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st, 2019
ICA Sunday Pulpit Message
주보 : PDF (Korean)
녹취록 : PDF (Korean)
♠ 서론
▶ 안토니오라고 하는 수도사가 수도원에 들어가서 깊은 기도를 오래동안 했다. 이쯤 되면 많은 깨달음을 얻고 많은 기도 속에 들어 갔으니깐 자신감을 갖고 수도원에서 나왔다. 수도원 문을 나오다 보니깐 그 때 마침, 수도원 문 앞에 구두수선공이 신발을 고치고 있었다. 안토니오 수도사는 그에게 고쳐달라고 맡기고, 잠깐 기다리면서 지켜보았다. 구두수선공이 너무 열심히 말도 없이 일하시니깐 안토니오가 말을 걸었다. “식구가 몇인가요?” “네, 아이들 여덟 명에 와이프와 저 이렇게 열 명이 한 식구입니다.” “아 그러신가요? 그럼 수입이 얼마나 되나요? 그 많은 식구를 부양하려면 신발만 고쳐서 그 돈으로 부족하지 않습니까?” 구두수선공은 아무 말 없이 고개도 들지 않고 구두만 열심히 수선하였다. 다 수선하고 나서는 수도사한테 드리면서 대답하였다. “수도사님 저는 다만 주의 종들이 오랫동안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신발을 수리하느라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의 생활은 하나님이 다 책임져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수도사는 자기가 아직 깨달음이 적다는 걸 알아채고 다시 수도원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구두수선공은 큰 대단한 직업은 아니지만 자신의 일을 일심으로 전심으로 집중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그런 믿음을 자연스럽게 고백하였다.
1. 분쟁과 논쟁은 어느 조직이나 공동체에 다 있기 마련이다.
▶ 오늘 보려고 하는 초대교회 사람들도 그러하였다. 지난주에 봤다. 외부에서 환란 공격이 들어오는데도 전도하고 제자들을 세웠다. 이번주에는 어떤 일이 생겼는가? 하나님 믿는 사람들 내부적으로 변론, 분쟁, 논쟁이 벌어졌다. 환란도 이긴 그들이 이런 논쟁과 분란 속에서 어떻게 대처했는가 보려고 한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어떤 가족이나, 어떤 조직이나, 단체, 모임에는 각각 의견을 내는 분쟁이 있을 수 있다. “네가 맞다. 내가 맞다.”하는 것이 사람은 살아 있기 때문에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근데 문제는 뭐냐? 분쟁과 논쟁을 계속 하는 것이다. 오늘도 사도행전 15장에 보게 되면, 계속해서 분쟁과 논쟁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 있다. “우리 이스라엘 사람 말고 이방인도 구원을 받았단 말이냐! 그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아니야. 모세가 말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준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거야. 그 중에 대표적인 할례를 꼭 받아야 해.” 이것을 계속 얘기하였다. 안디옥 교회의 전도팀이었던 바울과 바나바는 감정이 있는지라 격분해서 서로 다투었다. 바울과 바나바가 우리가 알고 있듯이 대전도자이지 않은가? 대사도이다. 우리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이 크게 축복하시고 힘 주셔서 사용하셨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이들이 감정이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제대로 컨트롤 안 돼서 막 부딪쳤다. 무슨 말이냐? 예수님이 괜히 돌아가셨냐? 예수님이 괜히 피를 흘리셨느냐? 그 분의 피는 하나님의 피다. 수 천년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언되어졌던 바로 그 분이 모든 것을 이루었다. 그분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끝냈다”라고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분이 실체다. 모세는 그림자다. 율법 역시 그림자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이거 이외에는 그리스도의 명령은 없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는 것이다. 입으로 믿음을 고백하며 구원을 얻는 것이다. 어디다 함부로 인간의 행위를 얹혀 두려고 하느냐. 이런 상세한 내용은 성경에 없지만, 붙어버린 것이다.
