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지체

December 17th, 2017

ICA Sunday Pulpit Message



♠ 서론 – 매일, 매년, 인생, 역사

▶ 우리는 하루하루 살면서 경험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낮과 밤입니다. 그러면서 낮은 밝고 밤은 어둡다는 사실이 계속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따로 교육을 받지 않고 훈련을 하지 않더라도 낮에 활동을 하고 밤에는 잠을 자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고 있습니다. 또 매년 경험하는 것이 있습니다.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덥다는 것을 경험하고 알게 됩니다. 추울 때는 옷을 두껍게 입고 더울 때는 가벼운 옷을 입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고 있습니다. 봄에는 씨앗을 뿌리고 가을에 거두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익숙해집니다. 오랜 세월을 반복하면서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씨를 뿌릴 때가 있는가 하면 거두는 때가 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누가 특별히 가르쳐주지 않아도 됩니다. 시험 공부하듯이 외울 필요가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반복이 되면 알게 되는 것입니다.

▶ 인생도 똑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인생을 살면서 희로애락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죄를 지으면 고생하고 저주를 받는다고 살면서 익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인생이 모여서 역사를 이룹니다. 흥망성쇠가 반복되는 것입니다. 즉, 복을 받으면 흥하고 저주를 받으면 쇠하여 망하게 되는 것을 반복을 통하여 알게 됩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경험, 사실들이 내 몸에 체득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뿌리 내린다, 체질 내린다 라고 표현하고 심리학용어로는 세뇌 된다라고 합니다. 세뇌라는 말은 원래 긍정적인 의미의 용어입니다. 원래는 학문적 단어인데 공산당이 자신의 교리, 사상을 주입시킬 때 세뇌라는 단어를 자주 썼기 때문에 지금은 기분 나쁘게 들립니다.

▶ 김일성이라고 하는 독재자가 북한의 공산당을 만들었습니다. 원래 김일성은 위대한 장군입니다. 독립운동을위해서 헌신했던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김성주라고 하는 공산주의자가 자신이 김일성 장군이라고 속이고 북한을 장악했습니다. 착하고 무지했던 백성들은 김일성장군으로 알고 따라갔던 것이었습니다. 원래 김일성은 위대한 사람이었지만 북한 독재자 김일성은 수십년동안 나쁜 짓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사람들은 김일성하면 나쁘게 생각합니다. 세뇌도 똑같습니다. 세뇌는 인간에게 필요하고 유익한 것인데 공산주의가 많이 써서 단어 자체가 기분 나쁘게 들리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 옛날 1900년대 기독교가 조선 땅에 처음 들어왔을 때 일입니다. 그때는 남자, 여자가 다른 방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가운데 벽이 있었고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조금 흘러서 벽이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계속 따로 앉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남편과 아내가 한자리에 같이 앉아 있으면 이상하게 보았습니다. 같이 앉아있는 부부를 음란한 사람들이라고 생각되어져 왔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부부가 같이 앉아있지 않으면 싸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의미가 변질된 것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여자 집사님이 파마나 염색을 하고 오게 되면 치리를 시켰습니다. 왜냐면 그 당시에 술집 잡부들이 염색이나 파마를 주로 했었기 때문에 머리에 물을 들이거나 파마를 하면 술집 잡부로 생각이 된 것입니다. 염색을 하건 파마를 하건 상관이 없는데 술집 잡부들이 주로 했었기 때문에 파마 라고 하면 나쁘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동네에서 잘 노는 젊은 청년들은 청바지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젊은 성도가 청바지를 입고 왔다면 왜 깡패 복장을 하고 왔냐며 장로님들이 혼을 냈습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장발 머리에 기타를 치면서 놀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기타를 가지고 교회에서 찬송을 하면 장로님들이 혼을 냈습니다. 그 자체로는 아무런 좋고 나쁨이 없는데 부정적인 이미지가 심어져서 잘못 오해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반복되어지는 것, 주입되어지는 것, 학습되는 것, 사상화 되는 것, 세뇌되는 것이 사실은 훌륭하고 좋은 의미가 있습니다.

