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다락방의 사람들 (26) -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사람들

September 15th, 2019

ICA Sunday Pulpit Message



♠ 서론

▶ 얼마 전에 로스앤젤레스 큰 경기장에서 케이팝 페스티벌이 있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모였다. 케이팝 가수들이 나와서 공연을 하지 않는 시간에도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서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에 따라서 춤을 추는 것을 방영했다. 한두 사람이 버스킹을 하는 듯이 하는 것이 아니고 수십, 수백명의 젊은이들이 나오는 음악에 맞추어서 똑같이 한 팀처럼 곳곳에서 춤을 추었다. 팬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팬들이 그렇게 좋아하고 열광하는 그 마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본인들에게 좋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도 함께 춤을 추고 팬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 지식을 많이 받은 사람은 남에게 지식을 전달해준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드러나는 것이다. 어떠한 간에 편안함을 갖고 누리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편안함이 전달된다. 자신 안에 있는 편안함이 드러나는 것이다. 또, 부모님이나 이성에게나 사랑을 받고 보호를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해주거나 보호해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에게 그런 사랑과 보호가 드러나는 것이다. 반대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들은 말을 할 때 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또는 상처를 서로 주고 받는 일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분이 가지고 있던 숨겨진 상처가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 때가 중요하다. ‘왜 나한테 상처를 줘? 내가 상처 받았어’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상대방이 나한테 상처 주는 말을 했을 때 내가 원래 상처를 가지고 있었으면 그 상처 주는 말로 인하여 내가 힘들어지게 된다. 반면에 내가 힘과 여유를 가지고 있게 되면 상처 주는 말 때문에 내가 힘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상처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측은하고 안타깝게 보이고 여겨진다. 사람들은 보통 ‘저 사람이 내게 상처를 줬어’

▶ 그런 인과관계만 따지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자녀이다. 이 지구 상에 구원을 받을 사람이 나 밖에 없을지라도 하나님 아버지는 이 땅에 그리스도를 보내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꽃같은 눈동자로 사실상 지켜보고 계신다. 그렇다고 한다면 저 사람이 나한테 상처를 주는 말을 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아시고 허락하셨다고 한다면 뜻과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낮잠을 주무시다가 내가 상대방의 말을 듣고 상처받도록 방임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내게 계획이 있는 것이다. 그 상처 주는 사람들의 말을 통하여 나의 상태를 빨리 체크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이유이다.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상처 주는 말을 할 때 내가 상처를 받는다면 ‘내가 지금 연약해 있구나’ 알아차려야 한다. 하나님의 힘을 얻을 시간이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 상처 주는 사람을 내가 품을 수 있고 내가 기도해 줄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 모두 그리고 제가 이런 힘을 가지고 있기를 축원한다.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 사람의 위로에서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만 가능하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말씀한다. 그래서 모세는 말씀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요, 나의 구원이시로다.” 바울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고 말한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게 되어지면 이기는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이기게 하시는 그 힘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여하튼 간에 우리가 사람 앞에서, 사건 앞에서, 또 현장 앞에서 내 안에 있는 것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평소에 가지고 있던 것이 나타나고 나도 모르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의 주님이 되어주시고 또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시는 예수님은 과연 내면에 무엇을 가지고 있었길래 그 엄청난 일들을 완성하셨을까 알아봐야 한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연구해야 한다. 평상시에 열심히 돈을 벌고 가족을 부양하며 애들을 키우면서 틈틈이 박사학위 공부하는 것만큼 예수님이 어떤 존재인지 연구하셔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아는 만큼 하나님의 능력을 누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요한복음 17:3절에 말한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베드로는 뭐라고 했는가? 베드로후서 3:18 절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이렇게 끝맺었다.

