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기적은 멋지고 아름답다

20160522 임마누엘 어스틴 교회 주일강단

제목: 복음의 명문가정의 절대목표-복음회복(12)

     하나님의 기적은 멋지고 아름답다

본문: 여호수아 14:1-15   설교: 김태성 목사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받은 기업 곧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이 분배한 것이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의 기업을 제비 뽑아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주었으니 이는 두 지파와 반 지파의 기업은 모세가 요단 저쪽에서 주었음이요 레위 자손에게는 그들 가운데에서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요셉의 자손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두 지파가 되었음이라 이 땅에서 레위 사람에게 아무 분깃도 주지 아니하고 다만 거주할 성읍들과 가축과 재산을 위한 목초지만 주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이 행하여 그 땅을 나누었더라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에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음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화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니라 헤브론의 엣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서론> 복음의 미학

 

반갑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백합화를 생각해 봐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지만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다. 솔로몬이 누구입니까? 부귀영화의 절대 아이콘입니다. 그가 입은 옷이 화려하지만 하나님께서 만드신 백합화 한 송이의 아름다움을 따라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작품과 인간의 작품을 비교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붙들고 있는 복음도 하나님의 작품인줄로 믿습니다.

 

이 복음은 종교가 흉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복음은 창조주께서 사람들에게 내민 사랑의 손길입니다. 실제적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음에도 우리가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이해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더 가까이 계십니다. 우리는 쉽게 낙심하고 포기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른이나 아이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도우시고 함께 하시며 승리케 하십니다. 그분은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계신 전능자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종교라고 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복음은 그러한 한계의 허울을 벗겨버립니다. 그리고 종교의 허구성을 통렬히 유린하기도 합니다. 복음은 이렇게 대단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조금은 소박해 보이기도 하고 조금은 덜떨어져 보일수도 있어요.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은 멋지고 화려한 무대에 나가서 놀기도 하고 일요일에도 돈을 벌고 멋진 곳에 여행을 가기도 하잖아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힘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 하고 싶은데도 절제하는 것 같아요. 일주일에 한 번씩 한 장소에 모여서 서로 노래하고 집에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만 속으로는 어마어마한 비밀들이 있습니다. 학문을 많이 하다보면 철학이라는 수준에 도달하게 됩니다. 철학책을 보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굉장히 깊은 내용이거든요. 그런데 복음과 철학은 비교할 수 없다는 말이에요. 이 복음에는 창조주 하나님의 심오하고 완벽한 경륜이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기 원하시는 거예요. 그것을 모든 사람, 모든 만물, 모든 이벤트,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고 계십니다. 남편과 아내가 그냥 사는 줄 알았어요. 서로 사랑해서 결혼해서 사는 줄 알았어요. 때가 되면 애도 낳고 사는 줄 알았어요. 알고 보니까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사람 관계를 통해서 알려주는 거예요. 모든 것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집안의 아버지는 엄격한 줄로만 알았어요. 성부, Father God, Creator, 창조주 하나님의 속성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음악과 또 영화예술이 있습니다. 역사 이래로 오랜 세월동안 사랑의 노래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립니다. 정신적인 사랑, 육신적인 사랑, 모든 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킨단 말이에요. 알고 보니까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을 감추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만이 진짜 사람의 마음의 문을 연단 말이에요. 이해하시겠어요? 왜 이렇게 하늘은 높습니까? 바로 이 높으신 하나님의 뜻을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왜 풀밭이 평화롭고 아름답습니까? 하나님 안에 들어가게 되면 안식이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뜨거운 불에 데면 놀라잖아요? 그래서 데지 않으려고 하잖아요? 그것은 바로 영원히 타는 지옥불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사실은 싹 다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전부 맛이 약간은 간 존재들입니다. 하루하루 살기가 바쁜 거죠. 전부 나 중심으로 살기 때문에 그 눈이 안 열린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높고 깊은 모든 것을 사람을 통해서, 물건을 통해서, 또 일들을 통해서 전부 알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우리를 알고 계셨습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를 택하고 부르셨습니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거죠. 철학의 논리로도 풀어낼 수 없는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숨은 이유가 복음을 통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깊게 보면 어마어마한 깊이가 있고 놀라운 아름다움이 감춰져 있습니다. 인간들이 예술 활동을 하잖아요? 그런데 그 예술 활동의 원초적인 영감, 궁극적인 목적은 복음입니다. 시대를 움직였던 모든 예술 작품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서 만든 작품입니다. 헨델의 메시야가 연주될 때 왕이 자신도 모르게 기립박수를 쳤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구원자 그리스도를 표현한 것 아니겠습니까?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를 천장에 그려놨잖아요? 모든 사람이 감동을 받습니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혀진 작품인 존 번연의 천로역정입니다.

