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디옥교회의 사람들 (6) - 순수한 복음과 순수한 전도를 아는 사람들

November 17th, 2019

ICA Sunday Pulpit Message


녹취록 : PDF (Korean)

주보 : PDF (Korean)


♠  서론

▶ 스크린에 글 하나를 띄우겠다. 한 번 마음으로 읽어보시길 바란다.

“방금 당신이 보내주신 Flagg & Savage 은행이 발행한 25달러짜리 수표가 들어있는 16일 자 편지를 받았습니다. 나는 댁에서 생각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비싼 변호사가 아닙니다. 돈을 너무 너그럽게 쓰시는 것 같은데 내가 할 일의 수임료는 15달러면 족합니다. 15달러에 대한 영수증을 보내 드리면서 10달러짜리 한 장을 동봉합니다.”

무슨 내용이냐면, 아브라함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에 실제로 있었던 일을 남긴 편지이다. 자기가 일한 대가 주신 것 감사한데, 더 많이 주셨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내가 받을 것만 받고 영수증 첨부해서 남은 돈을 다시 돌려드린다는 내용이다. 양심이 바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이 깨끗하고 순수하다 말할 수 있다. 이걸 또 비꼬아서 말하는 사람도 있겠다. “네가 돈 많아서 돈 자랑질 하느냐?”그렇게 보고 판단하고 말하는 사람은 마음이 깨끗치 못하다고 말할 수 있다. 또는 돈이 더 좋으니깐 아무 말 안하고 그냥 받아 챙길 수도 있겠다. 그런 사람을 보게 되면, 돈을 많이 탐하는구나 마음이 깨끗치 않다고 말할 수 있겠다. 사실 이러한 링컨의 행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링컨은 정규교육을 받은게 1년이 채 안된다고 한다. 교과서 살 돈도 없어서, 30리나 되는 친구 집에 찾아가 책을 빌려서 책의 내용을 전부 베껴 적고 다시 돌려줬다고 한다. 책 내용을 보고서 잘 이해하지 못하니깐,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서 통체로 암기하는 것이 그의 특기였다고 한다. 이렇게 어렵게 고생한 아브라함 링컨이였던걸 알 수 있다. 9살 때 모친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정치인이 되고 나서 선거를 한 10번 정도 치뤘는데 10번 다 낙선했다. 사업하다가 두 번 bankruptcy(파산)를 하였다. 그 빛을 갚아야 되는 상황에서 17년간 빛을 갚았다고 한다. 와이프 “Mary Todd(메리 토드)”하고 네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 중에 세 명이 10대 때 다 죽었다고 한다. 보통 사람이 한 번 겪기도 힘든 것을 아브라함 링컨은 참 많은 것 들을 오랜 세월 동안 겪었다. 나중에 주지사로 당선되고 나서 기자가 한 질문에 대답을 하였다. 솔직히 나는 잘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내가 조금 할 수 있는 그 것은 책을 읽고 쓰고 암기하는 것 밖에 없다. 그렇게 대답을 했다 한다. 나중에 대통령이 되고 나서 기자 인터뷰를 하였다. 내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첫번째이고 두번째는 내가 수 많은 실패 속에서 지혜를 찾은 것과 그 것을 통해서 배운 것이다. 큰 중대한 누구나 알 수 있는 실패와 고난을 한 30여 차례 했는데 그때 마다 마귀가 그에게 고했다고 말했다. 실패할 때마다 마귀가 찾아와서 너는 이제 완전히 끝장이란 말을 속삭였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실패를 통해서 거울을 삼고 지혜를 찾아내라.” 그래서 그는 마귀의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울였다고 인터뷰 때 말했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았던 것은 바로 하나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거라 생각이 들어진다.

