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복음

 

♠성경말씀 (로마서 12:5)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 요약 자료 ♣

♠서론

  ▶중국의 꽌시 문화

 

1.하나님의 말씀(성경)은 관계 때문에 받는 축복을 기록하고 있다.                

  1) 아브라함과 롯 (창12:4, 13:9, 14:14-16, 18:22-33)

  2) 다윗과 므비보셋 (삼하9:10-11)

  3) 바울과 오네시모 (몬1:10)

 

2.하나님의 구원(복음)은 그리스도와 나와의 관계에서 온다.

  1) 하나님의 선택 (엡1:4)

  2) 그리스도의 대속 (엡1:7)

  3) 우리의 완전함 (골1:28)

 

3.하나님의 소원(나라)은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가 하나 되는 것이다.

  1)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히4:16)

  2) 교회의 성도들 사이에 (롬12:5, 엡4:32)

  3) 현장의 영혼들에게 (고전15:22) 

 

4.결론

  ▶그리스도 안에서 생각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말하며, 그리스도 때문에 행동하라.

 

♣ 녹취 자료 ♣           

♠서론

  ▶제가 초등학생 때의 일입니다. 밤늦게 저희 집에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자그만 체구에 얼굴이 까마신 아저씨였습니다. 그 아저씨가 지금은 돌아가신 제 부친에게 인사를 합니다. “삼촌 저 왔어요.” 누가 보더라도 시골 농부 아저씨처럼 생겼습니다. 처음 보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에게서 발 냄새가 아주 심하게 났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어요. “태성아 네 고종 사촌 형님이시다. 인사해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즉각적으로 공손하게 예의를 갖춰 바르게 인사를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제 아버지의 가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게 발 냄새로 인한 불쾌감을 주었지만 아버지 때문에 친절하고 공손하게 인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고종사촌이라는 그분은 아버지 안에 있는 가족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제 감정대로 기분대로 형편대로 표현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아버지가 아들인 저를 아시잖아요. 밤에 주무시기 전에 제게 물으셨습니다. 태성아 괜찮니? 어렸던 제가 발 냄새에 거부반응을 일으킬 줄 아셨나 봐요. 제가 인격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품이 착해서도 아니었고요. 그 아저씨가 제 아버지께 삼촌이라고 하니까 제 생각이 바뀐 것입니다. 어린 제가 그렇게 반응한 것을 보고서 아버지께서 저를 기특하게 생각하신 것 같아요. 아직도 50년 전의 그 일이 기억납니다.

  ▶지난번에 혁수 형제의 누이께서 저희 교회에 방문했던 적이 있었죠. 카타르 항공의 승무원으로 근무하시더라고요. 카타르에 대해서 그 쪽에 살고 있어서 제가 물어보고 정보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장사를 하려면 반드시 카타르 현지인과 관계를 맺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만약에 카타르에서 빵장사를 하려고 하면 내가 사장이어도 반드시 현지인 사람과 동업자건 후원자건 함께 해야 사업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카타르 현지인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 현지인 사람 안에서, 관계 안에서만 할 수 있다는 말이죠.