▶ 신명기 6장을 보시게 되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중요한 말씀을 전달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하는 대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0년동안 애굽에서 노예살이를 했던 민족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강대국에 노예생활을 오랫동안 했습니다. 왜 하나님의 축복을 잃어버리고 고생을 해야하는지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에 관한 신앙을 자녀들에게 전하지 못해서 그랬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중요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신명기 6장 6절에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라고 되어있습니다. 마음에 새기려면 굉장히 많은 반복과 지속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7절에는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라고 되어있습니다. 상대방에게 가르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나에게 이미 많이 들어 와있다는 말입니다. 때때로, 가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에게 계속 부지런하게 가르치라고 되어있습니다. 강론이란 말은 자세히 가르치라는 말입니다.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손을 움직일 때마다 말씀을 보라는 말입니다. 마음에 새기는 것이 첫번째입니다. 자녀에게 가르치는 것이 두번째입니다. 집에 앉아있을 때가 세번째 입니다. 길에 다닐 때가 네번째이고 누워있을 때가 다섯 번째 입니다. 일어날 때가 여섯 번째이고 손에 말씀을 붙이는 것이 일곱 번째입니다. 여덟 번째는 이마에 붙이는 것입니다. 집의 기둥에 붙이는 것이 아홉 번째이고 열 번째는 집의 문에 붙이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열 가지 세뇌 작업을 말하고 있습니다. 학습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속이 되면 사상이 됩니다. 이것을 공산주의자들은 사상화라고 말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말씀을 계속 세뇌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신명기 6장 6절에서 9절까지 열 가지 세뇌 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기분이 나쁠 수도 있습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과 부모와 자녀들이 400년 동안 노예생활을 했던 사람들이라면 이것을 다르게 듣습니다.

▶ 이렇게 세뇌가 바르게 되어서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각인이 되고 체질이 되면 하나님이 5가지 축복의 문을 여시게 됩니다. 신명기 6장 10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를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첫번째는 약속한 땅으로 인도하시고 두번째로 도시를 얻게끔 하십니다. 11절에는 세번째 저절로 오는 응답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집이 아무리 크다 한들 가구가 없고 세간살이가 없으면 썰렁하지만 모든 필요한 가구와 가전제품이 있으면 풍성해 집니다. 네가 사지 않은, 채우지 않은 그런 것들이 채워진 집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네번째로 그 당시에 가장 중요했던 우물을 차지하게 하신다 하시고 다섯 번째로는 심지 않은 포도원과 감람나무로 배부르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 세상에서는 세뇌작업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이 나쁘게 인식이 되어서 우리는 각인, 뿌리, 체질로 바꾸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하나님 앞에서 세뇌를 하면 이런 응답이 온다는 말입니다. 보장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이것 너머에 있습니다. 12절에 보시게 되면 다섯 가지의 축복을 받아 배불리 먹고 너희들이 하나님을 잊고 우상숭배 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되어있습니다. 너희들에게 믿음에 뿌리를 내리게 한 이유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너희들이 또 느슨해져서 어려움을 당할까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비밀, 그리스도의 관한 언약, 성령의 역사를 얼마만큼 내 속에 집어 넣느냐에 따라서 우리 미래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눈치가 빠른 분들은 결론을 내릴 것입니다. 무엇을 뿌리를 내려야 합니까? 하루하루, 매년 살면서 무엇을 뿌리내려야 합니까? 인생과 모든 역사를 통해서 무엇을 반복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입력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체질이 되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우리에게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 교회를 가보면 하나님 믿으세요, 교회에 다니세요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그리고 복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 교회를 나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장로님이나 집사님이 돈을 떼어먹었다고 시험에 들어서 나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모르게 되면 사람 때문에 나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디 있는지 의문을 품게 되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다 저렇다고 생각하고 절대 가지 말아야 곳이 교회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알맹이는 하나도 맛보지 못한 상태로 불신자 상태로 살아가게 됩니다.

 

1. 그리스도는 모든 인생과 모든 역사의 마스터키와 같다.