 

1. 현장에서 하나님 아버지만을 드러내신 그리스도 예수

▶ 첫번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현장, 모든 삶에서 하나님 아버지만을 드러내셨다. 이것이 키이다. 마태복음 11장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이란 곳에 가서 능력을 베풀면서 전도하셨다. 능력을 많이 행하심에도 불구하고 가버나움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예수님이 안타까워하셨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그 옛날 지역 두로와 시돈에 지금처럼 내가 능력을 베풀면 그들이 전부 회개하고 돌아올텐데 너희들은 돌아오지 않는구나 그러시며 하신 말씀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안다는 말이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가 아들인 나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는 말이다. 즉, 내게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에 역사할 것이다. 회개하지 않는 그 사건을 통해서 아버지를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저 사람이 왜 저럴까. 이렇게 능력을 많이 체험하고도 왜 저럴까’ 예수님께서는 그 안에 아버지가 가득해 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다 아시고 이 모든 것을 내게 주셨다고 드러내셨다. 모든 사건 뿐만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도 고백하셨다. 마태복음 12장에 보시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보고한다. 많은 군중들 때문에 가족들이 진입을 못하니까 예수님께 아뢰기를 “저기에 가족 분들이 오셨는데 어떻게 할까요” 이렇게 보고를 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육신적인 가족을 무시하거나 배제했다는 말이 아니다. 육신적인 가족이든 영적인 가족이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진짜 가족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모든 판단, 모든 기준을 어디에 두고 계시는가? 하나님 아버지께 두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우리 안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서 이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사역 앞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요한복음에 보시게 되면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더 놀라운 것은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나의 양식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 언행, 사역 공생애 모든 것은 철저히 하나님 아버지 뜻과 계획에 기초해서 움직였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가슴 안에는 아버지 하나님만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모든 삶과 사역에서 그분만 드러난 것이다. 이런 사실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는 의미가 크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델이시다. 예수님은 우리의 스승이 되신다. 주와 그리스도가 되실 뿐만이 아니고 하나님의 본체이시다. 그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를 위해서 대신 롤모델이 되어주신 것이다. 우리의 주인 되시는 그분처럼 우리 안에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야 된다. 그 하나님이 드러나실 것이다. 이것을 전제로 해놓고 두번째를 보겠다.

 

