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처소

December 3rd, 2017

ICA Sunday Pulpit Message



♠ 서론 - -성경, 물건-성물, 집-성전, 사람-성도

▶ 옛날 한국에서는 많은 집에서 가족들이 식사를 할 때 할아버지, 아버지 따로 어머니, 아이들 따로 상을 차려서 식사를 했던 집이 많았습니다. 어린 아이가 철 모를 때 할아버지, 아버지 밥상에 좋은 반찬을 먹으려고 가면 먹지 못하게 하곤 했었습니다. 따로 챙긴 밥과 반찬이 할아버지, 아버지 소유이고 그분들이 드실 것이기 때문에 따로 챙긴 것입니다. 지금은 똑같은 사람이고 같이 먹고 마시고 할 수 있는데 그 때는 할아버지,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해서 아버지의 소유이고 할아버지가 누릴 것이기 때문에 따로 구별해서 손을 못 대도록 한 것입니다.

▶ 물건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똑같은 책이지만 구별된 책이 있습니다. 성경 책입니다. 똑같은 종이에 똑같은 잉크로 똑같은 공장에서 만들었는데 구별된 책이라 성경이라고 합니다. 똑같이 사람이 사는 집인데 성전이라고 표현이라고 합니다. 똑같은 사람인데 구별된 사람, 성도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속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소유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임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는 하나님이 임하시는 피조물의 ‘성’을 붙여서 따로 구별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따로 구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래서 아무나 손을 대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10장에 직접 선포하셨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한일서 5장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모든 곳에 함께 하시지만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1.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 속에 거하신다.

▶ 첫번째입니다. 하나님이 눈에는 안보이지만 분명히 살아계시고 거하십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 곳이 없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 시편 139편에 나와있습니다. 하늘에도 계시고 땅에도 계십니다. 바다 끝에도 계십니다. 놀라운 것은 음부, 지옥에도 함께 계십니다. 네가 흑암에 있던지 광명의 빛 가운데 있던지 하나님께는 똑같다는 말입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만물 어디에도 거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이고 위대한 특징입니다. 그런데 피조물인 우리는 시간과 장소에 제한을 받습니다. 피조물은 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영적싸움대상인 피조물이기 때문에 전지전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안 계신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무소부재의 하나님이라고 표현합니다.

▶ 특별히 구약에서의 예를 들게 되면, 하나님이 성전에 함께 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하고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명하시고 자세히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완공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영광이 임했습니다. 출애굽기 마지막 40장을 보게 되면 성막이 완공되고 나서 특별한 현상 하나를 기록했습니다. 그 완공된 성막 위에 구름이 가득 임했다고 되어있습니다. 영광이 충만했다고 되어있습니다. 35절에 보면 모세가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영광이 충만이 임했다고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집이 바로 교회당이 될 수 있고 성도로 발전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많이 쌓은 집이나 교회당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를 많이 하게 되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나도 그들과 함께 있느니라. 특별히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처소로 삼고 함께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우리에게 임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누리기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계획입니다. 만유가운데에 계실 수 있는 하나님이 특별히 내 속에 들어와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처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임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나이가 많아 머리가 하얗게 되어도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비록 내가 돈이 없어도 하나님의 처소, 성전입니다. 비록 나이가 어리고 공부를 못해도 하나님을 모신 성전입니다. 비록 무능하고 돈을 못 벌어도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늘 불평불만을 일으키는 아내라도 그 속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성전입니다. 한달 만에 보는 램넌트이지만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이 눈이 열려야 합니다.

▶ 지난주에는 하나님의 침묵이라는 치유 메세지를 받았습니다. 오늘은 치유메세지 두번째 시간입니다. 우리는 대인관계를 넘어서 영안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는 나를 보호하고 내가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고 대인관계를 잘하려고 하는 경향이 다 있습니다. 영안이 열린 하나님의 사람은 대인관계를 할 때도 하나님의 성전이 보이기 때문에 섬겨야 하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있다

