 전환점을 주신 것을 즉각적으로 알아차려야 한다. 사춘기 같은 경우에는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마음, 생각이 든다. 이것은 왕성한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고 활동도 하면서 미래를 집중적으로 준비하라고 하는 것이다. 부모님이 왜 이럴까, 학교 친구들은 왜 그럴까, 나는 왜 그럴까 염려하지 말고 내가 미래를 향해서 준비하는 시기가 왔구나 생각하시면 딱 맞다. 정복할 것과 다스림의 시간표를 두고서 생육번성하는 것이다. 갱년기는 또 어떠한가? 아무래도 속도가 느려지게 된다. 그것은 조금 천천히 세밀하게 보라고 하는 사인이다. 세밀하게 내 인생을 정리하면서 완성시키라고 하는 것이다. 인생에 완성이 있겠냐마는 성숙하게 되는 것이다. 조금 천천히 조금 세밀하게 보면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다. 조금 깊게 천천히 생각하다가 보면 ‘이거 하라 저거 하라’ 는 이것이 도리어 역작용, 반작용이 일어나는지 알게 된다. ‘집사, 권사가 되어서 이것도 저것도 못하느냐’ 가 아니고 그가 하지 못하는 그 부분에 내가 모범을 보이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가장 완벽하고 가장 안전한 교훈 임을 알게 됨으로 내가 모범을 보이게 된다. 그것에 확실한 방법인 것을 알게 된다. 내가 모범을 보이면서 후대, 후배, 제자들을 세워가는 일을 마무리를 하는 것이다. 이런 전환점이 시작됐구나 갱년기를 맞이하신분은 그렇게 깨닫게 되면 하나님 앞에 정확하다.

