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 현장과 왕위 언약

November 11th, 2018

ICA Sunday Pulpit Message


Transcript : PDF (Korean) , MS Word (Korean)

Bulletin : PDF (Korean)


♠ 서론

▶ 우리는 살면서 매일 일을 한다. 일을 하면서 제가 몇가지 느끼는게 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은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른다. 그런데 내가 필요해서 해야 되기 때문에 하는 일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지치게 된다. 내가 필요해서 하는 일은 아니지만 남이 시켜서 하는 일, 위임 받아서 하는 일은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한다. 이렇듯 어떤 일이냐 에 따라서 시간이 빨리 가기도 하고 늦게 가기도 한다. 제가 어릴 때이다. 초등학교 학생 때 학교에서 숙제를 내준 것이 있다. 그 당시에는 교실 학급에 표, 구호를 많이 써서 붙여놨다. 그 도안, 글자 모양을 표어로 숙제를 내어서 잘 써온 아이들은 따로 붙이는 것을 시키곤 했었다. 다른 것은 잘못했는데 그것을 잘했던지 선생님께서 제게 글자 도안을 크게 써서 가지고 오라고 일을 종종 받았었다. 선생님께 잘 보이려고 밤새도록 자로 재서 밑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색칠을 하고 도안을 만들어서 가져갔었다. 그때는 하도 불이 많이 나서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이런 것을 써서 내곤 했었다. ‘혼식하여 건강 찾자; 라는 것도 있었고 당시에 북한의 간첩들이 많아서 ‘자수하여 광명 찾자’ 라는 것도 썼었다. 그것을 밤새서 하게 되면 옆에서 제 아버님이 대충, 요령 있게 하라고 자주 하셨다. 저는 그 어린 나이에 요령이라는 것을 몰랐다. 아버지 눈에는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좋겠는데 글자 쓰는 것에 심혈을 기울여서 밤새도록 하니까 언짢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큰 전지에 내가 작업한 글자가 색을 입고 문장이 구성되어지게 되면 마음이 뿌듯했다. 내가 작업한 그것이 교실 뒤에 붙어있거나 학교 게시판에 붙어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 어렸을 때의 작업 하나가 커서 직장 생활을 할 때 도움이 되었다. 요즘 디지털 시대에는 컴퓨터로 전부 하지만 그 때는 잘 쓰는 사람이 잘 불려 다녔었다. 그 어렸을 때 경험이 공직생활을 하면서 기안, 행정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중학생 때 있었던 일이다. 집안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으니까 어머니께서 무당을 불러서 푸닥거리를 하셨다. 학교를 갔다가 집에 와보니까 무당 분들께서 여러가지 일들을 하시면서 어머님을 힘들게 하고 계셨었다. 귀신이 노잣돈이 부족하니까 돈을 자꾸 더 달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줄 돈이 바닥이 났으니 우리 어머니께서 안절부절 하셨다. 이때 제가 보다 못해서 집안에 대걸레 막대기를 가지고 돼지 머리가 놓여져 있던 상을 냅다 내리쳤다. 그때는 영적 세계나 우상숭배를 몰랐을 때였다. 단순히 나의 어머니를 괴롭히는 저 무당들이 싫었었던 것이다. 이것이 나중에 우상숭배에 대한 현실과 사람들이 그렇게 살수 밖에 없는 배경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저 혼자 믿게 되었다. 그때 우상숭배하는 사람들을 때려잡은 것을 하나님이 기쁘게 보시지 않았나 혼자 믿고 있다. 그 한가지 일 때문에 심약하고 배운 것 없고 성격이 급한 저를 주의 종으로 부르시지 않았나 그렇게 혼자 믿고 있다. 어렸을 때 작은 체험 하나 때문에 나중에 하나님께서 일을 일으키신다.