  ▶지금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꽌시’ 라고 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것이 한국말로 하면 관계라는 뜻입니다. 서로 간에 인정하고 통하는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말이죠. 한번 관계가 맺어지면 어려운 일도 관계된 사람을 통해서 해결이 됩니다. 이 꽌시, 관계가 없으면 사소한 일도 진행이 안 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누구에게 힘든 부탁을 할 때가 있잖아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내 얼굴을 봐서라도 좀 봐줘.’ ‘너하고 나하고 그런 관계가 아니잖아.’ 라는 뜻이겠죠. 우리의 삶에 관계가 매우 중요함을 보여주는 예들입니다. 어른들은 삶의 경험들이 있어서 눈치가 있는데 아직 어린 렘넌트들은 잘 모릅니다. 여러분들 모두 관계의 중요성에 눈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또 관계 속에서 오는 축복을 응답으로 받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복음이 다라고 인생결론을 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중요시 여기는 복음이 관계의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1.하나님의 말씀(성경)은 관계 때문에 받는 축복을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첫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관계 때문에 받는 축복들을 전부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 누구죠? 아브라함입니다. 그 아브라함에게는 조카 롯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렀죠.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납니다. 이때 아브라함이 롯을 데려갑니다. 사실 롯의 아버지인 하란은 일찍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조카를 보살피는 입장에서 데려간 것이죠. 그래서 창세기 12장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간 아브라함이 롯도 함께 데려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같이 살다가 하나님께 많은 축복을 받고 많은 재산을 가지게 되었죠. 함께 살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각자가 정착할 곳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때 선택권을 조카에게 먼저 줍니다. ‘네 앞에 온 땅 보이지?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내가 오른쪽으로 갈께.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갈께.’ 이렇게 삼촌이 이야기를 하면 조카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형님먼저 하셔야죠.’ 이러한 것이 상식이잖아요. 그런데 철없는 롯은 ‘저쪽으로 갈게요.’ 라고 말합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싸가지가 없는 자입니다. 세월이 지나서 전쟁이 터졌습니다. 하필이면 롯이 있던 그 동네에 전쟁이 났습니다. 그 전쟁 난리 통에 롯이 포로가 되었습니다. 당연히 모든 재산을 다 빼앗겼습니다. 이 소식을 삼촌 아브라함이 들었어요. 저 같으면 저 싸가지 없는 놈 잘 됐다고 반응할 것 같아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떻습니까? 자기 집에서 키우고 훈련시켰던 가병을 모아서 그 전쟁에 들어가 버리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조카 롯과 그의 가족과 재산들을 다 구하려고 들어간 거예요. 그리하여 창세기 14장에는 롯을 구하고 재산을 모두 복구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롯과 그 재물과 인맥을 다 찾아왔더라고 되어 있어요. 특급 구출작전을 벌인 것이죠. 아브라함은 참 대단합니다. 그렇게 살아나서 저 같으면 ‘삼촌 죄송합니다.’ 라며 삼촌을 봉양했을 텐데 또 저 멀리 가서 삽니다. 살던 동네가 소돔과 고모라 땅입니다. 안될 사람은 참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재앙이 임하게 됩니다. 이 사실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먼저 알려 주십니다. 이때 아브라함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의인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재앙을 면하겠다고 합니다. 그 소돔과 고모라 땅의 수많은 사람 중 의인이 오십 명만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고 했습니다. 그럼 멸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45명이라고 합니다. 40명, 30명, 이렇게 줄여나갑니다.