▶ 그 다음은 사회적 전환점이 있다. 사회적인 전환점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결혼이다. 결혼 당사자들은 매우 흥분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다. 그런데 우리가 이 결혼 생활에 중요한 부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더 다른, 또 다른 삶의 세계, 또 다른 삶의 다른 차원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디로 들어가는가? 육신적인 끌림이 있다. 그 끌림 때문에 상대방, 배우자를 만나게 되는 것이고 그 만남이 지속되면서 그 상대방을 제 2의 나로 만들어 가는 세계이다. 상대방을 제 2의 나, 나의 분신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상대방을 볼 때 나를 보는 것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듯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내 필요를 채우듯이 그 사람의 필요한 부분을 공급해 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부인 교회를 또 다른 그리스도로 만들듯이 말이다. 이런 성경의 가르침과 복음의 비밀이 젊은이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결혼 생활이나 그들의 후대가 살고 회복이 된다. 또 한가지 사회적인 전환점이 있다고 한다면 퇴직이 있다. 이것은 다른 데로 옮기는 이직도 해당이 되고 또는 해고, 해직도 해당이 된다. 퇴직, 이직, 해직 등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자기가 오랫동안 해왔던 일을 갑자기 쉬게 된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공허함이나 또는 소외감을 느낄 때가 있다. 그 공허함이나 소외감을 해소해 보려고 티비, 영화, 도박, 게임 등에 중독될 경우도 있다. 그래서 퇴직과 같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신 분들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제 2의 인생을 주셨구나 깨달으시면 된다.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주변을 살피라고 하는 것이다. 연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연륜이 부족한 젊은이들을 돌보라고 하는 사인이다. 그런 일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준비해 놓으셨다. 여러분들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시면 손자, 손녀가 아들 딸보다 더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주시고 제 3대를 보살피라고 하는 것이다. 제 2의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 그런 저러한 여러가지 인생의 전환점이 있는가 하면 가장 중요한 인생 전환점이 있다. 육신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전환점보다 더 중요한영적인 전환점이 있다. 예상했다시피 바로 Born Again이다.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두번째로 태어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중생이라고도 표현한다. 거듭났다고 이야기 한다. 거듭났다고 하는 것은 첫번째 태어났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첫번째 출생은 육신적인 출생이고 거듭난 것은 영적인 출생을 말한다. 우리가 이제 깨달았다. 여러분 복음을 통해서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보게 되었다. 첫번째 출생한 우리 아이들은 이 땅에 태어났지만 흑암문화권에서 성장을 한다. 그리고 그 아이의 어떠함과 관계없이 운명의 세력에 붙잡혀 있다. 이것을 우리가 알게 되었다. 아무리 귀엽고 사랑스럽고 아무리 똑똑하게 키워도 이 흑암문화권과 운명의 세력을 그 누구도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중생, 거듭남의 전환점을 주시는 것이다. 첫번째 출생 때문에 비록 내 몸은 세상 속에서 살고 있지만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거듭남의 전환점을 주시는 것이다. 실존이 바뀌는 것이다. 배경이 바뀌게 된다. 그리고 미션, 사명도 바뀌게 된다. 무엇으로 바꾸고, 무엇으로 전환되는가? 거듭날 때, 하나님의 아들로 실존, 소속이 바뀌게 된다. 천국 시민의 배경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전에는 ‘네 인생을 성공하라’ 고 가르쳤지만 ‘너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라’ 는 비전, 사명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 그런 영적인 전환점의 시작이 바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구원이라고 한다. 이런 첫번째 출생의 한계를 깨뜨리는 유일한 길이 바로 복음이다. 복된 소식이라고 하고 우리의 기쁜 소식이 된다. 즉,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실이다. 이 예수님께서 인생의 모든 문제를 십자가에서 해결하시고 성령으로 내 안에 들어와 계신다 라는 것을 이해하고 깨닫고 받아드리며 수용하는 것을 가리켜서 영접이라고 한다. 교회의 말씀을 통해서 또는 복음을 전달하는 전도자의 메시지를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내가 전해 듣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 듣고서 내가 신앙고백을 할 수 있다. 예수님은 내 인생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시요 나를 평생 이끌어 가실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여러분이 그렇게 영접을 하여 마음 속에 받아드리고 고백을 하면 천지 만물을 지으신 성령께서 내 몸 속으로, 내 생각과 마음, 내 영혼 속으로 들어온다. 참으로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젠틀하시다. 그 한번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우리의 영, 혼, 육을 바꾸신다. 왜 젠틀하시다고 했는가? 여러분 혹시 무당들을 보신적이 있는가? 특별히 한국 무당들은 난리를 쳐야 한다. 그래야 악령들이 들어오고 신들린다. 난리법석을 쳐야 그 때 들어온다. 그런데 성경에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렇게 주시지 않았다. 정확하게 듣고 내가 인격적으로 깨달아서 신앙고백을 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들어오는 것이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승리하시기 바란다. 엄밀하게 잘 계산하면 이렇게 단순하고 확실한 것 하나 때문에 영원한 것이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다.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받게 하는 유일한 길이구나. 지구상에 20000여가지의 종교가 있는데 영생을 얻는 유일한 길이구나.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참된 하나님의 아들이시구나. 영원무궁토록 찬양과 존귀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구나. 이 한 분만을 소개하고, 이 한 분만을 설명하며 이 한 분 때문에 내가 행복하고 만족되는구나. 이 한 분만으로 충분해질 때까지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시고 단을 통해서 메시지를 계속 주시고 계신다. 교회에서는 이것만 말하는 것이다. 목사가 세워진 이유는 바로 이것만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조금 지루해질 까봐 여러가지 사건과 인물들을 돌려가면서 말하는 것이지 예수 믿을 때 끝난다 이것만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각인, 뿌리, 체질이 될 때까지 여러가지 일들을 통해서 메시지를 주시고 계시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유일하신 분이시구나 라는 신앙고백과 함께 믿음을 갖게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되기 시작한다. 이 안에 무궁무진한 것이 들어있다. 이 안에 다 들어 있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다. 그때 눈이 열리게 된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부르실 때가 있다. 어떤 분들은 영접과 함께 부르시기도 하고 어떤 분들을 영접, 구원과 함께 나중에 부르시는 시간표가 따로 있을 수도 있다. 주님이 부르시는 결정적이 시간표이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부르신 줄로 믿는다. 하나님이 여기에 오게 하신 목적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처럼,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다윗을 부르신 것 같이 여러분을 부르신 것이다. 하나님의 정해 지신 일을 위해서 부르시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것이다.

