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후손을 받아들인 가정

♠서론

성경에 나타난 최초의 문제는 가정에서 일어났다.

▶1852년의 일입니다. 미국의 한 시민이 알제리라는 곳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31년이 지나서야 그 사람의 유해가 본국으로 돌아옵니다. 미국 정부는 그의 유해를 가져오기 위해 군함을 보냈습니다. 그 유해는 뉴욕항구에 도착했습니다. 당시의 신문기사를 보면 뉴욕시가 생긴 이후 최대의 인파가 모였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 미국의 대통령도 참석했습니다. 국무위원과 수많은 인사들이 뉴욕시에 모였습니다. 유해가 담긴 관이 내려올 때 군악대의 연주와 예포로 화려하게 맞이했습니다. 유해의 주인공은 정치가가 아니었습니다. 뛰어난 과학자나 경영학자나 돈 많은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시민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한 시민의 죽음을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애도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그 사람이 지은 한곡의 노래 때문이었습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집 내 집뿐이리’ ‘홈! 스윗 홈!’이 원 제목입니다. 한국에는 ‘즐거운 나의 집’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이곡의 작사는 바로 미국의 극작가이면서 배우였던 존 하워드 페인입니다. 사실상 아시겠지만 영국 사람들은 미국 사람들을 하찮게 봅니다. 우리가 큰집이고 너희는 작은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배우가 영국에 진출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미국배우로 영국에 진출한 최초의 배우가 존 하워드 페인입니다. 바로 그 사람이 지은 가정에 관한 노래입니다. 미국에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이 치열하게 대치했던 남북전쟁이 있었습니다. 오랜 전쟁에 다들 심신이 지치고 피로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병사가 하모니카로 즐거운 나의 집을 불었습니다. 남군과 북군의 마음이 모우 찡해졌습니다. 그래서 잠시 휴전하기로 하고 그 사이 각자의 집에 편지를 썼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특별히 당시 대통령이었던 아브라함 링컨과 그의 부인이 이 노래를 아주 좋아했다고 합니다.

▶가정이라고 하는 것은 행복의 공장이라고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만드시고 남자와 여자를 만드셔서 행복한 가정을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영어단어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감동적인 단어 세 개가 발표됐습니다. 첫째가 엄마(Mother), 둘째가 천국(Heaven) 그리고 세 번째가 가정(Home)이었습니다. 그만큼 가정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뜻이겠죠.

▶오늘 그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크리스천이기에 영적사실을 압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에는 영적인 존재와 그의 활동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성경에는 모든 것의 시작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인간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또한 죄는 어떻게 왔으며 죽음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죄가 어디서 출발했습니까? 창세기 3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죄의 문제가 시작되었고 아담의 뒷동네가 아닌 바로 아담의 가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성경이 기록한 최초의 문제는 가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영적으로 말하자면 사단은 가정을 제일 먼저 공격했습니다. 믿습니까?

1. 아담의 가정 문제는 누구에게나 있다.

 

▶첫 번째입니다. 아담의 가정문제는 누구에게나 다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창세기 3장 16절에서부터 보니까 아담의 가정문제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3장 16절에 여자의 고통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출산의 고통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귀한 생명을 얻어야 하니까 그러한 고통은 감수할 수 있겠죠. 그러나 문제는 여자가 남자를 열망한다, 사모한다는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의 다스림을 받도록 되어져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아내는 자신의 존재, 가치, 바탕, 기반을 남편에게 두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원죄사건 이전에는 어떠했습니까? 남자로부터 살 중에 살이요 뼈 중에 뼈라는 호감과 칭찬을 받았습니다. 남편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남편을 돕는 하나님 앞에서 평등한 존재로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즉 아내, 하와의 존재가치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와를 얼마나 멋지게 만드셨는지 아담이 내 살 중에 살이요 뼈 중에 뼈라고 극찬을 한 것입니다. 남편의 호감을 받을 만큼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비록 남자보다 육신의 힘이 약하지만 남편을 일을 돕는 가치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가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범죄 했습니다. 그리고 바뀌었습니다. 남편의 극찬과 호감이 남편의 다스림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돕는 입장에서 남편을 항상 열망하게 됩니다. 남편의 인정을 받아야만 하는 불안정한 존재로 전락한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어요? 남편의 다스림에 순복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남편에게 순복해야 됩니다. 여자가 열등한 존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가 남편보다 더 근육이 나올 수 있고 힘이 더 있을 수 있습니다.

