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26th, 2020
ICA Sunday Pulpit Message
주보 : PDF (Korean)
녹취록 : PDF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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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여년전 일이다. 중국 하얼빈에서 일어난 일이다. 당시 한국을 식민지배하고 있었던 일본의 이토라고 하는 총독이 중국 하얼빈을 방문했다. 그 때 한국 청년 ‘안’이라고 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이토를 저격해 죽였다. 이 사건은 한국 사람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전한다. 안중근이라고 하는 젊은 사람이 한국의 원수인 이토를 제거했다. 한국 사람에게는 유명한 독립운동가라고 이름을 기리고 있다. 같은 사람, 같은 사건을 두고서 일본 사람은 다르게 생각한다. 안중근 그 사람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증오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하고 일본 사람들하고 똑같은 사건 똑같은 사람을 향하여 다르게 본다는 얘기이다. 관점의 차이이다. 사람이 어따한 눈을, 시각을, 관점을 갖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르게 나타난다. 오늘은 관점에 관한 부분을 살펴보겠다.
▶ 우리가 올해에 우리 교회의 성도님들이 붙잡아야 할 표어, 모토가 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열’을 내세웠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이 이끄시는 그 대열 속에 있다. 그냥 교회 나오는 분도 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시대에 이 교회 속에서 인도하고 계시구나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분도 있다.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무언가를 바라보고 가야한다. 눈을 가져야 한다. 정확한 하나님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 그게 중요하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공짜로 은혜로 하나님의 복음을 받았다. 나를 비롯해 여러분 모두 지옥에 가야하는데 복음 받아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복음을 제대로 깨닫고 누리면서 다른 사람에게 증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다. 즉, 이 복음은 정확하게 볼 줄 알고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한번의 인생을 살면서 세상만 바라본다면 어떻겠는가? 평생 살면서 눈에 보이는 세상의 현실만 주목하고 산다면 어떻겠는가? 모르긴 몰라도 인간의 탈을 쓰고 있지만, 동물 수준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잘난건 없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앙생활 해야 하는데 늘 항상 언제나 현실만 급급해 있다면 불신자 수준과 똑같다.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복음의 관점을, 복음의 눈을 가져야 한다. 복음의 관점, 복음의 눈, 복음의 시각은 무엇인가? 복음이 무엇인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복음은 2000년 전 유대 청년 목수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증오하는 그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이다. 현재 최고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무슬림들이 유명한 선지자에 불과하다라고 말하는 그 예수님이 인생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라 하는 것이다. 내가 돈과 명예, 건강, 가족을 다 버려도 이 한 분만은 놓칠 수 없다라고 오직 그 분이 그리스도다 그게 복음이다. 그 분 한 분 만으로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다라고 하면 복음을 깨달은 것이다. 도대체 어떤 분이길래? 그렇게 말을 할 수 있겠는가?
▶ 복음은 바로 그리스도가 갖고 있는 비밀이다. 우리가 아무리 친한 친구를 많이 만나도 결국에는 공허하다. 친구가 많고 파티를 아무리 많이 열어도 어느 한 구석에는 허망하다. 왜 그런가 봤더니. 사람이라는 존재는 원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 물론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의 형상이 많이 어그러지고 가리워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틀거리는 그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친해지지 않으면 갈급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사람이나, 일본사람이나, 한국사람이나, 모든 인류는 하나님을 만날 뿐만 아니고, 하나님과 친해져야만 한다. 그래야 그 영적 공허함이 메꾸어진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주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세상에 어떠한 영웅호걸도 하나님 만나는 길을 주지 못했는데 예수님만 우리에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주신 것이다. 예수님이 갖고 있는 독특한 비밀이다. 그게 복음이다.
▶ 우리가 아무리 착하게 아름답게 살아도, 마지막날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 어미하신 심판주 하나님 앞에서 그 누구도 죄인이 아닐 수 없다. 전부 죄인이다. 그래서 죄를 많이지었던, 안 지었던 간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만 한다. 왜냐면 결국 하나님 앞에 서야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계산하신다. 심판하신다. 구원하신다. 영원히 처벌하신다. 용서받는 자만 구원받을 수 있다. 구원받는다는 얘기는, 술, 담배 안하고 착하게 산다는 뜻이 아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아름답고 착하게 살아도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만 천당에 간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 하는데, 그 길이 무엇인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단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너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느니라. 예수님을 모신 자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다. 이거는 지나가는 말이 아니고, 영생과 영벌과 갈리는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다. ‘아 그때 예수님 믿을걸. 억지로라도 교회 다니고 신앙생활 할걸.’ 그 날이 되면 많은 자구에 있는 사람들이 이를 갈며 한탄하며 지옥불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라는 이름 하나 때문에 용서를 받는다. 우리는 다 죄인인데 용서받은 죄인이다. 용서받은 죄인을 의인이라고 말한다. 그게 해결되는 이름이 예수님이다. 우리에겐 정말 기쁜 뉴스이다. 복된 소식이고 복음이다.
