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은 제자를 남긴다

October 8th, 2017

ICA Sunday Pulpit Message



♠ 서론 - 식물의 씨앗, 동물의 짝짓기, 사람의 결혼

▶ 예전에 제가 감명 있게 봤던 ‘상도’라는 한국 드라마가 있습니다. 그 중에 대사가 하나 기억이 나는 것이 있습니다. ‘장사는 이문을 남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려고 해야 된다’ 라고 하는 대사가 있었습니다. 굉장히 뜻이 있는 말입니다. 보통 장사꾼들은 이윤을 챙기려다가 고객과 사람을 잃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상도에서는 그렇게 이야기 했다면 성도들인 우리들은 과연 무엇을 남겨야 할까요? 제자를 남겨야 합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은 제자를 남긴다 입니다. 왜 이 제목을 달았을까요? 하나님의 아들들인 우리는 살면서 제자를 남겨야 한다 라고 메세지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지금 여러분들께 설교를 하고 있는 이유가 제자를 남겨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라는 것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이 메세지를 두가지로 보겠습니다. 첫번째로, 왜 제자를 남겨야 되는가 라는 질문에 세상 이치를 통해서 볼 것이고, 두번째로는 성경의 증거를 가지고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제자를 남겨야 되겠구나 라는 진리를 세상의 이치를 통해서 한번 확인을 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언약을 붙잡자 라는 뜻입니다.

▶ 세상의 이치를 한번 보겠습니다. 성경 말씀이 아닌 세상의 이치를 보겠습니다. 우리가 꽃을 보거나 꽃의 향을 맡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래서 꽃을 키우거나, 꽃에 물을 주거나, 꽃의 색깔을 관찰하기만 해도 마음의 병과 육신의 병이 치유되는 증거가 확인이 됬습니다. 그것을 Flower Therapy 라고 합니다. 꽃이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좋은 꽃이 어떻게 지금까지 계속 피어나고 우리에게 보여질 수 있었을까요? 엄마 꽃이 있으면 새끼 꽃이 있고 그 다음세대의 꽃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럼 그 씨앗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십니까? 꽃의 씨 때문에 다음 꽃이 자라나는데 꽃이 씨앗을 어떻게 만드는지 아십니까? 꽃에는 꽃가루가 있습니다. 그 꽃가루 안에 있는 수술과 암술이 서로 붙을 때 씨앗이 자란다고 합니다. 꽃은 움직이지를 못하기 때문에 꿀벌들이나 나비들이 꽃과 꽃을 옮겨 다니면서 수술을 암술에 묻히게 되고 결국에는 씨앗이 자라난다고 합니다. 계속 그 다음 꽃이 그 다음 세대의 꽃이 이루어지면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보여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식물이 자식을 낳는 방법이고 자연의 이치가 그렇습니다. 동물들은 어떻습니까? 우리 집에는 강아지가 두 마리가 있습니다. 굉장히 귀엽습니다. 이 강아지들은 어떻게 태어났습니까? 암컷과 수컷이 짝짓기를 해서 그렇습니다. 동물들도 그렇게 해서 그 다음의 동물, 그 다음의 새끼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 인간은 어떻습니까? 만물의 영장이라고 표현합니다. 인간은 만물입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도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하여 결혼을 해서 애를 낳고 자식을 기릅니다. 우리는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식물도 그렇게 해서 다음세대를 이어갑니다. 땅에서 달리고 하늘을 나는 동물도 그렇게 해서 다음 세대가 이어져 가는 것입니다. 식물과 동물을 먹고 사는 인간 마저도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서 다음세대를 연결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당연한 축복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세상의 이치가 이렇기 때문에 영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 육신의 자녀도 있고 세상에는 정신적인, 사상적인 다음 세대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스승이라고 하고 멘토라고도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은 누군지 아십니까?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철학자 입니다. 인도의 영웅인 마하마트 간디(Mahatma Gandhi)도 스승이 있었습니다. 종교적으로 인생의 영향을 준 멘토가 바로 고칼레(Gokhale)였습니다. 투자의 귀재라고 하는 워렌 버핏도 벤자민 그래함(Benjamin Graham)이라는 멘토가 있었습니다. 빌 게이츠도 폴 알렌(Paul Allen)이라는 멘토가 있었고, 스티브 잡스도 빌 캠벨(Bill Campbell)라는 멘토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오프라 윈프리도 자신의 멘토가 바로 마야 엔젤루(Maya Angelou)라고 하는 배우, 작가, 시민 운동가였던 흑인 여성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상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서 제자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사실을 알고 영적인 세계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들인 우리는 영적인 자녀, 영적인 다음세대를 만들어야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이치가 식물, 동물, 인간, 사상가 모두 그 제자들이 계속해서 다음 세대를 이어가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 눈에 보이고 확인되는 세상의 이치를 통해서 우리가 이해하는 것입니다. 멘토들을 존경하고 사랑했기 때문에 사상과 뜻을 이어갔습니다. 동물 암컷과 수컷이 사랑했으니까 짝짓기를 했습니다. 인간도 남녀가 서로 사랑했기 때문에 결혼을 해서 애를 낳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영적인 세계가 본론인 것을 알고 있는 우리는 영적인 자녀, 제자를 당연히 남겨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남녀가 사랑해서 자녀를 갖는 것처럼 신부인 교회의 성도가 신랑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사랑하면 당연히 영적 자녀를 얻게 끔 되어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당연히 영적인 자녀가 생기게 끔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축복입니다. 씨앗을 얻고 새끼를 낳으며 아기가 태어나는 것, 다음 세대가 등장하는 것은 필연적인 응답입니다. 다음 세대가 있으니까 나의 미래가 담보가 되는 것입니다. 즉,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는 절대적인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아들들인 우리가 제자를 남기는 이유