▶어제 제 아내에게서 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제 집의 가구를 옮겼습니다. 겨울이 되니까 창문을 막았습니다. 제가 계획하는 것 보다 제 아내가 더 잘합니다. 그러면서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 내가 당신보다 잔머리를 더 잘 굴려.’ 저는 많은 것을 생각하느라 한참 걸리는데 제 아내는 착착 잘 합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더 똑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남편에게 순복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안 되는 거죠. 계속 열망해야 합니다. 당신 나만 바라봐야해. 다른 여자는 바라보지 마. 그렇게 되는 겁니다. 보통 세상 여자는 결혼할 때 남편감에게 기대를 가지고 결혼합니다. 끊임없이 요구를 하게 되는 것이죠. 나만 바라봐. 나를 위해서 살아. 바람 피지마. 자기도 모르게 끊임없이 요구를 합니다. 나쁜 여자라는 말이 아니라 여자가 그렇게 전락되었다는 말입니다.

▶17절과 18절에는 뭐라고 기록되었습니까? 남자에게서 시작된 문제가 있습니다.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고 정복하고 승리할 인간이 땅의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땅의 저주 때문에 땅의 정복을 당합니다. 다스렸던 존재가 다스림을 받는 존재로 전락되었습니다. 땅의 소산이 안 나오면 굶게 되는 것입니다. 땅의 소산이 나와도 땀을 흘려야만 간신히 먹을 수 있는 존재로 바뀌었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남자는 세상에 나가서 일을 해야 됩니다. 남자가 나가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많은 고통과 권모술수와 어려움이 난무한 현장이 세상현장입니다. 수고하고 고통이 가득한 세상현장입니다.

▶19절에는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너희가 땅으로부터 왔으니 땅으로 돌아가라. 아담과 하와에게 죽을 것을 말합니다. 고생하고 고통당하면서 살다가 덧없이 죽는 것입니다. 허망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원래의 인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2장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땅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살아있는 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생기를 강화시키고 충만케 해서 천국을 이루고 영원한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놓치고 흙의 몸에 빠져서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담이 가지고 있던 문제였습니다. 이것이 아담의 가정에서 벌어진 문제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가정에도 있습니다. 서로에게 요구만 하다가 부부싸움을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향해서 또 아내는 남편을 향해서 기대감을 가지고 시작을 합니다. 세상에서 고생하는 남편은 집에 돌아와서는 아내에게서 쉼과 안식을 요구합니다. 서로 요구만 하다가 결국 죽습니다. 얼마나 허망합니까? 죽음 이후의 영원한 세계는 하나도 준비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가 지금도 팽배해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해결점을 주셨습니다. 부부의 십계명을 주신 것이 아니라 갑자기 여자의 후손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아담이 받아들였습니다. 해결되기 시작합니다. 믿습니까? 모든 가정의 문제의 해결방법은 오직 복음 외엔 없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뜻은 이런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상대방에게 두지 말고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공부 열심히 해라.’ ‘게임하지 마라.’ ‘열심히 노력해라.’ 나쁜 말은 아니지만 요구만 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도 아내에게 끝없이 요구만 합니다. ‘음식 좀 짜게 하지 마.’ ‘왜 맨날 풀떼기야.’ 아내도 요구합니다. ‘옆집 영희 아빠 좀 봐.’ 상대방에게 나의 존재가치를 얹어 두었단 말입니다. 나의 신분, 나의 소속, 나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하나님께 두어야 문제가 풀립니다. ‘내가 너만 믿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배신할 줄이야.’ ‘짐승만도 못해.’

▶하나님께 나의 존재가치의 이유를 두셔야 합니다. 내가 너와 결혼한 것은 너의 외모 때문이 아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너에게 붙이셨다. 이해하시겠어요? 상대방을 통해서 나의 요구와 욕구를 채우려하면 틀어지게 됩니다. 추상적이고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한가지의 생각패턴을 바꾸면 풀리게 됩니다. 데이트할 때 잘해주고 인격이 좋고 능력이 있는 것 같아서 결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가는 것이고 하나님이 나를 이 배우자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은 무엇을 합니까? 아내를 살려야 됩니다. 다스리라고 되어 있잖아요? 무엇으로 다스립니까? 힘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어서 키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심어서 성장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담긴 영적지식을 가지고 키워야 되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키워야 됩니까? 아내가 성장해서 나의 돕는 동역자가 될 만큼 키워야 됩니다.