2. 현장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드러낸 베드로

▶ 오늘 본문에 보시면 베드로 사도가 등장한다. 그를 통해서 두번의 기적이 일어난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애니아 라는 남자 그리고 다비다 라는 여자가 베드로를 통해서 기적이 일어났다. 보통 이 성경 구절을 읽을 때 이렇게 바라본다. ‘베드로가 성령충만을 받더니 8년된 불치병 자를 일으키고 이미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을 일으켰구나’ 맞다. 베드로에게 신의 은사가 나타난 것이 맞고 불가능한 기적이 일어난 것이 맞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은사와 기적들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봐야 한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 텍스트를 한걸음 더 들어가서 볼 것이다. 첫번째 환자의 이름은 애니아, 남성이다. 그 환자의 상태는 어떠했는가? 중풍을 맞은 지 8년이 되어서 일어나지 못하는 마비 환자이다. 이때 베드로가 한 말이 있다.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어떤 결과가 벌어졌는가? 애니야가 치유를 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중요한 결과가 있다. 그 8년된 중풍병자가 치유 받는 모습을 룻다와 사론 지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보고 주께로 돌아갔다. 베드로가 ‘하나님 아버지, 치유해 주옵소서’ 라고 비는 것이 아니었다. 주님께서 주신 은사의 권능을 내가 베푸노니라고 하지 않았다. '애니아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원하신다.’ 베드로 안에 거하고 계시는 그리스도를, 그리스도의 중심을 베드로가 드러낸 것이다. 이 베드로는 예수님과 3년반 동안 같이 동행하면서 낱낱이 보고 기억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많은 사람들을 일으킨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 안에 있음을 알고 있었다. 8년 동안 일어나지 못하는 환자를 보고 베드로는 기억했을 것이다. 요한복음 5장에 보시면 베데스다 연못가에 이르신 예수님을 기억하실 것이다. 거기에 예수님이 8년도 아니고 38년된 병자와 마주친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를 치유 시키시고 일으키셨다. 베드로는 그것을 다 기억하고 알고 있다. 또 애니아는 중풍병 환자였다.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2장에 보시면 가버나움 동네에서 말씀을 전하고 계시는데 집 안에서 메시지를 증거하고 있을 때 였다. 여러사람들이 자기 친구가 중풍병을 맞아서 일어나지 못하여 치유 받으러 예수님께 데리고 가려 하였다. 너무 많은 사람들 때문에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고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고. 어떻게 했는가? 그 환자를 이어 매고 집 지붕 위에 올라갔다. 지붕을 뜯어내고 자신들의 친구 중풍병 환자를 그 지붕에 달아 내렸다. 예수님께 직접 투하 시킨 것이다. 사람들은 놀랐다.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있다가 지붕이 뜯어지고 흙먼지가 날렸다. 오랫동안 사지가 마비되어 냄새 나는 환자가 내려왔다. 그 장면이 어떠했겠는가? 설교를 듣던 많은 사람들이 불쾌하고 당황스럽고 욕했을 것이다. 예수님이 설교를 중단시켰다. 남의 집 기물을 파손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하셨는가. 그들의 믿음을 칭찬하셨다. 그리고 중풍병환자를 일으키고 치유 시키셨다. 베드로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베드로가 기도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기억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치유사역, 예수님이 환자들을 긍휼이 여기는 마음, 어떤 질병도 일으키는 그분의 능력, 그분을 묵상했을 것이다. 베드로와 안에 거하시던 예수님이 혼연일체가 되어 하나가 됐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의 그런 믿음의 중심을 마음을 보시고 환자 애니아를 치유 시키신 것이다. 베드로를 통해서 베드로 안에서 거하시는 그리스도가 나타나신 것이다. 베드로는 자기가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계신 주님께 물었고 주님이 하시도록 말을 전달한 것이다. 베드로가 은사 집회를 한 것이 아니고 자기 능력을 자랑한 것이 아니다. 현대 교회에 이런 일들이 너무 비일비재하다. 여러분의 능력 뿐만 아니라 여러분에게 주신 여러가지 은혜와 많은 것들은 주님이 허락하고 공급하신 줄 믿는다. 저는 오늘 샤워하면서도 감사가 나왔다. 저는 샤워실만 들어가면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한 7년정도 말레이시아 정글 심부름을 했을 때 그곳에서는 따로 화장실이 없고 따로 세수할 곳이 없어서 개울가에서 늘 양치질하고 샤워를 했다. 그 흐르는 냇물에 똥도 싸고 오줌도 싸고 쌀도 씻고 옷도 빨았다. 제가 그것을 많이 힘들어했다. 그래서 내 집안에 냄새 나지않고 물이 잘 나와서 샤워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저는 그렇다는 말이다. 주님의 공급하신 은혜인 줄로 믿는다. 그렇게 해서 베드로는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드러냄으로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 두번째는 8년정도 누어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돌아가신 분이다. 환자 이름은 다비다, 여자이다. 환자의 상태는 죽어서 이미 시체가 되었다. 이때 베드로가 말한다. 다른 사람들을 다 내어 보내고 본인은 시체와 반대방향으로 앉아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다. 주님께 기도하고 난 다음에 다시 방향을 바꾸어 시체를 향하여 말씀한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어떻게 되었는가?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그리고 사람들을 오게 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봤다. 죽은 자가 살아났다. 이 장면을 본 사람, 이 소문을 들은 온 욥바 사람들이 주를 믿더라 라고 되었다. 참 놀랍지 않은가? 어떻게 해서 베드로는 다비다 시체를 향해서 “다비다야 일어나라” 고 말씀 할 수 있었는가? 아까 말씀 드렸다시피 베드로는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모든 것을 보고 기억했을 것이다. 누가복음 7장에 나인이란 성에 과부가 있었는데 그녀의 아들이 죽었다. 그 장례를 보면서 예수님께서 과부를 불쌍히 여기시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베드로는 그것을 봤다. 누가복음 8장에는 회당장인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 그리고 젊은 여자를 향해서 예수님을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과부의 아들이 일어났고 회당장의 딸이 살아난 것이다. 요한복음 11장에는 더 큰 일이 벌어졌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빠, 나사로가 무덤에 들어가 있었다. 썩어서 냄새까지 났다. 그래서 예수님이 외쳤다고 되어있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그리고 그가 나왔다. 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던 베드로는 그 주님을 안에 모시고 있던 것이다. 죽은 자들을 향하여 명령하고 말씀했던 예수님, 그 예수님이 베드로 안에 거했던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을 했고 명령했던 것이다. 다른 신의 은사 집회가 아니었고 자기 안에 있던 그리스도를 드러냈을 뿐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능력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사역인 줄로 믿는다. 베드로는 안에 있던 그리스도를 드러냈을 뿐이다. 이렇게 애니야를 일으키고 다비다를 살려낸 베드로는 무엇을 했는가? 사도행전 9장 마지막에 보시면 피장 시몬의 집에 머물렀다고 나와있다. 자기 고향 땅에서, 자기의 본 교회에서 여러 지역을 예수님처럼 베드로는 순회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룻다 지방에 이르러서는 애니야를 치유시킨 것이다. 룻다 지역에 베드로가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 룻다 지역에 가까운 곳이 욥바라고 하는 지역인데 다비자 여제자가 거기서 죽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근처 룻다에 있는 베드로를 초청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 지역으로 옮겨가서 다비다를 살려낸 것이다. 그러면서 피장 시몬의 집, 욥바 지역에 머문 것이다.

