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흔적

December 31th, 2017

ICA Sunday Pulpit Message



고진감래 (苦盡甘來)

▶ 올해 연말에 6주에 걸쳐서 치유 메시지를 나눴습니다. 오늘이6번째 마지막입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완벽한 시간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처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하는 성도이기 때문에 성도의 가치는 최고입니다. 하나님의 파쇄, 깨뜨림은 깨뜨려서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고 큰 그릇을 만들기 위하여 깨뜨린 것 뿐입니다. 하나님이 깨뜨릴 때 빨리 엎드리시면 됩니다. 그 다음은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가치를 말합니다. 우리가 돈을 교회에서 벌지 않고 세상에 나가 돈을 법니다. 세상의 축복이 교회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미, 아름다움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이 인간의 미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일하시고 완성하시는 그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메시지는 그리스도의 흔적입니다.

▶ 열심히 운동하게 되면 몸에 자연스럽게 굳은 살이 생깁니다. 그리스도를 붙잡고 그리스도 없는 세상에 들어갈 때 부딪힘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바로 오늘 그리스도의 흔적에 대해서 봅니다. 한자성어에 ‘고진감래,’ 즉 쓴맛 후에 단맛이 온다는 한자 말이 있습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비슷한 단어가 no pain, no gain에 해당될 것입니다.

▶ 우리가 K-1, 격투기 선수를 보게 되면 귀가 일그러져 있는 것을 보게 되실 것입니다. 오랫동안 매트에 부딪히거나 상대방 선수와의 부딪힘 때문에 생겨난 흔적입니다. 이러한 일그러진 귀는 훈련을 얼마나 받았는지,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에 대한 자랑스러운 흔적입니다. 그리고 전문직인 바이올리니스트를 보게 되면 왼쪽 턱에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고생해서 연습한 흔적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는 멋진 연주를 하고 난 후에 관객들의 큰 환호를 받게 됩니다. 성도가 이 땅에서 사는 신앙생활도 똑같습니다.