▶목사님의 사모님들이 계십니다. 사모님들은 절대 교회에 나오지도 말고 움직이지도 말고 없는 것처럼 행동하라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해는 됩니다. 사모님들이 설치는 교회가 많습니다. 이런 저런 문제를 많이 일으키십니다. 교회의 중직자들이 사모님들 때문에 끙끙 앓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부정적인 면 때문에 미리 차단시키려고 하는 한 가지 의견이란 것은 이해는 갑니다. 그러나 원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동역자가 되는 겁니다. 드러내지 않으면서 여자로써 할 일들을 남편을 위해 돕는 겁니다. 한국에 역사 배경 상 여자들이 설쳐서 망조가 든 것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서 각인이 되어 있습니다. 체질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영적문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아예 조용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돕는 배필로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그 정도가 될 만큼 남편이 아내를 키워야 됩니다. 전혀 남편의 사역에 방해가 안 될 만큼 키워야 됩니다. 그래서 미국 교회는 안수를 받은 사모님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 교회의 사이트를 보면 남편도 목사님, 사모님도 목사님인 곳이 많습니다. 성경적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쫓아가자고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표가 있습니다. 그러한 흐름을 바로 한국교회에 집어넣게 되면 이단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표와 방향은 그렇다는 겁니다.

▶남편을 이해하고 남편의 숨은 아픔을 품을 수 있고 남편이 말을 하진 않지만 눈치를 채고 그런 부분을 숨어서 도울 수 있는 수준의 아내가 되란 말입니다. 아내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영적인 비밀을 기도로 누리는 것이죠. 그것이 남편을 돕는 것입니다. 언제까지요? 고통당하는 세상을 다시 정복할 수 있을 만큼 남편을 돕는 것입니다. 늘 실패했던 남편이 현장을 장악하고 정복할 수 있을 만큼 도와주는 거예요. 바로 그일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그에게 붙이신 것입니다. 이러한 정체성을 뿌리내리지 않으면 영원히 가정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렇게 함께 죽어 천국에 가는 소망을 같이 가지는 거예요. 함께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복음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놓친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죠?

 

2. 아담의 가정 문제가 오게 된 원인을 찾아라.

 

▶두 번째입니다. 아담가정의 문제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 원인을 알게 되면 90%가 해결됩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자가 그 사실을 몰랐습니까? 하와는 알았습니다. 따먹지 말하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더 합니다. ‘만지지도 말라고 했어.’ 이 말은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대충 알고 있었습니다. 만져도 괜찮습니다. 냄새를 맡아도 괜찮습니다. 혀로 핥아도 괜찮습니다. 먹지만 않으면 됩니다. 알고는 있었는데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인생에 결론이 안 난 것입니다. 평생의 언약으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성경 66권 1189장에 수많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 하나만 붙잡으면 인생 끝납니다. 성경 속에 축복받은 인물들이 다 잘한 것이 아닙니다. 말씀 하나 붙잡고 끝낸 것입니다. ‘방주를 지어라.’ 노아는 이 말씀 하나를 가지고 끝낸 것입니다. 노아는 사실 노출증 환자잖아요. 술만 들어가면 벗으려고 합니다. 지금 말하면 경범죄로 잡혀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하나 붙잡고 끝낸 것입니다. ‘아들을 주겠다.’ 아브라함이 붙잡은 한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참 비열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리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고 아내를 두 번씩이나 팔수가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인생을 끝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피 제사를 회복해라.’ 모세가 붙잡은 한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네게 준 꿈을 이루겠다.’ 요셉이 붙잡은 한 말씀이었습니다. ‘너는 왕이 될 것이다.’ 다윗이 붙잡은 한 말씀입니다. ‘어린양을 먹여라.’ 세 번 배신한 베드로가 붙잡고 성공한 한 말씀, 한 언약이었습니다. ‘이방인’, ‘왕’,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전할 택한 그릇이다.’ 바울이 붙잡고 쓰임 받았던 한 말씀이었습니다.

▶기도응답을 많이 받은 사람으로 조지 뮬러를 꼽습니다. 이분이 사실은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영어자서전을 보면 이 사람이 이런 것도 했구나를 알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네 기도에 응답을 하신다.’는 말씀을 가지고 오만번의 기도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록펠러는 성경말씀이 아닌 성경말씀을 믿는 어머니의 말을 믿고 인생 끝냈습니다. ‘예배를 30분전에 가서 드려라.’ 그 바쁜 재벌이 주일예배만큼은 칼같이 지켰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으신 축복이 무엇인지 다 압니다. 하나의 말씀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 다음은 무엇입니까? 마귀가 유혹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처럼 될 거야.’ 이 유혹을 거절하고 거부했어야 합니다. 이것을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것 같다는 생각은 교만함입니다. 내가 보니까 내가 하나님처럼 지혜롭고 탐스럽다는 생각은 내 중심입니다.

