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10th, 2019
ICA Sunday Pulpit Message
녹취록 : PDF (Korean)
주보 : PDF (Korean)
♠ 서론
▶ 초등학교 6학년 때 전쟁을 만났던 한 아이가 있었다. 아버지는 한강을 넘어 남쪽으로 피해 가셨다. 그 아이에게 여동생은 다섯 살짜리 마지막 막내는 젖먹이였다. 전쟁이 터진 이후에 공산군 컨트롤 아래 한 달간 있다가 피난을 가기로 했다. 즉, 아이 셋과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찾아 피난길에 올랐다. 일주일 동안 걸어서 평택 가까이 갔다. 밤이 되니깐 자야 했다. 민심이 흉흉해진 터라 헛간 조차도 빌려주지 않았다. 밤이 어두워져 어느 집 흑당 옆에 가만히 두장을 깔고 드러누웠다. 어머니께서는 어린아이들이 밤이슬을 얼굴에 맞을까봐 수건으로 덮어주었다. 담벼락 옆에서 지냈다. 13살 장남은 낮에 개천가에서 민물 새우와 송사리를 잡아서 담벼락의 넓은 호박잎을 같이 섞어서 죽을 쒀서 끼니를 때웠다. 흑담집의 주인이 자기네 집의 호박잎을 너무나 많이 따가니깐 호박이 안 자란다고 내쫓았다. 어머니는 어린 세 아이를 부둥켜 안고 한참을 울더니 안되겠다. 서울로 아예 들어가서 아버지를 빨리 찾자며 길을 떠났다. 그 다음날 어머니는 신주단지 모시듯 귀하게 여긴 재봉틀을 쌀로 바꿔 오셨다. 큰 쌀자루 하나를 끈을 묶어서 장남에게 맡기고 어머니는 보따리를 이고 두 손에는 두 아이를 하나는 안고 하나는 걸리고 길을 떠났다. 수원으로 가는 산길에 접었을 무렵에 청년 하나가 따라 붙었다. 어린 아이가 무거운 것을 들고 낑낑대고 들어가니깐 다 같이 고생한다고 그 청년이 내가 들어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 아이는 넙죽 절을 하고 쌀자루를 건네 주었다. 어찌나 그 청년 걸음이 빠른지 아이가 어머니를 돌아볼 틈도 없이 급하게 쫒아가야만 했다. 그러다가 양쪽 길이 갈라지는 길목에 딱 만난 것이다. 어머니를 놓칠까봐 쌀자루를 달라 그랬다. 그 청년은 그냥 따라오라는 말을 내뱉고 막 가기 시작했다. 아이는 갈라지는 그 길목에서 한 참 동안 망설였다. 계속 청년을 따라가면 엄마를 잃어버릴 것 같고, 뒤에 오는 엄마를 기다리다간 쌀자루를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청년은 은인이 아니고 도둑이었다. 아이는 그 청년을 향해서 “아저씨 아저씨!” 큰 소리로 외쳤다. 그 청년은 뒤도 안 돌아보고 막 갔다. 아이는 쌀자루를 쫓아가다가 혹시 엄마를 잃어버릴까봐 그대로 주저앉아 그대로 울기 시작했다. 젖먹이를 얹고 동생을 데리고 오느라 걸음이 늦었던 엄마는 한 시간이나 뒤에 나타나셨다. 맨몸으로 울고 앉아있는 아이를 보시던 어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쌀… 쌀 자루는?” 아이가 울먹이며 사정을 다 말했다. 사정을 들은 어머니의 얼굴은 노랗게 변했다. 한 참 말이 없던 어머니는 그 아들을 가슴 깊이 껴 앉고 울기 시작했다. “내 아들아 네가 영리하고 똑똑해서 어미를 잃지 않은거야. 참 다행이야. 고맙다 아들아” 그날 밤 어머니는 동네에 들어가 조그마한 고구마 몇 개를 들고 와서는 그 장남 아이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러시면서 울었다.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우리가 헤어지지 않은 거야. 잘 한 거야.” 전 재산인 쌀자루를 잃어버린 막막했던 어머니는 사람을 믿었던 죄로 어린 아들이 받았을 상처를 어루만지는데 마음을 쏟았다. 죄책감에 빠져서 우는 아들을 향해서 너는 똑똑한 아이야 치켜세우며 오히려 효자라고 칭찬하였다. 그 아이는 13살의 철 없는 나이지만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느낀 것이다. 그 날부터 그 아이의 소원은 영리하고 똑똑한 자가 되는 것이 되었다. 공부가 게을러 질 때마다 야단을 치지 않으시고 밤새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 그 어머니의 손길을 체온을 기억했던 것이다. “내 아들이 똑똑하고 영리해서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를 다시 만났을 때 자식을 잃어버리지 않은 어미가 되게 해줘서서 고마워. 네가 엄마를 살린 거야.” 이 어머니의 한 마디가 그 아들의 인생을 만들었다. 이 지혜로운 어머니는 그 아이 그 소년의 정신적 지주가 된 것이다. 미리 받은 칭찬의 보답으로 바르게 자랄 수 있었다. 어머니의 바람대로 그 아이는 결국 한국의 유명한 국문학자 교수가 되었다.