▶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건물, 프로그램을 남긴 것이 아니고 열두 제자를 남긴 것입니다. 그분이 부활 하신 후에 열두 제자, 열한 제자에게 너희도 가서 제자를 만들라고 명령하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세상의 이치를 볼 때 영적인 하나님의 아들들인 우리도 영적인 자녀를 반드시 낳고 제자를 만들어야 되는구나 라는 이런 결론을 내야합니다. 이제까지 보았던 세상의 이치 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봐야겠습니다. 오늘 하나님 말씀 본문을 보면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만들라고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족속으로 세례를 주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가르쳐서 지키게 하라고 했습니다. 얼핏 보면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세례를 주려면 목사님, 선교사님이 되어야 하는데 신학교 가라는 말입니까? 영어도 잘 못하는데 모든 족속을 어떻게 찾아갑니까? 나도 모든 것을 지키지 못하는데 모든 것을 가르치고 지키라고 합니다.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오늘 설교를 통해서 한가지만 알고 있으면 됩니다. 그 예를 수제자인 베드로를 통해서 확인하고 언약으로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불렀습니다. ‘나를 따르라.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그런데 성경 안에 있는 베드로의 행적을 보게 되면 민망한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수제자인데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많이 헤매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4장을 보게 되면 예수님이 물위를 걸어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그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성질 급한 베드로가 자신도 물위를 걷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허락을 하셔서 베드로가 물위를 걷습니다. 그때 물에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베드로에게 두려움이 임했고 결국에는 물에  빠졌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건져 주셨습니다. ‘수고 많았다. 네 믿음이 거기까지구나. 앞으로 믿음을 계속 키우거라’ 하면 좋을 텐데 예수님이 혼냈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 이만큼 걸어간 것도 잘한 것인데 예수님께서 수제자를 혼냈습니다. 베드로가 얼마나 창피하고 민망했겠습니까? 다른 제자들 앞에서는 수제자로서 폼을 잡고 있었는데 스승에게 혼이 난 것입니다. 그것이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마태복음 16장에는 더 희한한 일이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데리고 갔습니다. ‘사람들이 도대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라는 질문에 성질 급한 베드로가 답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이 굉장히 기뻐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라’ 스승의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중요한 말을 던지십니다. 네가 말한 대로 내가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너희들을 위해서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후에 부활 할 것이다 라는 진짜 복음의 내용을 전하십니다. 그때 또 베드로가 나서서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고난을 받고 죽으셔야 됩니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이 생겨서는 안됩니다 라고 가로막을 때 예수님은 네가 나를 많이 사랑해 주는구나 그래도 나는 이 길을 가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귀의 자식아 너는 나를 실패시키는구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창피하게 꾸짖으셨습니다. 게다가 사단에 충만한 자도 아니고 마귀의 자식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실패시키는 장본인이 너로구나 라고 질책을 하십니다. 멋진 모습이 없습니다.

▶ 예수님께서 중대한 사역을 위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새도록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도 같이 기도하러 데리고 갔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때 잠들어 버렸습니다. ‘도대체 한시간도 깨어서 기도하지 못하겠느냐?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스승과 호흡이 맞지 않았습니다. 결국 로마 군사들이 예수님을 붙잡아 갔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제지하려 칼을 휘둘렀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귀를 베게 됩니다. 이때 예수님이 또 호통을 치셨습니다. ‘칼을 거두어라 칼을 든 자는 칼로서 망하느니라’ 지난주에 봤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죽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보호하고 예수님을 위하는 행동처럼 보였는데 그것 마저도 꾸중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진짜 붙잡혀 가실 때 예수님을 멀찍이 쫓아갑니다. 그렇게 하다가 주위사람들에게 들킵니다. 주위사람들이 예수의 제자 아니냐? 예수를 따라다니는 자 아니냐? 라고 물었을 때 세번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합니다. 닭이 세번 울 때 회계를 하긴 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배신한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을 확인하고 무리들을 이끌고 자신의 고향으로 내려갑니다. 옛날 생활로 돌아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께서 부활을 할 것이라고 여러차례 메세지를 했는데 안 믿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불신앙, 실수, 실패, 낙심으로 가득한 자 입니다. 어디 한 구석을 봐도 신앙 고백한 것 이외에는 수제자의 모습이 없습니다.