▶여러분들이 나 중심으로 계속 선택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교훈을 주시기 위해 또 내 중심으로 계속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추악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시려고 내버려 두실 때가 있습니다. 성경을 보더라도 내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일단 감사를 잃어버립니다. 더 나아가면 하나님이 원망스러워집니다. 모든 것이 삐딱하게 보입니다. 불공평하게 보여요. 누구는 예정했다 하고 누구는 예정하지 않았다 하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선악과 따먹은 것 가지고 째째하게 전쟁과 재앙과 지옥과 고통을 주신 하나님이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배를 잘 드린 아벨은 처 죽임을 당하고 예배를 못 드린 가인을 번성하게 되느냐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나중에는 사탄이 불쌍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다가 그 한번 실수를 가지고 영원히 지옥에 가두느냐고 말입니다. 그렇게 똑똑했던 가롯 유다는 왜 버림을 받았냐고 말이죠. 전혀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이 안 나게 되어 집니다. 영적 무기력에 빠집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혼란이 생깁니다. 나중에는 영적 광분상태가 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시면 심판에 대해 나옵니다. 단순한 재앙이 아니고 하나님의 심판인 것을 누구나 다 알게끔 일이 벌어집니다. 이럴 때에 우리 같으면 하나님께 제발 살려달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이를 갈며 진노할 사람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네가 왜 심판하느냐고 말이죠. 나 중심으로 빠지게 되면 그렇게 넘어지게 됩니다. ▶또 한 가지 볼 것은 창세기 3장 14절입니다. 마귀가 원하는 수준에 계속 머물러 있게 되면 당합니다. 뱀이 땅으로 기어 다니고 무엇을 먹고 산다고 했죠? 제 성경에는 뱀이 쥐나 양서류를 먹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진짜 믿는 사람이 계시더라고요. 제 성경이 틀렸나 봐요 라고 말합니다. 창세기 3장에는 뱀이 흙을 먹고 산다고 나옵니다. 흙을 먹고 사는 뱀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뭘 먹는다는 얘기죠? 흙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영혼들을 박살낸다는 말입니다. 흙이 수준, 즉 육신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게 되면 다 당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나 비록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지만 기도하겠다. 내 비록 부족한 것 많지만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복음 전하겠다. 하나님이 원하신 것을 중요히 여기지 않고 마귀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며 마귀가 원하는 상태에 지속되어 있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깨닫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족하더라도 선언하시면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나는 구원받았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위해서 내가 왔다. 나는 기도하겠다.’ 믿습니까?

 

3. 가정에서 한 사람이라도 복음을 인정할 때 문제는 해결된다. (창3:20)

 

▶세 번째입니다. 가정에서 한 사람이라도 복음을 인정하고 수용하게 되면 그때부터 문제해결이 시작됩니다. 창세기 3장 2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담이 자기 아내의 이름을 뭐라고 불렀습니까? 이브라고 불렀습니다. 모든 산 자의 어미라는 뜻입니다. 할머니의 옛날 관주개혁성경에 보면 생명의 어미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박살낼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담이 들었습니다. ‘우리를 무너뜨린 저 뱀, 그 원수를 갚을 후손이 오겠구나.’ 그런데 여자의 후손으로 온단 말이에요. 아담 옆에 여자가 있습니다. ‘당신의 후손을 통해서 그분이 오실 거야.’ 창세기 3장 사건을 일으킨 여자를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수용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내에게 주신 존재가치를 아담이 받아들인 것입니다. ‘야 진상아 네가 무슨 메시아를 낳아?’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택하셨어. 하나님이 당신을 축복하실 거야. 왜? 내가 기도하기 때문에.’ 믿습니까?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큰 계획이 있어.’ 우리 남편은 복음을 가진 자다. 내 아내는 기도하는 자다. 복음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뜻을 내가 받아들이는 겁니다. 이해하시겠어요?

