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새 부대가 되기 원합니다

September 17th, 2017

ICA Sunday Pulpit Message



▶ 말씀이 살아서 여러분 삶 가운데에 역사하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막 입학 했을 때 복음을 처음 듣고 다락방을 처음 시작했습니다. 그때에 저희 집 상황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당연히 불신자 가정이었고 지금은 드문 8남매중에서 저는 막내입니다. 그래서 저희 부모님은 연세가 많으셨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문제가 조금 있으셨습니다. 알콜 중독이시고 어머님께 폭력적이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집은 문제가 너무 많았고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중에 하나님이 복음을 듣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고등학교 때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저희 집 상황을 감추고 열심히 해서 인정받으려고 했습니다. 결국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멀리 부산까지 신학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과 통화 할 때마다 좋은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때 제 마음이 너무 불편하고 기쁘지 않았습니다. 신학생이라서 겉으로는 훈련도 받고 교회도 열심히 다녔지만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너무 많았습니다. 남들은 교통사고 나서 잘 죽는다고 하는데 저희 아버지는 교통사고도 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자식들을 너무 괴롭히니까 전화할 때마다 어머니는 우셨습니다. 저희 형제들도 다 불신자들인데 상황이 좋진 않았습니다. 표현을 안 했는데 제 마음에 있었던 이러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왜 저를 이런 가정에 태어나게 하셨나요? 우리 아버지로 왜 저런 아버지를 주셨나요? 왜 어머니는 무능 합니까?’ 저희 어머님이 한글을 모르십니다. 평생 미련하게 일만 하셨습니다. 요즘 같으면 아버지가 괴롭히면 이혼하고 나가면 되는데 자식을 8명이나 낳으시고 어디도 가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새벽에 기도하러 가도 기도가 아니라 원망을 하고 왔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고등학교 때 다락방을 몇십개씩 했는데도 마음에는 불평, 불신앙이 가득하였었습니다. 그때 저희 학교에서 인도로 단기 선교를 가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저는 학비도 겨우 마련해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인도로 단기선교를 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저희 과 선배였던 전도사님들이 어떻게 제 마음을 아시고 십시일반 돈을 모으셔서 그 단기선교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래서 19박 20일동안 인도에 비전 트립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희 학교 선배님께서 인도에 선교사로 계셨습니다. 저희가 도착해서 인도 북부지역 즉, 힌두교 성지, 겐지스강 근원까지 마을들을 다니면서 캠프하고 복음을 전하는 단기 선교사역을 20일 동안 했습니다. 벌써 21년 전입니다. 저는 그렇게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를 처음 봤습니다. 그 북부지역은 정말 비참하게 사는 지역이었습니다. 이렇게도 사람이 사는구나 깨달았습니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집이 없었습니다. 그냥 판자같은 곳에서 사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의 눈을 보면 희망이란 것을 찾아보기가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거기는 카스트 제도가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희망이 아예 없는 것입니다. 너무 비참 했습니다. 더 비참 했었던 것은, 그 마을마다 힌두교 성전이 있었습니다. 그 성전은 정말 멋지게 지어져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신을 섬기는지 그런 현장을 마을마다 가면서 보았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제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바라보고 계시는지 하나님의 시선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를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제가 제 마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세상에서 제일 가난하다고 불평을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너무 큰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랑 산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 생각, 가치관을 하나님이 다 바꾸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계십니까? 그리고 인도에서 돌아와서는 신기하게도 가정에 대한 불평, 제 낮은 열등감이 다 사라졌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저희 아버지가 용서가 되었습니다. 저희 아버지 영혼이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고 물론 한참 뒤에 제가 결혼하기 전날 아버지께서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다. 저희 가정이 그렇게 복음화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 저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잘못된 것들이 있다면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도 깨닫지 못합니다. 내 마음에 욕심이라는 마음이 있다면 보지를 못하게 됩니다.