▶ 직장생활을 할 때이다. 좋은 선배를 만나서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 스승 되시는 선배님을 열심히 따라 다녔더니 제자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의사, 교사, 간호사, 공무원 이런 직장인들이 연합을 하여 동남아 정글에 들어가서 선교를 하는 곳까지 쫓아갔다. 지금 생각해도 제가 아무 동기 없이 했다. 조건 없이 했다. 정말 순전한 마음으로 했다. 내 돈을 드려서 한 것이다. 이러한 경험들이 하나님이 보실 때 기뻐하여서 복음 전하는 이 길로 가게 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즉, 과거의 작은 체험, 경험이 훗날 중요한 것에 연결고리가 된 것이다. 기억하시기 바란다. 오늘, 지금, 이 장소, 상황, 만남, 그리고 이 일이 내일이나 미래에 중요한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간단해 보이고,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지금 했던 그것이 나중에 하나님의 불같은 역사에 도화선이 될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 단초가 될 수 있다. 실체를 찾아내는 그림자를 발견할 수도 있다. 인생 작품을 위한 큰 포석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는 결코 우연이 없다. 시, 분, 초, 모든 시간, 모든 움직임, 모든 일들과 상황이 전부 연결되어있다. 그래서 내가 지금 하는 말이 믿음의 열매를 맺기 위한 씨앗이다. 어떤 일이라도 주님을 의지하고 맡기는 그것이 기도 응답의 잔을 채우는 것이다. 나에게 보내주시는 모든 사람은 전도 열매의 씨앗이요 하나님 나라 확장의 과정이다. 오늘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 살았던 다윗을 보려고 한다. 다윗이 그런 삶을 살았다. 하루하루의 삶이 전부 미래의 축복과 응답으로 연결되어 있다. 도대체 다윗이 살았던 현장은 어떠했으며 다윗이 붙잡았던 언약은 무엇이었길래 그렇게 되었는가?

 

1. 목동 시절에 서밋을 누린 다윗

▶ 첫번째이다. 목동시절에도 서밋의 축복을 다윗이 누렸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에는 다윗의 등장을 목동 신분으로 시작하고 있다. 즉, 다윗의 현장은 목동 일을 하는 현장이었다. 산이나 골짜기, 시내 초원에 양들을 이끌면서 풀을 먹이는 현장이었다. 알다시피 다윗의 아버지 이새에게는 여덟 아들이 있었다. 그 양을 이끌고 먹이는 일을 막내인 다윗에게 맡긴 것이다. 양을 지키고 돌보고 먹이는 일은 다윗의 숙제였다. 내 양이 아니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일도 아니었다. 막내이니까 지루하고 고단한 일을 맡았던 것이다. 저 같으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고 대충 일을 했을 텐데 다윗은 그러하지 않았다. 지루하고 고단한 일들 속에서도 다윗은 주님을 찬양했다. 우리처럼 찬송가 악보 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부르니까 따라 부르는 찬송이 아니었다. 내게 아무런 유익, 열매, 소득이 없는 남이 시킨 지루한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했던 것이다. 보통사람 같으면 이 일이 언제 끝나나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다윗은 그 일이 하나님이 주신 일이라고 믿고 주님을 즐거워하며 기뻐했다. 보통 콧노래가 아니었고 정식적으로 주님을 묵상하면서 주님을 찬송한 것이다. 그 찬양을 자신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그것들이 성경에 실린 것이다. 시편 150편 중에 그 중의 절반 가량인 73편을 다윗이 썼다. 다윗이 어떠한 일들과 상황 속에서 전문적으로, 지속적으로 주님을 찬양 했다고 하는 단적인 증거이다. 일에 묶여 있던지, 일에 빠져 있던지, 일을 싫어하던지 가 아니라 일들 속에서 하나님을 높이면서 주님을 묵상하여 영성이 풍부해진 것이다. 영성이 풍부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능력을 담는 그릇을 넓히는 것이다. 이렇게 목동 현장에 작은 체험이 쌓이니까 하나님이 기회를 주신 것이다. 악령에 붙잡혀 시달리는 사울 왕 앞에서 연주하며 찬송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다윗이 찬송할 때에 얼마나 영성이 풍부하고 영력이 강했던지 사울 왕에게 붙었던 귀신들이 떠나갔다. 그 정도로 다윗이 영적인 힘을 누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을 노리고 한 것이 아니라 평소의 작은 체험들이 모아졌던 것이다. 여러분이 기도제목으로 잡으셔야 한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던지 주님이 맡기신 일임을 깨닫고 어떤 일 가운데서도 주님을 즐거워하고 찬양하고 묵상하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것이 구나 라는 것을 아셔야 한다. 언약으로 붙잡길 바란다. 내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즐거워하고 찬송해야 되겠구나.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는 여호와는 거룩하시다.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가 주님을 찬송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실 줄 믿는다.