▶ 그래서 첫번째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복음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실이 복음입니다. 석가나 공자, 소크라테스가 그리스도가 아니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십니다. 즉, 인생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내 안에 주인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염려나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과 모든 역사에 마스터키와 같은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빌딩을 보게 되면 수많은 방들이 있습니다. 각자 다 열쇠가 있습니다. 마스터키는 그 모든 방을 열수 있는 하나의 키를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똑같습니다. 모든 인생, 모든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흑암의 역사를 뒤집을 수 있고 살릴 수 있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 복음입니다.

▶ 모든 사람들은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모든 사람들은 실수와 허물이 있습니다. 살면서 받은 상처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겉으로는 웃지만 안에 있는 상처 때문에 매여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과거의 허물, 죄악, 상처를 용서받고 치유받고 회복되는 유일한 길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너희의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음이라. 예수를 믿는다고 무엇이 될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통받고 죽으심으로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그것이 능력입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구원받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도 구원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모든 제자들은 배신하고 도망갔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것을 용서하고 회복시키셨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때려잡고 돌아다니던 청년 바울을 하나님이 회심 시키셨습니다. 누가 회심 시켰습니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믿는 사람은 반드시 치유, 회복, 구원의 능력을 받게 끔 되어있습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목사가 하는 것이 아닌데도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러분 중에 부딪치는 사람이 있습니까? 가다가 주저 앉는 사람이 있습니까? 실패를 맛보는 사람이 있습니까? 갈등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절대로 부모나 가족, 친구가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바로 그 때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볼 시간입니다. 문제에 부딪쳐 있고 사람들과 갈등이 있을 때 예수님이 이 모든 사실을 아시는 줄 믿습니다. 저를 이해해주시고 인도해주실분은 부모님이 아니고 예수님 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면 부모님이 감동받을 만큼, 친구들을 설득시킬 만큼 하나님이 증거를 주십니다. 지금 보호받고 인도, 응답 받을 수 있는 최상의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응답도 주시고 함께하신 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바로 예수 이름으로 활동하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4절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하라 그리하면 행하리라’ 응답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16절 17절에 또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사람들은 모르지만 내 자신은 알게 됩니다. 내가 지금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이끌어가고 계시는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과거의 문제,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이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그가 인생의 마스터키입니다.

▶ 그리고 소개 시켜드리고 싶은 성경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입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는 꼭 반드시 심판대 앞에 선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지옥심판을 받지 않지 않습니까? 무슨 심판을 또 받는 것입니까?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원래 KJV 영어 성경에는 네 몸 안에 이루어진 것을 따라 라고 되어있습니다. 우리의 몸 안에 이루어진 것, 각인되어진 것, 뿌리내려진 것, 세뇌되어진 것을 따라 선악간의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심판은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이 아니고 이것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즉, 구원받은 신자가 지옥을 가는 심판이 아니라 천국을 가는 신자의 상급을 결정하는 심판입니다. 상급을 어떻게 받습니까? 내 몸 안에 이루어진 것을 따라 받는 것입니다. 내가 몸에 뿌리 내린 것에 따라서 상급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문제의 키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이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이것이 안되면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배신하고 도망갈 수 밖에 없습니다. 뿌리내려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어떠한 의미인지 정확히 깨닫지 못하고 세뇌가 되지 않으면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사건, 사고를 보게 되면 신자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 사람들이 가짜라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2.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시며, 우리는 그분의 각 지체들이다.

▶ 두번째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어마어마한 분이라고 한다면 과연 우리는 누구입니까?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이라고 성경에 못 박혀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 예수님과 교회성도는 한 몸이다 라고 나와있습니다. 머리 없는 몸은 없습니다. 몸이 없는 머리는 있을 수 있습니까? 성부 하나님은 홀로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찬송하는 이가 없고 만물이 없다 해도 지극히 존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성자 하나님은 어떠한 과감한 도전을 하셨습니까? 인간을 위해서 찾아오시고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죄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한 가족이 되셨습니다. 나이 먹으면 헤어지는 가족이 아니고 그리스도 자신은 머리가 되고 우리는 각 지체가 되어 한 몸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선포하신 것입니다. 너와 나는 한 형제이다. 너와 나는 한 몸이다. 네가 없는 나는 없다. 그런 것처럼 예수님 없는 우리는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네가 죽으면 나도 죽겠다는 말입니다. 내가 부활한 것처럼 내가 너를 부활 시키겠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실패한 적이 있으십니까? 그리스도 예수께서 패배한 적이 있으십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역사가 멈춘 적이 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기적이 방해 받은 적이 있습니까? 결단코 그런 적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가 됬다는 이야기는 반드시 승리 시키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운명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에게 하신 일입니다.