▶비방, 비난, 비약은 하지 마세요. 아들 하나 없는 남편에게 ‘열국의 아비’라고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아들 하나 낳지 못한 아내에게 ‘열국의 어미’라고 불렀습니다. 수십 년 동안 쓴 이름을 바꾸면서까지 상대방의 가치와 상대방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인정하고 인식하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죠? 아담이 그 작업을 한 것입니다. 즉 여자의 후손을 자기 가정에 받아들인 것입니다. 당신 때문에 이 모양 이 꼴 되었다가 아니고 하나님이 당신을 새롭게 부르셨구나. 다 몰라도 한사람만 이것을 깨닫게 되면 그 사람을 통해서 축복이 밀려들어 옵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21절에 하나님이 가죽옷을 친히 만들어 입혀주셨습니다. 여러분 가죽옷을 입어 보셨습니까? 록밴드하시는 분들이 가죽옷 입은 것 보셨습니까? 굉장히 불편합니다. 계속 입고 있으면 땀나고 오금이 저립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나뭇잎으로 일시적으로 가린 것을 가죽옷으로 수치를 덮어 버린 것입니다. 땀띠 나라고 가죽옷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벌거벗은 그 몸을 피 흘려 잡은 짐승의 가죽으로 덮어버린 것입니다. 집안에 한사람이라도 그리스도를 붙잡게 되면 그 가정의 수치와 말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바꿔버리십니다. 과거에 끔찍했던 일들이 덮어질 만큼 축복을 부어주십니다. 제 어머니가 여기 계시니까 물어보세요. 저희 집안이 철저히 망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지워버렸습니다. 수치스러웠던 과거를 다 덮은 만큼 하나님께서 축복을 부으셨습니다.

▶22절을 보시면 에덴동산에서 추방됩니다. 등기도 못했는데 쫓겨난다가 아니고 하나님이 축복하신 것입니다. 화영검을 두시고 에덴동산에 못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생명나무를 못 먹게 한 것입니다. 원죄의 상태, 저주받은 상태에서 영원히 살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회개할 기회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다시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시려고 에덴에서 나오게 하신 것입니다. 영원한 저주의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고 다시 회복할 기회를 주시려고 에덴에서 나오게 하신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인 그리스도를 붙잡은 여러분 한분 때문에 영원한 축복이 임할 줄을 믿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후대를 세우십니다. 아벨이 바로 그 자녀가 아니겠습니까? 누구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아벨이 무슨 축복입니까? 무슨 응답입니까? 형 가인이 아벨을 처 죽였는데요. 가정의 비극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창세기 3장사건 이후에 파라다이스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에덴동산 나온 이후에 지구의 저울은 기울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다 미끄러지게끔 되어 있습니다. 어린아이도 미끄러집니다. 착한 사람도 미끄러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여자의 후손이라는 복음을 붙잡게 되면 건져내지는 것입니다. 가인이 그 짓을 안 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통해서 그런 재앙이 임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그런 세상으로 바뀌어져 버린 것입니다. 흑암이 장악한 세상이 된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순교할 만큼 언약을 붙잡은 자녀가 태어났어요. 그것이 아벨입니다. 그런데 죽었습니다. 셋이라는 또 다른 아들을 주셨습니다. 믿습니까? 그 셋의 후손을 통해서 메시아의 계보를 이은 것입니다. 모두가 망하는 세상에 언약의 후대를 하나님께서 세우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여자의 후손을 붙잡은 아담의 가정에 찾아온 축복과 응답입니다.

 

♠결론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님은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셨다. (창3:15)

 

▶결론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중요시하시기 바랍니다. 마귀의 유혹을 분별할 만큼 성령충만 받으시길 바랍니다. 마귀의 조정을 당하는 상태에서 넘어서도록 영적싸움하시길 바랍니다.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를 이루시고 우리에게 보장을 해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의 머리를 무너뜨리신 줄을 믿습니다. 그 승리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여러분이 고백하시게 되면 여러분의 주위의 영적판도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영적판도가 바꿨다는 사실을 내가 믿고 기다리면 눈에 보이는 증거가 옵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가정 안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복음의 편에 서시면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받도록 기도하시면 됩니다. 영의 양식인 말씀을 먹어야 됩니다. 영의 호흡인 기도에 힘쓰면 됩니다. 그러면 나에게 키울 제자를 하나님께서 붙이십니다. 이런 축복을 받는 가정이 복음의 명문가정입니다. 여자의 후손을 기억하고 받아들인 가정이 복음의 명문가정입니다.

 

♠기도

 

존귀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붙잡고 승리하게 하옵소서. 가정을 살리게 하시고 그를 통해 후대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복음의 명문가정으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