▶ 3절, 4절 쯤 보게 되면 그들이 정신을 차렸다. 계속 분쟁과 변론을 따지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역사하신 응답들을 다른 분들에게 소개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셔서 이들이 이렇게 구원받았음을 간증하였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 교회분들이 기뻤다고 했다. 바울과 바나바팀이 정신을 차린 것이다. 계속 분쟁하지 아니하였다. 계시록 12장에 보시게 되면, 마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교회를, 형제들을 참소, 고소했다고 되어 있다. 밤낮 참소했다고 되어 있다. 계속 변론, 분쟁, 네가 맞다, 내가 맞다, 저 사람이 틀리다고 참소한 것이다. 그런 자는 쫓겨났다고 되어 있다. 마귀다. 사탄이다. 쫓겨난 것이다. 여기서 보게 되면 마귀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분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정신 못 차리고 계속하면 그게 바로 사단의 계략이다. 바울과 바나바팀이 정신 차리고 분란과 분쟁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역사하신 것을 가는 곳 마다 전해준 것이다. 그게 답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집중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준 일, 사명에 집중한 것이다. 그러니깐 하나님이 다 역사하신 것이다. 바울이 깨달았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20:24에 나온다. 목숨보다 귀하다는 얘기다. 무엇이? 은혜의 복음이, 전도의 사명이 자기 목숨보다 귀하다는 말이다.
▶ 우리가 분쟁을 왜 하는가? 나도 성격이 예민하다 보니깐, 금방 욱하는 성격 인걸 잘 안다. 그리고 서로 다툼이나 말싸움이 나타나지 않는가, 결국 그게 계속 지속되다 보면 이슈가 무엇이냐면, 자존심이다. 내가 하는 말이 꺾이게 되면 내 자존심이 무너지니까 내가 졌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게 싫어서 용납지 아니하니까 계속 말을 해서 맞다라고 하는 것을 입증시키려고 애를 쓴다. 이런 분쟁과 논쟁이 계속 되다 보게 되면 결국 진리가 과연 무엇인가는 나중이고 내 자신 내가 “나다”라는 것이다. 사단이 거기까지 끌고 가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면 그게 창세기 3장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원해서 먹었기 때문이다. 창세기 3장 원죄의 문제는 (나 중심)이다. 나 중심이다. 나 중심. 나 중심, 내 자존심까지 몰고가게 되면, 거기서 못 헤어나온다. 그러면 끝까지 가야한다. 그러면 피차 멸망하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일 속에 들어가게 되면, 영적인 힘을 얻는다. 몸은 피곤한데 하나님의 일 속에 들어가게 되면, 내 마음이 평안하고 개운하고 그렇다. 그런데 나 중심, 분쟁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면, 영적인 힘을 다 exhaust 소진하게 된다. 마귀가 노리는 것이다. 사단이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의 말처럼 은혜 속에 사명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은혜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존재가 은혜이다. 내게 아무런 축복이 안 오고, 내게 어떠한 응답도 안 오더라도 내가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리스도를 아는 것 자체가 어마 어마한 은혜이다. 사명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일이다. 내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잘 못하는 성격이라도, 복음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언어가 짧아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오늘 아침 당회 때 소개했다. 군인한테 복음을 전하는데 영어가 안 나오니깐 깊게 터치를 못 했다. 그래도 하는 것이다. 14시간씩 많은 일을 하면서 새벽 1시에 들어오게 되면 뻗어버리게 되는 당신. 불평해라. 하나님께 말해라. 하나님께 불평불만해라. 낙심해라. 괜찮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딱 한 마디만 confession 신앙고백해라. “하나님 보고 계시죠?” 도와달라는 말 안 해도 괜찮다. “하나님 아시죠?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것만 하고 자라고 했다. 다른 말은 못 하였다. 많은 메시지가 중요한게 아니다. 단 하나라도 믿음의 무엇을 붙잡는 것이다. 내가 언어의 장벽이 있더라도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다. 그게 그리스도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게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결과는 하나님이 만들어 가신다.
2. 초대교회는 분쟁과 논쟁을 잘 대처했다.