▶ 심리학자들이 조사했다. 사람에게는 부정적인 감성, 긍정적인 감성이 있다. 이 부정적인 마음이 긍정적인 마음보다 1.4배 빨리 들려지고 들어온다고 한다. 쉽게 마음이 우울해 진다는 말이다. 그리고 상처를 주는 말하고 믿음의 말하고 기억되는게 상처 주는 말이 3배 더 많이 오래동안 장기간 동안 기억된다고 한다. 우리는 믿음의 말, 격려의 말, 배려의 말, 용서의 말 이러한 것들을 금방 잃어버리기도 한다. 사실상 나 자신을 믿어주는 그리고 응원해 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사람은 자살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 이 실질적인 스토리를 말씀드렸는데 이 믿음의 말과 격려의 말 하나 때문에 그 한 영혼이 무너지지 않고 바르게 크게 잘 자란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마음의 보화, 믿음이라고 하는 마음의 보화를 인간 세계에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이 한 인간을 믿어도 이러한 축복이 임한다. 어른이 철 없는 아이를 믿어도 나중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하물며 인간이 전능자 하나님을 믿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연약한 인간이 전능자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을 때 얼마나 중요하고 큰 축복이 임하는가 이 것을 알게 하시려고 믿음을 허락하신 것이다.
1.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믿음의 기적을 일으키신다.
▶ 오늘 함께 읽은 성경본문은 사도행전 14장이다. 평생 단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앉은뱅이가 일어났는데 그 일어난 기적의 키가 바로 믿음이었다. “He had faith to be healed.” 즉,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린 믿음이 있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될 수 있다라고 하는 믿음이 있었다. 그렇다. 우리가 정말로 믿게 되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견고해질 뿐만 아니고 흔들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이 형통케 될 것이다. 김목사의 설교가 아니고 성경말씀, 하나님의 약속이다. 역대하 20:20 하반절을 보시면 되면 이렇게 나와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말씀한다. 여러분은 언약 붙잡고 평생 형통케 되시길 축원한다. 내가 하나님을 믿어버리게 되면 하나님의 견고한 축복과 형통한 은혜가 계속 온다는 얘기다.
▶ 그런데 성경에는 이 믿음에 과한 부분을 계속 반복해서 들려주고 있다. 로마서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말씀하고 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처음은 구원받는 것이다. 처음에 받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 되는 것이다. 마음으로 믿어 믿음으로만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희생으로 그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공짜로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
▶ 그 다음에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는가? 응답 받는 삶이다. 구원 받은 이후에 무엇이 필요할까? 히브리서 11장이다.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구원 받은 우리는 응답이 필요하고 축복이 필요하다. 이 것 역시 믿음으로 하나님께 갖고 나아갈 때에 기도할 때 주신다는 얘기이다. 왜 그런가?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중에 총 어카운팅 계산을 하게 될 텐데,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말을 하고, 믿음으로 살린 것, 믿음으로 바라본 것, 이 것만 싹 계산이 될 것이다. 우리가 기쁘면 막 주고 싶지 않은가? 정말로 예배 나와서 기쁘고 은혜 되고 그러면 여러분이 헌물을 하지 않은가? 무언가 캥기는게 있고 무언가 막힌게 있으면, 봉사도 하기 싫고, 헌금도 하기 싫고, 헌신도 하기 싫고 그렇다. 똑같은 원리로 하나님이 믿음을 갖고있는 우리를 보시고 기뻐하여 쏟아 붓는 것이다. 어느 정도로 상을 주시는가? 마가복음 9장이다.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이게 가능한가? 우리는 불가능하다고 속단한다. 그런데 우리가 믿음을 갖게 되면, 불가능한 것 마저도 가능케 될 줄로 믿는다. 결국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2. 하나님을 믿는 자는 견고하고 형통하게 된다. (대하20:20)
▶ 요한일서 5장이다. 우리가 축복과 응답을 받아 가지고 세상을 이기는 그 날까지, 세상을 정복하는 그 날까지 하나님이 함께 계실줄 믿는다. 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여러분 믿음을 회복하시길 바란다. 믿음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란다.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향하시는 일 전부 우리의 믿음을 요구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많은 일들을 일으키신다. 하나님은 기적도 일으키시고, 치유도 일으키시고, 역사를 하신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 사건, 그 속에 공통점이 있다. 바로 믿음이다.
