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현장과 정복 언약

October 21st, 2018

ICA Sunday Pulpit Message



♠ 서론

▶ 지난 주에는 애굽 현장과 출애굽 언약을 살펴 보았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탈출해서 해방된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몇 천년 전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똑같은 세상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렇다고 한다면 여기에서 탈출, 해방되는 길이 무엇인지를 당연히 질문 해야겠다. 세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 애굽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이 바로 피제사, 십자가의 피 이외에는 없다. 모세가 이 언약을 붙잡고 승리하고 인생에 성공을 했다. 하나님이 모세를 사용하시고 대대로 축복을 받았다. 그러한 축복의 내용을 내 삶에 적용 해야겠다는 것이 믿음생활이다. 우리는 모기지의 노예, 자식 교육의 노예, 사람의 노예, 시간의 노예, 등 여러가지에 묶여 살고 있다. 그런 모든 것으로부터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과 응답을 받아서 넉넉히 이기는 삶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지금 성경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현장에서 빠져서 죽지 않고 동화되지 않고 그 현장을 정복할 수 있는, 현장에서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계속해서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내가 오스틴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오스틴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이 무엇인지를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킬린이나 웨이코나 달라스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면 그 지역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찾을 때 본격적인 축복과 응답이 시작된다.

▶ 오늘은 바로 모세의 바로 다음 세대인 여호수아의 시대 현장과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보려고 한다. 대부분이 세상과 세상에 사물들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 변하는 것들 중에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변하지 않는 것들의 가치를 보게 된다. 우리가 웅장한 자연을 볼 때에 탄복,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 이유는 오래전 태고적부터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변치 않고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흥했다가 망하고 끊임없이 변화된다. 사람들은 태어나고 살다가 죽어간다. 그렇게 수많이 변화되는 역사 속에 웅장한 자연은 모든 것을 머금고 그 자리에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볼 때에 참 멋지구나 생각이 되고 그래서 여행도 하고 관광도 하는 것이다. 종종 사람들 중에서도 변함없이 초지일관 하는 자들을 보면서 우리는 찬사를 보낸다. 그러다 보니까 반대로 변치 않기를 바라는 자들이 변했을 때 어떤 마음이 드는가? 우리의 기대와 바라는 바는 변치 않기를 원했는데 그 사람이 변질됐다 거나 변화되어지게 되면 심한 배반감도 느끼게 된다. 또는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과 같이 알고 있는 지인이나 유명한 연예인들이 세월이 지나 늙은 모습을 보면 안타까움을 갖기도 한다. 엊그제 인터넷에서 자료 검색을 하다가 한 영화배우의 현재 근황 모습을 보게 되었다. 007이란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왔던 숀 코너리이라는 배우였다. 훤칠한 키에 부리부리한 이목구비가 멋졌었다. 그 사람의 영화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과 재미를 느꼈었다. 그런데 근황을 보니까 머리는 백발이 되고 많이 늙어서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어떤 젊은이의 부축을 받으면서 터덕터덕 걸어가는 모습을 봤다. 영화배우 숀 코너리에 대한 기억과 잔상은 그 멋진 액션으로만 가지고 있다가 그런 모습을 보니까 측은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즉,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이다. 있던 것이 없어진다. 젊은 청춘이 늙은 연로함으로 변화된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도 변하는 세상이다. 그런 것들을 보고 체험하면서 우리는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살면 살수록 인생은 별거 없구나라는 허망함에 사람은 빠지게 되어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변해도 절대 결코 변하지 않는 그것이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이다. 그래서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허무하고 허망한 것이 보통 사람인데 날이 가면 갈수록 힘이 나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더욱 흥분이 되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이다. 모든 것이 변해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언약을 보고 붙잡았기 때문이다.