▶ 그리고 한가지 더 볼 것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보시게 되면 몸 이야기를 하면서, 각 지체는 붙어있다 말합니다. 몸에는 발가락도 있고, 배도 있고, 팔도 있습니다. 그런데 발냄새를 맡았는데 발냄새가 심해서 가장 작아보이는 새끼발가락을 잘라버립니다. 그럼 어떻게 되겠습니까? 서있을 수도 없고 걸어갈 수도 없다고 합니다. 아무리 작은 지체라도 그 지체를 통해서 몸 전체가 산다는 이야기입니다. 몸의 지체는 많으나 한 몸인 것 같이 그리스도도 똑같다고 고린도전서 12장 1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각 지체들이 살아나야 전체가 산다는 이야기입니다. 겨드랑이에서 암내가 난다고 뜯게 된다면 몸 전체가 무너집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6-27절에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과 성도의 관계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와 성도의 관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둔 교회, 그 교회 안의 성도들을 어떻게 여기고 상대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영안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 사회 보신 문장로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그의 가족이 있습니다. 부인 권사님과 종혁, 종현이 자녀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장로님은 공장의 고객들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부인 권사님께 모욕했다는 말을 했다면 권사님도 힘드시겠지만 그것을 지켜본 남편인 문장로님은 어떨까요? 제가 문장로님께는 좋은 말을 하고, 권사님께는 안 좋은 말을 한다면 장로님은 낙담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제가 종혁이와 종현이를 꾸중한다면 문장로님은 마음이 아프실 것입니다. 문장로님이 평이 좋아서 고객들이 많으신데 제가 고객 중 한명과 싸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문장로님은 갈등이 됩니다. 왜냐하면 문장로님은 목사님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하고 고객과도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서로 싸운다면 관계가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어느 편을 들어야 하는지 헷갈리게 됩니다. 교회, 예수, 성도가 다 똑같습니다.

▶ 지체들 간에도 똑같습니다. 부인 권사님이 남편께 이야기합니다. ‘나랑 결혼해서 행복하게 해주고 나만 바라본다 했으니까 일 나가지 말고 내 얼굴만 봐.’ 막내 아들 종현이도 ‘아빠 나 급하니까 골프 도와줘, 아빠 일 나가지마.’ 이러면 문장로님은 힘들어집니다. 지체 간에 다투게 되면 머리가 아파집니다. 문장로님을 중심으로 한 가족의 몸이 서질 못하게 됩니다. 고객한테 서비스를 잘해서 돈을 벌어와야 아내도 먹이고 자식들을 교육시킬 수 있습니다. 그게 말하는 그리스도 지체의 비밀입니다. 김 목사가 있고 부인 사모와 자녀들, 성도들이 있습니다. 만약에 성도가 부인 사모와 싸웠다고 한다면 성도님들께서는 어떻게 사모가 저럴 수 있지? 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어떻겠습니까? 사모와도 관계가 있고 성도님들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마음이 아프고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변호할 수 없습니다. 성도님들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 사회, 약육강식의 사회 속에서는 항상 견제를 합니다. 미국에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 한국에선 무엇을 하다가 왔는가 서로 재보고 싸우기도 합니다. 문장로님과 권사님은 하나입니다. 문장로님과 자녀들은 한 몸입니다. 그런 것처럼 예수님과 성도님이 하나입니다. 그것이 오늘의 성경 본문입니다. 사도행전 9장 3-5절 입니다. 청년 바울, 사울이 예수 믿는 사람을 체포하러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짓을 하는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바울에게 이야기합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청년 바울은 예수님을 본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닌 적도 없고, 동행한 적도 없습니다. 단지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는 왜 내 제자를 건드리느냐 라고 묻지 않고 왜 나를 핍박하느냐 라고 물었습니다. 성도와 예수님이 하나가 된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성도들과 불화가 있다면 예수님과의 관계가 깨져버리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의 내용을 사도행전 26장에도 똑같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6장에는 사도행전 9장에 빠진 내용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이후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즉 성도들을 때려잡는 것은 너를 공격하는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비밀이 굉장히 깊은 것입니다. 이 눈이 열리면 성도와 성도가 얼마나 축복된 관계인지 알게 되는데 모르면 다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축복이 뿌리내리고 세뇌가 되어야 합니다.