  ▶지금 아브라함이 뭐하는 거죠? 간청하는 겁니다. 비는 거예요. 그 말은 아브라함이 롯에 대해서 각별하게 생각하는 것이죠. 버릇없고 사명도 없으며 윤리적으로 흠이 많은 롯이었습니다. 왜 이리도 아브라함은 롯을 축복하고 선대하고 애틋하게 대해주고 있습니까? 아브라함이 착해서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것이 아니고 가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데라’라고 하는 한 아버지 밑에 자식이거든요. 동일한 아버지를 둔 삼촌과 조카의 관계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롯은 베드로후서에 보면 의인 롯이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인격적으로 부족했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따라갔던 신앙인이었습니다. 육신적으로 가족일 뿐만 아니라 신앙적으로 동역자의 관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 하나님 밑에 있는 신앙의 동료, 한 아버지 밑에 있는 가족, 아버지가 끼어있는 관계요 하나님이 끼어있는 관계란 말입니다. 사실 롯은 혼자 버려질 뻔 했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를 때 아브라함만 나오기 원하셨어요. 롯은 데리고 오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롯을 데리고 나왔어요. 전쟁 통에 죽을 뻔 했던 롯을 또 데리고 나옵니다. 큰 재앙에 파묻힐 뻔 했던 롯을 또 구조해 냅니다. 왜 그랬다고요? 관계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다른 예를 들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최고의 왕이 누구입니까? 다윗입니다. 성경에 보게 되면 ‘므비보셋’이라는 남자가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사울왕의 손자입니다. 즉 요나단의 아들이란 말이죠. 요나단이 누구입니까? 바로 다윗과 아주 절친한 친구입니다. 요나단의 아버지인 사울왕은 다윗을 시기해서 죽이려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다윗을 구해줬습니다. 이렇듯 다윗과 요나단은 중요한 우정의 관계가 있었습니다. 알다시피 나중에 사울왕의 가족이 전부 다 멸해지잖아요. 전쟁 중에 사울왕도 죽고 요나단도 죽습니다. 나중에 다윗이 왕이 되어서 비가 내리게 하는 기우제를 드릴 때였습니다. 이때 사울의 집안에 있는 모든 후손들을 잡아서 숙청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유일하게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은 다윗이 살립니다. 므비보셋이 뛰어나고 탁월한 신하가 될 수 있다고 하면 등용할 수 있잖아요. 그러나 므비보셋은 어렸을 때 다쳐서 다리를 저는 장애자입니다. 다윗이 자기 사람으로 쓸 만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러나 다윗은 왕자를 대하듯 므비보셋과 함께 식사를 합니다. 그를 살립니다. 자기 아들 왕자처럼 대우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신의 목숨을 구했던 요나단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므비보셋은 몰락한 집안의 자손이었지만 다윗의 절친인 요나단의 자녀이기 때문에 지키고 보호하고 배려한 것입니다. 한 나라 최고의 왕 다윗과 저 쓸데없는 므비보셋 사이에 누가 끼어있죠? 전쟁에서 전사했지만 요나단이라는 존재가 있단 말이죠.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 때문에 므비보셋은 도움과 축복과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겠습니다. 교회시대, 신약시대의 최고의 전도자가 누구죠? 바울입니다. 바울과 오네시모라고 하는 자의 관계가 있어요. 이 오네시모가 누구입니까? 바울의 제자 중에 빌레몬이란 자가 있었어요. 이 빌레몬은 바울의 중요한 일을 두기고와 함께 수종을 들었던 자입니다. 그리고 이 빌레몬에게는 자신의 노예인 종, 오네시모가 있었어요. 어느 날 오네시모가 주인 빌레몬의 재산을 훔쳐서 달아났어요. 도둑질을 한 것이죠. 근무지를 이탈한 것이죠. 결국은 붙잡혀서 감옥에 갔습니다. 이때 오네시모가 감옥에서 바울을 만난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했고 오네시모가 진정으로 회개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죠. 바울이 볼 때에는 제자에요. 빌레몬이 볼 때에는 원수입니다. 못된 놈이죠. 그래서 바울이 편지를 쓰면서 빌레몬에게 부탁합니다. 오네시모가 복음을 받았다. 너에게 피해를 준 자지만 내가 다시 너에게 보내겠다. 잘 받아 주거라. 이렇게 부탁을 하는 거예요. 빌레몬이 어떻게 했을까요? 바울의 뜻을 잘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잘 양육시켰습니다. 나중에 중요한 신앙의 지도자가 되잖아요. 이 관계 하나 때문에 살기도 하고 축복을 받기도 합니다.

  ▶제가 이번에 한국을 방문했잖아요. 본가의 가족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 선친의 묘를 이장하고 화장하는 일 때문에 가족회의를 해야만 했어요. 그래서 가족들을 만났어요. 보고 느꼈습니다. 다들 영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하나도 빠짐없이 다 힘든 거예요. 참 안타깝더라고요. 지금까지 저는 그쪽에 관심도 안 베풀었고 솔직히 기도도 안했어요. 그게 저의 그 부분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본가 말고 처가 쪽에는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 김사모의 여동생인 처제의 아이들을 제가 입양했잖아요. 미국에서 공부하게 도와줬습니다. 학교에 갈 때, 학원에 갈 때 데려다줬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장학금도 받게 해 줬습니다. 특히 덕영이는 시민권을 따게 해서 군대도 안 가게 했습니다. 한국에선 군대 면제 받은 것을 신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덕영이가 이래뵈도 신의 아들입니다. 이제 다들 대학생이 되어서 사회 전문인이 될 준비를 차분히 잘 하고 있잖아요. 제가 왜 이렇게 할 까요? 바로 제 아내의 안에 있는 가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가 함께 사는 아내라고 하는 관계 때문에 그렇게 된 거예요.