 

1. 모든 것이 변해도 바뀌지 않는 언약

▶ 첫번째이다. 시대나 인물, 상황이 변해도 하나님의 언약과 그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오늘 읽은 여호수아 1장 본문을 보시면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라는 말이 나온다. 모세가 누구인가? 출애굽의 대기적을 일으킨 사람이다.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의 여정 가운데 많은 표적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광야의 40년간의 여정을 호령하며200만 또는 300만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었던 영도자이다. 그런데 이제 숨을 거두게 된 것이다. 모세의 시대가 사라진 것이다. 모세가 다스렸던 시대가 끝났다는 말이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낙점했다. 즉, 사람이 바뀐 것이다. 지도자 인물이 바뀐 것이다. 모세의 시대에서 여호수아의 시대로 바뀐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언약은 그대로 였다. 모세에게 약속했던, 모세에게 보장했던 그 가나안 땅을 계속 향하여 들어가라. 언약을 통해서 파장되고 일어나는 결과, 축복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어떤 땅인가? 바로 여호수아서 1장 3절과 6절에 있는 것처럼, 모세에게 말했던 땅이다. 변하지 않는 이야기이다. 조상에게 맹세했던 땅이다. 시대와 인물, 상황이 변해도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성취되어야 되기 때문에 여호수아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 모세에게 말했던 그 땅이 이루어져야 되기 때문에 지속되는 것이다. 조상에게 맹세했던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고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해야 하기 때문에 그 언약이 변화되지 않는 것이다. 다 변한다. 여러분이 굳건히 붙들 것은 하나님의 언약 이외에는 없다. 그 언약을 붙잡은 자의 축복도 변함없이 성취된다. 언약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약을 위한 축복도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여호수아서 1장 5절처럼 “내가 모세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것처럼 네 곁을 떠나지 않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모세와 늘, 항상, 시분초마다 함께 했던 것처럼 내가 너와 늘, 항상, 시분초마다 함께 할 것이다. 언약도 축복도 변하지 않았다. 여기에 우리의 힘이 달려있는 것이다. 여기에 소망이 있는 것이다. 너와 함께 할 것이다. 여러분과 함께 할 것이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기억하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언약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는 절대 버림 받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를 망하게 두지 아니하신다. 시분초마다 하나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 이것을 믿고 누리시기 바란다.

▶ 여기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것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와 일하시는 방법이다. 사람도 말로나 문서로 약속을 한다. 그 약속을 이루어가는 것이 인생이다. 우리가 드리는 교회 예배도 약속한 것이다. 10시 10분까지 와서 기도하며 미리 찬양하며 예배를 준비합시다 라고 약속 했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모이는 것이다. 직장의 일과 월급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주당 몇시간을 일을 할 테니 시간당 얼마를 주고 받자고 약속되었기 때문에 일을 하고 내가 돈을 받는 것이다. 정보와 비지니스하시는 분들도 약속되어 있는 것이다. 일년에 한번씩 income tax를 몇%에 따라서 내자고 약속되어있기 때문에 세금 신고를 하고 돈을 납부하는 것이다. 파란 불에는 사람이 지나가고 빨간 불에는 사람이 선다 라고 교통법규 약속을 정한 것이다. 사업의 계약, 근로의 계약 다 약속하신 것이다. 결혼의 약속도 약속이다. 그래서 함께 사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도 인간과 약속을 맺으시고 맺으신 그 약속을 이루어 나가신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말한다. 그 신앙생활의 처음과 중간, 마지막이 전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그 약속을 따라가는 것이다. 언약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언약을 붙잡는 자는 우리 신앙인들이다. 언약을 붙잡으시 길 바란다. 언젠간 여러분이 천국에 다다를 때 영화로운 빛과 같은 옷을 두루 입으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면전을 향하여 질문할 것이다. ‘너는 여기에 왜 왔느냐?’ 그때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기로 약속하셨으니 왔다고 말씀하실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의 입에서 내뱉은 그 말씀은 변치 아니하시고, 변개치 아니하시고, 반드시 성취하시기에 그 언약 붙잡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라고 말씀하실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너희가 거할 처소를 예비하러 가오니 라고 말씀하신 그 약속을 붙잡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헌금을 많이 해서, 봉사를 많이 해서, 목사님 말씀을 잘 들었는데 라고 말해서 낭패 당하지 마시고 언약을 붙잡기를 바란다. 설교 말씀을 들을 때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으려 메세지를 듣는 것이다. 여선교회에서 매주 고생하시고 계신다. 이것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상급과 응답을 쌓아가는 아무도 모르는 신묘막측한 하나님과 나의 비밀이다 라고 생각을 하게 되면 안 힘들게 된다. 하나님과 나의 언약을 놓쳐버리니까 나는 평생 봉사하는데 다른 사람을 일하지 않는다 라고 생각되고 열이 받게 되는 것이다. 내가 잠시 언약을 놓쳤구나 깨달으시길 바란다. 모든 것에 언약을 붙잡으셔야 한다.