▶ 말씀을 전하는 저나 말씀을 받고 있는 여러분 모두가 상대방이 마음이 깨끗하고 순수한 사람이길 다 바라고 기대한다. 말 처럼 그렇게 쉽지 않음을 알게 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마음이 정결한자, 마음이 깨끗한 자, 마음이 순수한 자, 똑같다. pure하다는 말이다. 마음이 깨끗한 자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 했다. 실제로 여러분이 하나님을 뵐 수 있을 만큼 마음이 과연 순수하고 깨끗한가 질문할 필요가 있다. 난 24시간 365일 내내 정말 하나님 앞에서 양심이 바르고 깨끗했다고 담대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본다.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 있고 죄책감에 짓눌릴 수도 있다. 이 때 우리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어떠한 고백을 하고 어떻게 실행해야 하느냐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거 때문에 하나님이 해결책을 주셨다. 그 양심의 가책에서 해방되어 지고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오늘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그 일, 예수님께서 하신 약속을 딱 붙잡고 양심의 가책이나 죄책감에서 해방될 수 있길 바란다. 벗어나야 바른 양심 깨끗한 마음을 우리가 누릴 수 있게 된다.

 

1. 거룩하신 하나님이 복음으로 우리를 정결케 하셨다.

▶ 과연 이 것을 위해서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가 성경을 봐야겠다. 히브리서 9:13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 구약 시대 때는 동물의 피를 가지고 죄인에게 뿌려서 거룩하게 했다고 되어 있다. 동물의  피를 흘린다는 의미는 동물을 죽인다는 말이다. 죽인다는 얘기는 죄의 대가를 치른다는 말이다. 아니 짐승이 무슨 죄가 있는가? 양이 사람을 위하여 가죽, 고기, 우유를 제공하는데 무슨 죄가 있냐 말이다. 죄가 없는데 왜 죽냐 말이다. 죄가 없는 동물을 죽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그 동물에게 짐승에게 양에게 옮겨놓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이 동물이 가져갔다 치는 것이다. 그래서 죄인 된 이 양을 심각하게 끔직하게 punishment, judgement하고 죽여버리는 것이다. 그때 피가 흘러나오게 된다. 그 피를 sprinkle(뿌리는) 하는 것이다. 양의 피를 바가지에 담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붓는 것이 아니고 sprinkle하는 것이다. 시늉만 하는 것이다. 뿌린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많이 양보하신 것이다. 즉, “너희의 죄를 짐승에게 옮겨서 끝냈다”라고그 사실을 내가 받아드리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이다. 그것이 용서함의 확신이다. 막 빌고 무릎 끓고 우는 것이 원인 제공이 아니라 말씀에 의거한 믿음이 용서함을 받는 것이다. 2500년 300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짓을 그 일을 하나님께서 용서하셨는데 하물며 “양의 실체 되시는 예수님이 직접 피를 흘리셨는데 너희가 거룩하게 되지 않겠느냐?”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구약 때 그림자를 가지고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다 용서함 받고 깨끗하게 순수함을 가질 수 있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셨다고 했는데 진짜로 사람의 피, 하나님의 피, 예수의 피를 믿는 사람에게 정결케 아니하겠냐고 부정 의문문 강한 강조를 하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깨끗하단 얘기는 “아, 내가 게임 안 하고, 내가 사실 조용히 있고, 그게 아니다.” 내가 알고있는 죄도 있고 모르고 있는 죄도 있다. 그래서 내 기준이 되면 안된다. “아 나는 40일 금식기도 했기 때문에, 마음이 깨끗한 자다”라고 하고 그게 맞을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선 아니다. 하나님께서 흘리신 그 피 때문에 내가 깨끗게 될 수 있고 되어졌다는 믿음을 하나님이 깨끗한 마음으로 받으시는 것이다. 기준이 나 중심,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행하심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다음 장 10장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다고 하는데 바로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다. 그분이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집 교회 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그 뜻이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죽으실 때, 물과 피를 다 쏟으셨다 되어있다. 흉기 칼과 채찍이 신체에 닿으니까, 자연적인 상처가 나고, 환부에 피와 물이 흐르겠구나 이렇게 볼 수가 있다. 상처가 나면 흐르는 그 피가 실제로는 우리의 죄를 위해서 흘려진 것이다. 양심의 악을 깨닫고 물의 뿌림 피의 뿌림을 받고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다. 이전 것은 다 지나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과 몸을 깨끗이 씻으셨다고 못을 박으신 것이다. 우리의 선한 행실이라든지, 인격이라든지, 자격과 조건 때문에, 깨끗하게 된 것이 아니고, 오직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물 때문에 우리가 정결케 되었다라고 하나님이 선포를 하신 것이다. 그 말씀을 우리가 딱 붙잡는 것이다.