  ▶예를 들어 보세요. 만약 빌레몬이 바울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네시모를 학대했거나 푸대접했다면 어떻게 됩니까? 바울의 제자인 빌레몬은 스승인 바울을 학대하고 푸대접한 것과 똑같습니다. 본인 당사자로 봐서는 괘씸한데 바울과의 관계 때문에 대우해주는 거예요. 그렇지 않은데 예를 들어보자는 거죠.

  ▶우리 지영이 덕영이가 공부도 잘 안 해. 말썽만 피웁니다. 교회도 안 나와요. 신앙생활도 잘 안 해요. 이렇게 했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 아이들은 저와 아내와의 관계를 생각지 않는 거예요. 철없는 행동을 한 것이겠죠. 예를 든 것입니다. 왜 이렇게 까지 적나라하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복음을 깨닫는 중요한 열쇠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하나님의 구원은 그리스도와 나와의 관계에서 온다.

  ▶두 번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인 복음은 그리스도와 나와의 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천국에 가게 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란 말이죠. 어떻게 우리가 천국에 갈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인격과 행실, 실력으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인격으로 실력으로 천국갈 수 있다고 하는 분은 지금 거수해 보세요.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어요. 마태복음 5장 20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를 말이 하나 있다. 너희의 의가 서기관, 바리새인보다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어요. 여러분의 의가 바리새인만큼 되십니까? 안되면 천국에 못 간다고 충격적인 선언을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우리가 대충 알다시피 바리새인들은 굉장히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엄격히 지키는 사람입니다.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들입니다. 경건한 지도자들로서 공경 받는 사람들이에요. 일상생활 사소한 것 까지 하나님 말씀따라 살려는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이 되기 위해서는 세 명 이상의 바리새인들의 추천서가 있어야 합니다. 십일조를 철저히 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십일조를 철저히 한다는 분 손들어 보세요. 내가 받은 수입의 십일조를 내는 거잖아요.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십일조는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소득의 십일조를 내는 것만 아니라 매 절기마다 십일조를 내도록 되어있어요. 유대인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삼대 절기뿐만 아니라 여러 절기들이 있잖아요. 그때마다 십일조를 또 내야해요. 실제적으로, 전체적으로 보게 되면 20%이상을 십일조로 내게 되요. 이 정도 헌금생활을 해야 바리새인들의 의에 해당이 된단 말이에요.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금식을 합니다. 우리는 한 끼만 안 먹어도 눈이 돌아가는데요. 여러분들의 신앙의 삶이 이 바리새인의 삶을 따라 가고 있는지요? 그들이 반드시 지키는 613개 조항이 있습니다. 그것은 do it, 하라는 248개 조항이 있고 don’t do it, 하지 말라는 365개가 있어요. 이것을 다 할 수 있냐는 말이에요. 저도 못합니다. 그럼 저와 여러분들은 지옥행입니다. 제가 말장난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말씀에 나와 있어요. 설교를 하는 저도 자신이 없고 설교를 듣는 여러분도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바리새인의 의는 못 따라갑니다. 우리는 당연히 지옥가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천국에 가게끔 되어있어요. 그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에 몰랐던 사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창세전부터, 일방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은혜와 사랑으로 나를,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이죠. 언제 선택되었다고요? 창세전에. 자세히 보면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라고 기록되어있어요. 에베소서 1장 4절에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죄인인 우리는 하나님께 갈 수 없습니다. 죄가 용서받아야 되요. 그 죄를 그리스도 안에서 씻어줬다고 했어요.