▶ 다음 장인 사도행전 10장을 보시면 가이사랴 지방에서 고넬료는 살리는 베드로의 사역이 연결된다. 그래서 군선교의 문이 열리게 된다. 룻다와 욥바에 머무는 것이 그 동네의 절경을 찾아 휴양을 하러 간 것이 아니고 계속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여시는 문들을 인도 받았던 것이다. 베드로가 머문 모든 지역에서 치유와 기적과 전도의 문이 열렸다. 이런 일은 누구의 일과 비슷한가? 예수님과 똑같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일어났다. 즉, 베드로는 모든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고 메시지를 전하면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드러낸 것이다. 이 욥바 지역에 머물면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미지의 현장이다. 주님께서 미리 하실 일들을 기도하며 준비했던 현장이었다. 안에 있는, 함께 동행하는 그리스도를 동행하며 드러내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조금만 인정하고 동행하고 교제하며 그분을 드러내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풍성하신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풍성함으로 함께하실 것이다. 치유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여러분들을 치유할 것이다. 감기 몸살 걸리신 분들 치유 받기 바란다. 여러가지 질병 가운데 거하시는 분들 하나님의 치유하심이 있기를 바란다. 응답 주시는 주님이 여러분에게 응답하실 것이다. 여러분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드러내기만 하면 축복 하시는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실 것이다. 모든 것을 회복하신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드러내셨던 것처럼 베드로는 그 주님을 드러내신 것이다. 저와 여러분들은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사람들이다.

 

3. 우리는 평생 복음만을 누리고 드러내는 교회의 성도들이다.