▶ 여러분 좌우 옆 분들과 서로 고백하면 좋겠다.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깨끗합니다.” 마음껏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뵐 수 있는 것이다. 이 어마 어마한 일을 누가 하셨냐면, 예수님께서 하신 것이다. 내 감정이나 기분 때문에 마음이 깨끗하거나 깨끗하지 않다든가 그런 것이 아니란 말이다. “왜 제멋대로 해석을 합니까?”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는 보는 것으로, 듣는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믿음에 따라 사는 자임을 믿는다. 그게 바로 “walk of Christian Faith” “믿음의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양심의 가책과 죄책감에 눌리면 사실 아무 것도 못하게 된다.” 완전히 우리를 벗어나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만 말을 해야 하고, 예수님만 집중해야 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이 오직 복음만 붙잡고 누릴 수 있길 바란다. 예수님의 이러한 놀라운 십자가 피 때문에 하나님을 볼 뿐만 아니고 이 세상의 왕도 볼 수 있는 축복을 하나님이 여셨다. 잠언 22:11에 보시게 되면 말씀하고 있다.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특별히 우리 렘넌트들은 나라의 리더를 만날 수 있는 그런 축복과 응답이 있길 바란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쓰시게 되면, 반드시 응답하시는 것이다. 바울이 그래서 “가이사 앞에 서리라”라는 말씀을 받은 것이다. 여러분들이 당대든지 후대든지 대통령을 만나고, 왕을 만나서 복음 전하게 하시라고 그러는 것이다. “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에 우리가 몸과 마음이 영, 혼, 육이 다 깨끗게 되었구나”라고 딱 붙잡아야 한다. 이거를 믿고 누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보는 눈도 달라지게 된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나도 그를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피로 저 형제와 자매를 깨끗게 하셨구나” 그렇게 되면, 그 친구가 깨끗하게 반응하게 된다. 근데 내가 불신앙으로 바라보거나 생각하게 되면, 불신앙의 것이 내게 온다.

▶ 우리 큰 딸이 결혼해서 요리를 할 때 내가 계속 맛있다고 하니깐, 진짜로 요리실력이 늘어났다. 10개 중에 3번은 맛없는데도 맛있다고 얘기했다. 근데 진짜로 갈 수록 맛이 좋아졌다. 그 때 진짜로 맛있다고 얘기를 했다. 믿음의 눈으로 보게 되면 믿음의 선한 것이 내게 온다. 상대방의 이상한게 보여지게 되면, 내가 그 사람을 깨끗치 않게 보기 때문에. 즉,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라고 하는 것이 들키는 것이다. 여러분이 믿음의 능력과 믿음의 역사 속에 있기를 바란다.

 

 

2. 순수하지 못한 생각과 동기로 실패한 사람들을 거울로 삼자.