 

2. 교회 핍박자였던 사울(바울)이 맞은 인생의 전환점

▶ 두번째이다. 오늘 본문을 보시게 되면 사도행전 9장에 바울이라는, 사울이라는 청년이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하나님께서 청년 사울을 부르고 계신 것이다. 교회의 핍박자 였던 사울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음성을 들려주며 부르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이 본문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이 사람이 어떻게 인생전환점을 맞았는가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원래 어떠한 사람이었는가? 빌립보서 3장에 보시면 8일 만에 할례를 했다고 나와있다. 출생 때부터 율법 예식을 준수했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사람이고 베냐민 지파였다. 열두 지파 중에 베냐민 지파를 강조하는 것은 베냐민 지파였던 사울의 왕손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바리새인이다. 탑 클래스라는 것이다. 또 하나님께도 열심이었다. 율법의 의으로는 흠이 없었다. 그렇게 자기를 소개하고 있다. 사도행전 22장에는 자신은 다소라는 도시에서 출생했다고 나와있다. 변방의 변두리 출신이 아니라 문학 도시였던 다소 출신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말리엘 학파의 제자라고 나와있다. 율법의 엄한 교훈 속에서 성장하고 교육을 받았다. 한마디로 그의 스펙은 완벽했고 대단한 사람이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중요한 그 무엇이 오해되어지고 없었다고 하는 것이다. 본문 9장에 보시면 4절에 말씀한다.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예수님께서 부르시고 계신다. 청년 사울에게는 아주 뜻밖의 음성이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 성경 여러 편에 보시게 되면 보통 ‘주 여호와여 제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한다. 그런데 사울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음성 같기는 한데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뜻밖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사도행전 9장 5절에 청년 사울 즉, 바울이 되묻는다.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하나님에 대하여 열심이었던 청년 사울은 뜻밖의 음성과 함께 충격을 받았다. 이 음성 한마디에 청년 사울은 고꾸라졌다.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결국 복음 가진 자에 의하여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고 성령충만을 받게 된 것이다. 식음을 전폐하여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마시지 못했다. 그동안 많은 고민과 묵상과 기도를 했을 것이다. 그동안 익히 알고 있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재해석 했을 것이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찾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소원은 다른 곳에 있었구나.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생, 구원을 얻는 것이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곧, 이 복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구나. 그것을 깨닫고 성령충만 받은 그는 바로 현장에 나가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교회의 핍박자가 교회의 수호자가 된 것이다. 복음 전하는 자를 핍박하던 자가 바로 복음의 전도자가 된 것이다.

▶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완벽한 인생의 전환점 속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복음을 깨달은 것이다.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예수님의 말씀을 힘 입어서 바울은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만나는 길, 참선지자 뿐만 아니라 그 복음의 능력을, 선지자의 능력을 내 것으로 삼은 것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 제사장인 그리스도를 힘 입어서 그는 복음의 능력을 자기의 것으로 소화를 시켰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것을 바울이 깨달은 것이다. 이 사울이 쇼크를 먹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는 사도 요한의 부르짖음을 뛰어넘어서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주님이 하신 그 일을 힘입어서 능력으로 소화시킨 것이다. 참으로 깨닫고 이해한 것이다. 그리스도 한분을 통해서 인생의 영적 전환점을 완벽하게 소화시킨 것이다. 2000년 전에 바울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회심을 했구나 라고 끝나면 그것은 망한 설교이다. 하나님이 사도행전 9장을 통해서 사울의 변환점을 말해 주시는데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 바울이 예상 밖의 음성을 들었다. 혹시 뜻밖의 예상 밖의 일과 사건을 경험한 분이 계시는가? 질문해 봐야 한다. 청년 사울이 주님의 음성과 함께 강력한 빛을 받아 눈이 멀게 되었다. 앞을 보지 못해서 사람을 도움을 받고 이끌림을 당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 중에 아무것도 안 보일만큼 앞이 깜깜한 상황에 처한 분이 계시는가? 주위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안되는 사람이 있는가? 이 사울의 사례를 통해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런 분이 혹시 있다고 한다면 지금 주님이 인생의 전환점을 허락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것이 목사의 설교가 아니라 주님의 음성이라고 받아드리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바꿀 것이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 시작될 것이다.