▶ 두번째 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바르게 섬겨야 하는가는 우리의 공통 기도제목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정말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싶은 것은 우리 모두의 바램입니다. 그 방법, 길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을 섬기게 되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성경의 예를 제시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고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브라함을 굉장히 흠모합니다. 제가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재물의 축복을 받은 아브라함이 좋아 보입니다. 집안에 318가구가 있었습니다. 내 집안에 318가구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1000-2000명을 데리고 살았다는 말입니다. 저는 가끔 엉뚱하게 그렇게 기도합니다. 우리 집안에 많은 제자들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합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그런 축복을 받았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사람을 잘 섬겼습니다. 창세기 14장을 보게 되면 멜기세덱, 하나님의 제사장을 만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되어있습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승리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이 때 하나님이 지체없이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드렸습니다. 영적권위자를 잘 섬겼습니다. 믿음의 조상이 되는 영적축복을 받았습니다. 거부가 되는 재벌의 축복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12장 3절에 복의 근원이 되는 언약이 성취되었습니다. 멜기세덱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멜기세덱을 섬긴 것입니다. 주의 종이니까 저주 받지 않지 않으려고 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람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들이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는 것을 알았다면 예수님을 죽였겠습니까? 못 죽였을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에 잡혀서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 노아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당대의 의인이 되었고, 대 기적인 노아의 방주의 주인공입니다. 아담 이후, 신 인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 일이 일어났습니까? 창세기 5장을 보시면 노아의 조상 계보가 나옵니다. 자세히 보면 에녹이 노아의 증조할아버지로 나오는데 에녹은 최초로 휴거의 축복을 보여준 인물입니다.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신약에 예수님 이후에 교회사람들이 믿지 않을 까봐 휴거의 모델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축복이 자녀들에게 전달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에녹의 아들이자 노아의 할아버지였던 므두셀라는 최장수 969살을 살았습니다. 에녹이 므두셀라에게 정확한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므두는 죽다 라는 뜻이고 셀라는 보내질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에녹은 므두셀라가 죽게 되면 하나님의 홍수 심판이 보내질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므두셀라의 아들인 라멕은 노아를 낳고 노아의 이름을 지으면서 저주받은 땅에서 노아를 통해 위로를 받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노아의 가족은 전부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를 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즉, 노아는 영적인 축복들을 영적 권위자인 부모님들에게 잘 물려받았습니다. 부모님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여기고 잘 섬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당대의 의인으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노아에게는 세 아들 셈, 함, 야벳이 있었습니다. 노아가 방주 이후에 큰 일을 마치고 술에 취했을 때 장막 안에서 벌거벗고 자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함이 보았습니다. 함은 그 일을 셈과 야벳에게 거짓말 없이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말을 했고 셈과 야벳은 그 소식을 듣고 자신들의 옷을 가져다가 뒷걸음을 쳐서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습니다. 술에서 깬 노아는 그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때 노아가 셈과 야벳에게는 축복의 선언을, 함에게는 저주의 선언을 했습니다. 고작 그 일로 저주를 쏟아야 하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시작이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함을 저주하지 않고 함의 자식인 가나안을 저주했습니다. 노아는 당시에 육신의 아버지 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제사장이었습니다. 제사장의 허물을 들추었던 일이었습니다. 영적 권위자의 실수, 잘못, 범죄를 들추었던 일입니다. 그래서 가나안이 노예가 될 것을 말했습니다. 셈과 야벳은 창대케 되어지고 주의 성전의 주인이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셈과 야벳은 노아 아버지 안에 있었던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함은 아버지 안에 있었던 하나님의 영광을 못보고 아버지의 허물만 본 것이었습니다. 류목사님께서 가끔 말씀하십니다. 신앙생활에 아주 사소한 것이 중요한 의미가 있을 때가 있고 우리가 크게 보는 것이 대수롭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부분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함은 결정적으로 실수를 했고 셈과 야벳은 절대적인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저주 받지 않으려면 목사한테 잘해야 한다고 들으셨다면 오늘 실수 하신 것입니다. 영적인 권위자는 목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형, 누이, 부모님, 연장자가 영적 권위자입니다. 이 부분을 잘 아셔야 합니다.

▶ 모세도 마찬가지 입니다. 모세의 누나, 미리암이 있었습니다. 나이도 연장자였고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높이 세웠지만 모세가 엉뚱한 짓을 했습니다. 구스, 흑인 여자를 취해서 아내로 삼았습니다. 미리암은 모세의 수치, 잘못을 고발했다가 문둥병이 걸렸습니다. 나이가 어린 동생이지만 영적권위자를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잘못은 맞지만 모세 안에 있었던 하나님을 건드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주의 증거로 문둥병이 걸렸습니다. 반대로 모세의 영적하위자가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이들은 충직한 부하였고 신실한 제자였습니다. 여호수아는 후계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갈렙은 아낙산지를 얻는 기업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모세 안에 있는 하나님을 섬긴 것입니다.