▶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자를 언약 백성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구 언약, 신 언약으로 나뉜 언약의 책이라고 한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신앙생활이 바로 언약을 붙잡는 삶이다. 하나님의 언약을 잊지 않고 끝까지 붙잡고 나아가는 것을 믿음이 좋다라고 한다. 그래서 주일 날 예배를 마치고 제가 가끔 예배를 통해서 설교 말씀을 통해서 붙잡은 언약이 무엇입니까 라고 제가 포럼을 한다. 이렇게 여쭈어 보면 다섯 가지 유형의 분들이 있다. 첫째는 기억이 전혀 안 난다는 분이 있다. 두번째로 듣기는 들었는데 도통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하시는 분도 계신다. 세번째는 목사님이 설교를 30-40분 하셨는데 다른 것은 기억이 안 나고 예화는 기억이 난다고 하시는 분이 계신다. 목사님 설교 내용을 요약 정리하시는 분이 계시다. 기억이 전혀 안나는 사람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메세지를 들어도 잘 기억이 안나고 안 들어온다고 하시는 분은 기록을 하시기 바란다. 우리 교회는 한국말을 하고 영어로 통역하기 때문에 중간에 쓸 시간이 있다. 중요한 내용을 메모하면서 들어보시면 치유가 된다. 자기가 적은 것을 다시 리뷰해보면 이런 말씀을 하셨구나 라고 올라오게 된다. 꼭 그렇게 해보시기 바란다. 두번째로 듣기는 들었는데 뜻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는 분들은 머리에 다른 무언가가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렇다. 말씀을 듣고 그것을 인지하고 해석하여서 내 것으로 분별하는 이 과정이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제 경우로는 염려와 걱정이 가득 차 있을 때 그렇게 되었다. 불평과 불만으로 꽉 차 있게 되면 무슨 소리는 들리는데 뜻은 이해를 못한다. 혹시 이런 분들이 있다면 메세지를 들으시면서 기록하고 더 나아가 여러분의 염려나 걱정, 불평과 불만도 기록하여 하나님의 능력에 맡겨 보시기 바란다. 그러면 반드시 치유된다. 또는 목사님 설교 중에서 예화만 기억이 나는 분들은 마음이 순수해서 그렇다. 그러신 분들은 메세지를 들을 때 기록을 하시면서 나중에 하나님의 지식을 의뢰해보시기 바란다. 즉, 복음을 꼼꼼히 차분하게 다시 정리해보시면 뜻을 알아듣고 또 메세지의 흐름을 타게 된다. 메세지 중에서 은혜 받은 것, 언약 붙잡은 것을 여쭈어 봤는데 메세지 서론, 대지 1, 2, 3, 결론을 요약 정리하시는 분이 있다. 많은 말씀 중에서 내 가슴을 치는 것을 여쭈어 봤는데 그것을 말씀하지 않고 서론, 본론, 결론을 쭉 정리 요약을 하시는 분들이다. 이런 분들은 머리가 똑똑하여서 그렇다. 그런 분들은 인간의 지식보다 더 뛰어난 하나님의 지혜를 의뢰해보시길 바란다. 왜 이 말씀을 왜 주셨을까를 생각해보시면 된다.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이다. 왜 서론에 목사님이 인생의 무상, 변하는 것들을 이야기 했을까 그 말씀을 주신 이유를 한번 찾아보시면 된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났을까 찾는 것이 지혜이다. 이분이 왜 나한테 이런 말씀을 했을까를 알아차리는 것이 지혜이다. 그래서 전체를 요약하는 것도 좋지만 왜 이 말씀을 선포되게 했을까 라고 지혜를 구하시면 언약을 잡게 된다. 기억이 전혀 안 나시는 분은 하나님의 비밀을 붙잡으시면 되고, 듣긴 들었는데 무슨 뜻인지 모르는 분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뢰하시면 되고, 설교의 본론은 기억이 안 나고 예화만 기억이 나는 분들은 하나님의 지식을 구하시면 된다. 설교 내용을 요약하시는 분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시면 언약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기도 제목에 대한 답을 찾는 분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이런 분들은 십중팔구 메세지를 기록하시면서 다시 리뷰하시는 분들이다. 저와 여러분들 모두가 이 다섯 번째에 해당되기를 바란다. 언약 붙잡으셔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신비이다. 이러한 부분들을 겪어보거나 부딪히거나 체험하지 못하니까 자꾸 은사 체험, 율법 주의로 사람이 쏠리게 된다. 하나님의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다 끝났기 때문에 신비로운 사건이 일어나도 괜찮고 안 일어나도 괜찮은 것이다. 이 사람을 율법을 지켜도 괜찮고 안 지켜도 괜찮은 것이다. 우리의 주님께서 이미 모든 것을 계산하셨다. 그래서 언약을 붙잡는 것이 가장 으뜸가는 신앙생활이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여호수아는 신앙생활을 잘한 신자 같다. 하나님의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았기 때문이다.