 

이것이 전부 다 복음과 관련된 작품입니다. 하나님의 이야기란 말이에요. 우리의 구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열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신묘막측한 하나님의 위대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멸의 작품을 통해서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고 있단 말이에요. 하나님은 세상보다 크시고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것을 복음의 미학이라고 표현해 봤습니다. 이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희생이 어우러진 앙상블 작품입니다. 우주를 감동케 하는 것입니다. 온 인류의 가슴을 떨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살아계신 성령께서 세밀하게 우리를 터치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작품인데 더 위대한 작품으로 우리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죠. 그야말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이요 복음입니다. 맞습니까?

 

이토록 아름답고 멋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사람들, 그 하나님의 사람들조차도 아름답고 멋있단 말이에요. 오늘 우리가 여호수아 14장을 보면 한 인물이 나옵니다. 본문을 보면 갈렙이라고 하는 사람이 전쟁에 나가겠다고 얘기 하는구나 라고 볼 수 있거든요. 그러나 전후좌우를 보면 얼마나 멋진 감동의 스토리인지 몰라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죠. 하나님의 사람은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는 일은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1.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이유는 당신의 언약을 반드시 성취하시기 때문이다.

  1)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신 언약을 여호수아가 그대로 받아 이스라엘에게까지 전달되고 이루어졌다.(수14:2-3)

  2) 사람과 상황, 그리고 시대가 바뀌어도 하나님이 명하신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어진다.(민23:19)

  3)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믿음과 인내를 가지면 하나님의 역사를 반드시 보게 된다.(히11:6)

 

첫 번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이유는 당신의 언약을 반드시 성취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어라. 하나님을 똑바로 믿어야 해. 이런 말 많이 듣죠?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을 믿는 내용이 뭔지 우리가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구나. 즉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는 말이에요.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자신의 주인으로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성령이 늘 함께 하십니다. 조금 성숙해지면 하나님은 마음대로 하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절대주권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모두 합력해서 완벽한 선을 이루어 버리게 됩니다. 이러한 부분들을 알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은 일을 하시는데 있어서 인간의 기준을 초월하시는구나. 그중에 또 한 가지가 바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중요한 약속을 하고도 잊거나 지키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법이 없단 말이에요. 할렐루야. 성경을 통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교회사를 통해서 입증되고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 성경의 예언은 단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성경말씀을 붙잡고 기다리면 반드시 응답이 옵니다.

 

우리가 지금 여호수아서를 보고 있죠.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해라. 그리고 그 지역을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나누어 줘라. 이 말씀을 하나님이 모세에게 한 거예요. 그리고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이 말씀을 이어받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서 14장 1절에 말합니다. 땅을 분배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에 계속 반복되는 말이 있죠. 14장 2절과 5절입니다.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대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 같이, 라고 나와 있습니다. 모세는 없어졌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바꿨습니다.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애굽의 노예시대, 출애굽 후 광야로 들어간 광야시대, 또 바뀌어서 정복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즉 사람도 시대도 계속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언약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단 말이에요. 성취되고 있는 장면을 오늘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한 말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 말씀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예언은 적중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이유이기도 하고 근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언약만 있다고 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그 언약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인내함으로 기다리게 되면 주님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말씀을 이루시게 되는 것이죠. 그런 역사를 여러분들이 보게 될 것입니다.

 

사실상 첫 인간 아담이 하나님 앞에 범죄 했잖아요?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구원의 길을 주셨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구원의 길을 약속하신 거예요. 성취되지 않은 예언을 주신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무슨 뱀을 말합니까? 사탄이 간교한 뱀 속에 들어가서 첫 사람 아담을 속였습니다. 어떻게 속였습니까? 하나님의 언약을 불순종하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이 그 사탄의 권세 밑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운명대로만 살아야 해요. 그런데 이 사탄을 이길 구원자를 보내겠다. 사탄 마귀의 끝없는 방해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천년 만에 하나님의 아들이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그분이 나사렛 예수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의 일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세주가 됐죠.