▶ 성경에는 이런 증거들이 꽉 차있습니다. 다윗입니다. 다윗의 영적상위자, 사울왕이 있습니다. 사울은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었지만 귀신이 충만하여서 다윗을 죽이려 쫓아다녔습니다. 다윗은 영안이 열려 있었습니다. 사울왕이 왕의 일을 못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기름부으심, 하나님의 뜻과 비전, 계획이 있는 존재임을 알았기 때문에 죽이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사울왕을 끝까지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종으로 대우했습니다. 그것을 사도행전에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왕을 향해서 다윗은 내 마음에 합한자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통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왕이 된 것입니다. 반대로 다윗왕의 부하로 아히도벨이라는 최고의 작전참모가 있었습니다. 다윗이 백전백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최고의 작전참모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습니다. 사무엘하에 보게 되면 아히도벨의 작전지는 하늘이 준 지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히도벨이 없었으면 다윗은 전쟁에서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사무엘하에 다윗이 범죄를 저지릅니다. 남편이 있었던 밧세바를 범하고 이것을 감추려고 그녀의 남편을 죽입니다. 밧세바의 할아버지가 아히도벨입니다. 아히도벨은 손자사위로 우리야를 들여서 가문을 일으키려 했는데 밧세바를 다윗에게 빼앗겼습니다. 아히도벨은 슬펐고 분한 마음과 복수의 마음을 가졌었습니다. 때가 와서 다윗왕의 아들 압살론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다윗왕의 충직한 부하였던 아히도벨은 다윗을 죽이려 압살론의 편으로 돌아섰습니다. 결과는 아시다시피 비극적으로 아히도벨은 비참하게 자살했습니다. 아히도벨이 다윗왕의 손자사위를 죽였던 행위만 본 것입니다. 그 안에 있던 하나님을 보지 못해서 죽게 되었습니다.

▶ 바울도 마찬가지 입니다. 바울에게는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빌레몬이 있었습니다. 빌레몬은 골로새지역에 부자이기도 했고 지도자였습니다. 그에게는 오네시모라는 종이 있었는데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재산을 훔쳐서 도망간 일이 있었습니다. 오네시모는 결국에 붙잡혀서 감옥에 갇혔습니다. 바울이 있었던 감옥에 갇힌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에게 복음을 듣고 영접을 하여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에게 양육을 받았습니다. 오네시모가 출소하여 나갈 때 다시 주인에게 가라는 바울의 명령과 빌레몬에게 줄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것이 빌레몬서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빌레몬아, 내 아들 오네시모를 받아들여라. 전에는 무익 했지만 지금은 유익한 종이 될 것이다.’ 주인인 빌레몬의 입장은 어떻겠습니까? 사람을 거두어 주었더니 결국에는 돈을 훔쳐간 괘씸한 놈이라고 생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빌레몬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오네시모 안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편지를 통해서 자신에게 부탁한 바울 안에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영접하고 바울의 청을 받아드린 것은 하나님을 받아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빌레몬은 거부가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로 오네시모를 섬겼냐 하면  나중에는 오네시모가 에베소 교회의 감독관, 지도자가 될 정도로 오네시몬을 섬겼습니다. 옛날 같으면 쉽게 죽일 수도 있었던 종을 부탁을 받고 섬겨서 지도자까지 만든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작은 사람 한사람에게 라도 냉수 한 그릇을 주게 된다면 결단코 그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작은 자들을 업신여기지 말라. 그들을 수호하는 천사들이 항상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보고 있다.’ 작은 자라도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하나님의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이 무서워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귀찮고 무시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처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있다는 말은 하나님의 이유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루실 계획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성취될 미래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섬기는 것입니다. 영적상위자는 상위자대로 영적하위자는 하위자대로 섬기는 것입니다.

▶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께 굉장히 혼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이유를 몰랐는데 지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친구분들이 있는 곳에서 제가 어머님께 불평불만을 했었습니다. 혹시 어머니와 제가 단둘이 있었다면 타이르고 끝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님의 친구분들과 앞에서 제가 망신을 주었기 때문에 많이 혼났었습니다. 타인 앞에서 권위자인 부모님을 무시하거나 타박하는 행위는 영안이 열리면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복음 엘리트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참고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요즘에는 SNS가 많이 발전했습니다. 장로님, 목사님이나 영적권위자가 램넌트들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낼 때 어떤 램넌트들은 꼭 회신을 하지만 회신도 없고 아예 읽지 않는 램넌트들도 있습니다. 속 좁은 어른들은 오해할 수도 있고 여러분은 복음 엘리트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회신, 답장, 복명복창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오해 받지 않도록 주의하시고 어른들은 뭐라 하지 마시고 램넌트가 어른들을 어려워하는구나 라고 눈치 채시면 됩니다. 예의가 없어서, 나를 무시해서가 아니고 나를 어려워해서 그럴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옆, 앞, 좌우에 있는 사람들을 잘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무서워서가 아니고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쉽게 표현해서 한다리건너에 있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진정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치유메세지 입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제자의 이름으로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주는 것조차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소자를 업신여기지 말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메시지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당장 우리를 지옥에 보내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안에 계시므로 하나님의 뜻, 비전, 이유, 계획이 담겨있기때문에 구원하신 것입니다. 잘 익은 보리와 가라지를 한꺼번에 치지 않는 것은 미래를 보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목적