▶ 두번째다. 마음이 깨끗하지 못해서 실패한 사례들을 성경에 안 하면 괜찮은데 기록을 해놨다. 왜 그랬을까? 우리보고 거울 삼으라고 하는 것이다. 똑같은 실수, 실패 범하지 말라고. 한 번 말하면 될 텐데 아예 기록으로 남겨서 영원 무궁토록 부끄럼 당하게 만들었다. 세가지 설명을 드리겠다. 지난주 강단말씀에서도 예수님, 베드로, 바울 입장에서 보았다. 오늘도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자 관련됨을 보겠고 예수님, 베드로, 바울을 보겠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가롯 유다를 아시지 않은가? 마음이 깨끗치 못했다. 믿음이 없었다. 같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 예수님과 동거동락 하였다. 훈련도 받았다. 합숙훈련도 다 받았다. 단 한 차례도 예수님을 향하여, “주”, “my master”, “my Lord” 한 적이 없다. “선생님이시여”, “라바이” 이 말은 했다. 아직 그리스도를 못 만났거나, 못 깨달았다는 방증이다. 예수님께서 가롯 유다에게 헌금통을 맡겼다. Finance 재물출납을 맡겼다. 그런데 가롯 유다가 거기서 돈을 훔쳐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져 있다. 그리스도가 아니라 할지라도 자기의 스승이라고 고백했는데, 자기의 스승을 속이고 나중에 배신하였다. 돈 받고 예수님이 계신 곳을 알려주었다. 결국엔 예수님이 arrest 체포되고 끌려가서 십자가 고통과 죽음을 당하셨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듣고, 가롯 유다가 환호했는가? 아니면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자살했는가? 양심의 가책을 받은 것이다. 그리스도의 믿음은 없었지만, 양심의 가책은 있었다.자살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주위에 혹시 자살한 사람들 볼 수 있다. “아, 여기까지 인가 보다 솔직한 깨달음이다.” “나는 할 수 없다. 내 죄가 너무 크다.” 양심의 가책이 있는 사람들이 자살할 수 있다.” 바로 그 때 우리는 질문한다.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살자들은 구원을 받을까? 안 받을까?” 이런 질문을 한다. 솔직하게 누가 아는가? 솔직히 하나님만 아신다. 오늘 이런 실질적인 예를 보게 되면, 양심의 가책은 있으나,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지 못하고. 즉,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만 봐서 자살자들은 구원받지 못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가 직접 목숨을 끊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기 때문에, 구원받는다는 말도 있다. 하여튼 간에, 흑암에 잡힌 건 맞이 않는가? 구원 받았느냐, 구원받지 못하느냐?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바로 그 결정적인 순간에 그리스도를 몰랐거나, 그리스도를 놓쳤다는 얘기다. 가롯 유다가 실패를 한 것이다.

▶ 또 한 가지, 사도행전 5장에 보게 되면, 베드로에게 아나니아 삽비라 중직자가 있었다. 이분들 같은 경우에는 시작은 좋았다. 헌금했다. 다른 동료 중직자들이 재산을 다 팔아가지고 헌금하는걸 보면서 그들도 다 팔았다. 생각해보니깐 노후가 염려가 됬던 모양이다. 반만 내놓고 반은 숨기자고 했다. 그런데 베드로가 모른척하고 반이라도 헌금받으면 좋지 않은가? 베드로가 욱했다. 사람한테 속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기만한 것이다. 그 헌신을 하나님 앞에 해야 하는데, 사람 앞에서 했다라고 혼났다. 그 말씀이 떨어지자 마자 무섭게 하나님께서 아나니아를 즉사 시키셨다. 따라 들어오던 아내 삽비라도 그 광경을 보자마자 즉사했다. 자기 중심의 헌신인 것이다. 거짓된 헌신, 위장된 헌신 이게 마음을 깨끗치 못하게 했던 결과란 것이다. 헌금을 많이 하고 헌신을 많이하는 사람들이 이런 실수를 많이 범한다. 내가 이만큼 헌신했는데 교회가 날 안 알아준다는 말이다.

▶ 용인에 있는 수천명이 모이는 교회에서 지휘하시는 어떤 부유한 분이 계시다. 교회 안에 1억4천되는 파이프 오르간을 자기 돈으로 사서 교회에 헌물을 했다. 자기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성가대와 파이프 오르간이 조화를 이뤄서 영광올리는 찬양을 할 때 얼마나 마음이 감동되고 기뻤겠는가. 그런데 큰 교회다 보니깐 1부 예배서부터 7부까지 여러 예배가 있다. 지휘자 자신을 3부에서 5부로 지휘 순서를 옮겼는데 그게 화가나서 그냥 교회를 나갔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 헌신을 하고도 그런 부분에 실수할 수 있고 빠질 수 있다.