1.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기 위해 고난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 첫번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기 위해 고난의 흔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많은 어려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세가지로 구별해봤습니다. 재물을 헌신한 흔적입니다. 또 신앙을 지키다가 인격이 짓밟히는 흔적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가장 소중한 목숨마저 잃는 흔적마저도 남겨져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창세기 14장에 보니 자기 집 안에서 318명의 제자를 키웠다고 되어 있습니다. 용사만 318명입니다. 거기에 딸린 아내와 부모님들, 칼을 들 수 없는 미성년자까지 합하면 1000명이 훌쩍 넘어버립니다. 그들을 지도하고 관리하고 후원하는 아브라함은 재물이 많았다는 뜻이겠죠. 다 헌신한 것입니다. 또 같은 창세기 14장 20절에 보면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데 제사장 멜기세덱을 만납니다. 우리 같으면 전쟁 와중에 목사님 만나게 되면 안녕하세요, 하고 지나가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제사장 멜기세덱을 향하여 경배하고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즉 물질헌신에 체질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전쟁에 승리했기 때문에 전리품을 다 가져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지금 전리품을 가져가게 되면 훗날 우리 후대가 ‘아브라함 할아버지가 전쟁에서 승리해서 부자되었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 싫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 열왕기상에 오바댜라는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선지자 50명씩 총 100명을 숨겨 보호하고 먹을 것을 공급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바댜 선지자가 공무원이기 때문에 물질적인 축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헌신한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의 제자가 엘리사입니다. 엘리사가 스승이 부를 때 자신의 24마리의 소를 포기하고 주님의 길을 따라갔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헌금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헌금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 마음을 주시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평생 헌금을 안 해도 천국을 가기 때문에 헌금에 대한 부담을 갖지 마시길 바랍니다. 불신앙의 헌금을 드리는 사람이 가장 먼저 시험들고 가장 먼저 교회를 나갑니다. 헌금을 많이 내라고 하는 목사의 설교가 아님을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한 명도 억지로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내가 받은 재물의 축복은 하나님이 주셨다, 이 재물을 가지고 이 때 쓰라고 허락하신 거구나’ 확신하신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 로마서 16장에 기록된 인물들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가이오, 브리스가 부부 같은 경우에는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헌신했습니다. 교회사의 인물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의 CCC창시자, 빌 브라이트 (Bill Bright) 박사님은 재벌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전재산을 헌납했습니다. 그런 흔적들이 남아있습니다. 최근에 서울에 있는 예원교회 중직자분들도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만큼 큰 교회당과 렘넌트센터를 건축했습니다. 우리 교회도 6년전에 교회당을 건축할 때 많은 분들이 헌금을 하셨고, 지금까지 렘넌트들에게 장학금으로 헌신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 또 한가지는 신앙생활 하면서 인격이 무시되고 짓밟히는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 오랜 세월동안 지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조롱했습니다. 그 때 우리가 모멸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열국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25년 동안 자식 하나 없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볼 때 ‘열국의 아비’라 불렀지만 자식 하나 없었습니다. ‘복음 받으면 모든 문제 해결된다며! 그런데 왜 더 어려워지나?’ 이런 소리 들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복음 가졌는데 내가 왜 이럴까.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당연한 현상입니다. 꼭 와야 할 문제입니다. 그런 상황을 활용해야 할 축복의 발판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흔적을 주시려고 허락하신 것입니다. 아무 일 없이 편안히 살면 좋죠. 그러나 실제 고난이 밀려오게 되면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그런데 아셔야 합니다. 성도에게 다가오는 고난은 오면 올수록 유익입니다.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 욥이 시험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가족까지 전부 잃었습니다. 그 때 친구 세명이 찾아와서 자꾸 물어봅니다. ‘니가 말로만 동방의 의인이었지, 숨긴 죄 있지?’ 라고 물어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 때문에 허락된 시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모른채 욥을 어렵게 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궤가 성 안으로 들어올 때 너무 기뻤습니다. 춤을 췄다고 되어 있습니다. 춤을 추던 모습을 본 다윗의 아내 미갈이 경멸을 했습니다. ‘왜 체통을 지키지 못하고 천한 사람처럼 그 앞에서 춤을 추느냐.’ 다윗을 사랑해서 아내가 되었지만 다윗의 영성을 못 알아봤습니다. 다윗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겠죠. 한 방에서 쓰는 와이프로부터 경멸과 수치를 당한 것입니다. 이런 것이 인격들이 짓밟히는 순간입니다. 느헤미야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다 무너졌습니다. 이것을 다시 건축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이 때 대적자들이 갖은 모함과 수모로 훼방을 놓았습니다. 해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네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해서 왕이 되려고 하느냐’ 하며 모함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에 나타난 수많은 선지자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왕족 출신입니다. 세상에서 보장된 풍요를 버리고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했던 지도자였습니다. 하나님께 직접 말씀을 받아서 회개하라고 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욕했습니다. 일설에는 이스라엘 선지자가 톱에 켜서 죽임을 당했다고 전해집니다. 눈물의 선지자 느헤미야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건만 자기 동족으로부터 멸시와 박해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역시 정신적인 어려움을 많이 당했습니다. 편견과 핍박을 당한 것입니다.

▶ 오늘 특히, 본문에 나오는 사도바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도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했던 12제자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하여 바울 사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너는 얼마전까지 예수 믿는 사람을 감옥에 넣는 전과자가 아니냐?’ 라고도 물었습니다. 이 때 바울이 얘기합니다. ‘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체험하고 보내심을 받은 사도다. 너희들이 일을 많이 했느냐, 나는 더욱더 많이 해서 몸에 흔적까지 있다.’ 고린도후서 11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고를 넘치게 했다. 매맞았다. 감옥에 몇 번 들어가고 죽을 위기도 여러번 겪었다. 내 동족 유대인들로부터 39대씩 5번이나 맞았다. 세 번이나 몽둥이 세례를 받았다. 한 번 돌 세례를 받았다. 내가 탔던 배는 세 번이나 파선됐다. 전도 여행을 하다 물이 없어 위기를 만났다. 강도의 위협을 받았고 동족의 살인 위협을 받았다. 이교도들로부터 살해위협을 받았다. 내가 도시에 있든지 바다에 있든지 위기는 끊임없이 왔다. 지치고 목말랐다. 굶주려 가며 밤샘을 며칠했는지 모른다. 추위 때문에 헐벗은 적이 많다. 고문 당했다.’ 이런 것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약 성경의 절반을 기록했던 바울은 대전도자라는 이름을 일컫고 있는데, 어마어마한 고난의 흔적을 통과했습니다.