 

3. 내 주위에 다른 지체들을 두신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다

▶ 마지막 세번째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내 주위에 다른 지체들을 붙이셨을까요?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예비된 하나님의 모든 복을 내가 받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데 지체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즉, 내가 받을 복은 정해져 있는데 그 복이 지체들 안에 다 숨겨져 있다는 뜻입니다. 그 증거가 에베소서 1:1-12에 하나님의 모든 신령한 복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의 아들들에게 나누어져 있다고 했습니다. 3절을 보시면 ‘우리에게 복 주시되,’ 4절에는 ‘우리를 택하사,’ 5절에는 ‘우리를 예정하사,’ 6절에는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7절에는 ‘우리가 구속 받았으니,’ 8절에는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절에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11절에는 ‘우리가 기업이 되었으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12절입니다. ‘우리가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전부 ‘우리,’ 복수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복, 단수입니다. 하나의 복인 하나님의 복을 복수인 ‘우리’에게 안배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지체가 산 만큼 내가 살아나는 축복을 받고, 그 지체가 누리는 만큼 내가 누리는 복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내가 성도 지체를 섬길 때 섬기는 복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지체가 성공하는 복을 받아야 성공하는 복이 내게 옵니다. 성도들에게 잘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께 잘하는 것입니다. 성도를 섬기는 것이야말로 내가 복 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투자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만 합니다. 그 하나님의 복을 어디에서 찾느냐? 교회 안에 숨겨진 지체 안에서 찾는 것입니다. ‘성도님들끼리 제발 싸우지 마세요’ 이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 결론 – 그리스도 안에서 가정과 교회가 하나가 될 때 기적이 이루어진다. (유월절, 요단강 도하, 여리고 함락, 오순절 마가다락방, 초대교회)

▶ 그리스도는 우리의 마스터 키입니다. 우리는 그의 지체요, 멤버입니다. 지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방법입니다. 지체 속에서 여러분이 찾아야할 것이 담겨져 있습니다. 정말로 성도들을 섬기고 세워줄 때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증거와 결과가 나타납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세뇌되지 않으면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나이 40이 넘어가게 되면 기분, 자존심에 100퍼센트 얽매이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것에 뿌리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평생 그리스도 복음에 뿌리 내릴 수 있길 바랍니다. 어떤 기적이 일어납니까? 전 백성이 양의 피를 바를 때 유월절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궤를 따라 원네스가 될 때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심단결 여리고성을 돌 때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성도들이 마가다락방에 들어가 한 목소리로 합심해서 기도했습니다. 성령충만이 임하는 대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영적 추격이 로마를 복음화 시킨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베드로를 중심으로 위기 맞았습니다. 이 때 하나님이 우리를 하감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천지가 진동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이 좋게 지내자 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가 될 때 기적이 일어나는 하나님의 방법을 알고 계셔야 합니다. 한 몸 지체 속에 내가 발견하고 누려야 할 복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정이 하나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교회의 각 기관들이 하나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교인 전체가 하나되어 합심하여 기도할 때 교회사에 남을 만큼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리스도 충만케 되길 축원합니다.

▶ 기도합니다. 존귀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진정 주님 바라보게 하시고 내 몸 안에 그리스도의 비밀을 뿌리내릴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의 기적을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