▶ 하나 더 있다. 여러분이 아무리 실력이 좋고, 배경이 좋을 뿐만 아니라, 외모가 훌륭해도 사람을 멸망시키는 존재가 있다. 운명을 통해서 저주와 재앙 심판을 가르는 사단 마귀가 있다. 이 사단의 권세를 이기지 못하면 결국 지옥간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저주가 쌓이고, 재앙속에서 고난 받는다. 그래서 흑암세력 이기는 힘을 받아야 한다. 그 보이지 않는 영적인 힘을 누가 주느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시며. 예수 이름을 부르게 되면 흑암세력은 결박되고 추방된다. 여러분을 옥죄었던 운명의 세력이 무너진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상관없다. 그와 관계없이 힘이 있어야 한다. 그 영적인 권세가 바로 예수님이 주신 것이다. 이게 복음이다. 하나님 만나는 길 되신 그리스도. 모든 죄, 저주, 재앙, 심판을 해방시키는 그리스도. 지금 이 시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단의 세력을 꺾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이게 복음이다. 놀라운 것이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진실로 고백하게 되면, 하나님의 성령이 내 속에 쑥 들어오게 된다. 여러분이 눈치 못채게 들어온다. 여러분은 모른다. 영적인 현상이다. 감기 바이러스가 들어올 때 노크하고 들어오는가? 모르게 들어오는가? 모른다. 하물며, 하나님의 성령께서 바이러스만 못 하는가? 여러분의 영혼 속에 쑥 들어온다. 그때에 성자를 모신 자를 위하여 하늘의 천군천사가 동원되기 시작한다. 이게 복음을 아는 자이다. 그래서 복음 관점을 가진 자, 복음을 가진 자, 복음을 깨달은 자는 영적인 존재, 영적인 사실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시구나. 이 분이 뭘 원하시는가? 무엇을 기뻐하시는가? 무엇을 언짢아 하시는가? 이게 민감해질 수 밖에 없다. 세상의 현실도 중요하긴 한데 더 긴급하고 중요한 것이 영적인 것이다. 그 영적인 축복을 누릴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복음 가진 자이다. 그래서 복음의 눈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영적인 사실과 존재를 보는 영안이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상황 쳐다보고 사람 얼굴을 쳐다본다. 나도 그랬다. 우리 교회 개척하고 나서 미국 교회를 빌렸을 때, 성도들이 별로 없었다. 설교하다가 성도님들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러면 저 분이 은혜를 받고 있구나 아니면 전혀 관심이 없구나 다 보게 된다. 그러면 내 마음이 덜컥한다. 내가 기도를 많이 안 했나? 설교를 제대로 준비 못 했나? 그러면서 흔들린다. 눈으로 보고서 보이는거에 흔들린다. 사람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조금 시간이 지나니깐 거기에 개의치 않고, 하나님의 말씀 받은걸 전달하는 종이다. 이게 마음에 딱 잡혀지니깐 흔들리지 않게 됐다.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을 허락해 주신걸 잘 심부름 하면 된다. 그 사람 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깨닫고 신앙 성장하는 것은 김목사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몰아가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움직이시고 일을 벌이시기 때문에, 그건 내 소관이 아니다. 내 관점이 바뀐 것이다.