▶ 그리고 바울의 경우에는 오늘 본문과 같이 19장에 보시게 되면 한 사건이 있다. 사도행전 19장을 보시게 되면 바울이 사역을 하면서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셨다. 주위 사람이 볼 것이 아닌가? 바울이 예수님을 통해서 놀라운 기적들을 일으킨다. 많은 사람들이 그걸 따라한 것이다. 따라하던 사람들 그 중에 스게아라고 하는 제사장의 아들들이 따라했다. 바울이 말하는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따나갈지어다” 이렇게 하다가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귀신이 발악을 하였다.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아는데 너는 누구냐?”하고 달려든 것이다. 귀신들린 사람이 힘이 얼마나 셉니까? 그 사람들이 옷을 다 벗겨져서 맨 몸으로 도망갔다고 되어 있다. 실제로 그리스도를 모르는데 그리스도의 이름을 도용한 것이다. 귀신이 역공했다. 이런 것들을 자세히 기록했단 말이다. 진짜 믿음, 순수한 믿음이 아니었단 말이다. 마음이 깨끗치 않았단 말이다. 이런 실패의 사람들을 성경을 기록하고 있다.

 

3. 우리는 순수한 복음과 순수한 전도를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 오늘 본문을 결론으로 잘 붙잡아야 되겠다. 사도행전 14장이다. 바울을 통해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다. 우리가 지난주에 봤다. 태어날 때부터 앉은뱅이 였던 자가 일어났다. 그 광경을 사람들이 봤다. 보자마자 놀랐다. “이들이 바로 jupiter신이다. 귀신이다.”라고 환호를 한 것이다. 그 두 분이 신이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야 한다. “희생제물 소를 가져오너라.” 난리가 난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을 담당했던 바나바와 바울이 우상이 된 것이다. 신이 된 것이다. 이때에 마음이 깨끗치 않았다면 어떻게 됬을까? “카메라 출동”을 보시면 “메시아”들이 많이 나오지 않는가? “내가 메시아니깐 나한테 헌금해라”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바나바와 바울은 그러지 않았다. 강력하게 말했다. 옷을 찢기까지 하면서 자신의 강력한 의지를 설명했다. 점잖게 말하지 않고 외쳤다. 우리도 너희들과 같은 사람이다. 어리석은 일을 하면 안된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을 주셨다. 말렸다고 되어 있다. 마지막절에는 어떻게 되어있는가? 간신히 멈추게 됬다고 되어 있다. 무슨 말인가? 자기를 낮춘 것이다. 자기를 감춘 것이다. “아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이 깨끗게 되어지면 자기를 감추게 되는구나” 알게 된다. 빌립보서 2:3에 말씀하고있다. 자기를 낮추고 감추게 되는 것이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내가 겸손한 척 해야지 이게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이 pure한 은혜를 받게 되어지면, 자기를 낮추게 되는 것이다. 자기를 감추는 것이다. 자꾸 드러내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 내가 미국 신학교를 졸업했다. 거기에 피아노 반주자가 있다. 조끼를 입고 매번 찬양 때마다 반주를 하는데 거의 신기에 가깝게 반주를 한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귀신같다고 할 정도로 어마 어마하게 피아노를 잘 친다. 우리는 안다. 성령충만을 받아서 친다는 것을. 진짜 역사가 많이 일어났다. 피아노 반주 때문에 막 우려같이 찬송도 하고, 기도도 쏟아져 나오고 하니깐, 병든자가 일어나고 이러한 역사가 여러번 일어났다. 근데 내가 이걸 볼 때마다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피아노를 마치게 되면, 피아니스트가 사라졌다. 처음에는 아 이 분이 용변이 급했구나 그렇게 이해를 했다. 그런데 매번 반주를 마치자 마자 사라졌다. 그래서 내가 아는 사람에게 물어봤다. 저 사람은 왜 이상하게 예배를 안 드리고 없어지느냐? 웃으면서 하는 말이 자기를 감추려고 한다는 것이다. 나는 나중에 알았다. 아직도 기억하는데 정말 얼굴도 잘 생기고 조끼도 입고 너무나도 피아노를 잘 쳤다. 마치 다윗이 수금을 연주할 때 사울왕의 귀신이 떠나갔음을 연상시키듯이 너무나 아름답게 멋지게 치는데 치유의 역사가 많이 일어났다. 거기서 박수를 받고 휘파람을 받게 되면, 자기가 영광을 받는걸 아는 것이다. 믿음이 깊고 영적으로 깊은 사람인 것이다. 나를 드러내지 않고 나를 감추는 것이 내가 사는 길이고 내가 이기는 길이다.