  ▶그리고 우리가 성장해야 되겠죠. 완전함에 이르러야 되겠죠. 골로새서 1장 28절에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여 각 사람에게 권하고 가르치는 이유가 무엇이냐? 각각의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라 라고 나와 있습니다. 우리를 선택하신 것, 그리스도 안에서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받게 하신 것,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받게 하신 것입니다. 성장해 가는 것, 성숙해 가는 것,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호의를 베푸신 것이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에게 선대하시고 끔찍이 사랑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그리스도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심판하신 하나님, 심판을 받을 우리 사이에, 그 관계 속에 그리스도가 끼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받는 것도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응답받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합니다. 분명히 말합니다. 힘주어 강조하며 말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그리스도 예수가 빠지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왜 이 지구상에 전쟁을 일으켜서 무고한 사람들은 죽도록 내버려두느냐? 전쟁 통에 어린아이가 팔이 떨어져 나가고 파편을 맞아 신음소리를 내며 죽어가는데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왜 그러느냐? 너희들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며 복음받기를 거부하잖아요. 뭘 모르고 하는 말이죠. 철없는 소리죠. 창세기 3장의 아담과 아담의 후손들은 멸망의 자식들입니다. 지구라고 하는 그릇에 인간들이 있단 말이에요. 창세기 3장사건 이후에 기울어진 거예요. 여기에 있는 인간들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거예요. 착하게 살던 어린아이건 다 지옥가게 돼있는 거예요.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가는 거예요. 그러는 중에 빼내서 건져내는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어요? 싹 다 지옥에 가실 분들이란 말이에요. 아무리 우아하고 아름다운 문학을 한 사람도, 아무리 자비가 많다 해도 다 지옥으로 가게 되어있는 거예요. 우리가 볼 때는 안타깝죠. 몰라서 하는 얘기거든요. 이해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죠.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고 죄, 저주, 심판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사탄을 이길 권세를 부여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예수 권세 내 권세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믿자 하지 않고 오직 예수 하는 거예요.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롭게 만들어 진 것입니다.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 한분 때문에 얻어진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모든 것을 예수 안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얼굴 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잘해주는 거예요. 여러분 그리스도의 복음이 잘 이해되기를 축원합니다. 기울어진 거예요.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풀어진 것입니다. 의로우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의인이 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사명도 받고 세상 살리는 일을 하도록 부르신 것이죠. 이게 얼마나 큰 축복인줄 모릅니다. 좌우의 분들을 바라보시면서 선언해봅시다. ‘In Christ’ 저와 여러분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가장 안전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가장 풍요롭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가장 빨리 응답이 와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단순축복이 아닌 누진적으로 축복이 옵니다. 일 더하기 일은 이잖아요. 그런데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일 더하기 일이 4가 됩니다. 이것은 체험해 본 사람만 알아요. 이것을 성경이 증거하고 믿음의 선진들이 맛봤던 것입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하나님의 소원(나라)은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일까요? 사탄의 나라, 흑암의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겠죠. 즉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가 관계 때문에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잖아요? 이것을 우리 삶에서 적용해 봅시다. 그러면 실제적인 응답이 온단 말예요. 아 복음은 관계구나. 가장 중요한 관계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통하면 만사가 형통하게 됩니다. 이제는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고 그리스도의 보좌까지 나가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4장입니다. 14-16절 말씀에 우리에게 큰 제사장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함을 받고 때를 따라 도움을 받기 위하여 내 보좌앞에 담대히 나가리라. 그리스도 때문에 여러분들이 자비로우시고 거침없이 나가시길 바랍니다.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가족에게 말 못하는 것 하나님께 말하시란 말입니다.

  ▶그리고 교회 성도들과의 관계입니다. 성도들이라고 하면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하는 신도들이죠. 즉 각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은 자들입니다. 만약 제가 문준호 장로님과 관계가 불편하다고 하면 이것은 저와 문장로님 둘만의 관계가 아닙니다. 구원받은 문장로님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거든요.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고 있는 자란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문장로님과 관계가 안좋게 되면 그리스도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거예요. 아닌데요, 저는 주님과의 관계에는 문제가 없고 문장로님과만 관계가 안좋은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 생각이고요.

  ▶마태복음 5장에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시죠. 형제와 불화가 있으면 먼저 화해하고 예배 드려라고 말하십니다. 믿음의 형제와 불화란 말은 예수님과 불화란 말이에요. 그럼 예배를 받는단 말이에요 못받는단 말이에요? 숨겨진 영적 원리는 다릅니다. 성도와의 불화는 주님과의 불화다 이런 말이에요. 이런 영적 원리는 몸의 원리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먼저 화목을 하고 예배 드려라.