▶ 이 복음 관점은 바로 그리스도의 영안이다. 그리스도께서 보시는 눈이다. 예수님께서 도대체 어떠한 눈을 갖고 게셨냐를 보게 되면 우리에게 유익이 된다. 예수님이 움직이시는 모습을 잘 기록한 것이 복음서다. 특히 요한복음에 잘 나와 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일대일로 많이 만나셨다. 오늘은 요한복음 3장, 4장, 5장을 설명드릴 것이다. 3장에 니고데모라고 하는 사람과 만난다. 4장에는 사마리아 여자와 한 번 만나 대화하신다. 5장에는 오래된 병자와 만나 얘기하신다. 3장에 디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온다. 한 밤 중에 찾아온다. 뭔 뜻인가? 다른 사람의 이목을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왜 그러냐면, 예수님께서 왕성하게 사역을 하시는데, 두 파로 나뉘어 졌다. 하나님의 아들. 한 그룹은 저 이단. 죽일놈이라고 한다. 양 파가 만만치 않다. 니고데모의 직업이 무엇인가? 바리새인이다. 유대인의 치리자. 지도자 관원이다. 요즘의 국회의원이라 볼 수 있다. 바리새인은 특별한 특권 계급층이다. 가문이 좋아야하고, 실력이 있어야 하고, 신앙이 좋아야 하고, 재산이 있어야 하고, 사람들 한테 평가를 받아야 바리새인이 될 수 있다. 국회의원쯤 되게 되면, 다 가진 것이다. 밤에 찾아왔단 얘기는 다른 사람 모르게 찾아왔단 얘기다. 저 예수라고 하는 청년이 전하는 메시지를 듣자하니 단순한게 아니었다. 힘있고, 권세있고, 증거가 나타나는 하나님의 말씀같다. 상당한 수가 예수님을 이단으로 몰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걸 의식하다 보니깐, 안 볼 때 찾아온 것이다. 찾아와서 역시 실력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서 칭찬한다. 당신이야 말로 하나님께로 부터 온 랍비 선생님이시다. 그 때에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는가?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또는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그렇게 대하지 아니하였다.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셨다. 사람이라고 하는 존재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들어간다라고 얘기하지 아니하고, 볼 수가 없다라는 충격적인 말을 했다. 다시 태어난다? 다시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야 하나? 엉뚱한 말을 하였다. 니고데모의 칭찬 앞에 굉장히 강경한 발언을 하였다. 예수님은 왜 그랬을까? 예수님은 딱 보고 알았다. 바리새인이구나. 유대인의 관원이구나. 실력, 배경, 돈, 재력, 안 가진 것 없이 다 갖고 있구나. 그런데, 구원받지 못했다. 하나님의 구원으로 거듭나지 않았다. 하나님의 나라에 못 들어간다.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최고의 그룹이 바리새인이다. 그런데 너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말한 것이다. 니고데모가 다 갖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구원을 얻지 못 했음을 본 것이다. 다 가졌는데 구원 하나를 못 가졌다. 니고데모에게는 치명적인 부분이다. 예수님이 그걸 보시고 건드리신 것이다. 사람이 한 번 태어나서 하나님을 모르고 관심이 없다면 어떻겠는가? 가장 불쌍한 존재이다. 그걸 예수님이 보신 것이다. 우리가 가져야 할 눈, 소유해야 할 복음의 눈이 바로 이 것이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그 사람이 구원을 갖고 있느냐, 안 갖고 있느냐. 이건 그 사람에게 치명적인 것이다. 그걸 우리가 봐야 한다. 만나는 이 사람이 아무리 젠틀맨이고 아름다운 사람이라도 구원이 없다면 그 사람에게 치명적인 것이다. 거듭나지 못 했다. 구원 못 받았다. 그것은 마귀에게 속한 영혼이다. 결국엔 지옥의 영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니깐 당연히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나와 여러분들이 정말 복음이 소중하고, 유일하며, 절대적인 가치임을 믿어지면, 이 사람이 복음이 있는가 없는가 보여지게 된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게 바로 구원의 문제이다. 구원의 축복을 누리는 자는 당연히 보게 된다.