 

도대체 그리스도의 일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란 말은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습니까? 선지자, 제사장, 왕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란 말은 예수님이 기름부음 받았다는 뜻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란 말은 예수님이 선지자, 제사장, 왕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풀어서 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 만나는 길이십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됩니다. 죄의 대가가 뭐죠? 이 땅에서 재앙을 받다가 죽는 겁니다. 죽어서 지옥심판에 가는 것이 죄의 대가입니다. 이 모든 죄의 대가에서 영원히 해방시켜 버린 거예요. 사탄의 세력을 이길 권세마저 우리에게 주셨어요. 그것을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저와 우리 성도님들이 마음에 모시면 그리스도의 축복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 오시게 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우리는 사실 늘 바빠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거나 떠나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한 사람이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고백할 때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는 특별한 축복이 나타납니다. 영계와 지상계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와 함께 하는 거예요. 임마누엘의 축복입니다. 겁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아니하리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함께 하실 것이다. 맞습니까? 사랑하는 여인은 떠나갈 수 있습니다. 그토록 애지중지 키웠던 자식들은 나갈 수 있어요.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신단 말이에요. 그것을 임마누엘의 복이라고 말합니다. 겁날 것이 없는 것이죠. 지옥에 떨어져도 하나님이 부활시켜 버리는 거예요. 맞습니까? 몸은 죽여도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가난 속에서 언약을 붙잡기만 하면 반드시 풍족케 하십니다. 절대 불가능한 불효자라도 복음을 깨닫게 되면 반드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애를 써도 늘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고 주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게 되면 모든 죄와 저주, 재앙, 심판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특별한 축복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착하고 똑똑해도 사탄, 마귀, 악령을 절대 이길 수가 없습니다. 보시잖아요. 그렇게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정신이 돌아서 대학 졸업을 못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죽자 살자 뜨겁게 사랑한 커플 중 헤어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착하게 보이는 사람인데 알고 보니까 살인자에요. 신문에서 보지 않습니까? 늘 아침에 만날 때마다 Hello, Fine, Thank you 했던 그 사람이 바로 테러리스트였어요. 사탄에게 잡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짓들입니다. 눈에 안 보이는 영적존재, 사탄, 마귀,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하버드 졸업장으로 이기지 못해요. 여러분의 은행 잔고로 이기지 못합니다. 사탄의 저주에 걸려들게 되면 그대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게 되면 흑암이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 마귀, 악령들이 축출되는 것입니다. 놀랍고 특별한 축복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그와 함께 하며 복음도 전하고 귀신도 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예수님 아시죠? 여러분 예수님 영접하셨죠? 그렇다면 여기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면 귀신이 떠나가게끔 되어 있습니다. 나를 방황케 만드는, 혼미케 만드는 악령은 떠나갈지어다. 늘 가난케 만드는 흑암세력은 떠나갈 것이다. 우리 가정에 늘 불안과 싸움을 만드는 흑암세력은 떠나갈 것이다. 믿습니까? 이것이 예수님의 비밀입니다.

 

그분이 예언한 대로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어요. 또 다시 올 거라고 예언하셨어요. 믿습니까? 처음엔 어린아이 예수로 왔어요. 이제는 만왕의 왕으로, 만주의 주님으로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 약속을 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거예요.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반드시 그분이 약속을 지키십니다. 참으로 멋지고 그 역사하심이 기이하십니다. 아름답게 하십니다. 지저분하지 않단 말이에요.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는단 말이에요. 꾸준하게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완전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전폭적인 믿음을 준비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세요.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믿음을 가질 때마다 하나님은 매우 기뻐하십니다. 믿음이 있는 자를 기뻐하신단 말이에요. 할렐루야. 

 

2. 하나님의 나라는 민주주의가 아니며, 공산주의는 더욱 아니다.