▶ 이런 자를 예수님이 찾아왔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게 되면 나옵니다.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는 것을 도와줍니다. 함께 식사도 합니다. 회복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번이나 같은 질문을 반복하십니다. 그러면서 네 어린양을 먹이고 치라고 사명까지 주십니다. 우리 같으면 어떻게 할까요? 어디 한번 잘되나 두고 볼 것입니다. 나중에 결국 베드로는 성령충만을 받습니다. 수제자로서의 사역을 잘 감당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베드로의 실패보다 예수님의 사랑이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베드로의 죄보다 예수님의 은혜가 컸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에 보다시피 베드로가 그 이후에 많은 제자들이 생겼습니다. 마가다락방에 모인 열다섯개국의 산업인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나중에는 법정에 섭니다. 사형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명설교를 합니다. 그리고 삼천 제자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많은 제자들을 더해 주셨습니다. 나중에는 로마의 군인 고넬료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달이 됩니다. 베드로가 변화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실수하고 실패하고 나중에는 배신까지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수제자로서 크게 응답을 받았을까요? 그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때문에 그렇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게 되면 아이를 얻습니다. 예수님은 변함없이 베드로를 사랑하셨습니다. 낙심해서 무너졌지만 다시 주님을 사랑함을 고백하게 될 때 하나님이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가 비록 연약하고 부족하고 실수, 실패가 많지만 주님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만 있으면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찾아야 될 언약입니다. 세상의 이치로 무슨 예를 들었습니까? 식물, 동물, 사람 모든 피조물이 다 이렇습니다. 육신적인 세상의 것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를 알고 있는 우리는 영적인 자녀, 제자가 있겠구나 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성경에 보니까 제자를 만들라고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내용입니다. 제자를 만들려 보니까 가슴이 막힙니다. 내가 어떻게 모든 족속에 갑니까? 내가 어떻게 세례를 줍니까? 나도 말씀을 못 지키는데 어떻게 행하라고 가르칩니까? 못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수제자 베드로도 형편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실수, 실패, 배신까지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찾아오신 사랑을 주셨습니다. 다른 것 요구하지 않고 나를 사랑하는 가를 물어봤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다음 일을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이고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이고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은 방향만 잡으세요. 제자를 남겨야 하는구나. 내가 지금 결혼을 안해서 아이가 없더라도 제자는 남겨야 되는구나 라는 것을 세상의 이치를 통해서 유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확정하는 것입니다.

▶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확인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통해서 확정하는 것입니다. 찾아낸 것이 무엇입니까? 연약하고 부족해서 못할 것 같은데 사랑 고백만 하게 되면 그 뒤는 하나님이 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인도하시고 응답하신 것입니다. 이것 두가지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지상에 제자를 남기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우리도 제자를 세우고 남기는 것이 하나님의 당연한 축복이요, 필연적인 응답이요, 절대적인 증거가 됩니다. 두번째는 그러면 내가 과연 할 수 있습니까?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실수, 실패, 심지어는 배신까지 했지만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찾아와서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고 다시 부르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베푸신 것입니다. 나의 부족함 보다 나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이 큰 줄로 믿습니다. 나를 이끌어 가실 줄을 믿습니다. 나에게 진짜 제자를 주실 줄을 믿습니다. 내 부족함 보다 주님 사랑이 크십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옛날의 삶으로 돌아갔던 베드로가 제가 주님 사랑하는 것 아시잖아요 이 고백만 했는데 주님이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둘 사랑으로 인하여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수많은 제자를 더하셨습니다. 다음 주일에는 예수님께서 남기신 제자들은 어떠한 제자들이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정리해보겠습니다. 세상의 식물, 동물, 사람은 자식, 제자를 남깁니다. 성경에서 확인해보니까 명령으로 되어있습니다. 하려 보니까 못하겠습니다. 자세히 보니까 수제자인 베드로는 사랑 고백만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음속 진심으로 부족함을 고백하고,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능력으로 역사해달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실 줄 믿습니다.

▶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인 우리가 왜 제자를 남겨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았습니다. 깨달았습니다. 이제 정말로 제자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주신 언약의 말씀처럼 그리스도를 정말로 사랑합니다. 나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친구도 가족도 나를 다 도와줄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도와주시고 인도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