▶ 요즘에 건강보조 식품들이 많이 있다. 복용을 했는데 내가 너무 건강이 좋아졌다. 그럼 이걸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겠는가? 안 하겠는가? 조금 비싸더라도 먹어보라 말한다. 내가 고침을 받았기 때문에. 내가 정말 유익을 얻었으면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은게 진시이다. 정말 내가 복음의 축복, 구원의 축복을 체험하게 되면 과연 저 사람이 과연 구원을 받았나 안 받았나 보여질 수 밖에 없다. 이게 예수님이 갖고 계신 눈이었다. 예수님의 관점이다. 이거를 우리가 갖기를 하나님이 원하신다. 요한복음 4장에는 한 여인과 예수님이 만난다. 장소는 사마리아 지역이고 동네 이름은 수가이다. 즉 사마리아 여인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급히 사마리아 동네로 내려가시더니 우물가에 당도하셨다. 그 때 한 여자가 대낮에 햇볓이 쨍쨍한 그 시간에 우물을 길르고 있었다. 사마리아 여자가 대낮에 우물을 길른다는게 무슨 뜻인가? 요한복음 4장을 읽으신 분은 안다. 물 길러온 저 여자는 남편이 다섯이다. 주위 사람으로 부터 손가락질을 받는다. 사람보기 꺼려한다는 말이다. 물은 마셔야 하니깐, 보통 사람들은 언제 물을 길러오는가? 유대 땅 중동지역에는 낮에 굉장히 덥다. 그래서 서늘한 아침이나, 해가 떨어진 이 후 오후 늦게나 저녁 때 물을 길러온다. 그런데 이 여인은 아무도 안 오는 햇빛이 장렬하는 시간에 홀로 물을 길러왔다. 그 때 예수님이 냅다 요구하신다. ‘내게 물 좀 다오.’ 그 여인이 쳐다봤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사마리아인인 나에게 말을 거십니까?’ 유대인하고 사마리아인은 상종을 안 한다. 여자가 놀라서 물어본다. 누구시냐 말이다. 예수님이 대답하셨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내게 주었을 것이다. 무엇인가? 물을 길러 오지만, 이 물은 한 번 마시게 되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가급적이면 우물에 안 오고 싶지 않은 여인으로서 내게 그 물 좀 달라고 다시 이 물을 길르러 오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예수님이 난데없이 남편을 데려와라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다 알고 계시다. 얘기를 확 전환시키셨다. 생수 얘기하다가 남편 얘기로 전환 하셨다. 여자가 고백하였다. 나는 남편이 지금 없다.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는가?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이실직고르 해야 생수를 주지 않겠니?라고 하지 않으셨다. 너는 남성편력이 많아서 남편이 다섯이나 되고 이제 여섯번째인데, 뭔 소리냐?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도리어, 네가 맞다. 이렇게 얘기했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으나, 남편 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지금 있는 남편도 만족하지 못 하고 있구나하고 품어버리셨다. 그 여인은 깜짝놀랐다. 선지자시군요. 선지자 얘기가 나오니깐 여자가 얘기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선지자 그 앞에 하나님께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말했다. 유대인들은 저기서 예배를 드리는데 우리는 이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린다. 뭐가 맞는 것인가? 결국 그 여인의 갈급한 부분을 그 입으로 말하게 만드신다. 예수님은 아셨다. 그래서 사람 만나기 꺼려하고, 대화하기 싫어하는 그 여인에게 먼저 다가가 물을 달라고, 대화의 물꼬를 트신 것이다.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도 말씀하셨고, 네가 길러오는 물보다 더 좋은 생수라는 말을 통해서 대화의 흐름을 탄 것이다. 그 여자의 약점인 남편 얘기를 꺼낸다. 좌절하 듯이 나는 남편이 없다 말한 여인을 옳다라고 부등켜 안은 것이다. 그러니까 선지자란 말이 나오고 예배에 대한 말이 나온 것이다. 그 때 답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예비하시는 자를 찾으시는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진정과 신령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답을 주신다. 결국 그 여자의 가장 깊은 영적인 갈급함을 보시고, 거기에 대한 답을 주신 것이다. 즉, 그 영혼의 갈급한게 무엇인가를 보는게 예수님의 관점, 눈이었다. 우리는 보통 사람을 만나게 되면, 이 사람을 통해서 내가 무슨 이익을 얻을까? 여기에 집중되어 있다. 그 사람이 무엇에 목 말라있는가를 보는 것이다. 그게 복음의 눈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목말라 갈급해 있다. 이거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이 부분을 보게 되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축복하신다.