 

2. 가나안 땅 정복의 언약을 받은 여호수아

▶ 두번째이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 현장에 정복에 대한 언약을 붙잡았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 모세에게 말했던 가나안 땅,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조상들에게 맹세했던 가나안 땅을 정복하러 가라는 언약을 붙잡은 것이다. 저와 여러분들이 현장 정복에 관한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게 되면 어떤 축복이 임하는 가를 오늘 본문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오늘부터 여러분들이 내가 살고 있는 현장에 관한 하나님의 언약을 찾게 되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축복이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과 하나님이 보장하시는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우리에게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허락하신다. 말씀을 따라가면서 성령 인도 받는 응답을 주신다. 저와 여러분들이 진심으로 내가 살고 있는 땅에 현장의 언약을 붙잡게 되어지면 형통하고 평탄한 삶을 하나님이 보장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을 여호수아에게 약속했고 오늘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에게 약속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받지 않게 되면 용기가 없게 된다. 심약 해지게 된다. 심약 해지면 사건이나 사람의 말에 쉽게 상처를 받게 된다. 말씀 따라가는 믿음, 이 능력을 받지 않게 되면 계속 헷갈리게 된다. 좌로 갔다가 우로 갔다가 반복한다. 평탄하고 형통한 삶을 받지 못하게 되면 사람이 여유가 없어지게 된다. 제 경험으로 이런 영적인, 정신적인, 물질적인, 육신적인 여유가 없으면 자꾸 답답하고 짜증이 난다. 만사가 다 싫어지게 된다. 저는 그렇게 된다. 그것을 해결하고 그것을 해소하고 그것을 치유 받을 수 있는 길이 바로 내가 살고 있는 현장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을 발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금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 명령하고 있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겠다는 이야기이다. 말씀 붙잡으라, 율법 책을 주야로 낭독하라는 말은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믿음을 주시겠다는 말이다. 이런 삶은 당연히 평탄하고 형통한 삶이 될 줄로 믿는다. 이러한 축복을 받기를 바란다. 여러분 모두 남편이나 아내를 정복하지 말고 아이들을 때려서 잡지 말고 현장을 정복하고 마귀를 때려잡는 현장 언약 붙잡으시기를 바란다. 도전하시기를 바란다.

▶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도전할 많은 것들 여러분들에게 제시하였다. 그 부분에 대한 메세지를 여러분들에게 전달했다. 같이 기도도 했다. 어떤 것들이 있는가? 현장에 필요한 구원의 길, 성경 읽기, 성경 암송, 전도자의 삶 21가지, 긴 호흡, 정시 기도, 정시 예배, 집중 기도, 무시 기도, 주일 강단 포럼, 말씀 흐름 타기, 성경 66권 요약 정리하기, 전도 대상자 명단 작성하기, 릴레이 기도, 집중 훈련, 합숙 훈련, 전도 신학원, 선교사 훈련, 영접 운동, 팀 사역, 미션 홈, 지역 전도 캠프. 이것들이 전부 성경에 있는 것들이다. 성경에서 믿음의 선진들에게 주었던 응답을 지금 이 시간에 구체화, 현장화 해보자고 이런 단어를 만들었고 우리가 했던 것이다. 여러분들이 한가지씩 할 수 있는 것부터 차분히 시작해보시기 바란다. 혹시 잘 모르겠다면 언제든지 물어봐 주시기 바란다. 함께 하겠다. 이런 것들을 하다 보면 본격적인 60년 인생 마스터 플랜이 자신도 모르게 나온다. 그래서 성경은 정말 놀라운 축복의 책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응답을 하나씩 쫓아가다 보니 저 같은 경우는 우울증을 걸릴 틈, 낙심할 겨를, 방황할 여지가 없어지게 된다. 우울증을 치유하려고 하지 마시고 언약을 붙잡게 되면 우울증 걸릴 여지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언약 붙잡고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3. 현장 정복의 언약을 받은 나(우리)