▶ 특히 히브리서 11장에는 목숨을 잃는 순교자들의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흔적이 남을 만큼 고난이 오는데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고 하나님의 큰 뜻이 있음을 믿으셔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복음의 완성을 위하여 십자가의 흔적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것을 남겼다. (요20:20, 25, 27)

▶ 두번째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흔적을 갖고 계십니다. 손과 발에 대못이 박혔습니다. 허리에는 창으로 관통당했습니다. 왜 이렇게 처참하게 죽으셔야만 됐습니까? 우리를 살리기 위한 복음을 완성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복음 완성 이후에 영원한 것을 남기셨습니다. 어떠한 것을 남기셨습니까? 세가지가 있습니다.

▶ 첫째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틀림없이 이루어짐을 남겼습니다. 성경의 기록대로 예수님이 죽으셨다 장사 지낸 바 된 후에, 성경에 기록된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어쩌다가 예수님이 사역 실패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시키기 위함입니다. 영원한 말씀을 남기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완벽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많은 사건, 많은 인물이 나오지만 우리의 복음을 위해서 수많은 일들이 기록된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메시야 그리스도가 사단의 권세를 깨뜨릴 것이라는 예언이 성취됐습니다. 출애굽기 3:18절, 피 제사입니다. 예수님께서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영원한 제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이사야 7:14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탄생된 것이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완전하신 말씀임을 남기신 것입니다. 우리는 5분 뒤의 일을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보장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면 이기기 때문입니다.

▶ 그 다음에 남긴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십자가 사건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끝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야, 구원자인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원죄와 재앙, 심판을 해결하신 것입니다. 죄에 대한 완전한 해방과 해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붙잡게 되면 완전히 승리가 보장되는 권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즉, 영원한 구원을 이루시고 남기신 것입니다.

▶ 그리고 예수님께서 세계복음화를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잡아서 어떻게 하면 성령인도를 붙잡을 것인가?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끝까지 증인이 되리라.’ 땅끝까지 모든 족속으로 세계복음화, 여기에 모든 답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언약을 붙잡을 때 여러분의 삶이 영원한 상급과 바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즉 성령의 인도를 받는 세계복음화는 영원한 축복입니다. 영원한 말씀, 영원한 구원, 영원한 축복을 남기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모든 문제의 끝입니다. 갈등 느낄 이유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져야 할 이유가 있다.

▶ 자 그러면 마지막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져야 할 이유를 아셔야 합니다. 첫번째는 하나님 아버지의 입장입니다. 즉 내가 하나님이 쓰시는 거룩한 그릇, 도구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흔적이 필요합니다. 디모데후서 2장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를 깨끗하게 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세상에 많은 것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즉 영적싸움을 통과하고 내 그릇을 준비하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것들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것이 밀려온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쓰시려고 준비하시는 것입니다.

▶ 다른 한가지는 그리스도의 입장에서 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 크리스챤, 작은 그리스도인입니다. 크리스챤이라는 단어를 처음 듣게 된 곳은 안디옥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11장에 나옵니다. 안디옥 교회는 스데반의 환란 때문에 나온 교회입니다. 즉 스데반의 환란이란 것을 겪으니까 처음으로 크리스챤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작은 그리스도로, 작은 목자로 만드시려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믿게 되면 다 받은 것이기 때문에 응답이 와도 안 와도 괜찮습니다. 요즘 시대에는 고난을 피해서 응답 받은 것을 자랑하는 간증의 시대가 되었습니다만 실제로는 고난이 내게 오는 것이 더 유익합니다.

▶ 또 한가지는, 내가 그리스도의 고난의 흔적을 갖게 되면 내 제자나 후대들이 보게 됩니다. 그들을 살리려고 나에게 흔적을 갖게 하신다 생각하면 됩니다. 제자, 어린 양, 렘넌트의 언약을 베드로가 받았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게 되면 ‘내 양을 먹이고 치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렘넌트 살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젊어서는 네 스스로 원하는 곳으로 다녔지만 늙어서는 남이 네게 띠 띠우고 네가 원치 않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 하신 것은 그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지 표적으로 보여주실 것임을 뜻합니다. 베드로가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고 전해져 내려옵니다. 결국에는 베드로를 통해서 교회가 지속되어지고 후대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너무 인생이 비관스럽지 않냐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슬퍼하라고 메시지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고 큰 그릇으로 만드시려고 그리스도의 고난의 흔적을 허락하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론을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지켜가면서 전도를 하면 혹여나 상처받을 수 있습니다. 고난이 따라오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실패의 흔적이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상급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야고보서 1장에 말씀합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저와 여러분들이 혹시 어려움을 만날 때가 있다면 무엇이 잘못되었지? 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내게 그리스도의 흔적을 허락하려고 하시는구나’ 라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면류관을 받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흔적이 되게 할 수 있을까요?