  1)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레위 지파는 기업 분배에서 배제되었다.(수14:3)

  2)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요셉 지파는 두 배의 몫을 받았다.(수14:4)

  3)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결국 모두에게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8:28)

 

두 번째입니다. 주보에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민주주의가 아니며 공산주의는 더욱 아니다. 오늘 멋진 하나님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가나안땅을 정복하고 지파별로 분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서 14장에 보면 레위지파는 분배대상에서 제외시켜 버립니다. 하나님의 명령에서 제외되어 버린 것입니다. 공산주의 같잖아요? 회의도 안하고 서로 협의도 없이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빼버렸어요. 여러분들과 상의하지 않고 나가시오, 들어가시오 하면 기분 나쁠 것 아니에요? 그리고는 요셉지파는 어떻습니까? 요셉지파에게 하나를 줘야하는데 요셉의 아들 둘 이름으로 각각 주는 거예요. 다른 지파보다 두 배나 받아 버린 것입니다. 이게 무슨 엿장수 마음대로도 아니고요. 사실상 레위지파는 다른 지파보다 숫자가 현격히 적습니다. 그 입장과 상황을 보면 더 많은 기업을 줘도 부족할 판인데 이상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지파는 어떻습니까? 처음 애굽에 이사 왔을 때 총리로 있었던 사람이 요셉입니다. 그 요셉 덕택에 큰 혜택을 받고 평온한 이민 생활을 애굽에서 하게 되었던 것이죠. 요셉 때문에 우리가 특혜를 받았구나. 그래서 그에게 두 배를 줘야 되는 건가? 노력한 만큼, 많이 베푼 것만큼, 생산성의 법칙, 경제원칙에 따라서 준 것인가? 마치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의 모습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본 기준이고 사실상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는 것이죠. 오래전에 말씀하신 것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열두 지파는 야곱의 열두 아들들입니다. 창세기 49장에 보면 야곱의 열두 아들들을 축복하는 기도가 나와요. 48장에는 무슨 장면이 나옵니까? 아버지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 즉 손자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하는 장면이 나와요. 열두 아들 이전에 두 손자들을 먼저 축복해 버리는 거예요. 요셉은 단순히 어른이 축복하는 자리인줄 알고 장자를 앞에, 차자를 그 옆에 세웠거든요. 오른손을 큰아들에게 얹고 왼손을 둘째아들에게 얹어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데리고 갔는데 야곱이 동생에게 오른손을 얹고 형에게 왼손을 얹는 거예요. 요셉이 보니까 아버지가 눈이 침침해서 그런가 하고 바꿔주려고 합니다. 아버지 야곱이 얘기하죠. 아니다 내가 다 알고 있다. 이 아이가 큰애고 저 아이가 작은애인 것을 알고 있다. 그렇게 축복을 합니다. 참 놀랍죠?

 

야곱에겐 네 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의 권장사항은 아닙니다. 야곱은 누구를 제일 사랑했죠? 라헬이었습니다. 라헬을 통해서 낳은 첫 아들이 누구였습니까? 요셉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채색, 색동저고리 옷을 입힌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이니까 좀 비싼 옷을 입혔다는 뜻이 아닙니다. 채색 옷은 장자의 유업을 받을 아이에게 주는 옷이에요. 그런데 열한 번째 아들 요셉에게 주니까 형들이 어떠했겠어요? 뚜껑이 열리는 거죠. 아버지 야곱이 안 볼 때 툭 치고 가는 거예요. 시기질투한단 말이에요. 그 이복형들이 합력해서 노예로 팔아버립니다. 아버지 야곱의 마음은 요셉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고 싶었던 하나님의 감동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죽었다고 보고를 받잖아요? 아버지의 마음은 크나큰 아픔으로 가득했습니다. 오랜 세월 후에 식량을 가지러 애굽에 갔다가 요셉을 만난 거예요. 살아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습니까?