▶ 잡일, 허튼 일들 속에서 다윗이 영적 서밋의 자리로 찬양을 통해서 들어간 것이다. 하나님이 그것을 사용하신 것이다. 목동의 주 업무는 맹수로부터 양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다. 얼마나 양들을 잘 지키고 보호했던지 양 한마리도 잃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자기가 하는 일들 속에서 전문성이 발휘될 만큼 영적 서밋, 기능 서밋을 누린 것이다. 하나님이 이러한 다윗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윗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영적 서밋 자리에 들어가니까 하나님께서 기능 서밋의 응답도 주고 그를 사용하신 것이다. 그래서 오늘 시편 78편을 보시게 되면 다윗이 목동 현장에 있었지만 나중에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르시는 과정, 그릇을 준비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하나님은 사울 왕을 폐해버리고 새로운 왕을 세워야 할 시간표를 만드셨다. 하나님은 그의 종 사무엘을 시켜서 새로운 왕을 찾으라고 하셨다. 사무엘은 결국 이새 집안에 들어가서 막내인 다윗을 찾아 왕으로 기름을 부었다.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 크게 감동되니라.” 기름을 부었다. 공식적인 왕 즉위식은 아니지만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서 기름 부음을 받고 성령충만한 그릇이 되어서 왕의 언약을 붙잡게 된 것이다. 목동 현장에서 목동으로서 왕의 언약, 왕의 위치의 언약을 붙잡은 것이다. 왕의 언약, 왕위의 언약을 붙잡았다는 것은 앞으로 생각과 마음, 판단과 언행을 왕으로서 행하는 것처럼 해 나가는 것이다. 다윗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부르신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한다. 이것이 현장 언약을 붙잡은 신앙인의 모습이다. 거칠고 불완전한 세상 현장 속에서 완전하신 하나님 자녀의 신분을 붙잡은 것이다. 나는 없어질 이 땅 위에 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이다.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이다. 상황 쫓아가지 마시고 눈에 보이는 것에 흔들리지 말아라. 이렇게 다윗은 15살 때 기름 부음을 받고 왕의 언약을 붙잡는다. 15년이 흘러 30살 때 유다의 왕으로 세워지면서 기름 부음을 받는다. 8년이 지나서 38살 때는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고 통일 왕이 된 것이다. 사무엘의 기름부음을 통해서 왕의 언약을 붙잡은 15살 다윗은 15년, 23년 뒤에 왕이 되지만 그 전에 이미 왕으로서 산 것이다. 왕으로서의 믿음을 갖고 사는 삶이었다. 이것이 언약 가진 사람의 삶이다. 이것이 믿음의 삶이요, 신앙인의 삶이요, 언약의 여정이다. 우리 모두 이런 삶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그래야 여러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 서밋에 항상 들어가 있으면 된다. 기능 서밋이 되어지고 주위 환경의 문화를 바꿀 수 있는 문화 서밋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을 놓치지 마시고 오늘 이 순간, 이 현장, 이 일 속에서 왕의 언약, 서밋으로서 말하고 행동하고 판단하여 나아가시길 바란다. 그러면 과정이 쌓이는 것이다. 때가 되면 실제 서밋, 실제 왕의 자리에서 누리게 되는 것이다. 다윗이 그렇게 왕이 되었다. 

 

2. 도망자 시절에도 서밋을 누린 다윗

▶ 두번째이다. 도망자 시절에도 서밋을 누린 다윗이다. 돌 던지는 기술 하나 가지고 양을 지킬 때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다. 골리앗이 나타났다. 이스라엘 백성들, 사울 왕이 꼼짝하지 못했다. 여기에 다윗의 기능이 쓰임 받고 다윗이 골리앗을 꺾게 된다. 한방에 꺾어버려서 대반전의 역사가 일어났다. 적군인 블레셋 군대는 혼비백산 도망가고 이스라엘은 잔당을 처리한다. 다윗 한사람 때문에 큰 승리를 얻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론도 다윗을 응원했다. 이렇게 골리앗을 무찌른 다윗이 승승장구 하는 것 같았는데 사울 왕이 시기, 질투를 했다. 그리하여 전혀 예상하지 못한 현장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도망자의 현장이다. 신앙생활 할 때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갑자기 그럴 수 있다. 다락방 복음, 원색 복음을 믿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니까 만사 형통할 줄 알았는데 갈수록 안될 수 있다. 그렇다면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이 쓰시려고 하시는 것이다. 대충 쓰시려면 만사형통하게 만드신다. 아무래도 구원 받더라도 배부르고 등이 따스하면 자꾸 무너진다. 그런데 갑자기 도망자, 즉 위기의 현장을 맞이한 것이다. 목동의 현장이 일상의 현장이라고 한다면 도망자의 현장은 위기의 현장이다. 그 위기의 현장을 통과하면서도 다윗은 주님을 찬양하는 일, 주님을 묵상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목동 시절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 이렇게 찬양하던 다윗이 도망자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시편 18편에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도망 다니면서 낙심할 수도 있었겠지만 다윗은 왕의 언약을 붙잡고 주님을 찬양했다. 숨겨져 있지만 곧 드러날 왕의 축복을 믿고, 알고 있었다.