▶ 여기에 모여 예배드리는 모두에게 공통점이 있다. 여기 계신 존재는 전부 사람이라고 하는 공통점이 있다. 이것 저것 원근 각처 멀거나 가깝지만 텍사스 안에 살고 있는 거주하는 분들이다. 혹시 여기 텍사스가 아닌 다른 주에 살고 계신 분이 있는가? 우리는 텍사스 resident(거주자)라는 말이다. 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한다면, 모두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렇게 공통점을 찾고 나면, 모든 하나님의 역사, 축복, 형통, 증거, 응답, 누림, 열매 속에 우리의 믿음이 필요하구나. 특별히 이 세가지 성경구절을 붙잡고 가시길 바란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상이 따라온다. 어느 정도로 큰 상이냐 하면은 불가능을 가능케 한다. 그런 일들이 지속 반복되게 되어지면, 세계를 이기는 그 날 까지 하나님이 믿음의 역사를 일으키실 것이다. 붙잡으시길 바란다.
▶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믿음에 집착하고 계신 것일까? 그 믿음 속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하며 하나님께 예배 드리러 나아가면 그 믿음 속에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중요하냐면, 지구의 70억 인구의 대부분은 하나님이 살아계신줄 모르고 있다. 그분의 존재하심을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굉장히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한다. 사람이 앞에 있는데 모른척하고 인사도 안 하고 슥 지나가게 되면,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아무것도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든다. 존경까지는 안 하더라도 나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면, 인사를 하던지, 악수를 하던지, 안부를 묻던지 하지 않는가? 하나님도 똑같다. 주일날 되면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온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뜻이다. 그게 믿음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 믿음의 내용을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얘기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기도하라” 그러셨다. 응답 주실 수 있는 능력을 믿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믿음 속에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고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으시고 항상 우리를 동행하심을 신실하심을 믿는 것이다. 늘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그분의 사랑을 믿는 것이다. 결국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세우실 것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축복하심을 믿는 것이다. 우리가 사람을 믿게 되면 꼭 뒤 탈나게 된다. 하나님을 믿게 되면 결단코 뒤 탈이 없다. 늘 유익함이 온다. 감사도 하게 되고 만족을 누릴 수도 있고 행복을 고백할 수 있게 만드신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완전히 맡기실 수 있길 바란다. 그게 하나님이 원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다. 완전히 맡기는 것이다.
3. 현장에서 복음으로 무너진 자를 일으켜라. (요삼1:2)
▶ 솔직히 잘 되는가? 안 되는가? 나는 잘 안 된다. 하나님께서 잘 안 되는걸 아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것이다. 잘 믿어지는 비밀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집중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왜 그런가? 히브리서 12장에 보면 나와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영어 성경에는 이렇게 나와있다. “Looking unto Jesus” 누구냐면? 네 “the author and finisher of our faith” 이렇게 나와있다. 우리의 믿음을 만드시기도 하고 완성시키기도 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시다. 믿음의 내용 믿음의 비밀들을 가장 잘 아시고 가장 잘 나타내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붙잡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각인, 뿌리, 체질 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곰곰히 살펴보시라. 죄라고한 부분이 있다. 믿음이 없을 때 그 말씀을 하셨다. 언제 책망하셨는가? 믿음이 적을 때 책망하셨다. 심지어는 속으로 신음하면서 “moaning” 하면서 우셨다고 되어 있다. 믿음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 예수님이 우셨다. 요한복음 11장을 보게 되면,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이 우셨다. 사랑하는 나사로 형제를 잃었기 때문에 슬픈게 아니다. 지난번 요한복음 강해 때 설명드렸다. 예수님께서 나사로 형제가 위중한 병에 걸렸단 소식을 들었는가? 안 들었는가? 들으셨다. 나 같으면 냉큼 달려갈텐데 거기서 며칠 더 유하여야겠다라고 더 유하셨다. 그러다 결국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수님은 계속 딴 말을 하셨다. 나중에 찾아가신다. 마르다가 한탄하였다. “예수님께서 일찍 오셨더라면, 이렇게 우리 오빠가 시체가 되지 않았을텐데”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니 죽지 않은 것이다.” 