 

나이 먹은 야곱이 죽기 전에 모든 후대들을 축복하고 싶었어요. 이때에 야곱은 손자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먼저 불러서 축복을 해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요셉의 지파가 두 배로 받게 되는 모양새가 되는 것입니다. 요셉이 장자의 축복을 실제적으로 받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나머지 아들들을 축복하는 거예요. 그들의 영적상태와 신실함의 정도에 따라서 예언적인 축복기도를 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창세기 49장에 자세히 보면 특이한 것이 나옵니다. 사람으로서 하지 말아야 될 범죄를 첫째 아들인 르우벤이 범해 버리고 말았어요. 순서로는 첫 번째로 축복기도를 받지만 사실 밀려난 것이거든요. 그럼 둘째가 받아야 되잖아요? 둘째아들 시몬, 세 번째 아들 레위입니다. 근데 이 시몬과 레위는 무슨 일을 벌였는지 아세요? 아버지 야곱이 세겜 족속과 화친을 맺었어요. 너희들도 할례를 받아서 하나님의 족속이 되자. 이렇게 해서 할례를 다 받게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 둘째와 셋째가 원수를 갚는 마음이 있었잖아요. 이 세겜 족속이 자기 여동생 디나를 욕보였단 말이에요. 모든 세겜 족속 사람들이 할례를 받아서 걷기가 불편했습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거죠. 이때 시몬과 레위가 칼을 들어서 세겜 족속 전체를 칼부림 해버립니다. 비록 자기 여동생을 욕보였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속을 한 것이었어요. 지지난주에 이방 족속들이 찾아와서 화친조약 맺었잖아요? 그렇다면 철저히 지켰어야 됐어요. 그런데 인간적인 원수 갚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깨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몬과 레위는 영원히 장자의 축복에서 배제된 것입니다. 넷째 아들, 유다입니다. 유다가 제일 먼저 분배를 받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는 요셉의 두 아들 지파를 분배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형식상 장자는 유다지파입니다. 첫 번째 분배순서를 맡았습니다. 거기서 메시아의 혈통이 나오는 것이죠. 그런데 두 배를 실제로 받은 지파는 누구에요? 요셉이 두 아들들이죠. 이러한 숨겨진 이유와 배경을 가지고 완전히 분배를 마치는 것입니다. 레위지파는 벗어나고 요셉지파는 두 배를 받게 된 것이죠. 나중에 이 레위지파가 회개를 하잖아요. 하나님의 필요가 있을 때 담대히 자원하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이 이 레위지파를 받아들여서 제사장 지파로 세워버리는 거예요. 한 번의 신앙실수가 이렇게 위험하고 큰 것이구나. 레위지파는 뼈저리게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머지 열한 지파의 신앙상태를 watch out하는 일을 담당하는 제사장 지파가 된 것이죠. 형식적인 장자, 실제적인 장자의 유업,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놀라운 성취의 순간이죠. 받아야 할 자가 받게끔 하시고 잃어버릴 자가 잃게끔 만들어 버렸습니다. 어느 하나 오차없이 하나님의 뜻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우리 인간은 그렇잖아요? 조금만 불공평하면 화내고 나가버리곤 하잖아요? 하나님의 깊은 뜻을 보게 되면 모든 것을 만족시켜 버립니다. 아무리 오래된 축복의 약속이었지만 결국 그대로 이루시는 하나님, 놀랍고 기이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이 아무리 오래된 언약이라지만 믿음으로 붙잡고 인내하면 반드시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결정적인 시간표가 내게 오게끔 되어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사람은 대의를 위해 가장 필요한 때와 곳을 섬긴다. 

  1)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을 정탐했고, 함께 믿음의 보고를 했었다.(수14:7)

  2) 갈렙은 여호수아가 가장 힘들어하는 시기에 자원하여 전쟁에 나섰다.(수14:10)

  3) 갈렙은 여호수아가 가장 힘들어하는 지역을 자원하여 정복에 나섰다.(수14:12)

 