▶ 숨겨져 있는 응답이 무엇인가? 겉으로 볼 때는 도망자이고, 고단한 삶이고, 위기의 상황이다. 바로 그 때 만났던 제자들, 친구들, 동지들이다. 도망자의 삶을 사니까 다윗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다윗과 함께 친할 수 있고, 삶을 살 수 있던 사람들은 진정한 친구요 제자들이다. 동기나 조건 없이 순전한 마음으로 서로 통하고 섬기는 참된 제자들을 그때 전부 만난 것이다. 만약에 다윗이 도망자가 되지 않고 사울 왕 밑에서 왕의 사위로, 차기 대권주자로 있었다고 한다면 계산하는 사람들이 많이 붙었을 것이다. 겉으로 볼 때는 아무것도 없고 미래가 불투명한 다윗과 함께 했던 그 친구들이 순수한 사람들이었다. 순전하고 충직한 이 친구들, 제자들이 나중에 다윗이 왕국을 일으킬 때에 전부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된다. 이스라엘을 이루는 가장 훌륭한  동지, 참모, 부하들이 된 것이다. 이것이 숨겨진 만남의 축복이다. 저와 여러분들이 어려울 때 함께 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친구이고 동반자이다. 내가 필요하니까 너를 사랑하는 것과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필요하다는 것은 다르다. 사람도 그렇고 교회당도 그렇다. 멋지고 화려한 성전의 건물, 잘 짜여진 주일학교, 넓고 큰 주차장, 시설이 잘 구비된 식당, 많은 인맥을 얻을 수 있는 수백, 수천의 성도들이 있는 교회가 있다. 그런 대형 교회들이 나쁘다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런데 그런 교회만 가는 신자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좁고 작은 예배당, 엉성해 보이는 주일학교 시스템, 포장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고 좁은 주차장, 별도 식당이 없어서 예배 드리는 자리에서 테이블 펴서 밥 먹는 식당, 성도들이 별로 없어서 2층이 비어있는 예배당이 우리 교회이다. 그런 교회 가는 사람하고 이런 교회 가는 사람을 하나님은 누구를 더 기뻐하시겠는가. 하나님이 상을 주시고 구별하여 축복을 주신다고 한다면 누구를 먼저 하나님이 부르시겠는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다윗이 그것을 다 찾아낸 것이다. 도망자 생활에서 제자들을 찾아낸 것이다.

▶ 영적 서밋을 누렸다는 또 다른 증거가 있다. 자기를 평생 추적하면서 죽음으로 몰아가려 했던 사울 왕. 이 때 다윗이 사울 왕과 일대일로 죽일 수 있던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다.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운 왕을 내가 어찌 해할 수 있겠는가? 폼 잡고 멋지게 하려는 말이 아니었다. 영적 원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피를 보지 않아도 하나님이 처리할 것을 알고 있었다. 어차피 하나님이 나를 왕으로 세우시고 언약 떠난 사울 왕을 하나님이 직접 처리하실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이 진정한 왕의 여유이다. 실제 왕이었던 사울은 여유가 없어서 시기와 질투, 미래의 염려에 사로 잡혀있었다. 반면에 다윗은 도망자의 신분으로 고달픈 하루하루를 산 것처럼 보이지만 왕의 실제적인 응답과 축복,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신분이나 처지에 관계없이 어떠한 현장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기억하고 붙잡고 있었던 다윗이다. 붙잡은 언약을 고백하면서 움직였던 다윗이다. 그런 다윗이 사울 왕을 대신하여 2대왕이 되었다.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성취이다. 다윗이 붙잡은 언약의 성취이다. 이것이 바로 언약의 위대함이다. 저와 여러분도 이런 응답이 있기를 바란다. 벌어진 일들에 빠져있지 말기 바란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찾아내야 한다. 나는 왕이다. 하나님이 나를 서밋 왕으로 세우실 것이다. 예전 군주제 때나 왕이 있었고 요즘에는 왕이 없다. 단어나 컨셉에 묶여있지 말고 실제를 보시기 바란다. 왕은 다스리는 자를 말한다. 왕은 지금 상존하고 있다. 군부대에서는 대장이 왕이다. 한국에서 경제의 왕이 누구인가? 삼성이다. 공식적으로 법리적으로 정치적으로 대통령을 세운다. 그것이 왕이다. 내가 한 분야의 정상이면 그 분야의 왕이 되는 것이다. 내가 학교에서 1등을 했으면 그것이 학교에서 왕이다. 그것이 왕의 축복이다.