 

3. 인생의 전환점을 위한 세 가지 발판

▶ 마지막 결론을 말씀드리겠다. 이러한 주님께 신앙고백을 한 사람들이 인생의 전환점을 더 완벽하게 누릴 수 있는 발판 3가지를 말씀드리겠다. 오늘 성경의 본문에 나오는 청년 사울처럼 거창한 체험이 아니더라도 이 세가지를 잘하시면 능한 하나님의 열매를 얻게 된다. 첫째 말씀 각인이다. 저와 여러분들의 신앙생활 성공과 실패는 이 말씀을 깊게 각인하느냐 여부에 달려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각인된 것 만큼 응답이 오기 때문에 그렇다. 예배를 드리고 메시지도 들었지만 실제 문제가 터지게 되면 옛날 사람 그대로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박히는 만큼 계속 듣고 읽고 메시지를 따라가시면 된다. 말씀 각인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3직 성구, 인생의 3가지 문제, 또 복음의 7가지 필수 성구 등을 Daily Journal 에 쓰는 것이다. 보고 기록하는 것이다. 볼 때 눈이 동원되고 쓸 때 손이 동원된다. 읽을 때 입과 귀가 동원되어진다. 각인을 시키는 것이다. 렘넌트들은 필히 Daily Journal을 통해서 이것을 하시기 바란다. 두번째 발판은 기도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이것이 무엇인가? 여러분들에게 문제와 사건, 갈등과 위기가 올 수 있는데 이것들을 주님께 맡기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이고 여러분에게 생긴 여러가지 문제점들은 그리스도께 완전히 맡기는 것이다. 문제가 오게 되면 문제에 빠지지 말고 기도 속으로 몰입하는 것이다. 우리가 뿌리를 내린 것 만큼 열매를 얻게 되기 때문에 그렇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마지막은 전도 체질이다. 체질이 된 만큼 여러분의 미래와 운명이 결정되어진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 사는 유일한 이유는 전도와 선교 이외에는 없다. 이것이 삶이 되고 체질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제대로 못해서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7번 대재난을 당한 것이다. 나중에는 1900년동안 나라를 잃은 슬픔 때문에 방황하게 된 것이다. 제사장 국가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제사장 국가답게 열방을 향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전달했어야만 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부르신 것이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이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제사장이요 제사장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요한복음 4장에 보시면 여인이 한명 등장한다. 자신이 부끄러워서 남들 앞에 서지 못했던 그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다음에 고백을 한다. 아니 외친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동네에 가서 외쳤더니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 나왔다고 기록되어있다. 이 각인, 뿌리, 체질 되어지게 될 때 여러분들은 반드시 승리하게 된다. 말씀에 각인 시켜서 복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기도, 뿌리내려서 응답의 사람이 되기를 축원한다. 전도 체질이 되어서 제자를 찾고 제자를 세우는 제자 되기를 축원한다.

 

♠ 기도

▶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16년이 되는 동안 하나님이 인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옛 틀을 깨는 전환점이 되게 하옵소서. 한분한분 말씀 각인 시키고 기도 뿌리내려서 전도자의 삶 체질이 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