세 번째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큰 뜻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시기와 장소를 섬긴다. 이러한 멋지고 기이한 하나님의 뜻을 좇는 갈렙이 정말 멋진 일을 한탕 합니다. 오늘 여기 오랜 언약을 믿음과 인내로 붙잡았던 멋진 인물 갈렙이 등장합니다. 갈렙이 누구죠? 모세의 명을 받아서 정탐꾼의 미션을 완수한 여호수아와 동기동창입니다. 다른 사람이 다 불신앙할 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의 보고를 드리잖아요.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친구 여호수아는 민족의 지도자로 승진했고 자신은 그대로 지파의 지파 장으로 남아있습니다. 몇 년 동안? 45년 동안. 이해하시겠어요? 45년 동안 친구는 승승장구하는데 자기는 그대로 있어요. 보통 이런 일이 자기에게 일어나면 시기하고 우회적으로 디스하잖아요? 그러나 갈렙은 달랐습니다. 자기가 있는 그 자리에서 여호수아를 끝까지 섬겼어요. 왕으로 섬겼습니다. 친구니까 뇌물을 주는 청탁도 안했습니다. 멋진 사람이죠.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서 힘들어할 때 가장 중요한 일을 갈렙이 자원합니다. 내가 시기하던 친구가 위기를 맞이하면 어떻습니까? 잘나가더니 아주 고소하다 하며 모른 척 하잖아요. 안 들은 척 하잖아요. 휴가가 버리잖아요. 그런데 갈렙은 그때 나타나서 내가 하겠습니다 했어요. 아무쪼록 여러분들은 이런 하나님의 멋진 인물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대단하죠.

 

무슨 일이였습니까? 정복하는 과정에서 산지하나가 하나 있어요. 그곳엔 네피림의 후손인 아낙사람들이 살고 있었어요. 키가 3미터 되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러니까 전쟁에 누구하나 쉽게 도전을 못하는 거예요. 다 지파들이 쉰다는 명목으로 누구하나 안 나타납니다. 이때 여호수아처럼 비록 나이가 많지만 85세의 갈렙이 나타나는 거예요. 내가 그대와 함께 모세를 향하여 믿음의 보고를 드렸나이다. 그 대가로 나에게 언약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밟는 땅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그 아낙산지를 밟기를 원합니다. 모세를 통해 주셨던 언약을 이루어 주옵소서. 우리 같으면 어떻게 얘기해요? 야 힘들지? 내가 할께. 우리는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자기를 안 나타내고 모세가 명령한 데를 내가 따라 갑니다, 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멋진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네피림의 후손, 장대한 아낙사람들이 버티고 있던 산지를 자기가 정복하겠다고 모세의 언약을 따라 하겠다고 고백하는 거예요. 불리한 싸움이 확실해서 누구도 나가지 않았던 아낙산지에 자신을 보내달라고 하는 겁니다. 이제 보소서. 이날 내가 85세이지만 모세가 나를 보냈던 날과 마찬가지로 이날 내가 강건하여 힘이 있나이다. 그래서 13절에 보니까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상속재산으로 삼게 하니라. 이렇게 여호와의 명령을 온전히 좇던 갈렙에게 하나님은 기적을 베푸십니다. 사실 이 갈렙은 여분네의 아들, 그니스 족속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본토족속이 아니고 잡족이에요.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majority란 얘기에요? minority란 얘기에요? minority에요. 숫자도 별로 없어요. 그런데 그들을 통해서 아낙산지를 박살내버린 거예요.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신 것이죠.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계획을 위해서 개인의 뜻을 내려놓습니다. 전체를 살리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가장 위기 때에 자신을 드립니다. 누구도 원치 않았던 장소를 위하여 자기를 희생한단 말이에요. 더욱 중요한 것은 45년 전 언약을 잊지 않고 믿음과 인내로 기다렸던 갈렙의 믿음이 기적입니다. 여러분 4년만 지나도 잊어버릴 텐데요. 45년 동안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족속보다 더 믿음이 좋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좇아서 마음을 시원케 했습니다. 배경과 성분은 비록 낮았어도 믿음만큼은 최고로 멋진 언약의 사람이었습니다. 

 

<결론> 광대하신 아버지 밑에서 온전하신 주님을 배우며 아름다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라.

 

주보에 결론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광대하신 아버지 밑에서 온전하신 주님을 배워라. 이때 아름답고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할 것이다.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 멋진 하나님이십니다. 언약을 믿고 인내하는 하나님의 사람, 멋진 사람입니다. 누가 복음의 명문가정입니까? 언약의 사람들입니다.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저와 우리 모두가 이러한 부르심에 있다는 사실을 평생 기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존귀하신 하나님, 우리를 존귀하게 불러주심을 감사합니다. 멋지고 아름다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사람을 배려하고 사람을 살리며 사람을 돕고 지도하게 하여 주옵소서. 현장을 살리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함께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