▶ 한국 교회의 상황을 통해 우리 욕심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저희 교단 말고 다른 교단의 목사님들 중에서 존경하는 목사님들이 몇 분 계십니다. 인천에 가면 성도가 15,000명 정도 모이는 큰 교회가 있습니다. 정말 큰 교회입니다. 그 교회의 목사님께서 32년정도 목회를 하셨습니다. 제가 신학교 때 저희 교수님이 추천해주신 책이 그분이 쓰신 책이었습니다. 모델이 될 만큼 존경받는 목사님 이라고 교수님께서 소개를 시켜 주셨습니다. 제가 그 책을 읽고 너무 감동을 받았었습니다. 이분이 그냥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에 가난하고 소외된 장애인들, 외국에서 오시는 다민족들에게 많은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그래서 정말 많은 성도님들과 지역사람들이 그 목사님을 존경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그래서 그 교회를 두 번 정도 구경하러 가봤습니다. 교회가 너무 은혜로웠습니다. 잘한다 이런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흘렀습니다. 작년에 인터넷에서 뉴스를 보는데 그 목사님의 이름이 기사에 나왔습니다. 그 목사님과 교회가 분쟁을 하여 법원에서 변호사까지 선임하여 서로 싸우고 있다고 되어있었습니다. 저는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려고 작년에 그 교회를 갔었습니다. 그리고 갔더니 왜 교회와 목사님이 싸우는지 충격적인 이유를 듣게 되었습니다. 작년은 목사님이 은퇴하시는 해였습니다. 이제 원로 목사님으로 은퇴를 하시기 때문에 교회에서 퇴직금을 준비해서 드렸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그 퇴직금이 적다고 거부 하셨습니다. 자신이 평생 이 교회를 개척해서 키웠는데 이것밖에 주지 않느냐고 거부하셨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얼마를 요구하셨습니다. 교회에서는 그럴 수 없다고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시작이 되어서 법정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목사님이 이기셨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요구하는 금액을 다 받아냈습니다. 제가 교회에 갔다가 그것을 듣고 집에 오는 길에 사람 마음이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욕심이라는 마음 하나 때문에 32년간 쌓아온 존경과 사랑을 한번에 잃게 된 것입니다. 만약에 욕심, 이기심, 교만 이런 것이 없으셨다면 평생 존경받고 사랑받으실 분이셨습니다. 저는 항상 잠언 30장 7절에서 9절을 가지고 기도를 합니다. ‘내가 두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 신앙생활은 예수님을 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욕심이 들어오면 하나님을 향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것이 그 목사님의 이야기 입니까? 저도 그런 경험을 너무 많이 했었습니다. 저는 젊으니까 시스템과 프로그램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또 수 만명이 참석하는 램넌트 대회, 집회를 진행하기 때문에 많은 준비를 해서 잘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면 예수님이 필요 없을 때가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어느때는 신실하게 눈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던 장로님이 응답을 받고 사업이 잘되니까 예수님을 더이상 찾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저는 그 사업이 잘 된 것이 저주라고 생각이 됩니다. 은혜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놓쳐버린 것입니다. 오늘 마가복음 2장 말씀을 가지고 신앙생활에 대해서 나누려고 합니다. 마가복음 2장 18절에서 20절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혹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신앙생활이 예수님을 향하고 있지 않다면 얼마나 웃길까요? 그런데 실제로 그런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 본문의 바리새인들이 금식을 하고 있습니다. 원래 유대인들은 일년에 한번 금식하는 날이 있습니다. 대속죄일에 전 이스라엘이 다 금식을 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번씩 금식을 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왜 무엇 때문에 금식하는 지를 모르고 금식을 했습니다. 이 좋은 금식이 나중에는 어떻게 됬습니까? 남을 정죄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때가 옵니다. 우리도 조심해야 합니다. ‘난 훈련을 많이 받았어. 난 전도를 많이 했어. 난 교회에서 헌금도 많이 했어. 너희들은 뭐 했어? 너는 왜 그래?’ 바리새인들이 이러 하였습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두번씩 금식하는데 너희들은 왜 금식하지 않아?’ 여러분 물론 금식은 굉장히 중요한 기도의 수단입니다. 아무것도 먹지않고 기도하는 것만큼 맑은 정신과 집중력을 가져다 주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금식이 예수님과 상관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 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중심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점차 멀어지는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하고 있는 기도, 내가 하고 있는 사역, 내가 살아가는 삶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보고 뭐라고 했습니까?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무서운 말입니다. ‘난 너희들이 금식하면서 기도하는 것을 본적이 없어. 너희들이 열심히 헌금하고 열심히 구제하는 것을 한번도 들어 본적이 없어.’ 여러분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금식하는 것입니까? 무언가 내 만족을 위해서 그리고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사역을 열심히 하는 것입니까?