 

3. 왕으로 통치할 때도 서밋을 누린 다윗

▶ 마지막이다. 이렇게 왕이 되고 나서도 영적 서밋을 다윗은 계속 누렸다. 하나님의 사람, 신자는 응답 받고 축복 받은 이후가 더 중요하다. 다윗은 모든 언약이 이루어지고 큰 축복을 누린 왕이 되어서도 주님을 계속 찬양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을 쉬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왕이니까 권력이 있고 힘이 있다. 그 힘을 가지고 아예 큰 찬양대를 조직했다. 경제를 동원해서 모든 악기도 만들고 구비했다. 레위지파 사람들을 모았다고 나와있다. 전문적으로, 조직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한 것이다. 왕의 힘을 사용해서 찬양할 레위지파 사람들을 선발하고 각종 악기들을 마련해서 하나님을 전심으로 찬양한 것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 어떻겠는가? 다윗을 왕으로 택하고 세우길 잘했다는 마음이 드셨을 것이다. 왕의 자리에서도 영적 서밋을 누렸다. 기뻐하신 하나님께서 다윗을 세계적인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다. 세상의 불신자들도 다 알만큼 다윗을 높이신 것이다. 이스라엘 국기를 보면 다윗의 별이 있다. 나중에는 성전건축 준비를 했다.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준비를 한 것이다. 그런 훌륭한 일을 하고도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주권임을 고백했다. 다윗이 찬송을 했다는 것은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는 것이 아니다. 주님을 늘 묵상하고, 주님과 동행하고, 영적인 관계를 풍성히 누렸다는 이야기이다.

 

♠ 결론

▶ 결론을 맺을 수 있다. 다윗의 겉모습, 신분의 변화, 현장의 상황이 계속 바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 주님을 찬양하는 그 영성을 계속 지속했다. 변하지 않는 그의 믿음이다. 언약 성취를 향해서 변치 않는 그의 인생 여정, 언약의 여정이다.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변하지 않고 믿음이 지속되기를 축원한다. 불신 세상도 마찬가지이다. 변하지 않고 한 우물을 판 사람들은 다 성공한다. 저와 여러분들이 언약 안에서 믿음을 붙잡게 되면 반드시 그 언약을 성취하고 여러분을 왕의 자리로 인도하신다. 관건은 어떻게 하면 내가 흔들리지 않고 변하지 않겠느냐 이다. 연초에 우리는 작심삼일을 많이 한다. 우리는 일상의 매너리즘에 빠져서 금방금방 바뀐다. 어떻게 다윗처럼 이렇게 끝까지 갈 수 있겠는가? 여러분과 저는 절대 서밋이 될 수 없다 라는 자연스러운 결론이 나온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봉사, 헌신, 헌금 하면서 불신자보다 못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비결이 있다. 우리는 쉽게 변할 수 없는 연약한 자이지만 끝까지 인도하시는 분이 있다. 내 체질을 다 알고 내가 당할 미래를 아시면서 요리조리 인도하실 분이 계신다.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이다. 히13:8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속성 하나가 나온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그래서 내가 깡다구 붙잡고 변하지 말아야지 하면 반드시 실패한다. 영원토록 변함이 없고 변개치 아니하시는 그리스도를 여러분이 바라보기만 하면 그분이 인도를 하신다. 내가 속을 만 할 때 하나님이 분별케 하신다. 무너 질만 할 때 힘을 주신다. 막혀 있다고 생각할 때 새 길을 그 분이 열어 주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시고 모든 문제 해결자이시다. 그분이 여러분들을 왕의 축복에 이르기 까지 인도하실 것이다.

▶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윗이 받은 축복을 기억합니다. 다윗과 같은 체질과 기능, 그릇이 아니되지만 그리스도를 붙잡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그리스도께서 힘을 주옵소서. 지혜를 주시옵소서. 다친 문을 열어 주옵소서. 그리하여 결국 서밋의 언약이 성취될 줄로 믿습니다. 지금의 작은 현장에서 서밋의 언약에 이르기까지 주님께서 축복해 주옵소서. 목동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왕으로 인도하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