▶ 마지막 결론이다. 베드로가 이처럼 누렸다고 하면 이 말씀을 듣는 우리도 누릴 수 있을 줄로 믿는다. 베드로 안에 거하셨던 그리스도하고 우리 안에 거하신 그리스도가 같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 복음만 누릴 수 있기를 바라고, 오직 그리스도만 누리고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그리스도를 누리고,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누릴 수 있을까? 답은 무엇인가? 말씀, 기도, 전도이다.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의 비밀 안에서 말씀의 사람, 말씀의 사람이 되시면 된다. 그리고 기도는 기도에 의한 사람 By prayer가 되시면 된다. 그리고 전도를 위한 For evangelism 그 사람이 되면 된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같지 않습니까? Of, By, For. 누가 한 말 같은가? 링컨이 말했다.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이라고 그랬다. 내가 차용한건 아니다. 우리가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누릴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4:4에 뭐라고 하셨는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8:8에는 뭐라고 하셨는가? 백부장이라고 하는 자의 집에 예수님이 찾아 왔다. 이때 백부장이 어떻게 반응하는가? 달려 나오면서 “황공하옵게도 어찌 직접 오십니까?” 몸둘 바를 몰랐다. “백부장인 이 군인인 나에게도 수하의 부하가 있기 때문에 오라 가라 명령하면 다 이루어지기 때문에 주께서 말씀만 하시면 될텐데 직접 오시다니” 황송해 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이 소리를 들은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온 이스라엘 중에 이만한 믿음을 본적이 없다고 하셨다. 말씀을 붙잡게 되어지게 되면 주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는 사실을 백부장은 알았고 예수님은 칭찬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시면, 마리아와 마르다 집에 예수님이 찾아온다.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라고 되어있다. 예수님 대접하기 바쁜 마르다는 동생 마리아가 기분이 나빴다. 얘 좀 혼내 주길 원했다. 언니는 일하고 있는데 앉아가지고 뭐하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 네 동생 마리아는 좋은 것을 택하셨으니 이를 평생 잃지 아니하리라. 마리아는 주의 발 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이렇게 되어있다. 말씀 받는 일을 주님이 기뻐하셨다. 말씀에 주인되시는 주님이 말씀의 사람을 인정하고 칭찬한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을 포럼하시기 바란다. 점심 드시면서 말씀 포럼하시라. 교회 안에는 말씀만 메시지만 이슈가 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은 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고, 교회 안에는 선악간의 시비가 있으면 교회가 아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먹고 죽은 것이다. 교회 안에서 선악간의 판단하시면 큰일난다. 왜 이렇게 목사가 과격한 표현을 하는가? 그냥 지나치지 말고 기억해 두시라고 말한 것이다. 오늘 강단에 전달된 메시지만 이슈가 되어야 한다. “오늘 메시지를 이렇게 들었는데 사실 몰랐다.” “이 부분에 대해서 내가 좀 더 묵상을 하고 싶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맞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말씀이 왕성하게 되어야 한다. 말씀만 이슈가 되어야 한다. 담임목사가 주일에 어떤 말씀을 얘기했는가? “내가 이 메시지를 들었는데 잘 이해가 안간다.” “당신은 아느냐?” 나도 모르겠다. 그럼 우리 따로 한 번 물어보자” 라든지 여러분이 말씀만 이슈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기도에 의한 사람이다. 기도에 의하여 움직인다는 것이다. 마가복음 1: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셨다. 사도행전 3장에는 베드로팀 베드로와 요한이 제 구시 기도시간에 성전 미문 앞에서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사도행전 16장에는 바울팀이 그 안식일에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기도한 것이다. 이 기도의 스케쥴을 가지고 모든 것을 움직인 것이다. 여러분도 그렇게 인도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전도를 위한 사람이다. 할 것은 전도 밖에 없다. 마가복음 1장 38절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전도만을 위해 살았던 예수님께서는 12제자들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마가복음 3장에 예수님이 원하시는 자들과 제자들을 불러서 함께 하게 하셨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그리고 결국에 3년 반 동안 끌고 다니시면서 전도하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그렇게 하려고 구원의 길을 그렇게 쓰라고 하고, 암송하라 그러고, 전도, 선교의 관점으로 성경을 보라고 하는 이유가 그런 것이다. 그리스도의 후예, 마가다락방의 사람들 또한 그렇게 했다. 사도행전 5: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좌우 옆 분들과 고백하시기 바란다. “말씀의 사람이 됩시다.” “기도에 의한 사람이 됩시다.” “전도를 위한 사람이 됩시다.” 여러분들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를 드러내심으로 육신 치유, 건강 회복, 풍성한 삶 되시기를 축원한다. 이 시간 눈을 감고 주님을 함께 바라봅시다.

▶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를 드러내게 해달라고 마음 속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베드로 안에 거하셨던 그리스도께서는 8년된 병자를 일으키고 죽은 사람을 살려내셨다. 혹시 여러분 중에 육신의 질병 가운데 고통을 당하고 계신 분이 있는가? 마음의 짐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는가?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진 분이 있는가? 말 못할 여러가지 사건 사고로 어려움을 당하고 계신 분이 있는가? 상처에 빠진 분이 계신가? 여러분 안에 있는 그리스도로 드러내길 바란다. 환절기에 감기몸살로 시달리는 분 역시 주님이 치유하고 낫게 하시길 원하신다. 여러분 가운데 고질적인 고통가운데 계신 분이 있는가? 혈액에 관련된 질병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는가? 혈루증 여인을 치유하고 죽은 자를 살리셨던 그리스도를 드러내시기 바란다. 그 주님이 지금 여러분을 향하여 일어나라 말씀하신다. 에덴의 주인 되어 주시는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풍성한 응답으로 함께 하시길 원하신다. 미래의 진로를 놓고 기도하는 분이 있는가? 우리가 많은 기획을 짤지라도 인도하시는 분은 여호와이시기에 주님이 모든 것을 아시고 완벽히 예비하셨음을 믿고 그리스도를 고백하시기 바란다. 그리스도께 신앙고백으로 그리스도께 기도함으로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를 드러내시기 바란다.

 

♠ 기도

▶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의 기도 들으시고 응답해 주심을 인하여 찬양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모든 것을 주셨고, 하늘과 땅을 움직이는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승리, 하나님의 기적을 보게 하소서. 연약한 자들에게 강건한 힘을 입게 하시고 무너진 자를 회복시켜 주옵소서. 하나님의 능력을 새로 힘입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