▶ 첫째는 믿음을 가지시면 됩니다. 이 문제와 사건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나를 내버려 둘 수 있는데 세밀하게 문제를 통해서라도 하나님이 인도하신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았음으로 우리도 고난 받는 길에 동참하게 하신 그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한 이유와 계획을 가지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을 확신하고, 그리스도의 흔적을 남기려고 하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감사하고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허락하신 것입니다. 절대주권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마저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하셨습니다. 지금 나로 그리스도의 길을 걷게 하신 것에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하고 기쁘면 찬송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당장 역사하시든지 시간이 지나 역사하시든지 하나님의 완벽한 답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 결론 – 복음을 지키고 전도를 하면서 받은 상처, 고난, 실패의 흔적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상급으로 돌아올 것이다. (고전9:25, 약1:12, 계2:10)

▶ 사도행전 16장 말씀을 드리면서 마치겠습니다. 바울이 제자들과 팀을 이루어서 빌립보 지역에 전도하러 들어갔습니다. 옷 장사를 하던 루디아를 만나서 영접하고, 전가족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영적인 여세를 몰아 가다 보니 귀신들린 여종을 치유했습니다. 그 귀신들린 여자아이 때문에 돈 벌던 사람들이 돈이 끊기니까 바울과 바울 팀을 고소합니다. 사도행전 16:2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많이 맞고 채찍질 당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깊은 감옥에 던져졌다 했고 발에는 움직이지 못하도록 차꼬가 채워져 있다고 했습니다. 이 때 바울과 그 제자 실라가 어떻게 했습니까? 왜 내가 하나님 일을 하는데 이 모양 이 꼴이냐? 라고 원망 불평했습니까? ‘이것은 있어서는 안돼, 빨리 밖에 있는 제자들 통해 나를 빼달라고 탄원서 내야지’ 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16:25절에 한밤중까지 바울과 실라가 기도했습니다. 바울이 깨달은 것입니다.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을 감옥에 처넣었던 악질 중 악질인데 예수 믿고 예수님을 전하다가 억울한 일을 당했구나.’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입니다. 딱 펼쳐보이기만 하면 됩니다. 로마시민권자는 재판 없이 절대 두드려 맞거나 감옥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이 로마시민권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흔적을 받기 위해 들어간 것입니다. ‘내가 사실은 죄인인데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고 그리스도의 고난의 길을 동참하는 자가 되었구나.’ 이 사실을 믿었고 감사하니까 찬송을 올린 것입니다. 많은 죄수들이 그 소리를 듣고 갑자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이 때 나온 유명한 말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입니다. 간수의 가정들 전부 구원받고 빌립보 교회의 중요한 토대를 마련한 것입니다. 만약 불평, 불만, 원망을 하고 있었다면, 즉 감사하지 못했다면 모든 상처가 그리스도의 흔적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채찍 자국이 그리스도를 전하다가 맞은 것이라고 흔적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 성도들에게 고난이 오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상할 것도 없고 도리어 내게 유익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그릇은 거룩한 그릇이다.’ 더 작은 그리스도를 만들기 위한 필수 성분입니다. 이 흔적을 보는 제자들과 렘넌트들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허락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를 믿고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흔적이 되지 않으면 원망, 쓴 뿌리가 되어 버립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 깊은 뿌리가 있습니다. 끊임없이 쓴 말이 나오게 됩니다. 쓴 생각이 나오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 언약을 붙잡고 치유되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하겠습니다. 존귀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오늘 마지막 치유 메시지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그릇이 되게 하시고, 작은 그리스도가 되어지는 필수 과정이 되어지게 하시며 나를 통하여 제자들과 후대를 살리는 귀한 성령의 작품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축복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