▶ 종교 개혁을 아십니까? 올해가 5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초대교회가 예수님 중심이 되어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자신들의 교회가 커지고 사역에 열매들이 많아지니까 점차 예수님에게서 벗어났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교회에 예수님이 없어졌습니다. 그리스도를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이 중세 교회입니다. 너무 멀리 예수님에게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복음으로 그리스도로 회복하려고 했던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이 종교개혁 전후 역사가 100년 역사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을 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겪었는지 모릅니다.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가기 위해서 그런 일들을 겪어야 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 오늘 21절에 보면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여기서 생베 조각이 무엇입니까? 표백, 제단, 가공을 하지 않은 순수한 원단을 이야기합니다. 그 천을 다 낡아서 해어지는 옷에 붙이지 않습니다. 거기다 연결해서 붙이면 양쪽 다 쓸모 없게 됩니다. 여기서 생베 조각은 예수님 본인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낡은 옷은 바리새인의 전통, 그들의 잘못된 신앙생활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우리에게 찾아 오셨는데 우리의 전통, 생각, 교만, 욕심이 그대로 있으면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우리의 행위가 예수님을 멀리 있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처음에는 메시야가 오시기를, 간절히 영혼이 구원을 받기를 그렇게 금식하면서 기도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나중에는 이 금식 자체가 우상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낡은 옷이 너무 이해가 됩니다. 사실 저와 여러분의 인생 자체가 낡은 옷입니다. 제 마음이 낡은 옷입니다. 저는 제 마음이 얼마나 악하고 이기심과 교만이 많은지 늘 경험합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사역과 제가 맡고 있는 모든 직책이 다 사라져도 괜찮다라고 기도는 합니다. 막상 그런 것들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4년전에 하던 일들에 다 사표를 내고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예전 교회에도 사표를 냈고 하고 있었던 RGS 사역에도 사표를 냈습니다. 램넌트 총국에도 사표를 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척하고 사표를 냈습니다. 정말 공허하고 허전하고 외로웠습니다. 제가 벌거벗은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개척 초기 그때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정말 무엇 때문에 감사하고 했는가?’ 지금 감사가 나와야 정상 아닙니까? 오직 예수가 아니고 내가 여태 쌓아오고 열심히 신앙생활해서 받았던 그 응답들이 내 마음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저는 개척을 정말 잘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때 오직 예수, 정말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았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라고 하신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 22절에 더 자세히 설명하고 계십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새 포도주 역시 낡은 가죽 부대에 절대 넣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이 포도주는 한국에서 김장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한국에서는 매년마다 일년 동안 먹을 김치를 담급니다. 김장을 새로 해서 작년 김치통에 다시 넣지 않습니다. 이스라엘도 몇 년 먹을 포도주를 생산해서 당연히 새 부대에 담아서 보관을 합니다. 새 부대가 저와 여러분 입니다. 우리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선택하셨고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우리는 사실 아무 힘이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사실은 여전히 낡고 썩어가는 부대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을 위해 새 포도주로, 생베 조각으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셨음에도 우리가 여전히 낡은 가죽 부대로 낡은 옷으로 살아간다면 옳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것이 금식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내가 죄인이구나 깨달은 사람임을 믿습니다. 내가 낡은 부대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임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살 수 없구나 라고 정말 겸손하고 낮은 마음이 아니면 예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보입니다.