▶ 오늘 본분에 나온다. 하나님께서 일을 벌이셨다. 분쟁과 논쟁을 멈추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응답을 나누었더니 나머지는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사도행전 15:3에 내가 받은 응답을 나누었다.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정신차리고 분쟁과 논쟁에 안 빠지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 그 속에 있었더니 교회에 기쁨을 주시고 일을 벌이셨다. 7절과 13절에 보시게 되면, 교회 어른들이 선다. 벌떡 서서 말씀하셨다. 영적 권위자 베드로가 말하노니. 읽어보면 복음 내용을 얘기하는 것이다. 우리들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던 율법의 멍에를 왜 이방인들에게 씌우려고 하느냐.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바로 복음이다. 그걸 선포하니깐 조용해졌더라 잠잠해졌더라 이렇게 써있다. 바울과 바나바가 더이상 언급을 안 해도 되었다. 항상 증인은 두 명이 필요하다고 한다. 13절에 누가 나오는가? 야고보. 참고서를 보니깐 여러분이 왜 초등학교 숙제에 보게 되면 참고서 보고하지 않는가? 신학서적 참고서가 있다. 뒤져보니깐 야고보가 예수님의 육신적인 형제라고 되어 있다. 예수님의 형제면 얼마나 권위가 있겠는가? 그 분이 말씀하셨다. 쉽게 말하면 작작들 하라는 말이다. 이방인도 하나님이 하신 것 아니냐? 할례같은거 말하지 말고, 급한거 음행이나 우상숭배를 주의하라고 하고 내버려 두라. 게임이 끝났다. 그러면서 무엇을 하였는가? 바울과 바나바는 계속 말씀을 전하였다. 멈추지 않고 전도 운동, 말씀 운동을 지속했다라고 32-35절에 나와 있다. 이 안디옥 교회 사람들, 초대교회 전도팀들이 제대로 분쟁과 논쟁을 대처한 것이다.
3. 하나님의 사람이 분쟁과 논쟁을 대처하는 3가지 방법(행15:4)
▶ 나와 여러분들은 무슨 문제가 생기게 되면, 복음 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하나님의 사람은 분쟁과 논쟁이 생기게 되면 이렇게 대처하라고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나누어드린 handout을 보시게 되면 세가지가 기록되어 있다. 말씀 운동했던 증거를 전해 주거라. 기도응답 받은 걸 소개해라. 전도 열매 나온 것 간증해라. 결국 말씀, 기도, 전도 속에 내가 있고 그가 주신 응답 나누어 주면 되는 것이다. 왜 우리가 말씀, 기도, 전도 속으로 들어가는가? 그게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식이 되어 오신 분이 누구인가? 그리스도이다. 우리 하나님께 기도응답받는 이름이 무엇인가? 그리스도 예수이다. 우리가 땅끝까지 누구의 증인이 되는 것인가? 평생 전도와 선교를 하는데 누구를 전하는 것인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어떠한 사람, 어떠한 사건, 어떠한 사물 앞에서도 그리스도를 찾게 되어지게 되면 승리하게 된다. 그러면 여러분이 나중에 이러한 깨달음까지 오게 된다. 내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돼서 바로 천국에 가지않고 이 땅에 남겨두신 이유를 알게 된다. 처음에는 내가 예수님이 필요해서 믿었는데, 그러다가 나중에는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없는거구나를 알게 된다. 무슨 뜻인가?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붙이신다. 이 사람 때문에 사랑하고 열정에 빠질 수 있다. 또는 이 사람 때문에 싸우고 상처받을 수 있다. 사람이 주인되서 그런 것이다. 이 사람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 사람하고 사랑하게 되면 내 인생 주인 그리스도께서 이 사람을 내게 붙였구나. 이 사람 때문에 내가 싸우면 이 사람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 줘야겠구나. 거기서 그리스도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걸 하라고 우리를 여기 남겨준 것이다. Man, Matter, Material 사람, 사건, 사물. 사물은 물건이다. 대표적인게 돈이다. 재산. 이것 때문에 피 튀기며 노력하고, 경쟁하고, 싸우고, 죽이면서 돈 벌라고 한다. 그것 속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찾는 것이다. 돈 갖고 있으면 못하는 일이 없다. 내가 지금 돈의 해악성을 말하려고 하는게 아니다. 돈이 있으면 거의 다 하지 않은가. 왜 하나님이 이 세상에 돈을 두었을까. 정말 돈이 있으면 행복하고 멋있게 살 수 있지 않은가. “아, 돈이 바로 그리스도구나” 돈은 그림자고 그리스도가 실체란 말이다. 이 세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돈이라고 하는데, 세상이 무너지면 돈이 없어진다. 그러면 실체가 있다는 말이다. 영원한 세계를 좌지우지하시는 유일하신 주인 그리스도가 있다는걸 발견해야 한다. 그렇다고 하면 내가 한 번 사는데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 제게 경재력을 주옵소서” 할 수 있는 것이다. 필요하니까. 그렇게 해서 돈에 대한 컨셉도 바뀌고 관점도 바뀌고 하나님하고 통하게 되는 것이다.