마르다가 반응하였다. “안다니까요! 예수님 재림하실 때 다 부활하는거 저도 다 알아요.” 이 때 예수님이 속으로 신음하면서 moaning하면서 “Jesus wept 예수님이 우시느니라” 되어있다. 뭐인가? 믿음이 없어가지고. 죽은 자를 살리실 뿐만 아니라. 없는 것을 있는 것 처럼 부리시는 주의 능력을 안 믿으니깐 예수님이 나중에 한탄하시면서 우신 것이다. 깨닫기 바란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빛이 될 수 있길 바란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지 않는가? 예수님이 언제 나에게 태클을 거시는지 아는가? 우리 주님이 언제 짜증내시는지 아는가? 불신앙에 빠졌을 때. 믿음이 없을 때. 예수님이 베드로가 배신, 부인, 도망갈거 다 아셨다. 그 때 믿음으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얘기할 때에 기다려봐라 닭이 세번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할거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구나” 칭찬하셨다. 축복하셨다. 모두가 무너지고 모두가 떠나가는 제자인줄 알면서도 믿음의 한 마디 고백 그 하나 하나를 예수님이 기뻐받으시고 축복하신줄 믿는다. 다시 한 번 remind 시킨다. 주님을 기뻐하게 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믿음이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무엇인가? 우리의 믿음이다. 맞는가? 우리로 세상의 서밋으로 세워 선한 영향력을 입히시고 세상을 이기는 그 비밀이 무엇인가? 대저 우리의 이김,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한일서 5:5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가 전부 세상을 이긴다는 말이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예수 이름을 증거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속으로 들어가라. 그 안에 있는 놀라운 비밀들을 찾아내라.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말로 믿음의 원천이시다.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며 그리스도를 누리게 될 때, 어마어마한 믿음의 힘이 나에게 따라오는 것이다. 그러면 또 하나님이 주시는게 있다. 오늘 바울처럼 현장 보는 눈을 열리게 하신다. 영안을 열게 하셔서 예비된 사람을 만나게 하시는 것이다. 오늘 성경본문처럼 앉은뱅이를 보게하실 것이다. 지금 우리 주위 현장에는 멀쩡히 걸어다녀도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생활적으로 앉은뱅이가 너무나도 많다. 영적 장애인들이다. 영적 불구자들이다. 그런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우라고 하는 주님의 음성인줄로 믿는다. 내가 갖고 있는, 내가 소유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달하게 되면 그에게도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강건함,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주의 뜻이다. 영혼의 구원을 받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생들을 향해서 살려내라 이 말이다. 육신의 질병걸려서 무너진 자들을 일으켜 세워라. 삶이 무너진 자를 희망을 줘서 살려내라. 하나님이 여러분을 그렇게 사용하실 것이다.
▶ 여기서 한 가지 알 것이 있다. 영혼, 육신, 생활 따로 따로 치유하는 것이 아니고 영혼이 구원받지 못하게 되면, 그가 생각하는 것, 마음 먹는 것, 생황 이게 다 무너지게끔 되어 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하나님 만나는 길 예수 그리스도를 전달해 줘야 되는 것이다. 바로 깨닫도록 도와줘야 한다. 하나님의 시간표가 되면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고 신앙고백을 하게 된다. 정말로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인지를 깨닫게 되어지면 자기도 모르게 예수 그리스도께 빠지게, 몰입하게, 집중하게끔 되어 있다. 그 자체가 바로 기도이다. 기도집중하게 되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된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되면 모든 것이 살아난다. 나의 전체가 변화되는 것이다. 그러면 내 주위에 있는 사람이 보고 느낀다. 알아버린다. 그게 전도의 시작이다. 그것이 전도의 문을 여는 것이다. 주님께서 여신 전도의 문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다음으로 하늘의 문을 열어버리신다. 하늘의 복이 임하는 것이다. 여러분의 현장 곳곳에 구석구석마다 하나님의 신령한 복이 차고 넘치기를 축원한다. 여러분이 믿음을 갖고 누리게 되면 믿음의 기적을 하나님이 일으키실 것이다. 그 일에 주인공 주역되길 축원한다. 좌우 옆 분들과 고백하시길 바란다. “믿음을 가지십시다.”
♠ 기도
▶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지극히 존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주일 예배를 통해서, 세가지 언약을 붙잡고 돌아갑니다.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옵소서. 기적에 가까운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게 하시고 우리 당대와 후대를 통해서 세계복음화하는 그 날 까지 하나님이 믿음의 기적을 일으킬 것을 고백합니다. 하늘문을 여시옵소서. 주의 천군 천사와 불말, 불병거를 동원시켜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이들의 삶 속에 나타나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