▶ 축복은 누가 받습니까? 우리가 축복받는다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들을 많이 합니다. 축복을 달라고 기도하면 축복 받는다고 생각을 합니다. 내 삶은 여전히 축복과 상관없이 살아가고 있는데 축복 주시겠지 라는 이런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늘 죄 속에서 살아가는데 하나님이 응답을 주시겠지 이렇게 생각합니다. 새 부대가 되어야 합니다. 축복 받는 삶을 살면 축복을 받게 됩니다. 축복을 받을 만한 환경이 되면 축복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이 여전히 죄 속에 있다면 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여전히 어둠 속에 있다면 빛으로 나오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금식이라도 하셔야 합니다. 이것은 율법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제가 많은 램넌트들에게 신앙생활 하고 있냐고 질문을 합니다. 램넌트들은 ‘네, 예배 드렸어요. 아침에 기도수첩 했어요.’ 라고 답을 합니다. 그것 말고 정말 신앙생활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예배 드리고 기도수첩하면 그것으로 신앙생활을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날에는 자신 마음대로 삽니다. 우리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삽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고 있습니까? 여러분 예수님이 보이십니까?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예수님이 무엇을 보고 계시는지 그 예수님의 시선이 느껴지십니까? 여러분 신앙생활은 대충 아무렇게 생각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려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 마음, 생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직 예수가 되셔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새 부대가 되어야 합니다. 새 부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박국 2장 4절에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우리 마음에 교만이나 사탄이 주는 불신앙이나 이기심, 집착 이런 것이 있다면 예수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주일 날 예배시간에 앉아있어도 말씀을 듣고 메모를 해도 사실을 말씀을 못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내가 하고 있는 신앙생활이 각인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각인은 좋은 것이지만 제가 지금 말하는 각인은 안 좋은 각인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목사님께서 매주 강단을 통해서 말씀을 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성경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 때마다 새 은혜를 받으십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까? 아니면 예를 들어서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미움의 마음이 있습니다. 사람은 그럴 수 있습니다. 미운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계속 내 마음이 저 사람을 미워하는 것을 그대로 두면 안됩니다. 그것은 낡은 부대 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네 원수도 사랑하라 영혼을 바라봐라’ 사랑은 허다한 죄도 덮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마음을 바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역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공생애 사역을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렇게 금식하고 남을 정죄할 만큼 대단한 신앙생활을 했지만 그들은 그들 주변에 있는 창녀나 고아, 과부, 병자들, 세리들,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뭐가 진짜 힘입니까? 마음이 진짜 힘입니다. 우리는 가정 복음화가 돈이 있으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램넌트들이 말했습니다. ‘가정복음화 하기 위해서 제가 성공하려고 합니다. 제가 성공하고 돈 많이 벌고 좋은 지위를 얻으면 부모님이 복음을 듣지 않을까요?’ 맞는 생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완전히 틀렸습니다. 우리 지역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게 어떠한 스킬이나 프로그램, 실력, 재물이 있으면 이 지역에 복음 운동할 때 더 쉽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힘있는 사람 앞에 우리가 굴복을 합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굴복하지 않습니다. 굴복해주는 척을 합니다. 그것은 진짜 힘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아십니다.

▶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사람, 마음에 그 기쁨과 찬송이 있는 사람, 마음에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깨달은 사람, 마음에 예수님처럼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는 그 가정은 반드시 변화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많은 교회는 부흥하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날마다 체험하는 그 은혜와 마음이 있는 사람이 만약에 학교에 있다면 그 학교에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마음에 힘입니다. 마음은 엄청난 영향력이 있습니다. 그 마음을 쉽게 놓칠 수 있습니다. 사탄이 우리의 육신을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가 머리 나쁘게 우리의 삶에 가지고 있는 소유물을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죄가 무엇입니까? 죄가 우리의 삶을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을 공격합니다. 그래서 마음 안에 이기심, 집착심이 들어오면 어떻게 합니까? 여러분 우리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을 들여다 봐야 합니다. 그것이 묵상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우리 마음을 늘 살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모시고 계십니까? 그 대단한 모세가 뭐라고 기도했습니까? ‘내 주님을 내 앞에 항상 모십니다.’ 그 대단한 다윗이 아침마다 일어나서 뭐라고 기도했습니까? ‘내가 이 아침에 주의 얼굴을 구합니다.’ 그 대단한 전도운동을 했던 사도바울이 뭐라고 기도했습니까? ‘나는 주님 앞에 있을 때마다 내가 죄인 중에 괴수니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자 입니다. 주님 오늘 나에게 새 은혜를 주옵소서.’ 신앙생활은 마음입니다. 행위가 아닙니다. 그 마음에서 나오는 행위여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위입니다. 여러분 정말 그런 축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역대하 7장 14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 나가면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우리 가정을 하나님이 고치십니다. 우리 현장에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애써서 고치려고 했던 우리의 죄, 습관, 삶들을 모두 하나님께서 고치십니다. 예수님을 모시면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 삶에 주인으로 오시면 우리의 삶은 변화 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마음에 품으면 정말 고침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삶이 변화됩니다. 여러분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그런 은혜의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신앙생활 한다고 하지만 순간순간 예수님을 놓칠 때가 참 많습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바라보고 계신지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 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는 새 부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영혼을 살리고 예수님이 보시고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그 마음을 우리가 가지고 사는 것이 정말 축복된 인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 인한 감사와 찬송, 기쁨이 있는 우리의 마음이 되기를 같이 기도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