▶ “What’s the matter with you?” 뭔 일있냐? 영어로 말하지 않는가. 사건과 일이 많다. 문제 생길 때 어떻게 하는가? 우리는 보통 문제 속에 빠져들어간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게 아니고, 그 문제 속에서 그리스도를 찾는 것이다. “아, 내가 몸부림 쳐 보니깐, 내 힘으론 안되는구나.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인은 그리스도밖에 없구나.” 고백하는 것이다. 평생 동안의 만남과 사건과 장소 모든 것을 통해서 복음을 찾고 복음을 누리라고 이 땅에 두신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하고 정이 들겠나 안 들겠나? 정든다. 정드는데 얼굴 뵌 적이 있는가 없는가? 한 번도 본적이 없다. 여러분 예수님과 손 악수 한적이 있는가 없는가? 없다. 그럼 마음이 어떻겠는가? 그분 얼굴 뵙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 된다. 그럼 암 걸려도, 빨리 죽고 싶다. 나이 먹어서 죽을 때 쯤에도 “나 빨리 천국 가고 싶다” 보통 어르신내들이 왜 빨리 죽고싶다고 말씀하시지 않는가. 지긋 지긋 해서. 애들한테 무시당하고 돈 없고 힘 없으니깐 괄시당하는게 지긋 지긋하다고 빨리 가고 싶다고 하지 않은가. 사실 그게 아니고 그래서는 안 되고. 한이 맺힐 만큼 정든 그 예수님 얼굴 보고 싶어서 가고 싶어야 한다. 전에는 몰랐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된 이후에 만물 속에 하나님의 신성이 담겨 있고 그 주인되신 그리스도를 계속 찾고 발견하고 누리고 체험하면서 정드니깐, 안 보면 미치는 것이다. 이 세상에 많은 만남, 많은 물질, 많은 사건을 허락하신 이유가 그리스도를 찾으라고 하는 것이다. 복음 찾아낼 기회란 말이다. 다니엘서 6:10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무슨 뜻인가? 다니엘이 다음날 사형당한다. 근데 뭘 하는가? 전에 행하던 그대로 예루살렘을 향햐여 창문을 열고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기도 하였다. 그 죽음의 위기 속에서 모든 문제를 다스리는 하나님을 바라본 것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주인 쳐다본 것이다. 이 모든 문제를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나를 살리실 분도 주님이시고, 나를 대려가실 분도 주님이시다. 그 죽음의 위기, 사건 속에서 주인 되신 그리스도를 찾고 경배한 것이다.
▶ 사도행전 16장이다. 사도바울이 제자 실라와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죽도록 쳐 맞았다. 감옥에 던져졌다. 퉁퉁 붓고 피투성이 된 채, 옆에 제자 실라가 볼 때 어떻겠는가. 바울은 뭐했는가? 감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을 찬양했다. 내가 복음 때문에 고난 당하는구나. “전에는 내가 이 복음이라는 것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고난주었는데, 이제 내가 예수님 때문에 고난받는구나.” 그리스도를 몰라 영원히 지옥불에 들어가서 고통받을 내가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한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한 것이다. 고통과 굴욕과 수치스러운 문제 속에서 바로 그리스도를 찾은 것이다. 승리했다.
▶ 다니엘은 총리장이 되었다. 바울은 감옥에서 나왔다. 감옥 간수장을 그리스도 영접케 하였다. 그 지역에 빌립보 지교회가 생겼다.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 그리스도께선 역전의 명수인줄 믿는다. 모두가 실패한거라 여겼던 십자가의 죽음이 부활의 영광으로 역전시킨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그렇게 할 수 있다.