▶ 또 한 가지는 바울이 그렇게 했단 말이다. 헌금 문제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었는데 우리가 헌신을 하는 것은 사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다시 give back하는 것이다. 헌금을 제일 많이 받은 리더가 있다고 한다면 다윗왕이다. 어마 어마한 성전을 건축하고도 남을 만큼 아주 풍성한 차고 넘치는 헌금을 그 때 걷어들였다. 역대상 29:14에 바울이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양하면서 고백을 하였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진짜 고백하였다. 다윗이 이렇게 하나님께 축복받은 이유가 복음이 분명했고 그 복음 그리스도 때문에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었단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다윗이 받은 것과 같은 어마 어마한 감당을 못 할만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주기로 작정되어 있다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마음을 겸손하게 깨끗하게 순수하게 만드실 것이다. 작은 제물을 맡겼는데 자꾸 자기를 드러낸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큰 것을 허락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순수한 마음을 가진 복음의 사람으로 하나님이 부르셨단 말이다.

▶ 그래서 결론적으로 우리가 어찌하던 간에, 이 복음의 생각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전도를 위해서 무엇이 중요하냐 선택을 해야 한다. 교회를 위해서 우리가 결정을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빌립보서 1장에 있느 것처럼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는 것이다. 복음의 생각이 무엇이냐면, 복음이 귀하다는 생각이다. 복음의 가치가 어마 어마하니깐 내 가치를 낮출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복음의 가치 때문에 나를 감춘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소리소문없이 그를 축복하신다. 남이 모르게 하나님이 축복하신다. 지극히 선한 것은 무엇인가? 전도를 위해서 내가 양보 희생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뒤에서도 축복하신다. 내가 교회를 위해서 하나가 되고 교회를 위해 선택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의 후대를 축복하신다. 왜냐? 복음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마음이 순수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보게 하시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그를 높이신다. 결국 하나님은 그를 부유하게 하신다. 결국 하나님이 그를 영향력있게 만드신다. 나는 믿는다. 그냥 은혜말고 그러한 크신 은혜받을 사람이 이 중에 있음을 믿는다. 축복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창대한 축복받을 사람이 여기 있다는 걸 나는 믿고있다. 바울 전도팀이 순수한 복음을 깨닫고, 순수한 전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높인 것 처럼, 나와 여러분이 이 축복대열에 서기를 기도한다.

 

♠  기도

▶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받은 성도님들을 주님의 오른팔 위에 의탁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 성도들과 함께 하여 주옵소서. 그리스도의 피 때문에 우리가 흠없이 점없이 완전히 정결케 되었음을 알고 누리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의 피 때문에 내가 깨끗게 되었다고 확신함으로 열등감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내 앞에 두신 형제와 자매도 그리스도의 피 때문에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을 믿게 하옵소서. 그 비밀을 누리지 못하게 되어 비교 의식에 빠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