▶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모두에게 현장 정복의 약속을 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그렇게 해오셨다. 증거를 보겠다. 세번째이다. 에덴 동산을 통한 세상 정복의 언약을 아담에게 주셨다. 에덴 동산을 지키라고 하셨다. 에덴 동산 안에 있는 선악과를 지키라고 하셨다. 그러면 에덴 동산의 풍성함을 누리고 전 세계를 정복할 수 있게 하나님이 약속을 주셨다. 방주를 지어라 라는 것은 노아에게 주신 약속이다. 그리고 심판을 받을 이 현장에서 방주로 구원 시켜라 라는 것은 노아에게 주신 현장 약속 이셨다. 노아는 유일성의 응답을 받았다. 다른 사람이 못 받은 것을 노아 혼자만 받았다. 우리가 현장 언약을 붙잡게 되면 풍성한 응답도 오고 유일성 응답도 받는 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서밋의 언약을 주셨다. 애굽현장을 통해서 세상을 정복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지난 주, 이번 주에 보는 모세와 여호수아, 갈렙에게 가나안 언약을 붙잡게 해서 세상을 정복하게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이스라엘 현장을 지배하면서 세상을 정복하도록 다윗과 솔로몬에게 언약을 주신 것이다. 번성과 영화로움의 축복을 통해서 통치하게끔 하신 것이다. 초대교회와 바울 팀에게는 로마라는 현장을 통해서 세계 정복의 언약을 주신 것이다. 이들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응답을 받았다. 한마디로 초월적인 응답을 받게 된 것이다. 죽어도 상관이 없고 좋다고 했을 정도로 아무도 건들지 못했다. 그러니 세상이 감당을 하지 못한 것이다. 초월적인 응답이다. 무슨 말인가? 처음부터 중간, 마지막까지 하나님은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현장에 관한 언약을 찾게 하고 붙잡게 해서 축복하셨다는 이야기이다. 즉, 나, 우리에게 현장 언약을 붙잡게 하신 것은 바로 세상 정복을 향한 하나님의 문이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작정하신 인생 작품을 두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다. 한마디로 현장을 통한 세상정복이다. 하나님은 수천년 동안 당신의 자녀들에게 동일한 현장 언약을 주시고 인도하신 것이다. 그 현장 언약을 붙잡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놀라운 축복을 받은 것이다. 이 원리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런 역사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주셨고 그들이 누렸던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이 현장 언약을 찾게 하신 것이다. 여러분이 마음으로 받고 아멘으로 고백하시기를 바란다.

 

♠ 결론

▶ 결론적으로 우리가 확신해야 할 것이 바로 이 믿음의 선진들이 받았던 축복들이다. 에덴의 풍성한 축복, 유일성의 응답, 서밋의 축복, 정복과 승리의 축복, 초월적인 축복,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의 비밀 안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언약을 주시고 이런 축복을 체험케 해서 그리스도 예수가 이러한 분이시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하시는 것이다. 풍성한 축복이 맞는가? 요한 복음 10장 10절에 말씀하신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유일성의 응답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다른이로서는 구원받을 자가 없다. 천하 인간에 구원 받을 만한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 유일하신 그 분을 붙잡았기 때문에 유일성의 응답을 당연히 받는 것이다. 여러분을 통해서 승리, 성공, 정복, 통치의 응답을 주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14장 12절에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이 비밀을 깨달은 사도 바울이 확신에 찬 고백을 기록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저와 여러분들이 현장 언약을 붙잡고 깨닫고 발견하고 기록하며 전달할 때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될 것이다. 이때 여러분들이 미국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더니 하나님이 축복하셨다 라기 보다는 그리스도께서 허락하셨다 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러한 비밀과 축복을 주관하시는 예수님께서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고, 나로 하여금 체험케 하시고, 나로 하여금 누리게 하셔서 지금 내가 고백을 한다 라고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여호수아가 마지막에 현장 언약을 붙잡고 인생 승리를 거두고 난 다음에 고백을 한다. 나와 우리 집안은 이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겠노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고백이다. 여러분들 모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 기도합니다. 존귀하신 하나님, 현장 언약을 붙잡게 하옵소서. 성경의 인물들을 통해서 임상 실험이 끝나 그 축복과 응답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당연한 그리스도의 찬미, 고백을 드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