▶ 로마서 16장이다. 1절에서 14절 까지 보게 되면, 많은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누구인가. 바울의 제자들이다. 비밀 결사대이다. 전문인 선교사들이다. 강대국 로마 복음화할 수 있는 핵심 요원이다. 이 30여명의 제자들이 바울의 사역을 위하여 목숨 걸고 전 재산을 털었다. 바울이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며 이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마음이 어떻겠는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담임 목사, 목회자의 로망 같은 것이다. 언제라도 죽을 수 있는, 언제라도 전재산을 다 쓸 수 있는 이런 제자들이 나를 백업하고 있다. 이게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고, 감격스러우며, 감동스럽겠는가. “그러니깐 까불지마, 눈깔아, 무릎꿇어” 그렇게 말하지 않고 25, 26, 27절에 뭐라고 마무리하는가? 영세전부터 감추었던 이 복음 얘기한다.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나타난 그리스도 복음을 말한다. 그리고 미래에 영원무궁토록 하나님께 영광돌릴 그 복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뭐로 끝을 맺는 것인가? 그리스도. 예수. 복음말하는 것이다. 다니엘이나 바울의 빌립보 감옥처럼 어려운 일 당했을 때도 그리스도를 찾고, 너무나 감사한 기쁜 그 일 속에서도 복음 찾은 것이다. 이런 희노애락에 인생의 사건들을 통해서 우리가 뭘 하는가? 복음 잡고 누리라는 말이다. 여러분이 눈치를 채셔야 한다. 남에게 쉽게 말하지 못하는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다. 무조건 감추려고만 하지 말고, 생각하지 말고, 그 속에서 복음찾으라는 말이다. 그게 하나님하고 나하고 통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하고 통해야 문제가 해결되던, 물이 열려지던, 치유가되던가 그렇다. 특히, 부부간의 문제 그 속에서 여러분이 그리스도 찾으면 승리한다. 부부가 분쟁, 논쟁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별거하거나 이혼한다. 교회 안에서 성도끼리 분쟁, 논쟁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시험들어 교회를 나간다. 교회가 깨진다. 교회끼리 교단끼리 분쟁하고 논쟁하면 어떻게 되는가? 이단 정죄하고 싸운다. 나라와 나라가 분쟁, 논쟁하면 어떻게 되는가? 전쟁을 치룬다. 다 그렇다. 내 개인도 그렇다. 나는 한 사람인데 생각이 두개다. 이러한 생각 저러한 생각 때문에 싸운다. 그걸 갈등이라고 말한다. 그 때도 그리스도를 붙잡으라는 말이다. 그게 로마서 7장, 8장 바울의 고백이다. 나는 선한 것을 하려고 무지 애를 쓰는데, 내 속에 무엇이 있는가? 죄가 있다 그랬다. 하나님이 원치 않은 일을 내가 자꾸 한다는 말이다.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렇게 고백한다. “빨리 죽는게 낫겠다.” 그렇게 말하지 않고, 바로 로마서 8:1-2에 뭐라고 말하는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뭐 하는 것인가? 곤고할 만큼 갈등하지만,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분란되어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모든 문제를 통해서 복음, 그리스도를 붙잡는 눈이 열리게 되면, 승리할 수 있게 된다.
▶ 결론을 맺겠다. 하나님이 주신 응답을 나눴다. 두 영적권위자가 세워져서 말한 것을 순복했다. 내가 말씀드렸다시피 복음은 순복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에 순복했다. 그래서 죽으시고 부활한 것이다.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죽고싶지 않는 예수님의 본심이다. 인성을 갖고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랑 똑같은 처지에 있다라는 증거이다. 자기를 내려놓고 아버지께 순복한 것이다. 이것을 완성시킨 것이다. 복음을 성취시킨 것이다. 그래서 복음은 순복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영적권위자인 베드로와 야곱 앞에 순복한 것이다. 분쟁과 논쟁 속에서, 그리스도 붙잡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세계복음화 그걸 지속한 것이다. 하나님의 응답받기를 축원한다.
♠ 기도
▶ 존귀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환란 뿐만 아니라 분쟁과 논쟁이 일어나도 전도를 지속했던 그 안디옥 교회 사람들 처럼 승리하게 하옵소서. 마귀의 궤계에 빠지지 말게 하옵시고, 영적인 힘을 소진하지 않고 집중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은혜 속에 집중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주신 사명 속에 집중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