  ▶교회의 핍박자였던 사울 청년에게 사도행전 9장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합니다.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사울아, 사울아, 왜 내 식구들을 자꾸 건드리니. 할렐루야. 내 식구들을 건드린단 말을 하지 않았어요. 왜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말했어요. 사실상 사도 바울은 예수를 핍박한적 있습니까? 청년사울은 예수님 만난적 있어요 없어요? 교회 성도를 건드린 것은 예수님을 건드린 것이에요.

  ▶이러한 영적 사실을 모르니까 해도 안되는 거예요. 모르니까. 아무리 해도 안되는 거예요. 이것이 굳어지면 나는 안된다 라고 체질이 됩니다. 무능에 빠지는 것입니다. 남에게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불신앙을 안겨주는 거예요. 교회는 다니는데 믿는 것 같지는 않아. 예수를 믿는 신자를 핍박하는 사울은 예수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승리해야 되겠습니다. 차라리 불교 신자가 더 잘합니다.

  ▶저에게 손위 누이가 있습니다. 철저한 불교 신자입니다. 제게 이모님이 있어요. 둘이 금전관계 때문에 원수가 되었었어요. 이번에 한국에서 가족회의를 하느라 누이를 만났습니다. 얼마전에 이모님과 서로 화해하고 잘 풀었다고 하더라구요. 이모의 남편이 돌아가셨잖아요. 누이가 이모님께 두세 가지 밑반찬을 해서 가져다 드린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화해 잘 했다고 했어요.

  ▶제가 한국에 있을 때 누가 저에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하면서 얘기를 하셨어요. 우리 교회를 다니던 신자였는데 집안에 소송이 있어서 골치 아픈 상황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김집사 무슨 일인가? 하며 물어봤습니다. 김집사의 아버님과 작은 아버님이 소송이 붙었다고 했습니다. 즉 형이 아우에게 20억을 빌려줬어요. 동생이 형에게 찔끔찔끔 10억을 갚고 10억을 띄어먹었어요. 그러니 형제가 원수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문제는 제가 형을, 즉 김집사의 아버지를 영접시켰거든요. 스타벅스에서 같이 손잡고 영접하셨습니다. 즉 새신자입니다. 돈을 띄어먹은 동생은 소망교회의 장로님이에요. 그러니까 이 형이 아무도 믿지 않는 거예요. 못 믿을 곳이 교회고 못 믿을 놈이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면서 교회를 안 나가시는 겁니다. 그 아버님의 생명이 자라지 못하게 꽉 묶여있는 것이 가슴이 아픈 것입니다.

  ▶불교신자는 화해를 잘하는데 신자들이 문제입니다. 절대로 화해 안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교회를 먼저 심판한다는 말이 이해가 가요. 사람대 사람의 관계가 아닙니다. 교회 신자들은 주님을 건드리는 거예요.

  ▶처음에 준한이가 통역할 때 실수하게 되면 제가 혼내기도 하고 그랬어요. 제가 마음을 바꾸고 제 말을 바꿨습니다. 제가 준한이를 사랑해서 그런게 아니라 제가 주님한테 맞았어요. 그래서 제가 바꾼 거예요.

  ▶성도들끼리의 문제는 주님을 건드리는 거예요. 우리는 대부분 신앙생활을 내 기분과 감정대로 하거든요. 이것이 지속되면 주님한테 얻어맞습니다. 저처럼 얻어터지지 마시고 빨리 뛰어넘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현장의 영혼들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고린도전서 15장에 이렇게 말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디모데전서 4장 2절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안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현장의 불신영혼들이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또 교회를 나간 신자들이 있다면 진리가운데 거하도록 원하시고 기도하기 바랍니다.

 

4.결론

  ▶그리스도안에서 말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말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행동하기 바랍니다. 이런 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참된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관계의 축복을 회복시킨 그리스도의 축복을 받으세요.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를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은혜와 사랑이 그리스도 때문에 이루어진 것을 고백합니다. 관계의 축복을 주시고 사람과 사람이 아니라 주님과 나와의 관계임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믿음의 선진들이 받았던 모든 축복을 우리 모두가 누리게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