▶ 마지막으로 세번째 입니다. 그러면 내 주위에 하나님의 사람을 두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내게 이루실 목적이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어느 곳에나 임할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물건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십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구약에는 나귀가 말을 한 예가 있습니다. 나귀의 입을 열어서 말을 하게 하므로 발람 선지자를 멈추게 만들었습니다. 내 주위에 하나님의 사람을 두신 이유는 하나님이 어디에나 있으시고 역사하실 수 있는 능력을 고백할 수 있게 만드시기 위해서 입니다. 가끔 하나님은 주위 사람들, 연약한 소자들, 심지어는 불신자를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끔 하십니다. 누구에게나 어느 곳이나 하나님이 거하고 역사하실 수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영적으로 민감한 자는 그 소리를 듣습니다.

▶ 또 한가지 목적은, 선택하신 사람에게 하나님이 거하시는 주권입니다. 누구에게나 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시는 사람에게 임하시고 역사하시는 주권을 우리가 인정해야 합니다. 에스라 1장 1절을 보시게 되면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을 세우십니다. 이 사람은 사실 불신자 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세우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칙령을 세워서 선포하고 조서를 전달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게 했습니다. 로마서 10장에 바울이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 위에 있는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 신자나 불신자나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다. 하나님을 거스르는 자는 심판을 자처할 것이다. 영적으로 이것을 제대로 보게 되면 불신자 정부를 향해서 쉽게 데모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저는 여당도 야당도 아닙니다. 저희는 예수당입니다. 중요한 것은 권세는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입니다. 주권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민족의 지도자, 김구 선생님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보다는 김구 선생님이 되었으면 좋았겠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이승만 대통령을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기독교인입니다. 그런데 실제를 보면 거듭난 기독교인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무수히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승만 대통령을 세우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을 인정을 했습니다. 세계복음화하는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시기 때문입니다.

▶ 마지막으로 특별히 세우신 사람들에게 거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봐야 합니다. 그 사람들에게 아부를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 속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축복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그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믿음의 인물들을 세우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는 축복을 받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솔직히 아브라함은 못난 부분이 많습니다. 자신의 아내를 두 번 팔았고 참 이해 안되는 부분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출애굽을 시키셨습니다. 모세는 살인자였습니다. 만약 제가 한국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미국에 와서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를 하고 있다면 여기에 앉아 계실 분은 몇명이나 될 것 같습니까? 죄 값을 치루고 회개해서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한들, 주님의 종이기 때문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솔직히 우리의 폐해를 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모세의 말을 따랐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죽었습니다. 수많은 사사들, 선지자, 제사장들을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다윗왕을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다윗왕은 간음자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도 정신 질환자였다고 합니다. 수많은 전도자와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내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은 하나님의 사람을 바로 섬기는 것입니다.

 

♠ 결론 -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이 머물고 거하도록 하라.  (행1:8, 마28:19, 막16:15)

▶ 결론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이 머물도록 하나님이 거하도록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하는 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면 됩니다. 그 사람의 죄를 해결하는 길, 그리스도를 심으면 됩니다. 지옥권세에서 해방되는 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면 됩니다.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하나님을 전달하면 됩니다.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을 통해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도록 축복해주는 것입니다. 만민에게 복음을 선포할 만큼 하나님이 증거를 주실 수 있습니다.

▶ 오늘 메시지를 마치고 나서 점심은 다 같이 돌잔치 이벤트장에서 할 것입니다. 그분들은 김 사모님을 통해서 영접한 스리랑카 사람들입니다. 첫 아이가 유산이 되고 나서 아기를 못 가져서 힘들어했던 젊은 부부였습니다. 같이 기도하고 나서 얼마 후에 애기가 생겼습니다. 벌써 그 아기가 첫 돌이 되는 날입니다. 혹시 스리랑카 가보신 분 계십니까? 인도 쪽에 잘 살지 못하는 나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사람들은 미국사람들, 백인들에게는 존중을 해주지만 아시안들을 볼 때는 저희보다 낮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따라서 그분들이 예수를 영접했기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듯 그들을 섬겨야 합니다. 그 젊은 부부가 투잡, 쓰리잡을 뛰면서 미국에서 어렵게 살고 있지만 음식을 준비해서 저희들을 대접하려 합니다. 음식이 낯설고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으로 교제하고 인사하고 함께 먹기를 바랍니다. 전도 캠프입니다. 구원의 길을 전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전화번호를 얻어서 친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캠프입니다. 전도자들이 놀러가는 것은 캠프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찾기 위해서 입니다. 만민에게 하나님이 머물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 기도합니다. 존귀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사람을 볼 수 있는 영안을 주옵소서. 만민에게 하나님이 머물도록 전도자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영적권위자와 영적하위자 안에 계신 하나님을 보고 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