▶ 5장에는 베대스다라고 하는 연못가에 예수님이 이르신다. 힘들어서 거동을 못하는 병자를 하나를 만났다. 38년 동안 앓고 있었다. 5:6에 ‘그가 누운 것을 보시고’ 이렇게 되어 있다. 그러시면서 네가 낫기를 원하는가 물어보신다. 당연히 그렇다 얘기 하였다. 5:8 에 귀신아 나가라. 들어가라. 병아 나아라 얘기하지 않으셨다. 38년 동안 누워있으니깐 네 다리를 들고 일어나라 말하셨다. 기적이 일어났다. 예수님께서는 그 병자의 가장 필요한 부분을 보고 말씀하신 것이다. 병자의 병이 낫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것 만큼 중요한게 어디있겠는가. 예수님이 그걸 본 것이다. 예수님의 눈이었다. 관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살펴 봐야 한다. 이게 복음의 눈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조금이라도 그 부분을 돕게 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나에게는 많은 사람들을 얻을 수 있는 통로가 된다. 예수님이 갖고 있던 복음의 눈.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그 사람의 치명적인 부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저 사람을 정말 예수님을 모르는구나. 저 사람은 끔찍한 과거의 특별한 경험이 있구나. 이런걸 볼줄 알아야 한다. 그 사람이 가장 목말라하는 부분이 무엇인가? 그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복음의 눈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시라.
▶ 이 복음의 눈은 복음의 마음을 통해서 나온다. 이 복음의 마음은 부모님의 마음이다. 성경에는 아비의 심령이라고 얘기한다. 바울이 이 부분을 고린도전서 4장에 말하였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교회 안에는 10,000명의 선생이 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는 많이 있다. 그런데 아비는 많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나은 아버지다. 이렇게 자기를 소개한다. 아버지나 어머니의 마음을 여러분은 아시지 않는가? 이 아이가 뭐가 필요한가를 볼 수 있다. 내꺼를 조금 얻지 못해도, 내려 놓더라도 자기 자녀에 대한 부분을 채우려 한다. 다시 말씀드려서 복음은 아버지께서 집 나간 아들에게 주신 구원의 길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죄인된 우리를 위하여 준 구원의 길이다. 그래서 복음 안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심령이 담겨있는 것이다. 복음의 눈은 아비의 심정을 가지고 보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요. 하나님 아버지의 눈이다. 우리가 만약 그런 눈을 갖게 되면 아버지와 같은 심령을 가지고, 아버지와 같은 눈으로 보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친구라도 마음이 통하고 취미가 통하면, 네 것 내 것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거 같이 나누고 싶고, 내가 좋아하는거 빌려주기도 한다. 서로 통하기 때문에. 우리가 비록 버러지같은 피조물이지만, 구원받아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눈을 가지게 되면 하나님과 통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향하여 내 벗이다라고 말하였다. 서로 통하니깐 하나님 아버지께서 네 것 내 것이 없는 것이다. 하늘의 신령한 복, 이 땅의 기름진 응답, 축복, 열매 다 쏟아 부어주시는 것이다. 즉, 복음의 눈을 가진 자, 아비의 심정을 가진 자인데,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가 된 것이다. 하나님이 막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막 주시는데, 그럴 사람을 이길 자가 있는가 없는가? 없다. 복음을 가진자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거기서 나온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5:7 ‘긍휼이 여기는 자는 복이 있다’ 왜냐면, 그가 불쌍히 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비의 심정을 가지고, 복음의 눈을 가지고, 사람 쳐다보면서 불쌍히 여길 때, 내가 또 하나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신다고 한다면, 내 인생 게임은 끝난 것이다. 하나님이 추적하시면서 축복하신다. 믿음이 떨어지만 하면, 믿음을 불러 일으켜서 응답을 주신다. 절대 망하지 않는줄 믿는다. 서로 좌우의 옆 분들을 쳐다 보면서 고백하자. ‘복음의 눈을 가집시다.’ 다음주에는 ‘기도의 입’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겠다.
♠ 기도
▶ 기도하겠다. 이 시간 하나님 앞에 눈을 감고 나아가는 것이다. 여러분 중에 아직 그리스도의 비밀을 모르겠다 하시는 분이 있으면, 여러분의 오른손을 왼편 가슴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혹 여러분 중에 나는 교회에 많이 다녔지만, 이 그리스도의 풍성한 비밀, 심오한 비밀을 체험하지 못했다 하시는 분이 있으면, 여러분의 오른손을 왼편 가슴 위에 올려놓으시라. 그러면서 아무도 듣지 못하도록 여러분의 속으로 고백하시라. 아버지께 구하시라. 그리고 예수님을 신앙고백하는 것이다.
▶ 예수님 당신은 나의 주님이시요. 그리스도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합니다. 내 안에 모셔드립니다. 성령으로 영원히 함께해 주옵소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풍성한 비밀을 누리기 위하여 복음의 눈을 갖게 하옵소서. 영안이 열리는 축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늘의 신령한 복과 이 땅의 기름진 복을 찾아 누리며 증거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